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2년 8월 24일 수요일[(홍)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전삼용-조재형-이영근-정용진 신부 강론
오늘 전례

입당송
나날이 선포하여라, 하느님의 구원을. 전하여라, 겨레들에게 그분의 영광을.<대영광송>
본기도
복된 바르톨로메오 사도가 오롯한 믿음으로 성자를 따르게 하셨으니
저희에게도 굳센 믿음을 주시어
그의 전구로
주님의 교회가 모든 민족들에게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제1독서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21,9ㄴ-14
천사가 나에게 9 말하였습니다.
“이리 오너라.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를 너에게 보여 주겠다.”
10 이어서 그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는,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11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12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13 동쪽에 성문이 셋, 북쪽에 성문이 셋, 남쪽에 성문이 셋,
서쪽에 성문이 셋 있었습니다.
14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성인들이 당신 나라의 영광을 알리나이다.
○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 당신의 위업과 그 나라의 존귀한 영광, 사람들에게 알리나이다. 당신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 당신의 통치는 모든 세대에 미치나이다. ◎
○ 주님은 가시는 길마다 의로우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주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진실하게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시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스승님,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5-51
그때에 45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복된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을 지내며 주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오니
그의 전구로 저희를 자애로이 도와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영원한 목자이신 아버지께서는 양 떼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보호하며 지켜 주시려고
복된 사도들을 목자로 세우시어
성자를 대리하여 양 떼를 다스리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가 나에게 나라를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나라를 준다.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저희가 복된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을 지내며
성체를 모시고 영원한 구원의 보증을 받았으니
현세에서 올바로 살아 미래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오늘은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입니다. 저는 2명의 바르톨로메오 사제를 알고 있습니다. 한분은 저보다 4년 먼저 사제가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커피의 수요가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스로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가 되었습니다. 직접 원두를 사다가 볶아서 커피를 만들었습니다. 원하는 분들에게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 교육을 시켜주었습니다. 명동 가톨릭회관에 ‘하랑’이라는 커피 매장을 만들었습니다. 하랑은 ‘하느님 사랑’의 줄임말이라고 합니다. 카페 사목을 하고 싶다고도 하였습니다. 커피를 만들어 주고, 상담을 원하거나 고백성사를 원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고백성사를 주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성당으로 오는 신자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갈망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사목을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건강에 좋은 효소를 만들어서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제 앞가림도 하기 벅찬데 신부님은 이웃을 위해서 좋은 것을 보았고, 그것을 삶으로 실천하였습니다. 터미널 성당으로 자원해서 가셨고 여행자들을 위한 사목을 하였습니다.
다른 한분은 저보다 4년 늦게 사제가 되었습니다. 2002년부터 3년 동안 교구 사목국에서 같이 있었습니다. 신부님도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통합사목연구소’가 있어야 한다고 제언하였습니다. 각자도생이 아니라 각 부서가 서로 협력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상부상조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소공동체 운동의 전도사가 되어 말씀이 공동체에 녹아들도록 하였습니다. 말씀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공동체가 변화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변화된 공동체가 지역을 변화시키도록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매일미사에 복음 묵상을 나누었습니다. 신부님의 글은 깊은 샘에서 나오는 시원한 물과 같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부님의 글을 통해서 영적인 갈증을 풀었습니다.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쳐갈 때입니다. 신부님께 글을 부탁드렸더니 기꺼이 좋은 글을 신문에 기고해 주었습니다. 갈매기의 꿈에서 높이 날아오르는 조나단처럼 신부님은 늘 새로운 것을 보았고, 찾았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신앙인은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고통 중에 있는 이들, 슬픔 중에 있는 이들,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공감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공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셨습니다. 겸손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희생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순명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우리가 공감의 눈으로, 겸손의 눈으로, 희생의 눈으로, 순명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 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2.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천국의 시작: 내가 벗으면 다른 이도 벗는다.
3. 이영근 신부 강론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오늘 복음은 '만남의 신비' 안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나타나엘은 필립보로부터 예수님께 대한 증언을 듣고서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라고 하며, 필립보의 증언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핀잔을 주었지만, 그는 “와서 보시오.”(요한 1,46) 라고 확신에 찬 초대를 합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나타나엘을 만나기 전부터 그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신적인 전지함에 압도당한 나타나엘은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요한 1,48) 하고 당혹하여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요한 1,48)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나타나엘에게는 예수님께 대한 모든 의혹과 편견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홀연히 믿음과 감격이 솟구쳤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보았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필립보가 부르기도 전에 나를 보고 ‘알았다’는 예지적인 측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주목하고 있었다는 의지적인 측면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곧 ‘주시하여 바라보고 계셨다’는 ‘사랑’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바라봄입니다.
사랑하면 자꾸 바라보게 되는 거죠.
눈을 뗄 수가 없게 되는 거죠.
바로 지금 우리의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바라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이 사랑스런 바라봄을 받아들인다면, 지금 우리에게도 모든 의혹과 편견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과 감격이 샘솟을 것입니다.
사실 바로 이 순간 나타나엘은 예수님 안에서 자신의 진면목을 보았던 것입니다.
자신을 바라보고 계신 그분의 눈동자 안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이 자신을 온전히 아시는 구원자요, 주님임을 보았습니다.
마침내 나타나엘은 자신의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자신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분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마침내 입술을 타고 신앙고백으로 흘러나오게 됩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요한 1,49)
이렇게 해서, ‘대전환’이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만남의 신비가 가져온 결과였습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빈정거리던 그에게 이제 ‘대역전’이 발생한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이 그를 전복시킨 것입니다.
이처럼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바로 만남의 신비입니다.
심리학자 융은 말합니다.
“두 개성의 만남은 두 화합물질의 만남과 같다.
반응이 이루어지면 둘은 변한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만남의 신비입니다.
진정한 만남은 변화를 가져온다는 신비입니다.
곧 자신의 존재를 심연으로부터 만난 것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만남의 신비’가 믿음을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과의 거룩한 만남의 신비를 통하여 당신 사랑을 퍼부으십니다.
그 사랑을 통하여 하늘과 땅을 이어주십니다.
그 사랑으로 하여 우리를 증언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고, 고백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십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들 사이의 만남 안에서도 예수님과의 거룩한 만남의 신비를 담아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요한 1,48)
주님!
저를 주목하여 바라보고 계신 당신 눈동자 안에서 진정한 제 자신을 보게 하소서.
제 눈이 맑아져 거짓 없는 진실을 보게 하소서.
하늘이 열리고 진리를 보게 하소서!
제 마음에 거짓이 없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이 퍼부은 사랑을 퍼 올리게 하시고, 당신 만남의 거룩한 신비를 담아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정용진 요셉 신부 강론
2022년 08월 24일 수요일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매일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성서학자들은 나타나엘과 바르톨로메오를 같은 사람으로 봅니다.
나타나엘은 그의 고유한 이름으로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이고,
바르톨로메오는 부친의 이름을 기억하는 방식에 따라 붙여진 이름으로 ‘톨마이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나타나엘은 동료 필립보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납니다.
많은 이가 이런 방식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제자가 됩니다.
처음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성경에서 예언한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이시라고 예수님을 소개하자 나타나엘은 의심합니다.
나타나엘은 성경을 아는 사람이었고,
메시아는 자신의 고향인 카나나 나자렛과 같은 갈릴래아의 작은 고을이 아니라
유다 지방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요한 7,41-42)
나타나엘이 그 아래에 앉아 있었다는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미카 4,4; 즈카 3,10 참조).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집 앞마당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그 아래에서 성경을 읽는 것을
아름다운 이상으로 간직하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올바르고 참된 이스라엘 사람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자신의 생각을 접고 그분의 계획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메시아에 대한 나름의 생각과 기대가 있었던 나타나엘도 예수님을 뵙고 마음을 바꿉니다.
하느님의 계획이 사람의 생각이나 기대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입니다.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자,
예수님께서는 이것은 시작일 뿐, 앞으로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새로운 통교(通交)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먼 옛날 야곱의 꿈이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에게 현실이 됩니다(창세 28,10-22 참조).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동료들 안에서 만나고 체험하며,
그분과 살면서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그분의 계획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5.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참사람(眞人)의 모범
-나타나엘-
“주님은 가시는 길마다 의로우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시편145,17)
얼마전의 두 체험은 새삼스런 깨달음이었고 내심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또 새롭게 배운 느낌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수도형제가 반갑고 고마워 수중에 있던 약간의 금전을 꼭 필요한 곳에 쓰라 드렸지만 완강히, 끝까지 고사했습니다. 비슷한 체험을 며칠전에 또 했습니다.
운전 봉사로 수고해준 수도형제가 고마워 모처럼, 처음으로, 성의誠意를 표현했지만 역시 완강히 사양했습니다. 역시 마음이 깨끗한 수도형제였습니다. 내심 부끄러웠고 배웠습니다. 정신이, 영혼이, 마음이 살아있었습니다. 이래서 수도자입니다. 수도자에게 마음의 순수는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제가 바로 우리 수도형제들을 믿고 사랑하는 점은 바로 이런 마음의 순수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산상설교중 참행복 선언에 나오는 성구입니다. 어제까지 양일간 계속됐던 “불행하여라”는 일곱가지 불행선언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마음이 가난한 겸손한 사람이, 마음이 깨끗한 순수한 사람이 바로 참사람입니다. 참된 구도자가, 수행자가, 수도자가 궁극으로 목표하는 삶이기도 합니다.
인간 누구나의 마음 깊이에는 이런 참사람이 되어 행복하게 살고 싶은 근원적 갈망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닮고 싶은 갈망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복된 운명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갈망, 배움에 대한 사랑은 수도자뿐 아니라 누구나 안에 잠재해 있는 근원적 자질입니다. 더불어 열정과 순수 역시 수도자뿐 아니라 참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들의 본질적 자질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참된 구도자의 모범을 오늘 복음에서 만납니다. 바로 나타나엘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바로톨로메오 사도와 동일한 인물로 추정되는 나타나엘입니다. 바로톨로메오를 비롯한 예수님께 발탁된, 누구보다 열렬히 항구히 주님을 사랑했던 12사도들이 바로 참사람, 참된 구도자의 모범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바로톨로메오 사도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후 인도와 터키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아르메니아에서 순교하였다 합니다.
만남중의 만남이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말그대로 만남의 은총, 만남의 축복, 만남의 기쁨입니다. 바로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혼자서는 못 삽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 우연한 만남이란 없습니다. 참 좋은 영적 도반 필립보 덕분에 주님을 만난 나타나엘, 이 또한 은총입니다. 그러나 그 만남의 과정은 간단치 않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서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참 좋은 분을 만나면 이웃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필립보의 언급에도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편견에서 못 벗어나 시큰둥한 반응을 보입니다만, 필립보는 즉시 “와서 보시오.”하고 강력히 권고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한눈에 보고 배우는 것이, 깨닫는 것이 결정적이 경우가 많습니다.
나타나엘과 주님의 만남이 가히 운명적입니다. 첫눈에 반한겁니다. 말그대로 구원의 만남이요 만남의 구원입니다. 나타나엘의 진면목을 한눈에 알아채신 주님의 고백입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참으로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참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의 근원적 갈망입니다. 이어지는 문답도 마치 불교 선사들의 선문답같기도 하고, 옛 사막의 스승을 찾았던 구도자들의 문답을 연상케 합니다. 삶이 간절하고 절실하면 말도 군더더기가 없고 단순명쾌합니다.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필립보가 너늘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
역시 우연한 만남은 없습니다. 평상시 하느님을 찾는 열정에 무화과나무아래에서 영적독서와 관상에 전념했던 나타나엘을 마음에 담아 두셨던 주님이심이 분명합니다. 누구보다 우리의 전부를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감격에 벅찬 나타나엘의 고백은 분명 성령의 은총입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참사람 예수님과 참사람 나타나엘의 참만남입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참자기를 발견한 나타나엘이요 즉시 주님의 진면목을 깨달아 고백하는 나타나엘입니다. 주님과의 운명적 만남으로 결정적 전환점이 된 나타나엘입니다. 만남중의 만남이 이런 주님과의 만남이요 날로 깊어질 주님과의 관계가 예고됩니다. 나타나엘뿐 아니라 주님을 찾는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약속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제단 위에서 오르내리는 은총의 미사 시간임을 깨닫습니다. 나타나엘에 버금가는 순수의 사도가 바로 오늘 제1독서 요한 사도입니다. 주님의 천사는 마음 깨끗한 요한에게 천상신비를 체험케 합니다. 어린양의 신부가 될 천상교회 예루살렘을 보여줍니다. 요한의 고백입니다.
‘그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에게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이어지는 천상 예루살렘 교회의 아름다움이 환상적입니다. 절정의 표현은 마지막 대목입니다.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은 열두 사도뿐 아니라 무수한 성인성녀들의 이름도 새겨져 있을 것이고 언젠가 우리들의 이름도 새겨질 것입니다. 바로 우리 교회의 원형을 보여주는 천상 예루살렘 교회로 순례 여정중의 우리 지상교회임을 깨닫습니다. 영성체후 기도도 고무적입니다.
“주님, 저희가 복된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을 지내며, 성체를 모시고 영원한 구원의 보증을 받았으니, 현세에서 올바로 살아 미래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주님과 만남의 일치를 이루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날로 주님을 닮아 순수와 열정, 섬김과 겸손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진실하게 부르는 모든이에게 가까지 계시네.”(시편145,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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