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9월 26일 화요일[(녹) 연중 제25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본기도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셨으니
저희가 그 사랑의 정신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에즈라기의 말씀입니다.6,7-8.12ㄴ.14-20
그 무렵 다리우스 임금은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 관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7 “하느님의 집 공사가 계속되게 하여라.
유다인들의 지방관과 유다인들의 원로들이
그 하느님의 집을 제자리에 다시 짓게 하여라.
8 이제 그 하느님의 집을 다시 짓도록
그대들이 유다인들의 원로들을 도와서 해야 할 일에 관하여,
내가 이렇게 명령을 내린다.
왕실 재산 곧 유프라테스 서부 지방에서 받는 조공에서,
지체하지 말고 그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비용을 내어 주어라.
12 나 다리우스가 명령을 내리니 어김없이 시행하여라.”
14 유다의 원로들은 하까이 예언자와 이또의 아들 즈카르야가 선포하는
예언에 힘입어 건축 공사를 순조롭게 진행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명령과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와 다리우스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명령에 따라 건축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15 그리하여 이 집이 완공된 것은
다리우스 임금의 통치 제육년 아다르 달 초사흗날이었다.
16 이스라엘 자손들, 곧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돌아온 나머지 유배자들은 기뻐하며 하느님의 집 봉헌식을 올렸다.
17 이 하느님의 집 봉헌식에는
황소 백 마리와 숫양 이백 마리와 어린양 사백 마리를 바치고,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 제물로 이스라엘의 지파 수에 따라
숫염소 열두 마리를 바쳤다.
18 그런 다음 모세의 책에 쓰인 대로,
사제들을 저마다 번별로 세우고 레위인들을 저마다 조별로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느님을 섬기도록 하였다.
19 돌아온 유배자들은 첫째 달 열나흗날에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20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일제히 자신을 정결하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정결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돌아온 모든 유배자와 동료 사제들과 자기들이 먹을 파스카 제물을 잡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 “주님의 집에 가자!”할 때, 나는 몹시 기뻤노라.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 ◎
○ 예루살렘은 튼튼한 도성, 견고하게 세워졌네. 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네. 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네. ◎
○ 이스라엘의 법을 따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네. 그곳에 심판의 왕좌, 다윗 집안의 왕좌가 놓여 있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느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은 행복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8,19-21
그때에 19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20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예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저희가 경건한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을 천상 성사로 깨닫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은 규정을 내리시어 어김없이 지키라 하셨나이다. 당신 법령을 지키도록 저의 길을 굳건하게 하소서.
<또는>
요한 10,1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주님의 성체로 저희에게 힘을 주시니
끊임없이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삶에서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빈터의 딜레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빈터에 양을 놓아서 키웠더니 양들이 풀을 다 뜯어 먹었고, 빈터는 곧 황폐해 졌다고 합니다. 빈터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빈집도 비슷합니다. 한 두 사람이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했고, 빈집은 곧 쓰레기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빈집에는 그렇게 해도 된다는 생각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2023년 여름은 ‘폭염, 가뭄, 산불’로 곳곳에서 몸살을 앓았습니다. 이런 기상이변은 4가지 원인이 있다고 합니다. 인류가 내 보내는 온실가스, 슈퍼 엘니뇨, 태양의 흑점, 화산폭발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기상이변의 가장 큰 원인은 인류가 무심코 내 보내는 ‘온실가스’라고 합니다. 지구의 강, 바다, 하늘, 산은 결코 빈터가 아닙니다. 결코 빈집이 아닙니다. 하지만 인류는 생명의 터전인 지구를 빈터와 빈집으로 생각하였고, 쓰레기를 마구 버렸습니다. 온실가스를 마구 내보냈습니다. 지구는 우리의 조상들이 살았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으며,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야 할 소중한 생명의 터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회칙 ‘찬미 받으소서.’를 통해서 우리의 소중한 지구를 잘 보존하자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구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소작인’입니다. 소작인이 관리를 잘 못하면 주인은 소작인을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는 유배지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성전을 새로 건축하는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성전을 건축한 후 유대인들은 하느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새로운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심점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기도하고,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고, 성전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저는 본당 신부를 2번 했는데 성전을 신축한 적은 없습니다. 공교롭게도 2번 모두 성전을 신축한 신부님의 후임으로 갔습니다. 성전을 신축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야기는 들었지만 제가 직접 경험한 적은 없습니다. 전임 신부님들은 상가 건물에서 미사를 봉헌하였고, 다른 본당에 모금 강론을 다녔고, 물품 판매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마련한 성전이기에 신자들에게는 아름다운 성전입니다. 마음에 드는 성전입니다. 저는 눈에 보이는 성전을 신축하였으니, 이제 마음의 성전을 세우자고 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은 건축 자재가 필요했습니다. 마음의 성전에는 다른 것들이 필요합니다. ‘기도, 친교, 말씀,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성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음의 성전을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은 허물어 질 수 있지만 마음의 성전은 허물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2000년 동안 교회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성전의 힘만이 아닙니다. ‘기도, 말씀, 친교, 나눔’으로 세워진 마음의 성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성전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형제자매로 부르는 것은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잘 따르기 위한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예수님은 늘 기도하셨습니다.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에 하느님께서는 응답하셨고,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 아픈 이들, 소외된 이들, 외로운 이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이웃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느님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부지런한 것은 인내하고 기다릴 줄 안다는 것입니다. 조급하다는 것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언제인가는 단단한 바위에 구멍을 만드는 것을 봅니다. 우리가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 단단한 바위에 구멍이 나듯이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변화 시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며칠 전에 읽은 글이 떠오릅니다.
“가을에는 풀잎도 떨고 있습니다./ 끝내 말없이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기 때문입니다./ 바람은 텅 빈 들에서 붉은 휘파람을 불며 떠나는 연습을 합니다./그래도 사람들은 가을을 좋아합니다./ 누군가 따뜻한 손을 잡아줄 사람을/ 만날 것 같은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손을 내미는 사람은 바로 예수님의 형제요 자매가 될 것입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강론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인류역사상 하느님의 말씀을 가장 잘 경청하고 실천하신 성모님!
오늘 성모님께서는 꽤 의아한 일들을 겪으십니다. 루카 복음 사가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성모님께서 왜 예수님을 찾아가셨을까요? 예수님에 대해 들려오는 흉흉한 소문을 들은 친척들이 성모님을 찾아왔을 것입니다.
“마리아, 아무래도 아드님께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출가(出家) 이후 상황이 정말 안 좋은 것 같아요. 저러다가 제명대로 못살 것 같아요.”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들어 보이고 계신 예수님의 행보는 점점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유다 지도층 인사들이 목숨 걸고 있는 안식일 규정을 산산조각내셨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의 논쟁 중에 틈만 나면 그들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리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유다 지도층 인사를 넘어 헤로데의 귀에까지 전해졌습니다.
아드님 걱정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성모님께서는 형제들을 앞세워 예수님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여기서도 의아한 생각을 갖는 분들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 성모님께서 예수님 외에 또 다른 출산을 하셨던가?
사실 이 구절을 빌미로 일부 개신교 신학자들은 성모님의 평생 동정 교리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 말고도 다른 자녀를 두셨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교부들께서는 아주 명료하게 설명하십니다. 당시 유다 문화 안에서 형제라는 표현은 친형제뿐만 아니라 사촌 형제, 오촌 형제, 육촌 형제들에게도 적용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루카 복음 사가가 사용한 형제들이란 표현은 광의(廣義)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의구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당신 안부가 걱정되어 찾아가신 성모님이신데,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와보시지도 않았다는 것, 한 마디로 문전박대했다는 것인데, 그리고 던지시는 말씀 역시 성모님 입장에서 용납하기 힘든 부분이라는 것.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이다.”
사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성모님을 무시하는 말씀, 불효막심한 말씀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모님을 극찬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인류역사상 하느님의 말씀을 가장 잘 경청하고 구체적인 삶 속에서 정확히 실천한 사람은 바로 성모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평생토록 하느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마음 깊이 간직하고, 곱씹고 또 곱씹었으며, 온전히 말씀 안에 머무시고, 그 말씀을 온 생애를 통해 실천하신 성모님이셨기에,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에게 천상 모후의 관을 씌워주시며 하늘과 땅의 어머니로 인정하셨습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0925.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루카 8,18)
“씨 부리는 사람의 비유”에 이어지는 오늘 <복음> 말씀은 ‘말씀을 들은 자에 대한 지시사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사항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루카 8,16)
여기에서, ‘등불’은 하느님 말씀을 비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곧 ‘말씀’이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요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리게네스는 ‘그릇’은 영혼의 능력을, ‘침상’은 몸을, ‘등경’은 거룩한 교회를 표현한다고 해설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그것은 세상 만민을 비추고, 진리의 빛으로 집 안에 있는 이들을 밝히며, 모든 사람의 마음을 거룩한 지식으로 채우게 된다.”
그러니 “침상”인 우리의 몸으로 말씀을 가려서는 안 될 일입니다. 또한 “그릇”인 우리의 능력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덮어서도 안 될 일입니다. 사실, “말씀”은 숨겨 덮어지지도, 감추어 가려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마태 5,14)처럼, 감추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집안을 가장 잘 비출 수 있는 곳에 거룩한 교회인 “등경”을 올려놓고, 말씀인 “등불”을 켜서 밝혀두어야 할 일입니다. “말씀”은 빛이 되어 온 집 안과 집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비추어 밝혀줄 것입니다. 그 빛은 우리의 뼈와 살을 가르고, 우리의 생각과 속셈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숨겨진 것들을 드러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루카 8,17)
그렇습니다. 이토록 ‘말씀’은 빛이 되어 세상과 우리를 비출 것입니다. 그리고 빛과 진리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말씀의 등불”은 거룩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진정, 말씀의 비추임을 받은 영혼은 더욱 더 많은 열매를 맺고 더 밝게 빛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루카 8,18)
그렇습니다. 단지 듣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듣는지’가 중요합니다. 율법학자가 “스승님,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하고 여쭈었을 때, 예수님께서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었느냐?”(루카 10,26)라고 되물었던 것처럼, 하고 ‘무엇을 들었는가?’ 못지않게 ‘그것을 어떻게 들었는가?’, ‘무엇을 보았는지’ 못지않게 본 ‘그것을 어떻게 보았는가?’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곧 ‘믿음과 사랑으로 희망하여 들었는지’가, ‘문자적 의미’를 넘어 ‘영성적 의미’에 따라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루카 8,18)이라는 말씀을 알아듣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아무도 등불을 켜서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루카 8,16)
주님!
말씀을 제 안에 가두어 두거나 제 발 아래에 두지 않게 하소서.
제 한량한 능력으로 당신 말씀의 권능을 덮지 않게 하소서.
아무 것도 당신 말씀보다 낫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말씀의 빛으로 살고 빛에 속한 이로 살게 하소서.
제 삶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게 하소서.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우연은 없다”-
"주님, 주께서는 의인에게 복주시고,
사랑으로 감싸 주시나이다."(시편5,13)
지난 주말 토-일요일 양일간 장충동 수도원 피정집에서 왜관 수도원 서울 봉헌회 14명의 피정지도를 하면서 4회 강의를 했습니다. 온통 하느님과 기도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어디서나 눈들어 하늘보고 기도하라 직립인간의 인간임을 강조했습니다. 수도원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네 발로 걸어다니는 여러 개와 고양이들은 결코 하늘을 볼 수 없습니다. 온통 먹이를 찾아 다니는 것이 일입니다.
그러니 하늘을 잊고, 기도를 잊고 땅에서의 먹고 사는 일에 온 힘을 쏟는 탐욕뿐의 영성부재의 사람이라면 이런 네발 달린 동물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지요. 너무나 자명한 살아 있는 하느님을 까맣게 잊고 지내는 사람들입니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둘이니 하나는 하느님이요, 하나는 죽음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죽음을 늘 기억하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살 때 비로소 겸손하고 진실한 참 삶일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은 인류 역사의 중심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생사를 주관하시며 인류 역사를 이끄십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바로 오늘 강론의 제목입니다.
“우연은 없다. 지나고 나니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이요 섭리였다,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다.” 제 자전적 고백 ‘사랑밖에 길이 없었네’ 맨처음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그렇습니다. 몰라서 우연이지 알고 보면 지금까지 모두가 하느님의 은혜로운 섭리였음을 깨닫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은 아니더라도 하느님의 허락없이 일어나는 일을 하나도 없습니다.
지난 9월18일 일간지 1면 오른쪽에 크게 자리잡았던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의 성 김대건 신부 성상 축복식 사진이, 어제 9월24일자 가톨릭신문과 가톨릭평화신문의 1면 반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사진과 더불어 1면 톱기사 제목입니다.
“성 김대건 신부, 가톨릭의 심장 바티칸에 우뚝 서다”
순교 177주년인 2023년 9월1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성상 봉헌
1846년 9월16일날 새남터에서 순교하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가 177년후 똑같은 날 2023년 9월16일 바티칸에 성상으로 부활하리라고, 우뚝 세워지리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지요! 바로 우연이 아닌 순전히 하느님 은총의 섭리였음을 깨닫습니다. 제가 신림동 관악산 기슭에서 8년 동안의 교편생활을 접고 지금 여기 별내동 불암산 기슭 요셉수도원에서 평생 정주의 수도사제의 삶을 살리라고 누가 감히 상상할 수 있었겠는지요! 이 또한 하느님의 기막힌 섭리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모든 역사와 사건의 중심에서 끊임없이 활동하고 계신 하느님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요 하느님의 일에 최선을 다해 협조해 드리는 일일 것입니다. 요즘 국내 정치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감지합니다. 하느님은 인간들이 악하게 일을 꾸민 것을 오히려 구원섭리에 도움이 되도록 이끄십니다.
모사(謀事)는 재인(在人)이요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는, 즉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신 하느님이라는 제갈량의 어록도 생각납니다. 물론 이에는 하느님께 협조하는 인간의 최선의 노력도 함께 해야 함을 봅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마디의 뜻은 ‘열흘 붉은 꽃이 없으며, 권세는 10년을 못간다.’뜻으로 참으로 하느님 앞에,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한문이나 숱한 속담들의 진리 안에 함축된 하느님의 손길을 감지합니다. 모두가 지나가지만 하느님만은 언제나 삶의 현장 중심에 자리 잡으시고 영원한 현재로 현존하시며 당신 뜻대로 역사를 이끄십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주님께서는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시자 키루스는 마침내 바빌론에 유배중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돌려보내고 하느님의 집을 짓기 위한 온갖 협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기쁨을 노래한 오늘 화답송 126장 시편의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눈물로 씨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흡사 속담처럼 들리는 이 말씀 안에서도 우리는 하느님의 구원섭리를 봅니다. 오늘 복음도 세 단절어 안에서 우리는 이런 속담처럼 그 말마디 안에 담겨져 있는 하느님의 구원 섭리를, 또 우리가 해야 할 바를 깨닫게 합니다.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바로 등경 위에 놓아져 있는 등불같은 존재로 이웃을 환히 밝히는 복음적 삶을 삶으로 하느님께 적극 협조하라는 말씀입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인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 앞에 진실하고 정직한, 투명한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안팎이 다른 이중적 위선의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잠시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폭로될 것이요, 이미 하느님 앞에서는 다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이란, 천지 자연의 법칙은 광대하여 엉성한 듯 보이지만, 악인에게 벌을 주는 일을 빠뜨리지 않는다는 뜻의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하느님 앞에 완전 범죄는 불가능함을 깨닫습니다. 이 모두가 하느님 앞에 진실하고 투명한 삶을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져 빼앗길 것이다.”
자만하지 말고 끊임없이, 한결같이 노력, 훈련하여 습관화하라는 것입니다. 역시 영적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부익부 빈익빈의 진리입니다. 이런 속담들 잘 듣고 헤아려 삶의 지침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성서를 통해서만 아니라 이런 지혜의 결정체인 속담들을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배워 깨닫게 하십니다.
참으로 이런저런 속담들이나 사건들을 통해서도 부단히 하느님의 뜻을 찾고 깨달아 알 때 참으로 겸손하고 지혜로운 삶이겠습니다. 평생 매사 깨어 하느님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무엇보다 참으로 우리를 겸손하고 진실하고 지혜롭게 하는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뿌릴 씨를 가지고 울며 가던 그들은,
곡식단 들고 올 제 춤추며 돌아오리라."(시편126,6). 아멘.
[9/26(화)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되새김 구절]
1. .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언제인가는 단단한 바위에 구멍을 만드는 것을 봅니다. 우리가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 단단한 바위에 구멍이 나듯이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변화 시켜 주시리라 믿습니다.(조재형 신부)
2. 평생토록 하느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마음 깊이 간직하고, 곱씹고 또 곱씹었으며, 온전히 말씀 안에 머무시고, 그 말씀을 온 생애를 통해 실천하신 성모님이셨기에,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에게 천상 모후의 관을 씌워주시며 하늘과 땅의 어머니로 인정하셨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아무도 등불을 켜서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루카 8,16)
주님!
말씀을 제 안에 가두어 두거나 제 발 아래에 두지 않게 하소서.
제 한량한 능력으로 당신 말씀의 권능을 덮지 않게 하소서.
아무 것도 당신 말씀보다 낫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말씀의 빛으로 살고 빛에 속한 이로 살게 하소서.
제 삶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등경 위에 놓아져 있는 등불같은 존재로 이웃을 환히 밝히는 복음적 삶을 삶으로 하느님께 적극 협조하라는 말씀입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인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이수철 신부)
[9/26(화)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제276일 기도]
복음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마음 깊이 간직하고,
온전히 말씀 안에 머무시고,
말씀을 온 생애를 통해 실천하신 성모님!
천상 모후의 관을 쓰신 성모님 처럼 살게 하소서,
- 2023년 9월26일(화) 7시...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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