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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17년 1월13일 연중 제1주간 금요일 매일미사 묵상/회잎나무 7장


2017년 1월13일 연중 제1주간 금요일 매일미사 묵상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새기고,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을 가진 우리는 하느님의 안식처로 들어간다며, 불순종으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도록 힘쓰자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지붕에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를 내려보낸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치유하시며,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계심을 보여 주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4,1-5.11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이 거룩한 제사에서 구원의 보증을 받았으니, 저희가 실제로 그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등장 인물들, 곧 중풍 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 중풍 병자,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저마다의 위치에서 보여 줍니다. 중풍 병자를 데려온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 병을 치유하실 수 있다고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들은 지붕에 구멍을 내어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들의 열정과 신뢰에 감탄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받아 주셨습니다. 중풍 병자의 원의를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용서와 질병의 치유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질병이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벌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 질병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깨닫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의 용서와 치유가 내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아시고 중풍 병자의 죄를 먼저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의 신원에 대해 근본적으로 질문합니다.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당신이 신성을 가지고 계심을 보여 주시며, 중풍 병자를 일어나 걷게 하십니다.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일어나 걷게 된 중풍 병자는 커다란 기쁨과 감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등장인물들 중에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자리를 매기고 있습니까? 나는 예수님의 신성을 믿고 있으며 그분으로부터 죄의 용서와 육신의 치유를 받고 있습니까? (류한영 베드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집에 계실 때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듭니다. 벌써 그분의 가르침과 치유에 관한 놀라운 능력에 대해 소문이 널리 퍼진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실 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갑니다(2,1-3).

그러나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자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그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예수님께서 계신 집안으로 내려 보냅니다(2,4).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1,5) 하시며 중풍 병자를 치유해주시고,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2,11) 하십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치유 받은 이들입니다. 이미 용서받은 이들이요, 그러나 그 상처는 지니고 다닙니다. 왜냐하면, 상처는 제거해야할 그 무엇이 아니라, 치유 받았음을 보여주는 표지인 까닭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라는 상처를 ‘하느님 백성의 표지’로 지니고 다녔듯이 말입니다. 야곱이 ‘엉덩이뼈의 상처’를 ‘축복의 표지’로 지니고 다녔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상처’를 ‘구원의 표지’로 몸에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더 이상 '들것'에 매여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기꺼이 들고 다녀야 합니다. 아니, 들것에 아픈 형제들을 태워 들고 집으로 가야 합니다. 마치 내 형제들이 나를 '들것'에 태워 예수님께 데려왔듯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인류를 태워 들고 아버지께로 가셨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가 바로 우리의 들것입니다. 진정, 상처에서 흐르는 용서의 피를 마실 때라야, 우리는 그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것을 구원의 표지로 지니게 됩니다. 용서야말로 진정한 치유를 가져오는 권능인 까닭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이영근 신부)

3. 오늘 복음은 하느님은 사람을 벌하고 죽이는 분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믿고 계신 하느님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자기의 한계를 기적적으로 뛰어넘어, 독야청청(獨也靑靑)하게 해주지 않습니다. 신앙인은 인간으로서 지닌 자기의 한계를 받아들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안에 감춰진 가능성과 힘을 계발하여 발휘하게 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실천하신 하느님의 일이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생명이 위축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 예수님은 일하셨습니다. 그분은 죄의 용서를 선포하고, 병을 고쳐서, 그 환자를 위축된 삶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상 생활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정신적 혹은 육체적 도움을 조금만 받으면, 그 위축의 불행에서 벗어나, 정상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주변에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그런 우리의 실천 안에 하느님이 일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그리스도 신앙입니다.

그런 가능성과 힘이 감춰지고, 계발되지 않은 것은 우리의 마음 한가운데 우리 자신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에 얽매여 삽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나라를 가르친 것은 우리 자신에게만 집착하지 말고, 하느님의 뜻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으로, 우리 주변을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실까 찾지도 염려하지도 마시오. 그런 것은 모두 세상 이방인들이 힘써 찾는 것입니다...먼저 하느님 나라를 찾으시오.(루가 12,29-31)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먹고 마시는 일에만 얽매이지 않고, 하느님의 시선으로 주변을 본다는 말씀입니다. 그때 비로소 감춰져 있던 우리의 가능성과 힘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위축되어 살던 우리 주변의 생명들이 충만한 삶에로 돌아올 것이고, 그 사실을 본 사람들은 하느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살리고 용서하십니다. 고해성사는 하느님이 용서하지 않아서 궁여지책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용서를 선포하는 성사입니다. 우리는 차별을 만들어 사람들을 갈라놓습니다. 가진 이와 갖지 못한 이, 병든 이와 건강한 이, 의인과 죄인,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을 우리는 갈라놓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차별과 갈등을 없애십니다. 하느님이 살아 계신 곳에, 그런 차별과 갈등은 사라집니다. 그리스도 신앙이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생명이 하시는 일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하느님의 일은 복음서들이 전하는 이야기들 안에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읽고 배워서 자유롭게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여 하느님의 나라가 오시게 합니다. 그렇게 살겠다고 우리는 세례에서 약속하였습니다.(서공석 요한 세례자 신부님)

4. 성경 읽기 방법 중에 구조주의적 방법이 있습니다. 성경 본문 내용을 가지고, 등장 인물과 배경, 시간과 공간을 설정하여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등장인물이 어떻게 설명되며 시공간 안에서 어떤 행동과 몸짓, 말을 주고 받는가? 그들의 말이나 행동은 어떤 차이점이 있으며 어떻게 변화되는가? 서로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는가? 모든 것을 살펴 비교하여 성경이 독자를 어떻게 인도하는지 알아 내는 방법입니다.
 
상황극도 구조주의적 분석에 도움을 받아 먼저 시간과 공간을 정하고, 마치 연극처럼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상정하며 각 인물의 성격을 도출하여,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아 가는 방법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개인이 성경을 읽고 깨닫는 것보다 그룹이 몸으로 성경을 읽고 체험할 때 그 느낌은 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윤경재 요셉)


2017년 1월13일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오늘의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1,5) 하시며

중풍 병자를 치유해주시고,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2,11) 하십니다.


더 이상 '들것'에 매여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기꺼이 들고 다녀야 합니다.

아니, 들것에 아픈 형제들을 태워 들고 집으로 가야 합니다.

마치 내 형제들이 나를 '들것'에 태워 예수님께 데려왔듯이 말입니다.

아멘.


- 2017년 1월13일 연중 제1주간 금요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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