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성서 요한반 제26차 수업] (2019.11.4.월)
일시: [2019년 11월4일 월요일. 10시~12시]
장소: 분당 요한성당 B230호
참가자: 12명....결석(없음)
(※여름방학 후 도중하차 2명-김경* 세노비아, 김성* 안나)
간식 및 기도: 장수* 로사
성가: ??
본강: 제13과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읽기: 18,1-19,42...배움 1 ~ 2㉢
배움 1. 예수님의 수난(18,1-19,16)
㉠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잡으러 온 무리를 어떻게 맞으셨으며, 군인들이 보인 반응은 무엇을 의미합니까?(18,4-8)
-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잡으러 온 무리를 어떻게 맞으셨나?
유다가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알려준다고 말하는 공관복음서와 달리, 요한복음사가는 예수님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으로 묘사하는데, 여기서 예수님이 체포되시는 사건의 고유한 의미가 드러난다. 즉 그들 손에 넘겨지는 것은 예수님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한층 명확히 한 것이다. 공관복음서에서 수난을 겪으시는 예수님은 육화하신 분으로서 인간적 고뇌를 겪으면서도 온전한 자유의지에서 나온 선택과 결단으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시는 모습이다. 반면에 요한복음서에서 수난능 겪으시는 예수님은 아버지를 계시하며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명을 완수하시는 분으로서,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당신 자신을 적대자들의 손에 내주심으로써 아버지와 일치하시는 모습이다. 친히 단신을 드러내면서 당신을 잡아 가도록 하는 이는 바로 '나자렛 사람 예수' 아버지 아들 자신이다.
- 군인들이 보인 반응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제자들과 함께 모여 있던 무리에서 앞으로 나와 군인과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누구를 찾느냐?"(티나 제테이테)
이 장면은 1장38절에서 당신을 따라오는 이들에게 "무엇을 찾느냐?"(티 제테이테) 하고 물으시던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두 장면에서 가까이 온 그들이 찾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그들이 "나자렛 사람 예수요."하고 대답한다. 예수님은 "나다."하고 말씀하셨다.
"나다."는 그리이스어로 '에고 에이미'인데, 신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관용적인 자기 계시 표현이다.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표현은그들을 보낸 이들이 알려 준 이름이다. 나자렛 예수라는 호칭이 7절에 한번 더 언급되고, 에고 에이미는 5-8절에 세번이나 연이어 나타난다. 이 구절들에서 에고 에이미의 반복은 로마인, 유다인, 적대자인 '세상' 앞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강조하여 부각시키는 효과를 일으킨다. '세상'은 이에 놀라고 당황하여 '들은 뒷걸음 치다가 땅에 넘어졌다.' 군인들과 경비병들의 반응에서 '나다.'라는 말씀의 깊은 의미가 드러났음을 확인하는데, 예수님의 말씀에서 '내가 나자렛 예수다'라는 의미보다 '에고 에이미'가 펴상하는 것, 신적 이름이 더 크게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놀라고 당황하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배움 1. 예수님의 수난(18,1-19,16)
㉡ 한나스는 어떤 사람이며, 예수님께서는 한나스의 신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습니까?(18,19-22)
- 한나스는 어떤 사람인가?
군대와 그 대장과 유다인들의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결박하고, 먼저 한나스에게 데려갔다. 한나스는 그 해의 대사제 카야파의 장인이었다. 카야파는 백성을 위하여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고 유다인들에게 충고한 자다. 한나스는 10년 가까이 대사제직을 수행하였고, 그의 다섯 아들과 사위도 대사제직에 있었던 까닭에 현직에서 물러났을 때에도 영향력이 매우 컸던 인물이다.
- 예수님께서는 한나스의 신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한나스 대사제는 예수님께 그분의 제자들과 가르침에 관하여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나는 세상사람들에게 드러내놓고 이야기 하였다. 나는 언제나 모든 유다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다. 은밀히 이야기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왜 나에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이들에게 물어 보아라. 내가 말한 것을 그들이 알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곁에 서있던 성전 경비병 하나가 예수님의 뺨을 치며 "대사제께 그 따위로 대답하느냐?" 하였다. 예수님게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잘못 이야기 하였다면 그 잘못의 증거를 대보아라. 그러나 내가 옳게 이야기 하였다면 왜 나를 치느냐?" 한나스는 예수님을 결박한채로 카야파 대사제에게 보냈다.
배움 1. 예수님의 수난(18,1-19,16)
㉢ 유다인들은 왜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으며 총독과 어떤 대화를 나눕니까?
- 유다인들은 왜 총독 관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사람들이 예수님은 카야파의 저택에서 총독관저로 끌고 갔다.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그들은 몸이 더러워져서 파스카 음식을 먹지 못할까 두려워 총독관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요한 특유의 감각으로 축제의식의 관습을 전하는 이 구절이 공관복음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파스카를 준비하는 때라는 사실이 강조되었고, 유다인 자신들은 부정타지 않기 위해 총독관저에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러한 축제시기에 예수님을 그곳에 밀어넣는 행위에서 그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철저하게 배척하는지가 드러나며, 또한 부정을 타는 것이 어떤 행위인가를 역설적으로 알려 준다.
- 총독과 어떤 대화를 나눕니까?
빌라도가 그들 유다인이 있는 곳으로 나와 "무슨 일로 저 사람을 고소하는 것이오?"하고 물었다. 그들이 빌라도에게 "저자가 범죄자가 아니라면 우리가 총독께 넘기지 않았을 것이오."하고 대답하였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여러분이 데리고 가서 여러분의 법대로 재판하시오."하자 유다인들이 "우리는 누구를 죽일 권한이 없소."하고 말하였다. 이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어떻게 죽임을 당할 것인지 가리키며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 된 것이다.
배움 1. 예수님의 수난(18,1-19,16)
㉣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고발하는 죄목은 무엇입니까?(19,7)
유다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소. 이 율법에 따르면 그자는 죽어 마땅하오. 자기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였기 때문이오."
배움 1. 예수님의 수난(18,1-19,16)
㉤ 빌라도가 예수님의 무죄를 알면서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유다인들의 요구를 받아 들인 이유는 무엇입니까?(19,12-16)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 줄 방도를 찾았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그 사람을 풀어주면 총독께서는 황제의 친구가 아니오. 누구든지 자기가 임금이라고 자처하는 자는 황제에게 대항하는 것이오."하고 외쳤다.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리토스트로토스라고 하는 곳에 있는 재판석에 앉았다.
유다인들은 로마 황제의 권위를 빌라도에게 상기시키고, 자기가 임금이라고 자처하는 자는 황제에게 대항하는 것인데, 그를 풀어주면 황제의 친구가 아니라는 정치적인 발언으로 결국 빌라도가 재판정에 앉게 만든다. 황제의 친구가 아니라는 표현은 정치적 출세를 원하는 사람에게 매우 치명적인 말이다. 권력을 잡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출세할 수 있는 좋은 호칭은 '카이사르의 친구'라는 것이다. 유다인들은 이 구절에서 사실을 위조하고 왜곡시켜 예수님이 항상 거부하셨던 정치적인 임금이라는 죄목으로 예수님을 최종 고발한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만나며 예수님에 대해 어렴풋이 갖게 된 인식, 그분의 무죄, 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의 정치적 안위에 대한 위협 앞에 일순간 사라졌다.
배움 2. 예수님의 죽음(19,16,40)
㉠ 빌라도가 명패에 붙인 예수님의 죄목은 유다인들이 내세운 법적 죄목입니다. 유다인들은 이 죄목에 반대함으로써 어떤 자기 모순에 빠집니까?(19,19-22.참조 12절)
빌라도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달게 하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도성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그 명패를 읽게 되었다. 그것은 히브리말, 라틴말, 그리스말로 쓰여 있었다. 그래서 유다인들의 수석 사제들이 빌라도에게 말하였다.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쓸 것이 아니라 '나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하고 저자가 말하였다고 쓰시오." 그러나, 빌라도는 "내가 한번 썼으면 그만이오."하고 대답하였다.
빌라도는 유다인들이 카이사르에 대한 그의 충성심을 빌미로 위협한 탓에 예수님을 풀어줄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재판정에 앉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예수님이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는 말을 한다. 재판정에 앉아서도 "'보시오. 여러분의 임금이오.'라고 했는데, 지금도 '여러분의 임금'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말이오?"하고 반문한다. 유다인들을 굴욕스럽게 하려는 빌라도의 의도는 분명하나, 좀 더 깊이 읽으면 그리스도의 왕직이 계속 부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한복음서는 이방인 로마 총독이 예수님이 임금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선언하는 역설적 상황을 전한다.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임금이시라고 이미 복음서 첫장에서 부터 선언하였다. 결정적인 순간에 수석사제들이 대답한다. "우리 임금은 황제 뿐이오." 이들의 마지막 선언은 요한복음사가가 특유의 이이러니로 지도자들의 불신앙의 심연을 드러낸다. 유다인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모세전승을 배반하여 예수님의 왕권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왕권도 거부한다. 왜냐하면 "카이사르가 아니라면 우리는 임금이 없습니다."하고 외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거부하며 나아가 하느님의 관계까지 거부한다. 이스라엘의 구약 전통에서는 주님만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임금이시다. 그런데, 지금 지도자들은 그들의 유일한 임금이 이방인 황제라고 선언한다. 로마황제에게 자신들의 충성을 선언함으로써 그들은 아주 확실하고 완벽하게 그리스도를 거부하였고, 그들의 하느님을 배반하였다.
배움 2. 예수님의 죽음(19,16,40)
㉡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곁에 계신 당신의 어머니와 제자에게 각각 무엇이라 말씀하셨으며,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곁에 계신 당신의 어머니와 제자에게 각각 무엇이라 말슴하셨나?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의 어머니와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가 모자관계가 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람들은 이제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것을 들은 사람들, 곧 제자들을 통해서 듣게 될 터이다. 제자들의 일치는 그래서 더욱 중요하게 되고, 이것은 통으로 된 옷의 상징으로 다시 부각되었다. 예수님에게서 들은 말씀을 기억하고, 숙고하고, 전달하고, 선포하는 것은 제자들의 중요한 소명이 될 것이다. 이 소명을 지닌 제자들과, 사람들을 예수님께 보내며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대로 하여라." 지침을 주셨던 예수님의 어머니는, 이제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로 맺어졌다. 예수님은 십자가 아래에 있는 그 제자를 제자의 전형으로 삼으셨다. 그의 특징은 예수님이 사랑하신다는 것이고, 그는 그분께 충실하게 응답하여 늘 그분 뒤를 따르며 십자가 아래까지 왔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말씀을 대하는 태도, 말씀을 품고 세상에 내놓는 과정을 예수님의 어머니께 배워야 한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제자들의 어머니가 되시어, 제자들이 예수님께 들은 말씀을 전하고 행하는데에,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그분의 말씀에 따라 하도록 동빈해줄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임금으로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십자가 위에서 주신 복이고 선언이다.
배움 2. 예수님의 죽음(19,16,40)
㉢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어졌다."(19,30)고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무엇을 이룬 것인지에 대하여, 17장 4절을 참조하고 앞에서 공부한 것을 기억하여 이야기해 보십시오.
(17장 4절)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사건의 핵심은 말슴의 성취와 완성에 있다. 요한복음사가는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받으신 모욕도, 십자가 위에서 외치신 소리도 전하지 않는다. 다만 거기서 신 포도주를 마신 일은 성경 말씀의 완전한 실현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야기 한다.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은"이라는 첫머리는 '하느님의 아들은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요한복음서 그리스도론의 특징을 강조한다. 닥쳐오는 모든 일을 아시는 그분은 이제 모든 것을 완전히 이루셨음을 아신다. 그분은 계시하고 구원하는 일을 하시고 완전히 하느님의 일을 이루셨다.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구원사업을 완전히 이루셨기에 예수님은 '영'에게 교회를 넘겨 주시기 위해 돌아가실 수 있다.
- 요한은 예수님의 죽음이 유다인들의 계략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예수님이 파스카 양으로서, 찔리신 분으로서 성경말씀을 성취하셨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죽음은 곧 인류의 삶을 위한 것임을 성경 말씀으로 증명하는 동시에 그 계시가 현재에도 살아있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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