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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17년 1월2일 월요일 [(백)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매일미사 묵상/포도나무 6장



2017년 1월2일 월요일 [(백)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매일미사 묵상


오늘 전례

바실리오 성인은 330년 무렵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 체사레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와 조모, 누이 마크리나, 동생 니사의 그레고리오 주교와 세바스테아의 베드로 주교가 모두 성인일 만큼 영광스러운 가문의 출신이다. 은수 생활을 하기도 한 바실리오는 학문과 덕행에서 특출하였다. 370년 무렵 체사레아의 주교가 된 그는 특히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싸웠다. 바실리오 주교는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특히 그의 수도 규칙은 오늘날까지도 동방 교회의 많은 수도자가 따르고 있다. 379년 무렵 선종하였다.
그레고리오 성인 또한 330년 무렵 바실리오 성인과 같은 지역의 나지안조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는 동료 바실리오를 따라 은수 생활을 하다가 381년 무렵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가 되었다. 그레고리오 주교도 바실리오 주교처럼 학문과 웅변이 뛰어났으며, 이단을 물리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390년 무렵 선종하였다.


본기도

하느님, 복된 바실리오와 그레고리오 주교의 삶과 가르침으로 교회를 빛내셨으니, 저희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진리를 배우고, 사랑으로 충실히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하느님 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가 곧 ‘그리스도의 적’이라며,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라고 한다(제1독서).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묻는 이들에게 세례자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주님의 길을 곧게 내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밝힌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22-28

복음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9-28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복된 바실리오와 그레고리오를 기리며 받아 모신 천상 음식으로, 저희가 힘을 얻어 믿음을 온전히 간직하며, 구원의 길을 충실히 걷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우리가 오늘 기억하는 두 분의 성인,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는 하느님 안에서의 우정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 주신 분들입니다. 두 분 모두 학문과 덕행에 출중하셨으며 은수 생활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진리를 관상하며 그분과의 일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한 분은 체사레아의 주교로서, 다른 한 분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로서 아리우스 이단과 맞서 진리를 수호하셨습니다. 두 분은 마치 하나의 영혼처럼 일치하여 하느님의 진리를 사랑하고 전하셨습니다.
두 분의 성인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느슨해질 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교와 삶으로 보여 주십니다. 신앙의 위기를 느끼고 세상의 유혹이 거셀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십니다. 두 분은 사도들로부터 들은 진리를 간직하고 후대에 물려주셨습니다. 두 분은 세례자 요한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잘 알고 고백한 분들이었습니다.
신앙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하려고 주님 앞에 머물며, “나는 누구인가?” 하고 화두를 던져야 합니다. 신앙의 위기를 느낄 때나 이단으로 신앙이 혼란스러울 때, 우리는 이미 교리 교육에서 배운 진리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되새겨야 합니다. 하느님과 일치하고 올바른 길을 걷는 신앙의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고 조언을 들음으로써 우리는 많은 선한 것들과 하느님의 진리를 새롭게 우리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한 1,23)

주님! / 화살표 같은/존재가 되게 하소서.

제 자신이 아니라/당신을 향하여 있게 하소서.//

붓이 스스로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붓을 쥔 이가 글씨를 쓰는 까닭입니다.

피리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피리를 부는 이가 소리를 내는 까닭입니다.//

당신의 붓이 되게 하소서./당신의 피리가 되게 하소서.

제 자신이 아니라/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제가 주인이 아니라/당신께 속해 있는 자인 까닭입니다. 아멘.(이영근 아오스딩 신부)


 2. “노경에 접어들면서 나는 이전과는 좀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노경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들이 적지 않은데 그중 제일 큰 것이 포기하는 즐거움이다. 포기하는 대신 얻는 것이 자유이다. 허리를 굽혀 앉은뱅이 노랑제비꽃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자유, 드넓은 초원에 가슴을 맞댈 수 있는 자유를 꿈꾼다.” 


많은 경우 우리는 참 나가 아닌 나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보다는 사람들의 눈을 더 의식하며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부족하고 죄인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로 충분한데, 이런 저런 가면을 쓴다든지 가식의 옷을 무겁게 걸치고 다닐 때도 많습니다. 이런 면에서 세례자 요한의 생애는 우리에게 참으로 큰 교훈과 의미로 다가옵니다.(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3. 미국 샌프란시스코 남부에 가면 예쁜 꽃이 많은 로스 알토힐이라는 꽃마을이 있습니다. 그 거리에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들이 피는데 그 곳에 아름다운 꽃이 피게 된 사연이 내려옵니다. 오래 전에 이 도시에는 요한이라는 우편배달부가 살았습니다

그는 집배원 가방 안에 꽃씨를 넣고 다니며 지나가는 집집마다 골목마다 계속해서 꽃씨를 뿌리고 다녔습니다. 어떤 꽃씨는 죽기도 했지만 어떤 꽃씨는 세월이 지나면서 그가 지나가는 길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우편배달부가 꽃씨를 뿌리고 다닌다는 걸 마을 사람들도 알고 꽃씨에 정성스럽게 물도 주고, 피어난 꽃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지나가는 거리는 꽃의 거리가 되었고 그가 다닌 마을은 꽃마을이 되었습니다.


하늘이 준 성격을 있는 그대로 발휘하되 속이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대범한 사람은 대범한대로, 소심한 사람은 소심한대로, 외향적인 사람 내향적인 사람 모두 자기 기질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양심을 지키고 사는 것입니다.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 재능이 없어도 이것만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부귀와 귀천이 따로 없습니다. 자신을 속이지만 않으면 되니까요.


우편배달부는 한때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자 했었으나 하느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일을 하면서 그 안에서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를 원하셨습니다. 우편배달부는 그 길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행복과 평화와 자긍심을 덤으로 받았습니다. 이웃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윤경재 요셉)


4. 영적 성장을 위한 첫 걸음은 ‘경청’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려면 나로부터 떠나야 하지요. 내 사고의 틀과 굳어진 습관, 신념, 경험과 가치관으로부터 떠나지 않고는 그분께 향할 수 없고 말씀이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를 떠난다는 것은 회개하여 하느님 중심이 됨을 뜻하는 것입니다. 나를 비우고 말씀을 경청하는 것은 영적 성장의 첫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들은 바를 간직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구석에 처박아놓고 살면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요. 따라서 깊이 되새겨 자신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이 될 수 있도록 내 혼과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야 합니다. 간직한다는 것은 잊지 않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생명의 근원이 되는 주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늘 의식할 때 하느님의 사람으로 변형될 수 있는 건 당연하겠지요.

끝으로 주님 안에 머무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머문다는 것은 안정을 위한 정착이나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물리적으로 배치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 결코 아니지요. 주님 안에 머문다는 것은 사랑이신 주님의 그 사랑의 역동적인 움직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활동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주님의 영(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나아가 그 영의 이끄심에 따라 내 중심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따른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을 끊임없이 되풀이 하는 것이지요. 그 움직임은 ‘내어줌’과 ‘함께함’, ‘되돌림’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삶의 희로애락을 끌어안는 것이지요. 이것이 진정한 신앙고백입니다.

나를 떠난 경청, 말씀을 간직함, 주님 안에 머무름을 통하여 우리의 영성은 심화될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 세상의 소금이 될 때 이 사회도 변화되고 밝아지겠지요.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그런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였고 그 말씀을 깊이 간직하였기에 주제파악을 철저히 한 증거자였습니다. 그는 많은 추종자들이 있었고 그의 세례운동은 당시 유다 백성의 종교지도자들과 헤로데의 눈에 가시처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서슴지 않고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며”(요한 1,20),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1,27)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도 세례자 요한과 오늘 기념하는 성인들처럼 정직하고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대로 사랑을 실천하는 성숙한 사람들이 되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원하고 사랑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시기”(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때문입니다.

오늘 영적 성장을 위해 나를 떠나 주님을 품고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행복한 사랑의 카페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1월2일 월요일 [(백)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오늘의 복음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오늘 기억하는 두 분의 성인,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는

하느님 안에서의 우정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 주신 분들입니다.

한 분은 체사레아의 주교로서, 다른 한 분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로서 아리우스 이단과 맞서 진리를 수호하셨습니다. 두 분은 마치 하나의 영혼처럼 일치하여 하느님의 진리를 사랑하고 전하셨습니다.


나를 떠난 경청, 말씀을 간직함, 주님 안에 머무름을 통하여 우리의 영성은 심화될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 세상의 소금이 될 때 이 사회도 변화되고 밝아지겠지요.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그런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도 세례자 요한과 오늘 기념하는 성인들처럼 정직하고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대로 사랑을 실천하는 성숙한 사람들이 되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원하고 사랑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시기”(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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