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성서 요한반 제7차 수업] (2019.4.29.월)
일시: [2019년 4월29일 월요일. 10시~12시]
장소: 분당 요한성당 B230
참가자: 9명+말씀봉사자=10명 / 4명 결석(김** 안나, 로마나, 헤드비카. 요안나)
기도 및 간식: 이해* 아녜스
본강: 제3과 성전 정화 사건과 니코데모를 통한 가르침 - 묵상과 생활 1-3번
묵상과 생활 1. 성전 정화 사건에서 예수님게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지난 주(4/8.월), 5년째 신음하고 있는 루카성당의 이야기를 듣고보니...2011년 3월1일부터 9년째 하고 있는 굿뉴스의 매일미사 묵상 블로깅이 시들해져 하기 싫다...ㅠㅠ...머리 속으로 알고 있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바위덩어리 같아 꿈쩍도 하지 않는 기득권 세력에게 틈새를 내달라고 요구해 보았지만 그들은 마이동풍이다. 바위에 계란던지기꼴로 계란만 깨져 버린다...ㅠㅠ...
끈채찍을 휘둘러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쫓아내시고, 탁자를 엎으시며,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불같이 화를 내며 성전정화를 하신 예수님! 나자렛 촌 구속에서 올라와 아버지나라 운동으로 소수의 세력을 몰고 다닌 예수님이 철옹성같은 그들의 세력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으리라. 결국 십자가에 매달려 처참한 죽음에 이르지 않았던가!
나는 1953년생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4.19 학생혁명이 일어났다. 수송국민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가, 밥하는 언니 손을 붙잡고, 신신백화점과 화신백화점 사이의 횡단보도를 건너서,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뒷길을 지나가는데, 대학생 같은 이들이 던지는 벽돌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듬 해 5.16 군사혁명 때는 집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대문 틈새사이로 탱크와 군인들이 지나가는 것을 빼꼼히 보았던 기억이 있다.
유신교육을 받았던 나! 철처히 상명하복의 전통(?)을 이어 받았다. 농담처럼 "선배가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하면 그것을 믿어야 한다."는 말에 큰 소리로 "넵"하며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곤 했다....반항을 한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성장한 그야말로 '숙맥'이었다.
대학시절, 4년 내내 데모가 연중행사였다. 각 학기별, 두달여 공부하다가 중간고사 직전에 주로 휴교가 된다. 룰루랄라 긴 방학 후에 잠깐 학교에 등교하여 시험을 보거나 레포트로 대체하여 학점이 매겨진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다가 졸업을 했다....아무 생각없이 생활고에 급급하여 그저 취직을 해야 한다는 일념하에 사회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남편이 민주화투사인 고등학교 친구가 있다. 지금은 교회 장로. 아들 둘 중 한명은 결혼하여 부인, 딸들과 함께 아프리카 우간다 선교 현장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결혼 초, 신혼의 단꿈도 별로 없이 남편 옥바라지 몇 년, 병들어 출소한 남편의 요양원 방문 몇 년, 지금의 산소 방문 몇 년째라는 글을 읽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나는 너무 안이하게, 편안하게, 이기적으로 살면서, 민주화열사들이 목숨바쳐 일구어 가꾼 열매만을 맛있게 따먹었다는 생각에 항시 미안한 마음과 함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5년째 신음하고 있는 루카성당! 신음하는 루카성당에 대하여 5년째 침묵하고 있는 수원교구!
생태계가 건강하려면, 자체정화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자체정화 시스템이 부재하거나 가동되고 있지 않는 듯이 보이는 성당과 교구...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는 예수님의 불 같은 소리가 관계자 여러분에게 들리기를 기도한다. 이번 신음을 계기로, 천주교 내에 자체정화 시스템의 반석이 만들어지고, 원활한 정화방안에 대한 세부규칙이 확립되기를 기도한다.
묵상과 생활 2.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3,3)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한 당신의 응답은 어떠합니까?
요한복음 3장3절. "누구든지 뤼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리송하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헬라어 "겐나오 아노덴(genao anothen)은 '위로 부터 태어나다.'는 뜻으로 '거듭나다.'의 뜻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성경은 거듭난자를 '하느님께로 부터 난자'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라고 한다.
"거듭나지 않으면(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내가 처음 '하느님의 나라' 말을 접한 것은 1977년, 명동 YWCA 강당에서 하는 교회 부흥회에 참석하는 날이다. 초심자를 손들라고 하면서...초심자에게 다가와 1:1 멘토로 로마서 10장 9절-0절을 손으로 짚어가며 풀이해주었다. 나의 멘토는 매우 세련되고 서구적인 외모를 지닌 여성으로 그 후 몇년 동안, 그녀가 결혼할 때까지 친하게 지냈다.
10장 9절-10절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을 얻어요. 매우 쉽지요. 한번 구원을 입으면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심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나지막하게 전했던 그녀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나 하느님나라에 살기를 기도 드린다.
묵상과 생활 3.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세례자 요한은 이 관점에 관해 당신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 서공석 신부님의 강론을 인용합니다. -
1세기 팔레스티나에는 침례운동이 유행하였습니다. 종말 심판의 때가 가까웠다는 믿음이 만연한 시대였습니다. 바리사이는 그 종말에 대비하여 율법준수를 더 엄격히 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에쎄네파 사람들은 수도생활의 규율을 더 엄히 만들었습니다. 그런 운동에 편승하지 못하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일어난 것이 침례운동입니다. 종말의 심판이 임박하였으니, 흐르는 물에 몸을 담가서 죄를 씻어 구원받자는 운동입니다. 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그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다른 세례 운동가들이 수시로 세례를 받아 죄를 씻어야 한다고 가르친 반면, 요한은 회개, 곧 삶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면서 일생에 단 한번 받을수 있는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요한의 세례운동에 가담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이유는 복음서들이 예수님이 요한으로 부터 세례받은 사실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기록한 문서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요한으로 부터 세례받은 사실을 알리면, 사람들이 요한을 더 훌륭한 인물이라고 말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복음서들이 기록될 당시 요한의 제자들도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서들은 그런 위험을 무릎쓰고 예수님의 세례사실을 보도합니다. 그러면서 복음서들은 예수님과 비교하여 요한을 자리매김합니다. 마르코복음서는 요한을 "예수의 길을 닦아놓을 심부름꾼"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굽은 길을 바르게 만들기 위해 광야에서 부르짖는 이" "예수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는 인물"이라고 소개합니다. 초기 신앙공동체는 예수님이 요한으로 부터 세례받은 사실을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게 자기들의 해석을 보태어 보도합니다.
요한의 세례가 그 시대 다른 침례운동가들의 것과 달랐던 것은 삶의 변화를 요구했다는 점입니다. 군중은 먹을 것과 입을 것에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하고, 세리는 정해진 세금외에는 더 걷지 말아야 합니다. 군인들은 사람을 괴롭히거나 등쳐 먹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맃밍 요한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확신입니다. 회개를 요구하는 요한의 설교는 대단히 위협적입니다. "독사의 족속! 닥쳐올 하느님의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일러 주었소?"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았다." 요한의 이런 표현들은 구약성서의 두려운 하느님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다릅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운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십니다. 루카복음서에 잃었던 아들의 비유(15,11-31)가 있습니다. 아버지로 부터 유산을 받아, 아버지를 버리고 멀리 떠나가 재산을 탕진하고, 탕아가 되어 돌아오는 아들을 기쁘게 맞이하여, 그를 아들로 복원시키는 아버지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일곱번이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시는(마태 18,22) 하느님"이십니다. 이 점에 있어서 예수님은 요한을 훨씬 능가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자비로우신 아버지, 사랑하시는 분, 가까이 계시는 분으로 체험하고 표현하셨습니다.
- 세례자 요한의 관점에서 겸손이란 무엇인가?
내 생각에 '겸손'은 진리에 보다 가까운 가치에 나 자신을 숙일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리의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면, 아무 미련없이 가라앉는 태양이 되는 것, 그것이 겸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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