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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17년 1월15일 주일 연중 제2주일 매일미사 묵상/개살구나무4장


[매묵]2017년 1월15일 주일 연중 제2주일 매일미사 묵상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2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파스카 어린양이시고 인류의 빛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받은 모든 사람을 새 계약의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의 힘으로 세례의 은총을 굳건히 하시어 우리가 온 삶으로 복음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증언합시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니, 저희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어, 이 시대에 하느님의 평화를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고 하신다고 전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소스테네스와 함께 코린토 교회 성도들에게 인사하며 은총과 평화를 빈다(제2독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며,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한다(복음).

제1독서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9,3.5-6
제2독서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시작입니다. 1,1-3
복음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9-34

영성체 후 묵상
▦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와 함께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날마다 성찬의 식탁에서 세례자 요한의 이 외침을 다시 듣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은총과 평화를 내려 주시는 하느님께 늘 감사합시다.

오늘의 묵상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알아볼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세주를 위해 새로운 길을 준비하는 요한에게 특별한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었을 때 일어난 거룩한 표지에 대해서 증언합니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세례의 은총과 효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예언자입니다. 성령의 세례는 완전한 정화의 은총과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을 가져다줍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마태 28,19-20 참조) 세례를 받을 때, 우리에게 실제로 이루어진 현상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세례자 요한처럼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로마 8,16).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의 마음과 영혼 안에 움직이고 계시는 성령을 망각합니다. ‘영’은 영혼의 상층부이며 하느님을 감지하는 장소입니다. 성령께서는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움직이고 계시므로 그분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잠심(潛心)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온 마음과 정신을 그분에게 향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받은 축복이 얼마나 큰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 발췌글>
1. 똑같이 정찰을 나갔어도 돌아와 보고하는 행태는 전혀 달랐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성령의 눈으로 본 여호수아와 칼렙은 사람의 눈이 아니라 먼저 주님의 뜻을 헤아렸습니다.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거역하지만 않는다면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걸 믿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외쳤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믿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직 예수께서 성령에 대해 정식으로 밝히시기 전이었는데도 요한은 성령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성령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성령께서 머무시는 분이시니 하느님의 아드님일 거라는 등식에는 세례자 요한의 밝은 눈이 아니면 알아채기 어려운 비약이 숨겨있습니다. 지금이야 우리는 그것이 진리라는 걸 당연히 알지만 처음으로 그 진리를 알아내기는 만만치 않습니다. 성령의 작용은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도 있었겠지만, 그 의미를 정확하고 온전하게 파악하는 것은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사람의 눈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만이 지니는 은총일 것입니다. (윤경재 요셉)

2.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기 앞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말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 이 말은 초기 신앙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하던 신앙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시다고 믿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에 대해 가르치다가 죽임을 당한 분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그분을 당신 안에 살려 놓으셨다는 부활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하느님이 그분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버려두셨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구약성서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이사야서에는 “야훼의 종”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스스로는 죄가 없으면서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벌을 받는 인물에 대한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이 말하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는 표현은 이사야 예언서에 나오는 ‘야훼의 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기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53,7) 이사야서의 이 말씀은 그 시대 유대인들의 해방절 관행을 상기시킵니다. 유대인들은 해방절에 어린 양(탈출 12장 참조)을 잡아 성전 구내에서 피를 흘리고, 집에 가져와 가족들이 그것을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초기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야훼의 종’에 대한 이사야서의 말씀과 성전에서 거행되는 ‘어린양’의 희생 의례를 참고하여 이해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진 ‘야훼의 종’과 같고, 우리를 위해 해방절에 성전에서 피를 흘리는 ‘어린 양’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 죄에 대한 대가(代價)를 치렀다는 믿음이 발생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을 대신해서 속전으로 목숨을 내어준다.(마르 10, 45)는 말씀도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오늘도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 죄를 대신한 죽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초기 신앙인들의 해석입니다.

과거 사회에서 사람들은 높은 사람 덕분으로 산다고 쉽게 믿었습니다. 백성은 임금님의 성은(聖恩)을 입고 삽니다. 고을의 주민은 원님을 잘 만나야 합니다. 원님이 사람 하나 죽이려 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시대였습니다. 자기 운명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우리 죄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 말에 쉽게 수긍하였습니다. 우리를 위해 은혜로운 일을 한 예수님이라는 뜻으로 알아들었습니다. 남의 몸값을 대신 치러주고, 그를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일은 그 시대의 관행입니다. 노예나 전쟁 포로가 자유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서공석 요한 세례자 신부)


3.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는 호칭은 ‘파스카 제물’(탈출 1) 또는 ‘속죄 제물’(레위 16)을 상기시켜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심판자가 아니라, 힘없이 살을 취하시고, 사회적 약자들과 죄인들과 함께 하는 파격적 행보로 인한 비난과 배척을 당하시고 사랑하는 인간을 대신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어린양으로 오신 것이지요.

우리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내려오시어 예수님 위에 머무셨음”(요한 1,32)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주님의 영 안에 살아가려면 비둘기처럼 부드럽고 순수하며, 사랑과 투명성을 지닐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의 죄를 치우고 어둠을 밝히는 사람은 증오와 복수심, 불신과 폭력을 버리고 비둘기와 같은 영의 정신으로 세상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4. 요한은 예수님을 우리에게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소개합니다. 마치 엘리에제르가 우물가에서 이사악의 신부감 레베카를 발견하고 그녀를 이사악에게 소개하듯이(창세 24,1-67 참조) 말입니다. 마치 야곱이 우물가에서 라헬을 만나듯이(창세 29, 1-20 참조), 모세가 우물가에서 치포라를 만나듯이(탈출 2,16-21 참조), 요한은 ‘어린양’과의 우리의 만남을 마치 혼약처럼 주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하고 소중한 이 주선은 마침내 주님과 교회, 곧 하느님 백성과의 혼인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소개받은 “하느님의 어린양”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우선 “어린양”은 예수님의 인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수난당하고 죽으시고 묻히신 예수님의 인성을 말해줍니다. 곧 그것은 야훼의 종에서 이미 예언되었던 속죄양으로서의 메시아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야훼의 종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 53,7)예언자 예레미아도 그리스도의 입이 되어 말합니다.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과 같습니다.”(예레 11,19)
 
이처럼, 요한은 예수님을 예언자들이 예고한 분이라고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자신을 제물로 바치기 위하여 장작을 지고 가는 이사악과도 같고, 동시에 이사악을 대신하여 제물로 바쳐진 가시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과도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셨고, 그렇게 가시관에 찔려 있었고, 그렇게 우리를 대신하여 제물로 바쳐지셨습니다.
 
그러니, 요한은 지금 그렇게 제물로 바쳐진 그분이 바로 인성으로 드러난 “하느님의 아드님”(요한 1,34)이시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은 아드님으로 나시어 어린양으로 끌려가시고, 어린양으로 죽음을 당하시어 사람으로 묻히시고, 사람으로 묻히어 하느님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것은 본성으로 하느님이시면서 인성으로 사람이신 까닭입니다. 곧 나셨기에 아드님이시고, 고통을 당하시기에 양이시고, 묻히시기에 인간이시며, 다시 살아나시기에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이 곧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은 그분이 ‘자신보다 뒤에 오신 분이지만 당신보다 앞서신 분’임을 증언하면서, 이를 자신이 체험한 환시를 통해서 증언합니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요한 1,32) 그리고 들은 바를 증언합니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요한1,33)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셨는데, 그것은 세례를 받으신 분의 존귀함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곧 내려오신 분의 존귀함으로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 마음 안에서도 하늘이 열려야 할 일입니다.
 

또한 성령께서 비둘기 형상으로 내려오신 것은 노아의 홍수 때 비둘기가 올리브 가지를 물고 그에게 돌아와 새 시대를 알렸듯이, 이제 예수님에게서 구원이 시작됨을 알려줍니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성령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베푸십니다. 새 아담이 되시어 우리의 본성에 옛 선을 되찾아 주십니다.
 
이제 우리도 세례를 통해 어린 양의 흰옷을 입었습니다. 이 옷은 우리를 위하여 그분께서 성령을 통하여 입이신 옷입니다. 속죄양이 되시어 우리의 죄를 없애시고 깨끗이 빨아 입이신 그리스도의 옷입니다.하느님의 아드님의 옷입니다.
 

러기에, ‘하느님의 아드님’의 옷을 입고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하느님께 드리는 참된 제물이 되어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이 바로 산 제물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곧 ‘어린 양’과 약혼한 충실한 교회로서 삼인 것입니다. 아멘.(이영근 신부)

5.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주님!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십자가를 질 줄을 알게 하소서.
 
 허물을 뒤집어쓰고도
 원망하지도 억울해하지도 않는
 오히려 자신의 내어 주고
 피 흘려 구원하는
 제물의 삶이 되게 하소서.
 
 자신을 바치는 삶
 타인을 위하는 삶
 당신을 향하여 드리는
 사랑의 산 제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2017년 1월15일 주일 연중 제2주일

오늘의 복음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성령께서는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움직이고 계시므로 그분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잠심(潛心)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온 마음과 정신을 그분에게 향하여야 합니다.

사람의 눈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만이 지니는 은총을 지녀야 합니다. 아멘.

- 2017년 1월15일 주일 연중제2주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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