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누가 성서를 썼을까 제1부]-스토리북
성서는 어떻게 수집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서기 1천년경까지 초기의 히브리어 성서가 퍼져 나갔다.
과연 누가 성서를 썼을까요? 성서는 하나의 도서관, 라이브러리 입니다.
여러가지 이야기와 사상, 전통기와 연대기가 일천년 역사를 거쳐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출애급부터 예수의 생애까지 망라하고 있다.
성서에 포함된 내용 중 하느님의 말씀은 몇 %. 인간의 말은 몇% 일까 의문이다.
중앙아시아의 모래밭에서 성서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작은 파편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수세기 동안 번역되고 편집되는 과정에서 원본과는 다르게 많이 변조 되었다.
토라의 모든 부분을 모세가 썼다고 말할 수 없다. 시나이산에서 모세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성서에 기록되었지만 확실한가?
카톨릭교나 유대교에서 성서를 신성시하여 누가 썼는가에 대한 의문에 방어감을 보였습니다.
신성에 의해 영감을 받아서 기록... 저자의 개성대로 영감을 받아 기록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갈등과 해결과 구원의 대서사시가 구전과 구전으로 재연되어 이어 나갔을 것이다.
구약과 신약 2부분...수세기를 거쳐 다양한 과정을 거쳐 가치있는 문서, 정경으로 인정되었다. 외경은 성서의 부록이 되었다.
최초의 원전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모세오경을 연구하자 본문이 많은 필체로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자가 여러 명이었을 것이라는 가설이 나왔다.
1947년 쿰란에서 양을 찾던 소년이 두루마리가 있는 항아리를 발견합니다. 1천년전의 가장 오래된 문서...사해문서가 발견된 것이다...지금은 예루살렘 성전에 보관...에스더서만 제외하고 구약 모두가 있었다. ...장장 300년에 걸쳐서 쓰여진 문서이다. 기독교가 탄생할 무렵에 쓰여진 것이다. 예수 자신도 이 문서를 잘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1947년~60년 사이에 같은 지역 11개의 동굴에서 800개의 두루마리가 발견...양피지와 파피루스, 동판에 쓰여진 것...127개의 문서는 정식문서로 받들어졌다...정경외에 색다른 문서도 함께 출토되었다. 이것으로 성서가 다양한 출처 임을 알 수 있었다. 쿰란 근처는 은둔파인 에세네파(경건함, 치료자, 거룩이란 뜻)가 거주하던 곳이다. 유대교의 주류에서 떨어져 나와 이곳의 사막에서 거주하면서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살았다. 에세네파와 예루살렘 제사장파는 종교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졌다. 평화주의자였던 에세네파...혼혈을 금지한다...이방인과 결혼하여 하느님의 피를 더럽혔다 등의 생각을 가졌다이. 3번 동굴에서 발견된 동판...성전에서 나온 62점의 보물 명세가 새겨 있었다. 성전의 공식문서 였다. 로마군이 성전을 파괴했을때에 다시 돌아올 것으로 생각한 어느 집단이 숨겼다고 추측한다...
모세오경에서 모순된 부분이 있었다...신명기 34장5절...모세가 모세오경의 저자였다면 어째서 자기의 죽음에 대하여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창세기 6장19절..노아와 방주 이야기...방주로 데리고 들어간 동물의 수에서 큰 차이가 난다...창세기 7장2절과 다르다. 같은 내용이 중복되는 구절이다. 이런 중복구절이 많다...창조주 이야기에도, 네리바의 물 이야기도 중복구절이 있다. 하느님이 각각 다른 사람에게 말한 것인가?. 어떤 판은 야훼. 어떤 판은 엘로힘으로 하느님이 표현되어 있다. 19세기 초반까지 모세5경은 3명의 다른 저자가 썼다고 확신했다. 야훼라고 부른이의 저자는 '제이(J)...엘로힘을 부른 저자는 '이(E)', 제이(J)와 이(E)와 다른 문체의 저자는 피(P)로 피(P)가 쓴 것은 모두 히브리어로 쓰여졌다. 최초로 쓰여진 히브리어 원전과 피(P)문서는 차이가 있으나 영어로 번역된 성서에서는 차이를 느끼기가 힘들다. 1807년 독일에서 성서의 또 다른 저자 '디(D)'가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나왔다. 신명기 연구로 그 의견을 말했다. 기록자 가설이 4명이 되었다. 1943년 비오3세 교황은 새로운 칙령 발표...성서 기록자를 탐구하도록 해서 새로운 창이 열리게 되었다.
성서 저자에 대한 탐구를 하다보면 모세오경을 쓴 사람의 서명과 만나게 된다...히브리 민족은 요단강을 건너 이민족의 땅인 가나안에 도달했다.
기원전 1,000년경 다윗 통일 왕국이 세워지면서 왕과 제사장 두명이 두었다. 후계자 싸움과 제사장 2명의 권력투쟁이 일어났다. 솔로몬이 왕의 후계자가 되었다. 솔로몬은 두명의 제사장 제도를 유지 했을까? 솔로몬에게 충성했던 제사장이 선택되고 다른 제사장 아비아달은 고향 아도나스로 쫓겨났다.(열왕기상 22장)...솔로몬왕 때 1명의 제사장은 독점적인 지위를 가졌다. 쫓겨난 제사장은 북쪽으로 갔다. 기원전 912년 둘로 분열되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리된 것이다. 따로따로 만든 성서가 동시에 나오지 않았을까요? 제이(J)로 표시된 문서는 솔로몬 왕때 수집된 문서로 보입니다. 북이스라엘 왕국에서는 이(E)라는 문서... 엘로힘이라고 표현되는 문서를 수집했다. 둘째 아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스마엘보다 이삭, 아벨이 카인보다 낫고 사랑받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 탄생 750년전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침략, 10개의 부족을 흩어지게 한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부족이다. 유다민족과 베냐민 지피만 남게 되었다. 유다왕국도 영적으로 몰락, 온 나라에 이교도가 가득...요시아왕이 종교개혁으로 야훼에게 가까이 가도록 캠페인. 성전 청소, 성전 건축...금고 깊은 곳에서 두루마리 한권 발견...제사장 힐기야가 발견...그날 왕에게 읽어준 문서는 신명기로 추측...왕은 우상 파괴하고 이교도 신앙을 제거합니다. 그는 법전을 그대로 따르는 왕으로 가난한 이와 과부 등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예레미야를 쓴 저자가 바룩이라고 추측한다..네리야의 아들 서기관 바룩이 혹시 신명기까지 쓰지 않았을까? 신명기의 문체와 예레미야의 문체가 매우 유사하다.
진흙으로 만든 인장,,,7세기경 만들어진 바룩의 인장...성서의 한 명의 저자인 바룩의 인장이라고 추측합니다.
- 2018년 5월21일 월요일...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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