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묵상

2016년 12월1일 [(자) 대림 제1주간 목요일] 매일미사 묵상/먼나무 6장


2016년 12월1일 [(자) 대림 제1주간 목요일] 매일미사 묵상


본기도

주님, 주님의 권능을 떨치시고 그 크신 힘으로 저희를 도우시어, 자비로운 은총으로 저희 죄를 없애시고 어서 저희를 구원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이사야는 그날 유다 땅에서 주님을 찬양하는 승리의 노래가 불리리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시며,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간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6,1-6

복음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21.24-27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성찬에 참여한 저희가, 덧없이 지나가는 현세를 살면서도, 지금부터 천상 양식에 맛들여 영원한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를 촉구하십니다. 실행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다름없기 때문이지요. 그러기에 실천하는 신앙인이야말로 반석 위에 집을 짓듯이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덧붙이신 것입니다.
실천적인 믿음을 지니려면 주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만 합니다. 확고한 신념이 없다면, 자기 자신 위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느님께 바라는 것만 많게 되지요. 그러다 보니 신앙적으로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좌절해 버리곤 하지 않습니까? 따라서 하느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확고하게 정립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려면 먼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도 많이 해야만 하지요. 그렇지만 적지 않은 경우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기보다, 먼저 나의 요구 사항만 나열하곤 합니다. 굳건한 토대 위에서 믿음이 자라지 못한다면, 남이 나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지는 것은 물론, 나 역시 사소한 일에도 쓰러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틈나는 대로 하느님 말씀을 들으며, 그 말씀을 깊게 묵상하고, 이를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럴 때 내 안에서 힘이 나올 것이며, 그 힘으로 나의 믿음은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될 것입니다. 또한 나의 실천적인 믿음을 보고 주변 사람들도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보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이란 영원한 반석’ 위에 집을 짓게 될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아버지를 신뢰하고 사랑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내놓음으로써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그렇게 자신을 내어놓음으로써 아버지의 뜻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서 벌어지는 매 순간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순간으로 맞이해야 할 일입니다. 곧 십자가의 순간으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러니, 혹 어떤 것이 ‘아버지의 뜻’인지 잘 모르겠거든, 자신이 손해 보는 쪽을 택하면 될 일입니다. 곧 십자가가 있는 쪽을 택하면 될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옳으면서도 져주는 쪽을 택하는 것이요, 이해되지 않아도 받아들이는 쪽을 택하는 일일 것입니다. 잘 했으면서도 용서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요, 오해 받으면서도 허물을 뒤집어쓰는 쪽을 택하는 것이요, 부당함을 당하고도 그를 감싸는 쪽을 택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야말로, 손해 볼 줄을 뻔히 알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먼저 그렇게 하신 예수님께 의탁하여 그렇게 실행하는 일입니다. 곧 십자가의 어리석음과 무력함을 택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지향으로 말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하루 당신의 말씀을 실행하며

 제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양식으로 삼고 당신의 일을 완수하게 하소서! 아멘.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2. 오늘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그분께서는 높은 곳의 주민들을 낮추시고, 높은 도시를 헐어 버리셨으며, 그것을 땅바닥에다 헐어 버리시어 먼지 위로 내던지셨다. 발이 그것을 짓밟는다. 빈곤한 이들의 발이, 힘없는 이들의 발길이 그것을 짓밟는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교회는 항상 쇄신되어야 하고, 세상의 어두운 곳, 소외된 곳, 가난한 이, 병든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는 우리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태도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영성체송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우리는 현세에서 의롭고 경건하게 살며, 복된 희망이 이루어지고, 위대하신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네.”(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3.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마태 7,21)

빈자들의 성녀 마더 테레사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돌보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기도를 매일 규칙적으로 바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것도 오랫동안 성체 앞에 머물며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기도하는 것이 궁금했던 한 기자가 인터뷰에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수녀님, 그렇게 오랜 시간 기도하시는 데 그 시간에 무얼 하시나요?’

,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귀담아들으려 하지요.’

?, 그럼 주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아니요. 하느님께서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으로 다 말씀하셨는데요, .’​(윤경재 요셉)

4.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영원한 반석이신 주님을 신뢰하지 않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높은 곳의 주민들을 낮추시고, 높은 도시를 헐어 버리셨으며, 그것을 땅바닥에다 헐어 버리시어 먼지 위로 내던지셨다. 발이 그것을 짓밟는다. 빈곤한 이들의 발이, 힘없는 이들의 발길이 그것을 짓밟는다.”(이사 26,5-6)

주님을 기다리며 우리 모두 하느님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처신하는 교만을 버려야겠습니다. "제후들을 믿기보다 주님께 피신함이 훨씬 낫다네.”(시편 118)라고 고백하는 시편 작가처럼 내가 주인인양 착각하여 거들먹거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저 낮은 곳으로 내려가지 않고는 주님을 만날 수 없는 까닭입니다.

모든 좋은 것을 주시려 오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겸손한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참 기쁨의 사람이 되도록 힘썼으면 합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고(1테살 5,18), 인내하며 선을 행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1베드 2,15). 성탄의 참 기쁨은 영혼 없이 부르는 캐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일과 관심사에서 눈길을 돌려 길거리에서 울려퍼지는 신음과 절규에 마음의 귀를 기울이고 자비와 선을 행하는 바로 거기서 샘솟을 것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6. 오늘 독서가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당신께만 신뢰를 두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평화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당신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신뢰를 두어야하는 대상은 변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마치 밤하늘에 뜬 북극성이 위치를 바꾸지 않아 뱃사람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별이 되었듯이, 주님께서도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시지 않는 반석이십니다.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주님은 반석이시고 당신께 신뢰를 두는 이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저도 주님께서 불러주실 때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세상 것에 행복을 두어야 할 것인지, 주님께 온전히 신뢰할 것인지. 그렇지만 사제가 되어서도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이나 재물, 사람들의 애정 등에 신뢰를 두게 될 때가 많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주실 수도 있고 빼앗아 가실 수도 있는 분임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저는 요즘 탈출기를 묵상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러 갈 때 치포라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모세의 결단을 생각합니다.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혼인해서 살던 여자를 집으로 돌려보낸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을 생각합니다. 주님은 확실히 우리의 신뢰를 당신 외의 다른 어떤 것에도 두기를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결국 어떤 일을 했을 때 모든 공로가 당신께로 돌아가지 않고 나를 도와주었던 그 사람들에게도 돌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당신께 의탁할 당신의 종을 필요로 하고 계시고 그렇게 살면 반드시 다른 어떤 선택보다 더 큰 평화로 우리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나의 평화와 기쁨을 위해 오직 주님만으로 충분하고 그분의 뜻을 따름만으로 충분함을 굳게 신뢰합시다. ​(전삼용 요셉신부)



2016년 12월1일 [(자) 대림 제1주간 목요일]
⁠오늘의 복음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오늘 독서의 이사야서 내용입니다.

당신께만 신뢰를 두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평화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당신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신뢰를 두어야하는 대상은 변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마치 밤하늘에 뜬 북극성이 위치를 바꾸지 않아 뱃사람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별이 되었듯이,

주님께서도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시지 않는 반석이십니다.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주님은 반석이시고 당신께 신뢰를 두는 이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이란 영원한 반석’ 위에 집을 짓게 될 것입니다.


혹 어떤 것이 ‘아버지의 뜻’인지 잘 모르겠거든, 자신이 손해 보는 쪽을 택하면 될 일입니다.

곧 십자가가 있는 쪽을 택하면 될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옳으면서도 져주는 쪽을 택하는 것이요, 이해되지 않아도 받아들이는 쪽을 택하는 일일 것입니다.

잘 했으면서도 용서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요, 오해 받으면서도 허물을 뒤집어쓰는 쪽을 택하는 것이요,

부당함을 당하고도 그를 감싸는 쪽을 택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야말로, 손해 볼 줄을 뻔히 알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먼저 그렇게 하신 예수님께 의탁하여 그렇게 실행하는 일입니다.

곧 십자가의 어리석음과 무력함을 택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지향으로 말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하루 당신의 말씀을 실행하며

 제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양식으로 삼고 당신의 일을 완수하게 하소서!

 아멘.


- 2016년 12월1일 [(자) 대림 제1주간 목요일]...수산나 -




먼나무 1


먼나무 2


먼나무 3


먼나무 4


먼나무 5


먼나무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