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 후 토요일
"주님, 너그러우신 자애로 저희에게 응답하소서. 주님,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희를 돌아보소서. "(시편 69,17)
"아픈 곳에 손이 가고, 기도가 가는 마음"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태도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태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상대방의 심정으로 이해하는 태도입니다.
이를 '존재론적' 또는 '관계론적' 시각의 태도라고도 얘기하기도 합니다.
자기중심의 태도는 너와 나의 경계를 가르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나에게 무엇이 유익한지를 생각하고
다소 계산적이고 이기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타인의 어려운 처지에 대한 동정심이나 배려심이 없습니다.
공부 못하고, 가난하고, 감옥에 가는 것도 모두 그 자신의 문제로 규정합니다.
반면, 관계론적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세상의 사건들을 자신과 결코 무관할 수없다고 생각하여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슬퍼하는 마음을 공유하며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며 인정의 손길을 내밀 수 있게 됩니다. 마치도 '강도를 만난 이웃에게 참된 이웃이 된 착한 사마리아 사람'(루카 10,29-37 참조)처럼 말입니다.
어느 시인은 '몸의 중심은 뇌나 심장이 아니라 아픈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나 아픈곳이 있다면 그곳에 손이 가게 마련이고, 그 안에 기도도 있을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아픈 사람도 그가 속한 공동체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손이 가고 기도가 필요한 세리와 병자와 죄인들을 마주하시게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안에는 그들이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시며 치유를 베푸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삶의 태도는, 바로 자기중심적이 태도가 아닌 관계중심적이고 공동체 중심적인 태도입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너와 나의 구분도 없고 죄인과 선인의 경계가 없었고, 병자에게는 의사로 고독한 이에게는 친구로서의 관계만이 성립될 따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모두를 한 몸처럼 대하시며 세리들이나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실 수 있으셨고, 세리들이나 죄인들은 당연히 예수님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는 이기적이거나 존재론적으로 구분짓는 공동체가 아니라, 그저 아픈이의 마음과 아픈 곳에 마음이 가고 손이 가는 관계중심적 공동체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분당 성요한성당 교우 여러분!
혹시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공동체는 재고 따지고,
구분하여 나누는 공동체는 아닌지요?
오늘도 예수님의 마음처럼 아픈 이들에게 마음이 가고
기도가 가는 마음을 가지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하루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주임신부 드립니다.>
[분당 요한 성당 주임 신부님 강론] 사순 제1주일(가)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나를 부르면 나 그에게 대답하고, 그를 해방시켜 영예롭게 하리라. 그리고 오래오래 살도록 그에게 복을 내리리라."
(시편 91, 15.16)
사순 첫 주일인 오늘의 복음에서, 우리는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악마의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40일을 굶으신 예수님께서는 빵의 유혹에도, 온 세상 부귀권세에 대한 유혹에도, 불의와 타협하라는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유혹이란? "꾀어서 정신을 혼미하게 하거나 좋지 아니한 길로 이끄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이나 신앙생활에서 끊임없이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다음에 하지 뭐' '이번 한번 뿐이야' '앞으로 잘하면 되지 뭐'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뭘'
'주일미사 한두 번 빠져보나 뭐' '판공성사 다음에 보지 뭐' '나만 교통법규 어기나 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했던가요? 처음부터 소를 훔칠 소도둑이 될 줄을 자신도 몰랐습니다.
'바늘 하나쯤이야'하고 하나하나 양보하다가 마침내 소까지 훔치게 된 것입니다.
냉담 교우들도 처음부터 냉담할 생각으로 주일미사에 빠지는 신자는 없습니다. 주일미사를 한번 빠지고 두 번 빠지다 보니 마침내 냉담 교우가 된 것이죠. "한 번쯤 빠지는 건데 뭘"하며 빠진 게 결국 냉담하게 되는 것이지요.
악마도 처음부터 큰 것을 유혹하지 않습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큰 죄를 지으라고 유혹하면 우리가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을 잘 알기에, '바늘 하나쯤이야'라는 식의 작은 것부터 유혹을 합니다.
그렇게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아주 조금씩 우리를 유혹하고,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게끔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러한 유혹은 결국 우리를 죄짓게 만듭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러한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면,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죄는 구원으로 가는 길을 막고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하는 행위이기에, 죄에 앞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사는 것이 더 지헤로운 삶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안에서, 악마가 유혹하는 삶의 방식 대신, 하느님 뜻에 머무는 삶의 방식으로 그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치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방법은 처음부터 죄로 가는 길목을 아주 단호하고 완전하게 막는 것이었습니다.
1. 내 지붕 갖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머리 둘 곳조차 없는 빈손의 나그네가 되어 살기로 결심하십니다.
2. 내가 하고픈 것을 완전히 포기하고, 성부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기로 결심하십니다.
3.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게 하기를 완전히 거부하고, 오로지 당신을 통해 하느님만을 바라보게 살기로 결심하십니다.
사랑하는 분당 성요한성당 교우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각자에게 다가오는 유혹들안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함께 고민하며 한 주간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1. 빵(재물)을 움켜쥘것인가? 아니면 하느님 말씀을 품을 것인가?
2. 내가 하고픈 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원의에 따라 살 것인가?
3. 내가 삶의 중심이 되어 살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께 내 삶의 중심자리를 내어드릴 것인가?
오늘도 기도해 봅니다.
"주님, 간절히 비오니, 분당 성요한성당의 모든 교우들과 그 가정에 풍성한 복을 내려주시어, 고난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키우고, 유혹을 받으면서도 덕행을 쌓아 구원을 얻게 하소서." 아멘.
<사순 첫 주일에...주임신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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