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2일 [(자) 대림 제1주간 금요일] 매일미사 묵상
말씀의 초대
이사야는 야곱 집안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야곱이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눈먼 두 사람의 간청을 들으시고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신 다음,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고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하시며 눈을 열어 주신다(복음).
제1독서 <그날, 눈먼 이들의 눈도 보게 되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9,17-24
복음 <예수님을 믿는 눈먼 두 사람의 눈이 열렸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7-31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신비로운 제사에 참여한 저희를 생명의 양식으로 기르시니, 저희가 지상 것을 슬기롭게 헤아리며, 끊임없이 천상 것을 찾도록 가르쳐 주소서.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눈먼 두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단 한 가지이지요. 믿음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질문하신 것입니다.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만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굳건한 믿음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 회개이지요.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통해 자비하신 하느님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내가 추구하던 삶의 자세를 180도 돌리는 방향 전환을 의미합니다. 단순하게 나의 생활 습관을 바꾼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말하는 회개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며, 둘째는 예수님의 표양을 보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에 힘입어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지요.
믿음과 회개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스스로 새로워지면 반드시 회개하는 사람이 되게 마련이며, 또한 어떤 사람이 회개하면 반드시 믿는 사람이 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회개하며 스스로 새로워지려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번 대림 시기에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합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참된 신앙은 겸손함에서 시작합니다. 절여진 김치는 속을 넣어야 합니다. 김치의 속은 여러 가지 양념의 조화입니다. ‘고춧가루, 젓갈, 무, 쪽파, 대파, 갓, 마늘, 양파, 밤, 굴’등 여러 가지 양념과 재료들이 한데 어울려서 맛있는 김치를 만들어 줍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재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녹아서 하나의 맛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들의 마음에도 여러 가지 양념을 넣어야 합니다. ‘사랑, 친절, 겸손, 희생, 나눔’의 양념이 우리의 마음에서 버무려지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진하게 나는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눈을 뜨고 있지만 다른 것들 때문에 눈이 멀곤 합니다. 돈에 눈이 멀기도 하고, 출세에 눈이 멀기도 하고, 권력에 눈이 멀기도 합니다. 원망과 미움에 눈이 멀기도 하고, 눈앞의 이익 때문에 눈이 멀기도 합니다. 욕망에 눈이 멀어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눈을 뜨고 있지만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사랑의 눈으로, 희망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 역시 오늘 자비를 청한 소경처럼 주님께 참된 신앙의 눈을 뜰 수 있도록 청해야 하겠습니다.(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2. 한 두 번이 아닌 끊임없이 주님을 만나 마음의 눈이 열리고 마음의 귀가 열려야 합니다.
어찌보면 우리 삶은 이런 ‘열림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인 회개를 통해 순수한 마음에 마음의 눈도 마음의 귀도 활짝 열립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우리의 진정한 희망이요 기쁨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없다면 무슨 희망, 무슨 기쁨으로 살 수 있을런지요.
오늘 이사야서는 주님께서 오실 때의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는 희망과 기쁨이 가득한 메시지입니다.
“그날에는 귀먹은 이들도 책에 적힌 말을 듣고,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게 되리라.
겸손한 이들은 주님 안에서 기쁨에 기쁨을 더하고,
사람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하리라.”
(이사29,19).
그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이사야를 통한 하느님의 꿈이 실현되는 대림시기입니다.
바로 그날인 오늘 우리는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을 만남으로 마음의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
주님을 뵙고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겸손한 이들은 주님 안에서 기쁨에 기쁨을 더하고
가난한 이들은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미사시간입니다.(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3. 우리가 볼 수 있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하나는 볼 수 있는 시력이요, 또 하나는 빛이다. 빛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시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또 빛이 있다 하더라도 시력이 없으면 볼 수 없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한다. 믿음은 발전하는 것이다. 그것도 단계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십 년 전 믿음이나 십 년 후의 믿음이나 아무 변화 없이 똑같은 믿음이라면 눈먼 이의 믿음이다.
눈먼 이가 예수님께서 자기들의 눈을 뜨게 할 수 있으리라고 따라 간 것도 믿음이며, 그 믿음만으로는 볼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예수님이 집 안으로 들어 가시자 집 안에까지 따라 간 것은 일보 발전된 믿음이요, "너희는 믿느냐?"라고 예수님께서 물으셨을 때 "예, 주님!"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하고 말씀하시자 그들의 눈이 열린 것은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것을 볼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한 믿음이었다. 그러니까 이들의 믿음은 단계적으로 발전한 믿음이요, 예수님은 이들의 믿음이 성숙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믿음이 답습상태에 머물지 말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면서 단계적으로 발전되고 마침내 눈을 뜰 수 있는 믿음이어야 한다. 그러면 언제 우리의 눈이 뜨였다고 할 수 있는가? "생명의 샘이 진정 당신께 있고 우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옵나이다."(시편 3510)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당신 빛으로 빛을" 볼 수 있을 때 눈이 뜨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눈이 열려지려면 무엇보다 예수님을 보고 싶은 열망 즉 눈 먼 두 사람처럼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간절한 열망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고 그런 열망을 보시고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시는 예수님의 은총이 필요하다. 그 열망이란 막연한 열망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즉 복음을 읽고 묵상해야 한다.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으려고 노력하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을 성령의 도움으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하면서 복음을 읽고 묵상해야 한다. 그래서 복음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은 마음으로 나의 삶을 되돌아 보고 자연과 역사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현존을 느끼고 복음의 관점에서 보고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라, 눈먼 이들이 얼마나 예수님께 다가 가려고 노력하였는가! 이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고, 예수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눈먼 이들도 집안에까지 쫓아가면서 그분께 다가갔다. 그리고 예수님의 질문에 "예, 주님!" 하고 확신을 갖고 대답했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가서 예수님께 관한 이야기를 그 지방에 두루 퍼뜨렸다."
내가 눈먼 이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고 싶은 간절한 그리고 적극적인 열망과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유광수 야고보 신부님)
4. 이사야 예언자도 주님의 날에 맞을 해방의 기쁨을 전합니다. "귀먹은 이들도 책에 적힌 말을 듣고,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보게 되리라. 겸손한 이들은 주님 안에서 기쁨에 기쁨을 더하고, 사람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하리라.”(29,18-19)
세상 것에 매여 살아가는 사람들은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주님의 의로움과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행복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데 빛이신 주님을 믿고 사는 우리도 이 근원적인 사실을 자주 잊고 살지요. 오늘 복음의 소경처럼 눈 먼 채 살아가는 소경일 수 있습니다.
빛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사는 인간다운 세상, 아름다운 인생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깨끗한 마음, 맑은 영혼, 순수한 눈길을 지녀야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단순히 도덕적인 정직함만으로는 지닐 수 없습니다. 도덕적 정당성과 자기절제와 정화는 인간 자신의 힘에 의존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보다 근본적인 것은 나를 기다리시는 하느님 앞에 내가 있으며, 빛이신 그분 앞에 있는 나는 ‘어둠’임을 먼저 인정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나의 어둠을 인정하고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빛이신 주님과 일치할 수 있고, 영으로만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맑아져 빛 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따라가며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간청하는 소경들처럼(9,27-28), 우리도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온갖 세상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비와 해방의 기쁨을 달라고 청해야겠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우리의 간절함과 절박함이야말로 의미를 발생시키고 행복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탐욕과 애착과 이기심 가득한 눈길은 늘 우리네 삶을 비참함으로 내몰 뿐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따라서 빛을 갈망함으로써 빛이신 주님과 일치하여 다른 이의 처지를 사랑으로 헤아리고, 이해하고 참아내며 관대하게 품어주도록 힘써야겠지요.
오늘도 어둠 중에 있는 우리이지만 그럼에도 눈을 들어 빛이요 자비이신 주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해방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5. 우리의 신앙생활은 입술로가 아니라 실천으로 옮겨져야 하고 그 실행은 사랑으로 해야 한다.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 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 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3)
"나의 형제 여러분,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양식조차 떨어졌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어라."고 말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4-17)(유광수 야고보 신부님)
6. 일생의 몇 차례 우리는 그런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만
많은 경우는 한 번 들은 것이 바로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고
수없이 듣고, 수없이 묵상하고,
수없이 실천키로 다짐하는 것이 반복되어야
말씀이 체화되어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몸과 마음에>라고 분명히 얘기합니다.
거룩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마음 뿐 아니라
몸에도 주님의 말씀을 모시라는 것인데 그것을 우리말로 바꾸면
말씀을 체화體化하는 것 또는 신체화身體化하는 것입니다.(-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
2016년 12월2일 [(자) 대림 제1주간 금요일]
오늘의 복음 <예수님을 믿는 눈먼 두 사람의 눈이 열렸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눈먼 두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단 한 가지이지요. 믿음입니다.
그런데 굳건한 믿음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 회개이지요.
회개는 내가 추구하던 삶의 자세를 180도 돌리는 방향 전환을 의미합니다.
복음서에서 말하는 회개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며,
둘째는 예수님의 표양을 보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에 힘입어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지요.
믿음과 회개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회개하며 스스로 새로워지려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번 대림 시기에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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