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30일 금요일 [(백)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가정 성화 주간)]매일미사 묵상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은 나자렛의 성가정을 기억하며 이를 본받고자 하는 축일이다. 1921년 이 축일이 처음 정해질 때에는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 첫 주일이었으나, 1969년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성탄 팔일 축제’ 내 주일로 옮겼다(팔일 축제 안에 주일이 없으면 12월 30일).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부터 해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부터 한 주간을 ‘가정 성화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가정 공동체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가운데 진정한 사랑이 넘치는 보금자리로 가꾸어 나가게 하려는 것이다.
본기도
하느님, 성가정을 통하여 참된 삶의 모범을 보여 주시니, 저희가 성가정의 성덕과 사랑을 본받아, 하느님의 집에서 끝없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집회서의 저자는 부모를 공경하라며, 효행은 잊히지 않으리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고 한다(제1독서). 이집트로 피신했던 요셉은 헤로데가 죽었다는 천사의 말을 듣고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로 돌아와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는다(복음).
제1독서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아버지를 공경한다.>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3,2-6.12-14<또는 콜로 3,12-21>
13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14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복음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15.19-23
영성체 후 기도
지극히 인자하신 아버지, 저희를 천상 성사로 길러 주시니, 저희가 언제나 성가정을 본받아, 현세의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고, 마침내 영원한 천상 가정에 들게 하소서.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을 보면 요셉과 마리아는 헤로데의 보복을 피해 아기 예수님과 이집트로 피난을 갑니다. 갓 출산한 마리아에게는 너무나 큰 시련과 고통의 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어려운 고비마다 천사를 보내시어 성가정을 지켜 주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가족 간의 대화와 신뢰마저 점점 무너집니다. 어쩌면 상대방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도 그 원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부족함부터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누구나 처음 가정을 꾸밀 때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쁘게 지내다 보니 이상은 사라지고, 다른 사람들의 뒤만 허겁지겁 쫓아가는 것 같습니다. 내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가정을 실현하려면 가족에 대한 고정 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날 사회의 급속한 변화와 함께 가족의 역할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족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을 힘들게 하는 가시가 있습니다. 건강이나 과중한 직장 업무, 동료와의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과중한 학업이나 취업난도 큰 가시입니다. 그런 가족의 아픔을 배려해야 합니다. 가족에 대한 지나친 욕심과 집착에서도 벗어나야 하기에 많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가족 모두가 주님을 바라보며 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함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도 이집트 피난길에서 나자렛의 성가정을 지켜 주셨듯이 우리 가정을 모든 위험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성가정이란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가정이요, 말씀에 순명하는 가정이요, ‘말씀이 성취되는 가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말씀이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이 주인 되게 하는 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고통이 없는 가정이 성가정이라는 말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니 어쩌면, 성가정에는 고통이 필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성취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묘한 신비입니다. 말씀이시면서 말을 못하는 이 아기는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고통으로, 때로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때로는 보이지도 않은 빈자리가 되어 우리네 가정, 우리네 공동체를 이끄십니다.
말씀이신 분이 우리 안에 작고 낮고 무력하게 말 못하는 아기의 모습으로 살아계심을 볼 일입니다. 말씀은 사랑하는 이 앞에서 항상 작고 낮은 이로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는 결코 자신을 높이거나 교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관상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보다 작고 나약한 예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마리아는 <마나피캇> 첫 구절에서 잘 드러내줍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크게 하며(찬양하며)”라고 노래합니다. 곧 당신보다 작은 주님을 체험하고서 그분을 크게 해드리는 노래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리아처럼, 자신보다 작고 무력한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나를 사랑하기에 언제나 나보다 작은 모습으로 내 앞에 무력하게 낮아져 있는 그분을 말입니다. 심지어는 없는 자, 빈지리가 되어 있는 그분을 말입니다.(이영근 신부)
2. 하느님을 떠나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의미와 공허와 비인간화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지으신 존재,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살 수 없게끔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기뻐해야 하겠습니다....“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콜로새3,15.16)...
말씀을 통해 하느님을 내 마음 안에 모셔 들이면 육적인 사람이 영적인 사람으로 변합니다. 가치관이 달라지고 생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생활양식이 바뀌고 갈등이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말씀 안에서 해답을 찾고 행하는 성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반영억 라파엘 신부)
3. 전임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다음 글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마리아는 ‘예’를 통해 어머니가 되셨다.
교부들은 종종 마리아가 귀를 통해, 곧 경청함으로써 잉태했다고 말한다.
마리아의 순명을 통해 말씀이 그녀 안에 들어왔고 그녀 안에서 풍요롭게 되었다.”(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4. 저녁노을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화면 중앙에 젊은 부부가 두 손을 모은 채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멀리 지평선 근방에 첨탑이 솟은 성당이 뿌옇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화면 가득 성당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림 속에서도 소리가 들린다는 걸 ‘만종’을 대하고 처음으로 깨달았지요. 서양화가 박수근도 12살에 밀레의 ‘만종’을 처음 만나 그 종소리를 듣고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답니다.
만종 속에는 노동과 감사와 사랑이 담겼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경건함이 물씬 풍겨 나옵니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멀리 성당 종소리에 맞춰 저녁기도를 바치는 모습은 제게 알 수 없는 경외감을 주었습니다....밀레는 만종을 그린 계기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할머니는 들에서 일을 하다가도 성당 종이 울리면 일을 멈추고, 가엾게 죽은 이들을 위해 삼종 기도를 드렸다. 그것을 생각하며 그렸다.” 타인을 위한 기도를 먼저 떠올렸다는 게 어려서는 막연하게 느껴졌지만, 이제 저도 노년에 이르러 그래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지냅니다. (윤경재 요셉)
5. 순종은 하느님을 영접하고 그 하느님을 중심으로 세상과 자기 자신을 새롭게 보면서 감행하는 하나의 모험입니다. 하느님이 자비로우셔서 우리도 자비롭고, 하느님이 사랑하셔서 우리도 사랑하는 노력을 하는 모험입니다. 그것이 모험인 것은 그 결과도, 그 대가도 보장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하느님의 일은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듣고 배워서 사랑하고 섬길 줄 아는 생명이 자라는 가정이라야 합니다.(서공석 요한 세례자 신부님)
6. 가정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사랑의 학교’이며, 법과 정의, 양심과 진리를 배우는 ‘진리의 학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가정은 하숙집화 하고, 인성을 키우는 곳이기보다는 성공한 인간, 능력 있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공장과 같은 안타까운 모습도 보이고 있다. 오늘 성경 말씀에 우리를 비춰봅시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12월30일 금요일 [(백)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가정 성화 주간)]
오늘의 복음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성가정이란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가정이요, 말씀에 순명하는 가정이요, ‘말씀이 성취되는 가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이 없는 가정이 성가정이라는 말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니 어쩌면, 성가정에는 고통이 필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성취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신 분이 우리 안에 작고 낮고 무력하게 말 못하는 아기의 모습으로 살아계심을 볼 일입니다.
말씀은 사랑하는 이 앞에서 항상 작고 낮은 이로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는 결코 자신을 높이거나 교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하느님을 영접하고 그 하느님을 중심으로 세상과 자기 자신을 새롭게 보면서 감행하는 하나의 모험입니다.
하느님이 자비로우셔서 우리도 자비롭고, 하느님이 사랑하셔서 우리도 사랑하는 노력을 하는 모험입니다.
그것이 모험인 것은 그 결과도, 그 대가도 보장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듣고 배워서 사랑하고 섬길 줄 아는 생명이 자라는 가정이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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