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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1월 27일 금요일[(녹) 연중 제3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1월 27일 금요일[(녹) 연중 제3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백] 성녀 안젤라 메리치 동정

입당송

시편 96(95),1.6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존귀와 위엄이 그분 앞에 있고, 권능과 영화가 그분 성소에 있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를 자애로이 이끄시어
사랑하시는 성자의 이름으로 저희가 옳은 일에 힘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많은 싸움을 견디어 냈으니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0,32-39
형제 여러분, 32 예전에 여러분이 빛을 받은 뒤에
많은 고난의 싸움을 견디어 낸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33 어떤 때에는 공공연히 모욕과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그러한 처지에 빠진 이들에게 동무가 되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34 여러분은 또한 감옥에 갇힌 이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고,
재산을 빼앗기는 일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보다 더 좋고 또 길이 남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5 그러니 여러분의 그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큰 상을 가져다줍니다.
36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약속된 것을 얻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37 “조금만 더 있으면 올 이가 오리라. 지체하지 않으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러나 뒤로 물러서는 자는 내 마음이 기꺼워하지 않는다.”
39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이 아니라,
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7(36),3-4.5-6.23-24.39-40(◎ 39ㄱ)
◎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네.
○ 주님을 믿으며 좋은 일 하고, 이 땅에 살며 신의를 지켜라.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네 마음이 청하는 대로 주시리라. ◎
○ 주님께 네 길을 맡기고 신뢰하여라. 그분이 몸소 해 주시리라. 빛처럼 네 정의를 빛내시고, 대낮처럼 네 공정을 밝히시리라. ◎
○ 주님은 사람의 발걸음 지켜 주시며, 그 길을 마음에 들어 하시리라. 주님이 그 손을 잡아 주시니, 비틀거려도 쓰러지지 않으리라. ◎
○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고, 그분은 어려울 때 피신처가 되신다. 의인들이 주님께 몸을 숨겼으니, 그분은 그들을 도와 구하시고, 악인에게서 빼내 구원하시리라. ◎

복음 환호송

마태 11,25 참조
◎ 알렐루야.
○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26-34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6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 예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거룩하게 하시어
이 제물이 저희를 위한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4(33),6 참조
주님께 나아가면 빛을 받으리라.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또는>
요한 8,12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성자의 살과 피로 저희를 기르시니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은총으로
저희가 언제나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후배 신부님 식탁에 멋진 그림이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퍼즐을 맞춘 것입니다. 퍼즐은 서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퍼즐을 맞출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1000개의 퍼즐은 각자 서로의 짝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퍼즐이 조화를 이루려면 다른 점을 버리고, 같은 점을 찾아야 합니다. 이번 성지순례는 4명의 신부님이 함께 했습니다. 서로 다른 4개의 퍼즐이 조화를 이루어서 은총이 가득한 순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4명의 사제는 각기 살아온 삶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면 퍼즐을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퍼즐은 엉망이 되어서 조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퍼즐을 맞추지 못해서 헤어지는 부부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부정적인 면만 보면 절대로 퍼즐은 맞출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긍정적인을 찾아내면 퍼즐은 쉽게 맞출 수 있습니다. 화목한 부부는 문제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서로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정적인 면만 찾으려면 얼굴을 보는 것도 고통입니다.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면 아침 인사가 즐거워집니다. 한 사람은 조직적이고 논리적이기 때문에 문제의 해결책을 잘 찾아냅니다. 영어소통이 자유롭기 때문에 외부에서 오는 서류를 쉽게 이해합니다. 한 사람은 쾌할 하기에 분위기를 밝게 합니다. 취재를 가서도 좋은 기사를 찾아냅니다. 한 사람은 차분하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을 쉽게 찾아냅니다. 서류정리도 늘 깔끔하게 해 놓습니다. 저는 일을 지시하기보다는 맡기는 편입니다. 처음에는 직원들이 힘들어했습니다. 늘 지시를 받아서 일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알아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회사 일로 크게 걱정하지 않고, 홀가분하게 홍보를 다니고 있습니다. 팬데믹의 어려움 속에서도 지난 4년간 큰 무리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부정적인 면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서로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이번 순례의 여정 중에 신부님들의 긍정적인 면을 많이 보았습니다. 한 신부님은 이번 순례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항공권 예약, 숙소 예약, 렌터카 예약을 모두 하였습니다. 매일 우리가 가야 할 순례 장소도 미리 정해 놓았습니다. 다만 정해진 약속 시간에 조금 늦게 나오는 편이지만 그 시간도 충분히 알기에 묵주기도하면서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한 신부님은 간식과 의약품을 잘 챙겼습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신부님께서 조용히 해결 해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경건한 모습으로 순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신부님을 보면 우리가 이곳에 왜 왔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한 신부님은 이번 순례의 총무를 맡았습니다. 순례 중에 사용하는 모든 비용을 정산하였습니다. 모두가 피곤한 중에도 운전을 해 주었습니다. 버스로 이동할 때는 이동 방법도 찾아 주었습니다. 길 찾는 능력이 좋아서 잘 모르는 곳을 갈 때면 신부님을 따라갔습니다. 지난 4년 동안 같이 다니면서 저는 주로 정리와 청소를 하였습니다. 이번 순례에서 크게 할 일은 없었지만 조연으로 함께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순례 중에 겨자씨를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작았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살고 하느님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어떤 퍼즐을 사용해야 들어 잘 맞출 수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 원망과 불평보다는 감사와 긍정의 마음을 지닐 때 하느님나라의 퍼즐을 맞출 수 있습니다. 위선과 교만보다는 겸손과 봉사의 삶을 사는 사람이 하느님나라의 퍼즐을 맞출 수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보다는 온유와 인내의 삶을 사는 사람이 하느님나라의 퍼즐을 맞출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이 비록 멀고 험할지라도 우리는 모두 하느님나라의 퍼즐을 맞추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이 아니라, 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입니다.” 2023년에는 감사와 긍정으로, 겸손과 봉사로, 온유와 인내로 하느님나라의 퍼즐을 잘 맞추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

 

2023년 가해 연중 제3주간 금요일

마르코 4,26-34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이 아니라, 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아주 특별한 서간이 하나 있는데 바로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히브리서는 말 마디 그대로 히브리인들, 즉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서간이자 가르침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에 대한 논쟁은 오랜 세월 동안 계속되어 왔는데, 여전히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오늘날 성경학계에서는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더 이상 바오로 사도를 히브리서의 저자로 단언하지 않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더군요.

히브리서에 등장하는 어휘나 문체가 놀랄 정도로 세련되고 수준이 높아, 비교적 거칠고 투박한

바오로 사도의 표현과 맥을 달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의 서간들과는 달리 히브리서에는 바오로 사도가 저자라는 언급은 물론 암시조차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약 성경을 인용하는 방법이나 신학적인 내용에서 바오로 사도의 서간과

큰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헬레니즘 문화의 배경을 지닌 유다계 그리스도인으로 추정합니다.

 

히브리서는 신약 성경들 가운에 가장 완숙한 신학을 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구약성경의 전통 안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탁월하게 풀어냅니다.

메시지 역시 심오하면서도 다양합니다.4

 

히브리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들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곳입니까?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라는 질문을 던진 후, 친절하고도 자상하게 답변을 이어갑니다.

 

베드로, 바오로 사도가 활발히 복음을 선포하던 시절 수많은 유다인들이 회개하여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잘 나가던 시절 그의 설교를 듣고 그 자리에서 회개한 유다인만 3천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고 해서 개종 작업이 완료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분위기였는데, 지상천국이 조만간 도래할 듯한 예감이었는데...

 

화려한 기적과 치유는 잠시뿐 이제 고통스럽고 지루한 광야 여정이 남아있었습니다.

이에 상심이 컸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둘 과거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던 ‘누군가’가 이 히브리 서간을 쓴 것입니다.

히브리 서간을 읽다보면 때로 지나치게 강한 경고 말씀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고 말씀 이면에 감추어진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진한 부성애를 느낄 수 있어 감동적입니다.

 

히브리서는 신앙의 위기를 맞이한 이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이를 통해 지금 겪고 있는 신앙의 위기를 잘 극복하도록 돕습니다.

 

결국 히브리서는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실체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대사제이자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된 희생 제물로서, 완전한 제사를 하느님께 바친 분임을

강조합니다.

 

더불어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처신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무엇보다도 강한 믿음과 불굴의 인내를 간직할 것을 당부합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올 이가 오리라. 지체하지 않으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러나 뒤로 물러서는 자는, 내 마음이 기꺼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이 아니라, 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입니다.”(히브리서 10장 37~39절)

 


3. 이영근 신부님 복음 묵상

 

230126.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여라.”(루카 10,5) 

예수님께서는 일흔 두 제자를 파견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과 ‘해야 할 것들’을 당부하십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렇습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도 말고,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말라”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 함은 걱정에 빠지지 말고, 오직 목자이신 당신께만 의탁하라는 말씀입니다. 곧 돈주머니 대신 당신께 대한 ‘믿음의 주머니’를 차고 여행보따리 대신 ‘희망의 보따리’를 매고 자신의 발에 맞춘 신발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발’을 신어라는 말씀입니다. 곧 ‘자신의 방식’이 아니라, ‘복음의 방식’으로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입니다.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도 말라” 함은 머뭇거리거나 다른 곳에 신경 쓰지 말고, 오직 복음 선포에만 열중하라는 말씀이요,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말라” 함은 더 좋은 집과 대우를 위해 찾아 나서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그리고 ‘해야 할 것’은 이렇습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든 먼저 평화를 빌어주며, 받아들여 차려주는 음식을 먹으며, 병자를 고쳐주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라”
 
‘해야 할 일’의 첫 번째는 ‘기도하는 일’입니다. 곧 평화를 빌어주는 기도입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든 먼저 평화를 빌어주라” 함은 빈부귀천 없이 어느 집에든지 평화를 빌어주되 자신의 평화가 아닌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빌어주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루카복음에서는 “평화”는 하늘에서 내려온 기쁜 소식의 첫 번째 선물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천사들은 목동들에게 말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15)
 
‘평화’는 또한 부활의 첫 번째 선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주신 것도 평화입니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루카 24,36). 그리고 인사를 받으려하지 말고 겸손하게 먼저 인사를 나누라 하십니다.
 
“받아들여 차려주는 음식은 먹어라” 함은 음식물에 대한 유다적 관습에 매여서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방해 받지 말고 친교를 나누며, 동시에 이는 “차려주는”대로 먹으로라는 혁명적인 선언입니다. 곧 유대 율법에 따라 식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받아들이는 이방인들이 차려주는 대로 음식을 받아먹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일꾼으로서 삯을 받음이 정당함을 말해줍니다.
 
“병자를 고쳐주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라” 함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오심을 전파하고 증거 하는 것이 소명임을 알라 하심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예수님으로부터 파견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말씀을 통해 파견의 본질과 당부 말씀을 새겨들어야 할 일입니다. ‘무엇이 해야 할 일인지, 무엇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인지’ 그리고 ‘무엇이 본질적이고 우선적이며, 무엇이 부차적이고 부수적인지’를 잘 분별하여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여라.”(루카 10,5)
 
주님!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 해야 할 일을 알게 하소서.
제가 하고자 하는 일보다, 당신께서 하시고자 한 일을 깨달아 알게 하소서.
먼저 인사하고 먼저 다가가며, 먼저 사랑하게 하소서.
먼저 신뢰를 두고, 먼저 평화를 빌게 하소서.
먼저, 당신의 나라와 의로움을 구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싱부님 강론

 

하느님 중심의 열린 공동체

-부르심과 파견, 관상과 활동, 제자와 선교사-

 

오늘은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1.어제는 문득 사람이 얼마나 허망하고 덧없는, 무의미한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습니다. 한번만 주어진 유일회적 선물인생을 정말 생각없이, 의식없이, 영혼없이, 길을 잃고, 자기를 잃고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묻는 자가 수도자라 합니다. 어찌 수도자뿐이겠습니까? 사람 누구나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신자라면 자주 질문하며 삶의 목표, 삶의 방향, 삶의 중심, 삶의 의미는 주 예수 그리스도임을 늘 새롭게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이래서 제 ‘행복기도’를 자주 바치시길 권합니다.

 

2..창조자이시고 만유의 주재자이신 아버지 앞에 서면 하고 싶은 고백은 “주님, 참회합니다” 하나 뿐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보다 이 고백만 하게 되고, 또 하고 싶어집니다. 참 편안하고 자유롭게 하는, 또 하느님 아버지 앞에 갔을 때 우선적인 고백은 이 고백 하나이다 싶습니다. 

 

3..이 고백에 대한 어느 자매님의 반응이 고마웠고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신부님의 행복기도에 ‘주님, 참회합니다’ 고백이 전율케 합니다. 그리고 신부님의 주님을 향한 무한한 마음이 더욱 엿보여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신부님, 존경합니다!”

 

4.어제 1월25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에는 수도원에 경사가 있었고 공동체 형제들은 모두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김종훈 루카 형제가 수도원에 입회한 것입니다. 34세로 수도공동체에서 가장 젊은 나이로 공동체 형제들도 고무된 듯 아연 활기를 띠는 분위기였으며 성무일도 소리도 우렁찼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님 제자들의 수도공동체에 합류한 형제입니다. 로마에서 수학중인 엘리야 수사와 더불어 이제 13명의 수도가족이 되었습니다.

 

5.어느 자매의 면담성사중 자매님의 가정 신앙 생활 소개에 감동했고 소박한 정성이 담긴 곷감도 선물받았습니다. 오래전부터 알아온, 수도원 성전에 자주 기도하러 오는 자매로 안팎으로 참으로 치열히 열심히 살아가는 아름다운 자매입니다.

 

“남편과 아들 둘에 모두 네 식구입니다. 아침에는 각자 기도하고 저녁에는 함께 기도합니다. 아침 출근전에 저는 남편에 이어 아들 둘 이마에 성수를 찍어 이마에 십자인호를 긋고 두손을 펴서 기도문을 외우며 십자가를 크게 그으며 축복기도를 합니다. 

세상에 가족들을 내보내며 모든 어둠과 악으로부터 보호해주시기를 청하며 해주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남편부터 가볍게 차례대로 포옹합니다. 아이들도 아빠랑 차례로 포옹합니다. 기도를 받은 가족들은 성호를 그으며 “아멘”이라고 대답하고 대문을 나섭니다. 오랜시간 이렇게 기도해 주다보니 자연스레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성혈과 거룩한 상처의 공로를 통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형제를 축복합니다. 아멘.”

 

그대로 하느님과 세상에 활짝 열려있는 ‘하느님  중심의 열린 공동체’, 가정교회같습니다. 자매님을 “성녀요 여사제”라 극찬했습니다. 흡사 주님께 강복받은후 파견되는 제자들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오늘 강론 제목은 “하느님 중심의 열린 공동체-부르심과 파견, 관상과 활동, 제자와 선교사”입니다. 그대로 교회공동체에 몸담고 있는 우리의 복된 신원을 알려 줍니다. 하느님 중심의 부르심의 공동체, 관상 친교의 공동체, 제자들의 공동체가 우선입니다. 물론 닫힌 공동체가 아니라 앞문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뒷문은 사막의 하느님께 활짝 열린 공동체로 다음 고백기도 그대로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歡待)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親交)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믿는 개인이든 공동체든 반드시 지녀야 할 앞문과 뒷문입니다. 오늘은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입니다. 마침 문재인 티모테오 전 대통령의 영명축일이기도 합니다. ‘티모테오’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다’ 뜻입니다. 두 성인 모두 바오로의 신뢰와 사랑을 온몸에 받았던 애제자이자 선교활동의 협력자로 디모테오는 에페소 교회를, 티도는 크레타 교회를 섬긴 주교였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바오로가 제자공동체에 속한 애제자 디모테오에게 보낸 따뜻한 사랑이 가득 담긴 감사와 격려의 편지로 오늘 공동체 생활중인 우리 하나하나를 향한 격려말씀으로 받아 들여도 은혜롭겠습니다.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제자로서의 공동체 삶이나 선교사로서의 복음 선포의 삶에 얼마나 적절하고 유익한 바오로 사도의 충심과 애정이 가득 담긴 위로와 격려의 조언인지요! 참으로 이렇게 준비된 공동체만이 비로소 세상에 활짝 열린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보다시피 때가 되자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을 세상에 둘씩 짝지어 파견하십니다. 선교여정중 영원한 도반인 주님과 함께 눈에 보이는 형제도반은 필수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존재이유입니다. 관상과 활동은 삶의 리듬이요 제자와 선교사는 우리의 이중신원입니다. 안으로는 제자요 밖으로는 선교사입니다. 선교는 공동체의 숨통입니다. 선교없는 공동체는 곧 시들어 죽습니다. 부르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자공동체에 뿌리를 둔 다음 복음 선포자로서의 파견은 필수입니다. 그대로 오늘 복음 말씀은 복음 선포 삶의 자리로 파견받는 우리에게도 크게 도움과 참고가 됩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수확할 밭의 일꾼들을 보내주십사라는 청과 더불어 나부터 주님의 일꾼으로 분투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예나 이제나 변함없는 이리 떼 세상에 주님의 신망애信望愛와 겸손과 지혜, 용기로 무장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본질적인지 깨닫습니다. 소유가 아닌 존재의 삶을, 온전히 주님께 의탁한 무소유의, 무욕의 정신으로 최소한의 의식주에 자족하며 자발적 가난을 살라는 다음 가르침입니다. 

 

“돈주머니도 여행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여라.”

 

‘성령’의 도우심과 곳곳에 믿는 형제들의 ‘환대’가 있어 가능한 이런 자발적 가난의 삶이겠습니다. 동서방 막론하고 옛 사람들에게 나그네들에 대한 환대는 기본적 덕목이었습니다. 참으로 이런 무소유의 영성이 텅빈 충만에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게 합니다. 텅빈 충만의 사랑에서 샘솟는 주님의 평화보다 더 좋은 선물도 없습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은 민폐를 최소화하면서 치유와 더불어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집 저집으로 다니지 마라.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하고 말하여라,”

 

우리 제자들이 줄 수 있는 참 좋은 선물이 평화에 치유요 하느님 나라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예수님 자체가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자 평화자체요 힐링자체입니다. 그러니 이런 주님과 일치가 깊어질 때 우리 역시 주님의 평화가, 주님의 힐링이, 하느님의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저절로 주님의 제자로서 선교사로로의 사명도 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나 수도공동체는 평화와 힐링의 공동체요, 이 거룩한 미사보다 더 좋은 평화와 힐링 센터도 없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 하느님의 나라가, 주님의 평화가, 주님의 힐링이 되어 살게 합니다.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또 오늘 이 강론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아멘.


[1/27일(금) 연중 제3주간 금요일, 되새김 구절]

 

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조재형 신부)

 

2. “우리는 뒤로 물러나 멸망할 사람이 아니라, 믿어서 생명을 얻을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7~39절))(양승국 신부)

 

3. 어느 집에든지 평화를 빌어주되 자신의 평화가 아닌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빌어주라는 말씀입니다.(이영근 신부)

 

4. 우리 제자들이 줄 수 있는 참 좋은 선물이 평화에 치유요 하느님 나라임을 깨닫습니다. (이수철 신부)

 

[1/27일(금) 연중 제3주간 금요일, 제34일 기도]

 

하느님!

믿음으로 생명을 얻게 하소서.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빌어주게 하소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향기를 품게 하소서. 

아멘.

 

- 2023년 1월27일(금) 6시1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