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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1월 25일 수요일[(백)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1월 25일 수요일[(백)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바오로 사도는 소아시아 킬리키아 지방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도록 교육받은 철저한 유다인이었다.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그였으나,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극적으로 회심한 뒤 그리스도의 사도로 변신하였다. 교회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별도로 지내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으로 이루어진 그의 회심이 구원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바오로 사도는 많은 이방인의 눈을 뜨게 하여 그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세력에서 하느님께 돌아서게 하였다.

입당송

2티모 1,12; 4,8 참조
나는 내가 누구를 믿는지 잘 알고 있으며, 내가 맡은 것을 의로운 심판관이 마지막 날까지 지켜 주시리라고 확신하노라.

본기도

하느님,
복된 바오로 사도를 통하여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으니
오늘 그의 회심을 경축하는 저희가
그의 모범을 따라 진리의 증인이 되고
언제나 어디서나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일어나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22,3-16
그 무렵 바오로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3 “나는 유다 사람입니다.
킬리키아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지만 이 도성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모두 그렇듯이
나도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4 또 신자들을 죽일 작정으로 이 새로운 길을 박해하여,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포박하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5 대사제와 온 원로단도 나에 관하여 증언해 줄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동포들에게 가는 서한까지 받아 다마스쿠스로 갔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와
처벌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런데 내가 길을 떠나 정오쯤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내 둘레를 비추었습니다.
7 나는 바닥에 엎어졌습니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8 내가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여쭙자,
그분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9 나와 함께 있던 이들은 빛은 보았지만,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소리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10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내가 여쭈었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장차 네가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일에 관하여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일러 줄 것이다.’
11 나는 그 눈부신 빛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어,
나와 함께 가던 이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들어갔습니다.
12 거기에는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따라 사는 독실한 사람으로,
그곳에 사는 모든 유다인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13 그가 나를 찾아와 앞에 서서,
‘사울 형제, 눈을 뜨십시오.’ 하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뜨고 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14 그때에 하나니아스가 말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하시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의로우신 분을 뵙고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15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16 그러니 이제 무엇을 망설입니까?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9,1-22
그 무렵 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3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5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6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7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으므로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갔다.
9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그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10 다마스쿠스에 하나니아스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주님.” 하고 대답하자 11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곧은 길’이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이라는 타르수스 사람을 찾아라.
지금 사울은 기도하고 있는데,
12 그는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들어와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보았다.”
13 하나니아스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을 모두 결박할 권한을
수석 사제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16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17 그리하여 하나니아스는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안수하고 나서 말하였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18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19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20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
21 그 말을 들은 자들은 모두 놀라며, “저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자들을 짓밟은 자가 아닌가?
또 바로 그런 자들을 결박하여 수석 사제들에게 끌어가려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2 그러나 사울은 더욱 힘차게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증명하여,
다마스쿠스에 사는 유다인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7(116),1.2ㄱㄴ(◎ 마르 16,15 참조)
◎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민족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모든 겨레들아. ◎
○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하여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여라. ◎

복음 환호송

요한 15,16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6,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복된 바오로 사도를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주님의 영광을 널리 전하게 하셨으니
이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저희의 믿음도 성령의 빛으로 밝혀 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사도 감사송 2 : 교회의 기초이며 증거자인 사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도들을 기초로 삼아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시어
지상에서 주님의 거룩하고 영원한 표지가 되게 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이제와 영원히 모든 천사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갈라 2,20 참조
나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노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 하느님,
복된 바오로 사도가 뜨거운 사랑으로 모든 교회를 돌보게 하셨으니
성체를 받아 모신 저희 마음에도 그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오늘의 묵상

1. 2023년 01월 25일 수요일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오늘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초대 교회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인물이지만회심한 뒤에 그가 보여 주었던 열정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으로 옮아갑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넘어 시리아와 소아시아 지방뿐 아니라 유럽에도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가 남긴 많은 편지는 당시 교회의 상황을 보여 주며초대 교회의 신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그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하신 예수님의 사명을 가장 잘 실천한 사도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표징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예수님의 활동을 생각하게 합니다이때 강조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입니다.

믿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가며 그분의 이름을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열거된 기적들은 사도들의 활동을 통해서도 실현된 적이 있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선포하며 마귀들을 쫓아내고(사도 8,7 참조), 성령 강림으로 새로운 언어를 말하며(2,4; 19,6 참조),

손으로 뱀을 잡거나(28,3-6 참조), 안수로써 병자를 고쳐 줍니다(28,8 참조).

복음은 믿는 이들 모두 이와 같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고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사도들의 선포와 활동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표징이 일어났던 것처럼,

표징은 지금도 교회의 선포와 활동을 통하여 지속될 수 있습니다.


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신부님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하면서 좋은 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성지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머물렀던 ‘Notre Dame of Jerusalem Center’는 주님의 무덤 성당에서 가까웠습니다. 매일 새벽 성지에서 조배하고 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른 아침에 주님의 무덤 성당으로 찾아갔습니다.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의 눈빛은 경건함과 진실함으로 빛이 났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주님의 빈 무덤을 향해서 달려갔던 것처럼 신부님들과 함께 무덤성당을 방문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순례의 여정 중에 신부님들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일상의 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신부님들의 열정과 경건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4명이 왔기 때문에 단체로 오면 가기 힘들었을 성지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사막의 은수자들이 기도하였던 ‘St. George's Monastery’를 순례하였습니다. 자동차의 바퀴가 4개이기 때문에 자동차는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것처럼 함께했던 4명의 신부님들이 모두 주님께로 가려는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순례의 피곤함도 잊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사제가 된 신부님이 이런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신학생 때 교구장님과 대화할 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 신학생이 교구장님께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주교님, 신학교의 규칙을 완화하면 더 많은 신학생들이 사제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주교님께서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교구장님이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10사람의 불성실한 사제는 교회를 병들게 합니다. 10사람의 교만한 사제는 공동체에 깊은 상처를 줍니다. 10사람의 욕심 많은 사제는 교회를 분열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불성실과 교만 그리고 욕심을 비난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그들의 가르침은 따르지만 그들의 행동은 본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성실한 사제는 교회를 성장시킵니다. 한 사람의 겸손한 사제는 공동체에 큰 위로를 줍니다. 한 사람의 청빈한 사제는 교회를 그리스도와 일치하게 합니다.” 그러자 신학생은 규칙을 잘 지키는 신학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기업에서도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여러 상품이 아닙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특정한 상품이 매출을 선도합니다.

 

지난 12 31일에 선종하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도 이러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교회의 진정한 문제는 신자 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사라지고 있기에 위기가 생기고, 기도와 전례에 대한 미지근한 태도가 나타나며, 선교를 등한시합니다. 참된 개혁은 토착화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동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개혁은 내적인 각성, 불타오르는 마음입니다.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일은 그리스도께 대해 확실히 깨닫고, 믿을 수 있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타협과 무기력과 같은 모든 유혹에 맞서 하느님 말씀의 위대함과 순수성을 유지하고 지속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과 계명을 없애려고 온 것이 아니다. 세상 끝날 까지 율법과 계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신앙생활에 친교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경건함이 없는 친교는 참된 신앙의 길이 아닙니다. 성지순례인지 여행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면 그것은 이미 성지순례가 아닙니다.

 

오늘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교회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별도로 지내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으로 이루어진 그의 회심이 구원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바오로 사도는 많은 이방인의 눈을 뜨게 하여 그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세력에서 하느님께 돌아서게 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은 바오로 사도의 회심을 몇 번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와 함께 바오로 사도는 초대교회를 이끌었던 사도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방인을 위한 바오로 사도의 열정과 헌신은 사도행전과 바오로 사도의 서간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돌을 빵으로 만들어 보라는 유혹, 높은 데서 뛰어내려 보라는 유혹, 권력에 대한 유혹은 2000년 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자본과 재물에 대한 유혹은 오늘을 사는 신앙인에게도 똑같이 다가옵니다. 세상과 타협하려는 유혹은 오늘을 사는 신앙인에게도 똑같이 다가옵니다. 권력이라는 우상을 섬기려는 유혹은 오늘을 사는 신앙인에게도 똑같이 다가옵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지내면서 내 안에 있는 나태함과 교만을 끊어내면 좋겠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지내면서 주님께 대한 열정이 뜨겁게 타오르도록 청하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3.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 강론

 

230124.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4)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당신 백성의 지도자들과 대립과 충돌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연히 환영받아야 할 당신의 백성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배척받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당신의 친척들에게마저도 몰이해와 배척을 받으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붙잡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이를 통하여 당신의 진정한 영적 가족이 드러나게 됩니다.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을 둘러보시며, 이들이 내 어머니요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4)
 
이는 당신의 영적 가족의 ‘두 가지’ 모습을 드러내줍니다.
 
우선, 그들은 예수님께서 계시는 집 안에 들어와 “예수님 주위에 앉아 있은 사람들”(마르 3,34) 입니다. 곧 예수님과 함께 있고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병들고 소외받고 가난하나 구원을 갈망하여 몰려와 예수님 둘레에 앉아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들입니다. 이는 엄청난 사실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인데,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예수님 안에 머무르면 한 가족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설혹 피를 같이한 혈육이라 하더라도 예수님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새로운 가족이 될 수 없다는 경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의 바로 앞 장면에서 열 두 사도를 뽑으시면서, “그들이 나와 함께 있기 위함이다”(마르 3,14)라고 말씀하시고, 최후만찬의 믿는 이들을 위한 기도에서도,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요한 17,24) 라고 말슴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 영적 가족은 힘들어도 고통스러워도 함께 하는 사람이요, 비록 달콤하지 않아도 함께 지내는 동행자요 동반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있다고 해서, 모두가 예수님의 어머니요 형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 있되,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합니다. 곧 하느님의 뜻을 아는 이가 아니라, ‘실행’하는 이입니다. 결국, “하느님의 뜻”이라는 절대가치 앞에서 혈연이라는 세상가치는 힘없이 무너집니다.
 
그러니 “예수님 주위에 앉아 있은 사람들”(마르 3,34)이라할지라도. 곧 성당에 와 있다고 해도, 수도원에 들어와 있다고 해도, 모두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들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을 듣기 위해’ 예수님 주위에 둘러앉아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말씀”이 하느님의 뜻을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늘 “말씀”을 향하여 있고, “말씀” 아래에 있어야 하고,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순명’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고 앞서지 말고, 먼저 자신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할 장소요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르 3,33)
 
주님!
당신께서는 당신의 혈통에 저를 입적시키셨습니다.
당신과 함께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형제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오니, 제 삶이 당신 신성으로 거룩해지게 하소서!
제 안에서 당신의 말씀이 자라나고 아버지의 뜻이 실행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회개의 여정

-회개, 비움, 친교, 섬김-

 

"주님, 제 영혼이 밤에 당신을 열망하며, 

 제 넋이 당신을 당신을 갈망합니다."(이사26,9ㄱ)

 

아침성무일도중 이사야서 찬미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어제 설날 연휴에 우리 수도형제들은 ‘영웅’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후에 수도형제들의 표정을 얼핏보니 흡사 단체피정한 분위기 같았습니다. 얼마전 ‘탄생’과 ‘영웅’을 영화를 본 제 느낌 역시 ‘성지순례’한 또는 ‘대피정’한 느낌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참으로 강렬한 ‘회개의 표지’와도 같은 영화 작품이었습니다.

 

어제처럼 저녁9시 늦게 취침하기는 처음입니다. 다음날 12:30분쯤 기상하기에 늦어도 오후8:30분에는 취침하기 때문입니다. 다큐멘터리 경남 진주의 의인義人, ‘어른 김장하’ 2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후부터 틈틈이 1부에 이어 2부까지 다봤습니다.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1944년 생이니 저보다 5년 연상이니 거의 동시대분입니다. 또 많은 분들에게 동영상 보기를 권하기도 처음입니다. 흡사 상쾌한 숲속을 산책한 느낌이었습니다. 산소같은, 나무같은, 산같은 참 좋은 사람,진인眞人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정말 닮고 싶은, 존경할만 분이었습니다.

 

순간 떠오른 생각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현 시국時局 삶의 하늘이 흡사 짙은 구름으로 덮여있다 하더라도 일시적 현상으로 얼마 지나 푸른 하늘이 나타날 것이니 지극한 인내로 참고 기다리며 부단한 기도와 분투의 선한 노력을 다해야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했습니다. 호흡을 길게 해야 할 것입니다. 결코 푸른 하늘을 가린 어둠의 구름들 오래 가지 않고 곧 지나갈 것이라는 이런 믿음이, 희망이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구원합니다.

 

동영상 내용중 “장학금을 받았는데 특별한 인물이 못되어 죄송하다”는 제자의 말에,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한다”는 어른의 말씀도 감동적이었고 곳곳에 심금을 울리는 말도 내용도 많습니다. 이웃들의 증언이 너무나 생생했습니다. 하루 삼식三食은 “놈”, 이식二食은 “님”, 일식一食은 “양반”이란 유머에 웃었습니다. 선생은 자신을 세끼 차려주는 음식을 먹는 삼식이라 했습니다. 또 김장하 선생은 “결이 다른 사람이다” 란 말마디도 잊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그대로 오늘 복음 말씀 그대로 사랑의 나눔과 섬김의 삶으로 시종일관한 김장하 선생의 한 생애였으니 세례 유무를 떠나 하느님의 뜻을 실행한 예수님의 참 형제임을 깨답습니다. 이분 또한 강렬한 회개의 표지가 되는 인물입니다. 세례 받아 명시적으로 가톨릭신자가 아니되었더라도 이렇게 사심없는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사는 사람은 넓은 의미로 예수님의 참가족에 속한 예수님을 닮은 참으로 ‘결이 다른’ 예수님의 참 형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어제 피정와서 면담고백성사를 본 열심한 자매가 제 ‘행복기도’를 나누고 싶다 하기에 수백장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어제 참 좋은 깨달음 덕분에 행복기도 처음에 ‘참회합니다’를 넣었습니다. 제 행복기도를 바치는 분들은 꼭 다음처럼 맨앞에 반드시 ‘참회합니다’를 넣어 읽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참가족에 속한 참으로 ‘결이 다른’ 예수님의 참 형제자매가, 하느님의 자녀가,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참회합니다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 희망,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중에

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과 평화, 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주님

이제 당신을 닮아

온유와 겸손, 인내의 사람이 되는 것이

제 소망이오니 간절히 청하는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당신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반드시 맨처음에 ‘참회합니다’로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 공생애 첫 일성도 회개하라 였고, 미사도 자비의 참회송으로 시작합니다. 영성생활도 ‘회개(메타노니아)-비움(케노시스)-친교(코이노니아)-섬김(디아코니아)’의 순서입니다. 

 

스승 예수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당신을 찾고 있다는 전갈에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주신 예수님의 응답 말씀이 신선한 충격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한 감동의 울림을 주는 생명과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종파를 초월하여 어디에 있던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은 모두가 예수님의 참가족에 속한 예수님의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여기서 마리아 성모님을 격하하는 의도는 전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마리아 성모님이야말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한 최고의 모범이기 때문입니다. 시종일관 아드님 예수님과 함께 하시며 하느님의 뜻을 실행한 순종과 믿음의 어머니, 마리아 성모님이셨습니다. 

 

바로 오늘 기념하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역시 빛나는 예수님의 참 형제 성인임을 깨닫습니다. 성인의 생애가 참 화려하며 파란만장합니다. 참으로 모든 좋은 자질을 지닌 성인으로 ‘개신교의 로마’라 일컫는 악조건의 종교개혁의 본산지 제네바 교구장의 재임중 활약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의 설립자인 ‘프란치스카 드 샹탈’과의 영적우정도 널리 알려진 미담입니다. 성인은 1662년 교황 알렉산데르 7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같은 교황에 의해 1665년 시성되었으며, 1877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고, 1923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작가와 언론인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됩니다.

 

성인은 고전에 속하는 ‘신심생활입문’과 ‘신애론’이란 책도 저술하셨습니다. 특히 ‘신심생활입문’은 ‘준주성범’과 더불어 가톨릭 신자들에게  양대 권장 도서에 속합니다. 성인은 프랑스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리옹에 있는 성 마리아 방문 수도원의 작은 방에서 머물렀는데 이때 뇌일혈을 일으켜 병자성사와 고해성사를 받고 만55세에 선종합니다. 바로 다음 마지막 감동적 임종어가 예수님의 참 형제였음을 입증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 지소서! 예수님, 내 하느님, 나의 전부여!”

 

그대로 오늘 제1독서 히브리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고백을 닮았습니다. 은혜롭고 감동적인 대목 둘입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 왔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하고 말씀하신 대로,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일은 ‘하느님의 말씀 주일’이었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참 유익하고 감동적인 강론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자체인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 실행한 하느님의 뜻 자체인 분이셨다는 것입니다. 강론의 요지 셋이 아주 분명합니다.

 

1.하느님의 말씀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The Word of God is for everyone).

2.하느님의 말씀은 모두에게 참회를 요구한다(The Word of God calls everyone to conversion).

3.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를 선포자로 만든다(The Word of God makes us heralds).

 

얼마나 은혜로운 요약인지요! 하느님의 말씀인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한 분이요, 부단한 참회를 요구하는 분이요, 우리를 복음 선포자로 만드는 분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이런 예수님과 예닮의 여정, 회개의 여정에 항구하여 하느님의 뜻을, 하느님의 말씀을 한결같이 순종하여 실행할 때 비로소 우리 모두 참으로 ‘결이 다른’, 예수님과 ‘결이 같은’ 예수님의 참 형제자매가 됨을 깨닫습니다. 

 

이보다 큰 기쁨도 행복도 없을 것이며 우리 삶의 모두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날로 우리 모두를 정화하고 성화하여 예수님과 깊은 우정의 형제자매들로 살게 해 주십니다.

 

"너희는 주님을 길이길이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이사26,4). 아멘.


[1/25(수)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되새김 구절]

 

1. 바오로 사도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하신 예수님의 사명을 가장 잘 실천한 사도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허규 신부)

 

2.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지내면서 내 안에 있는 나태함과 교만을 끊어내면 좋겠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지내면서 주님께 대한 열정이 뜨겁게 타오르도록 청하면 좋겠습니다.(조재형 신부)

 

3. 늘 “말씀”을 향하여 있고, “말씀” 아래에 있어야 하고,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순명’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고 앞서지 말고, 먼저 자신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할 장소요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이영근 신부)

 

4. 예수님 공생애 첫 일성도 회개하라 였고, 미사도 자비의 참회송으로 시작합니다. 영성생활도 ‘회개(메타노니아)-비움(케노시스)-친교(코이노니아)-섬김(디아코니아)’의 순서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인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한 분이요, 부단한 참회를 요구하는 분이요, 우리를 복음 선포자로 만드는 분임을 깨닫습니다. (이수철 신부)

 

[1/25(수)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제 32일 기도]

 

하느님! 하느님의 말씀인 예수님!

우리 모두를 위한 분이요,

부단한 참회를 요구하는 분이요,

우리를 복음 선포자로 만드는 분임을 깨닫습니다. 아멘.

 

- 2023년 1월25일(수) 5시3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