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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글·자녀교육·시사

[230523 글/시]<트루먼 대통령 이야기>/대구 방천여고 7공주파 무릎 꿇린 할매 이야기

[2023년 5월23일(화) 부활 제7주간 화요, 오늘의 글/시]

 

<트루먼 대통령 이야기>

고졸 출신의 해리 S.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은 미국의 33~34대 대통령(1945~1953)이다. 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갑자기 죽자 부통령이 된 지 불과 82일 만에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트루먼은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위해 예비해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지극히 평범했지만 몇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용기였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괴롭혔을 때 약한 자의 편을 드는 정의로운 용기가 트루먼에게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자원해서 입대했다. 원래 트루먼은 지독한 근시 때문에 군 복무를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합중국 육군 신체검사에서 시각검사 판을 통째로 외워서 통과한 후 포병장교가 되어 열심히 싸웠으며 대위까지 승진하였다. 

용감하고 서민적이고 그리고 아주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이 바로 트루먼이다. 1944년의 정·부통령선거에서 부통령에 당선되었고 1945년 4월, 얄타 회담 직후 루스벨트가 뇌일혈로 별세하자 이어서 대통령이 되었다. 지도력을 검증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대단히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하고 처리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한 보고를 받고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투하를 지시했다. 트루먼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마지막 사건을 장식한 유일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트루먼은 두 번에 걸쳐 한국을 도와주었다. 
첫 번째는 한국전쟁에 파병한 것이다. 미국 시각으로 1950년 6월 24일 토요일 밤 9시에 잠자리에 들려던 트루먼에게 북한군이 남침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이런 보고를 받을 때 정치적인 계산을 할 것이다. 이 전쟁이 본인의 나라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자동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트루먼은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단 10초 만에 한국 전쟁에 미군 참전을 결정했다. 계산할 줄 모르는 농부처럼 트루먼의 생각은 한 가지였다. 나쁜 놈들이 쳐들어왔으니 물리쳐야 한다는 단순 논리였다. 바로 그 용기있는 결정이 한국을 살렸다. 그 순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시골 출신의 트루먼을 대통령으로 세우셨다. 

두 번째로 트루먼은 한국을 포기하라는 요구를 거절했다. 1950년 10월 중국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졌을 때 영국 에틀리 수상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한국에 배치된 병력을 유럽으로 철수시키자고 제안했다. 영국의 제안에 미국의 주요한 인물들이 찬성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영국 대사를 지낸 조셉 케네디였다. 그는 공개적으로 한국 포기론을 주장했다. 명문가 출신에 정치 감각이 뛰어난 자들은 한국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골 출신으로 의리를 중요시하는 트루먼은 단호하게 반대하고 한국을 도왔다. “우리는 한국에 머물 것이고 싸울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도와주면 좋습니다. 그러나 도와주지 않아도 우리는 어떻게든 싸울 것입니다. 우리가 한국을 버린다면 한국인들은 모두 살해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편에서 용감히 싸웠습니다. 우리는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해서 친구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는 연합군의 철수를 거절하고 의리있게 행동했다. 트루먼은 한국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1차, 2차 대전 때에도 하지 않았던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리고 그는 물가와 임금을 통제하고 그걸 가지고 한국에 쏟아 부었다. 국방 예산을 올리고 중국군과 맞서 싸웠다. 결국 엄청난 돈이 투입되고 5만 명이 넘는 미군이 목숨을 잃고 10만 이상이 다친 후에야 전쟁이 멈췄다. 

그의 업적은 대단히 많지만 몇 가지를 요약하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항복을 받았고,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국왕인 히로히토로부터 항복을 받았고 그 결과로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되었으며, 6.25가 발발하자 즉시 파병 결단을 내려 미군을 위시한 유엔군의 결집을 주도하여 대한민국을 방어했다. 그래서 그를 우리 한국의 은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는 키가 작기 때문에(175cm) "리틀 맨(little man)"이란 애칭을 갖고 있었으나 퇴임 후 그가 서방세계를 공산주의로부터 막아낸 거인이란 의미로 "리틀 빅 맨(little big man, 작은 거인)"이라는 애칭을 부여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참다운 청백리의 삶을 살았으며 훌륭한 정치인의 표상이었다. 32명의 전임 대통령들에 비해 미국 역사상 매우 중요한 결정들을 가장 많이 내린 대통령이지만 그의 위대함은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의 삶에서 엿볼 수 있다.

그의 집은 그의 부인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며 대통령으로 백악관에서 거주할 때와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평생 이 집에서 살았다. 그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1952년 그의 수입은 미 육군 연금으로 받는 연 13,507 달러가 전부였다.

그는 우편물을 붙이기 위해 자기 돈으로 우표를 사서 입의 침을 발라 편지를 발송한다는 사실이 일려져 의회가 소급해서 '수당'을 지급하여 연 25,000 달러의 연금을 받았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그의 후임으로 취임하게 되자 그와 영부인 베스는 경호원도 없이 미주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백악관까지 직접 차를 운전해서 갔다.

그는 고액의 급여를 받는 회사 경영자의 자리를 제안 받았지만 "당신들이 원하는 건 내가 아니라 대통령이란 직책이오. 하지만 그 자리는 내 것이 아니라 미국 국민들의 것이라오. 그 자리는 사고 파는 자리가 아니라오." 라며 그 제안을 거절했다.

1971년 5월 6일 미국 의회는 트루먼의 87세 생일을 맞아 그에게 '영예의 메달'을 수여하려고 했지만 “저는 의회의 메달이나 다른 어떠한 상을 받을만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며 수상을 사양하는 회신을 의회에 보냈다.

그는 대통령 재임시절 그의 사적여행 경비와 식대를 모두 자신의 돈으로 지불했다고 한다.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분했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가 사망할 때 갖고 있던 유일한 재산은 자신이 평생 살았던 미주리에 있는 집 한 채 뿐이었다.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서 퇴임 후 많은 논란이 되고 눈살을  찌프리게하는  몇몇 대통령을 보면 너무나 미국 대통령들과 비교가 되어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우리나라 대통령들도 퇴임 후에도 국민들로부터 진정으로 존경받는 풍토가 조성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한다.

 

🌺대구 방천여고 7공주파 
    무릎 꿇린 할매 이야기

▫️아들이 외국으로 여행을 못가니까 국내여행을 가야 한다면서 집에 와서 데미(개)를 봐 달라고 했다.

4박5일 동안 돌보는데 20만원 이라고 하니 할매는 입맛을 다시며 백수로  괜찮은 수입이라고 생각했다. 
출발하면서 며누리는 "데미가 더우면 에어콘을 꼭 켜주세요.
데미밥은 시간맞춰 챙겨 주시고욧!"
며누리는..
"어머님! 더우니 
전기세 아끼지 말고 에어콘 빵빵켜고 지내세요." 
'어머님 !
끼니 거르시지 마시고 꼭꼭 챙겨드세요.' 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고 오로지 데미! 데미! 였다.

"알았따 ! 너희 개님 잘 모시고 있을테니휴가나 잘다녀 오니라."
"개님이라뇨.?  그냥 데미라고 하세요."

디미고 지기미고 간에..알았따! 얼릉 가그라 !
아들부부가 출발하고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텅비어 있었다. 
"그래 돈 20만원으로 사먹든지 굶든지 마음대로 하라 이거지?"

할매는 에어콘 부터 우선 끄고 TV를 켰다.
한참 있으니 개가 끙끙거렸지만.
할매는 모르는척 하고 부채질만 세차게 해댔다. 
배가 고파지면 냉면도 시켜먹고 
짜장면도 시켜 먹었다. 

개의 사료는 주라는 양의 1/3만 주었다. 
그렇게 하여도 할매는 더워도
정 힘들면 샤워로 몸을 식혔다.

닷새만에 피서에서 돌아온 며누리가 얼릉 개부터 껴안으며.. 
"어머니 !
데미가 왜 이래요?" 
"시애미가 에어콘 바람이 싫어서 껏더니 그카능갑다!"
"데미는 에어콘 없으면 안된다고 했잖아요?" 
"시애미는 에어콘 바람에 병들어도 좋으냐?
그리고 너 !? 

냉장고는 왜 깡그리 비워놨느냐?
[억양이 점점 올라간다 ~~]

시애미는 굶어도 좋고 개새끼만 상전으로 모시느냐? 
어데서 배운 못된 짓거리냐? 
[더 억양이 억쎄지면서 본 승질이 나오기 시작한다.]

시애미가 에어콘 안켜서 개새끼가 뒈지기라도하면 
이걸로 장사 지내그라." 
하면서 받은돈 20만원을 
식탁위에 던져 버렸다.

"엄마! 
왜이러시능교 ?" 
"그래 너그들 
꼭같은 놈이구나!
너그들 나를 잘못 건드렸어!
나 누군지 알아? 

[여기서 영웅본색의결정적인 과거사가 나온다]

내가 대구 대봉동 방천여고 7공주파를 무릎꿇리고 앞산 밑에 봉덕여성대학 전설의 빨강바지 인물 권말숙이야!

앞으로 너그들 !
내가 죽었다고 부고해도 올 생각도 하지 말거라 !.
너그들이 온게 보이면 관뚜껑을 열고나와 너그 년눔들을 쫓아내고 도로 들어갈테니 애미보다 
촌수가 더 가까운 개님이나 모시고 잘살아라 !."

그라고 말숙이  할매는 휑하니 ~~~
대구로 내려 왔뼜다

집에 와 있으니 아들늠이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아부지 ! 
우리엄마 치매예요?" 
"그래 치매다! 
치매든 뭐든 
내 마누라니까
내가 데리고 살테니 니는 네 마누라와 개님 
모시고 잘 살거라. 
이 더러분 넘아!
전화 끊어!!"

"허허허~
호호호~~!!"

백수동지 여러분 시원하시죠?
애견가 여러분에게는 쬐끔 죄숭합니다만 지랄도 풍년이지여!

젊은것들아,  요따우로 살지말어 
천벌이 무섭지 않는가?

할배 할매가 늙고 백수니까 힘없어 이래 사는줄 아냐?
왕년에는  주름잡고 빤타롱  빨강바지로 중앙통을 쓸고다니며 지금의 네 애비를  사로잡은 한때는 잘나가던 여장부로다.

이눔아 ?
네눔이 덜 맞아서 아직 정신을 못차린거구나! 
ㅋㅋㅋ 
그 칠공주파의 모임은 시방도 매달 7일이면 모이는데 두할매가 목욕탕을 운영중이라 그집 찜질방에서 밤을 세우고 다음날 영감들을 호출하여서.. 
연락을 받고 선착순으로 쪼루루 가서는 밥값을 계산하게하는 대구에서 아직도 유명한 왈패 할마시들이다!

내눈에 다시 한번 수작부리다 걸리며는 죽는줄 알아라!

시부럴 늠아 !!

< 팔공산 낭만백수
 보명할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