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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요한 성당 주임 신부님 강론] 재의 수요일(2020.2.26) 외 2개

재의 수요일; 왜 고통의 사순절이어야 하는 것일까?

 

사랑하는 분당 성 요한성당 교우 여러분!

오늘부터 사순절을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수고 수난을 묵상하면서, 우리도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함께 십자가를 지고, 희생과 극기의 삶을 통해,

주님처럼 부활의 영광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분명, 우리는 이 사순시기에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와 그 길에서 받으셨던

고통과 치욕스런 일들을 생각하며, 편함보다는 불편함과 고통을 먼저 생각하며, 그러한 삶을 선택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래선 때론 나를 포기하고, 나를 희생하면서 그러한 삶을 살아보고자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들이 알고 있는 사순절 기간 동안에 우리 신앙인이 살아야하는 숙명적인 삶임도 마음에 새겨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에 이르는 길은 꼭 희생과 고통스러워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성실히 살고, 때론 힘들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고통 정도만 받으면서 그 길을 갈 수는 없는 것일까요? 그렇게 세상 편하게 잘 사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구원의 영광을 위하여 고통을 자처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현실에서 살짝 고민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의 죄를 없이하시고 그 인간을 다시 죄 이전의 삶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서 죄없는 구세주의역활이 필요했던 것처럼, 또 누군가 그 죄를 씻어 줄 구세주의 역활이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요. 바로 하느님께서는 제2의 그리스도, 제2의 예수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왜 내가 다른 이의 구원을 위해, 죄의 댓가를 치르기 위해, 고통을 선택해야 하는가?를 묻게 된다면, 그 이유 역시, 예수라는 구세주와 또 다른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중에 나의 죄를 씻고자 자신을 희생하며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잘 알면서도, 또 다시 이를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또 다시 짊어져야 고통스러운 상황이 오면, 이를 외면하고 싶어집니다.

그러고는 시간이 지나고, 항상 좀 늦게 주님께서 허락하신 영광스러운 결과를 두고

또 아쉬워하는 삶을 연속하고 있습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면서,

우리들이 애써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의 십자가를 기쁘게 함께 질 용기를 가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은총을 청해봅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의 은총 빌어주는 사람을 위한

보답하는 삶을 이 사순시기에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이번 사순절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더 특별한 사순절이 될 듯 합니다.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이웃을 생각하며, 더 많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으면 합니다.

 

주임신부는 여러분을 생각하고 기도하며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할 것입니다.

은혜롭고 행복한 사순절 함께 시작했으면 합니다.

 

2020년 2월26일

재의 수요일에.....

 


재의 수요일 후 목요일; "인생 자체가 사순절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가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고 했습니다.

사순절은 40일 동안의 시간을 말하지만, 어찌보면 하느님나라로 향해가는 인생 자체가 사순절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마라톤과 같은 삶의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천천히 자신의 능력에 맞게 자신의 수준에 맞게, 그러나, 결코 하느님의 뜻을 잊지 않으며 살아 나아가야 하는 게 인생일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오늘 독서에서 신명기의 저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내가 너희 앞에 행복, 생명, 그리고 불행과 죽음을 내어놓는다. 선택하라."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 것인지? 아니면 세상의 논리대로 살것인지?'에 대한

이 질문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평생 요구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질문에 하느님의 계명에 따라 산 사람은 복을 받게 될 것이지만,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불행과 죽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을 우리는 어떠한 인생을 선택할 것인가?

 

이 선택에 대한 질문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더 구체적으로 '당신처럼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면 복을 받을 것'이라 하시며,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비록 힘들지만, 마라톤처럼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그러나 끝까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그분의 뒤를 따라야, 하느님 나라라는 목적지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의 약속대로 생명과 행복, 그리고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분당 성요한성당 교우 여러분!

어렵고 고통스러운 시간일수록 천천히 우리 신앙인들의 본분을 잊지 않고 생명과 행복을 선택하는 마라톤과 같은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비록 지금 현실이 불편하고 답답하지만, 반드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복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은혜로운 하루 되세요.

 

- 주임신부 드립니다.


재의 수요일 후 금요일;

"들으소서,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희의 구원자가 되어 주소서."(시편30,11)

 

"주님께서 원하시는 '단식(斷食)'은 어떤 것일까?

 

어느 병약한 사람이 있었다.

더구나 몸도 약한데 항상 집 앞에 있는 큰 바위가 있어 살기가 불편했다.

어느 날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니, 몸이 건강해 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셨다.

"집 앞에 있는 바위를 믿음을 가지고 조금씩 밀어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니, 아닌 것같기는 해도 한 번 해보기로 했고, 믿음을 가지고 8개월 동안 그렇게

바위를 밀어보았다. 그러나 결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하느님께 항의했더니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거울을 가서 보거라. 네 소원대로 되지 않았느냐? 네 몸이 얼마나 건강해졌느냐?"

"너는 바위를 치워달라고 기도하지 않았고, 자신이 건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느냐?"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잊어버리고 엉뚱한 것을 얻고자 기도합나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주시는 분이심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우리는 단식에 대한 가르침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외형적으로 단식을 하지 말고 그 내면의 의미를 먼저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단식은 "불의한 이들 자유롭게 해 주기 위해, 억압받는 이를 자유롭게 해 주기 위해, 

모든 멍에를 부수어 주고, 양식을 굶주린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따뜻하게 집에 맞아들여 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주고, 형제들의 힘든 일들에 모른 체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행해야 하는 단식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단식을 지키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십니다.

"그렇게 한다면, 나는 너희들의 상처를 아물게 해주고, 뒤를 지켜줄 것이며,

너희가 부르면 '나 여기 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라고.

 

그러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단식재와 같은 교회의 법이나 계명들을 지키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명령하시는 말씀에는 다 이유가 있고, 구원과 축복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교회의 법과 계명을 준수하고 할 때는 그 외적인 것에 앞서

그 내면에 숨겨져 있는 의미와 목적을 먼저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분당 성요한성당 교우 여러분!

오늘도 주님 안에서 은총과 축복이 가득한 하루 되시기를 청하며,

다음과 같은 축복의 기도를 주님께 올리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당신의 이 백성들이 언제나 하느님의 크신 은총에 감사하며,

지난 삶을 뉘우치게 하시고, 영원토록 주님을 뵈올 수 있도록 이들과 이들 가정을 축복하소서." 아멘.

 

- 주임신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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