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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17년 1월3일 화요일 [(백) 주님 공현 전 화요일] 매일미사 묵상/푸조나무 5장



2017년 1월3일 화요일 [(백) 주님 공현 전 화요일] 매일미사 묵상


본기도

하느님, 성자께서 거룩한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 저희와 똑같은 사람이 되게 하셨으니, 그 창조의 능력으로 저희가 옛것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이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며,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희망으로 순결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한다(제1독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하고 증언한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29─3,6

복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9-34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성체성사로 저희에게 오셨으니,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마음을 움직이시어, 저희가 모신 성체에 더욱 맞갖은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사는 게 죄지요!” 하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범주는 윤리적인 것보다 훨씬 넓습니다. 하느님 안에 머무르지 않는 모든 상태를 ‘죄’라고 말합니다. 요한 사도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하느님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으며 하느님은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 자녀로 부르셨다는 말은, 우리가 죄가 없는 사람,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부르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어린이를 보면서 원죄 이전의 ‘순진무구한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주 죄와 허물이 많은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고 체험하게 됩니다. “죄가 전혀 없는 사람의 모습을 과연 발견할 수 있을까?” 하고 우리는 묻게 됩니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세례자 요한의 증언에 나옵니다. 예수님을 제자들에게 소개하면서 세례자 요한은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말합니다. 이 예언대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없애시려고 속죄의 양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죄가 전혀 없는 인간의 모습을 예수님 안에서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존재와 삶은 우리에게 인간성의 완성형을 제시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희망과 기쁨의 원천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 완전한 상태, 곧 완덕에 이르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는 길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은 우리 안에 커다란 희망과 기쁨을 일으켜 줍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요한복음에서는  아래와 위 두 질서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세상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이기주의가 판치는 아래 세상질서를 말합니다. ‘나와 나들이 서로 충돌하는 세상으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세상의 죄는 바로 자아의 이기심을 제일로 여기는 죄입니다. 죄를 없애다라는 뜻은 치워 버리고’ ‘짊어진다는 뜻입니다. 목자의 목소리를 듣고 부지런히 활동하며 자신의 이기주의를 치워 버리고 목자의 뜻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아래 세상의 질서는 독재자인 나들이 무한 경쟁하며 다투는 질서로서 조직과 통제가 통치 원칙입니다. 위의 질서는 사랑과 성령이며, 연민이 통치 방식입니다.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차이점을 인정하고 약점을 보호해주는 질서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이 두 질서 사이를 왕래하며 아래 세상의 질서를 변화시키고, 위의 질서와 조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위에서 부르는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윤경재 요셉)


2. 오늘 세례자 요한은 저기 하느님의 어린양이 오신다.’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이룩한 업적과 조직이 사라질 수도 있지만 진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했던 모든 일들을 정리해야 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자신의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에게 옆집의 물건들이 더 좋다고 안내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진실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가졌던 모든 권위와 존경을 스스로 내려놓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 보다는 하느님의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신학생 때입니다. ‘사제는 제2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침묵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진하게 나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가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사제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기보다, 사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강론을 성실하게 준비하고, 자신이 행한 강론을 삶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았고,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모든 신앙인들은 또한 2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전해 주어야 하고,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우리가 2의 그리스도로 살아갈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3. 사도 요한의 제1독서 말씀도 은혜롭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입니다.”

아, 이 말씀이 우리 삶의 궁극의 목표를 보여주는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분을 점점 닮아가 마침내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되어 

그분처럼 되는 그날의 기쁨을 희구希求하는 복된 존재들인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그분께 이런 희망을 두는 우리들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함으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품위를 견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무엇보다 만나는 모든 이웃을 하느님의 자녀로서 존중하고 배려하며 보살핍니다. 

매일 거행하는 이 거룩한 미사는 고귀한 인간 품위의 원천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 소모품이 아닌 당신의 귀한 작품이자 자녀임을 확인시키십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네. 

그분은 당신을 받아들이는 모든 이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네.”(요한1,14.12참조).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4. 하느님의 어린양께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평화를 달라고 기도하지요. 또 성체를 영하기 직전에 사제는 미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을 만큼 성체를 높이 들어 외칩니다.
"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오늘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불렀으며 실제로 예수님의 삶 자체가 하느님의 어린양의 삶이었음을 우리는 십자가상 제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어리숙해 보일 정도로 하느님의 길을 따른 예수님의 삶이 실패처럼 보였지만 결국 승리했음을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지요.
"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신자들은 자신이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청하고 평화를 빌면서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 성체를 모시는 것은 이제는 내가 예수님처럼 세상의 죄를 없애고, 평화를 주는 어린양으로서 살겠다는 결심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미움과 보복의 고리를 끊고 평화를 끌어내는 삶이 하느님의 어린양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수님 삶처럼 고생스럽고 초라해 보이며 답답할 정도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이 현명한 신앙인의 길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이기양 요셉신부)

5. 요한은 예수님에게서 우리를 위해 도살장에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처럼(이사 53,7) 희생을 감수하며 죄 많은 인간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는 자비의 하느님을 성령의 이끄심으로 알아보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그 어떤 언어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늘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이 큰 사랑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먼저 하느님께서 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시다는 것을 알아차려야겠지요.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분을 알아봐야 그에 응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아보려면 잦은 만남과 만남을 통한 친밀감과 회개가 필수적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주님과 친교를 나누지 않고는 소경인 채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아보았다면 사랑이신 그분께 희망을 두어야 겠지요(1요한 3,3). 주님께 희망을 둔다는 것은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의 뜻과 욕구를 주님께 내맡기는 것을 뜻합니다. 나아가 주님과의 관계를 이어가면서 의미 있는 것으로 변화시켜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될 때 마음과 영이 순결해지고, 맑고 순결한 영을 지닐 때 영원한 생명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어린 양’의 자녀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 자비의 바다 속으로 들어감을 뜻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그분의 길은 희생과 죽음을 통한 사랑의 길입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자비이신 하느님의 자녀임과 동시에 희생될 운명에 처해 있는 ‘하느님의 어린 양’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그건 대단한 순교가 아니더라도 일상의 잔잔한 어려움과 수고로움을 사랑으로 견뎌내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과 하소연, 불필요한 소리, 분노 등을 기꺼이 담아내는 쓰레기통이 되어주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6. 진실한 사람은 언제나 진실한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 보다는 남을 배려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랑하려거든 우리 자신에 대해 자랑하지 말고 주님을 자랑하시고 하느님 앞에 자기 분수를 알고, 주제를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 바실리오는 말합니다. “여러분에게 자랑할 것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자랑과 희망을 하느님께 두십시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길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반영억 라파엘 신부)


2017년 1월3일 화요일 [(백) 주님 공현 전 화요일]
오늘의 복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예수님을 제자들에게 소개하면서 세례자 요한은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말합니다.
 이 예언대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없애시려고 속죄의 양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희망과 기쁨의 원천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 완전한 상태, 곧 완덕에 이르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는 길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은 우리 안에 커다란 희망과 기쁨을 일으켜 줍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았고,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모든 신앙인들은 또한 2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전해 주어야 하고,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자비이신 하느님의 자녀임과 동시에 희생될 운명에 처해 있는 ‘하느님의 어린 양’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그건 대단한 순교가 아니더라도 일상의 잔잔한 어려움과 수고로움을 사랑으로 견뎌내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과 하소연, 불필요한 소리, 분노 등을 기꺼이 담아내는 쓰레기통이 되어주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아멘.
- 2017년 1월3일 화요일 [(백) 주님 공현 전 화요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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