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3년 11월 24일 금요일[(홍)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지 않으리라. 십자가의 말씀이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이다.
본기도
복된 안드레아와 동료 순교자들이
피를 흘리기까지 성자의 십자가를 충실히 따르게 하셨으니
그들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사랑을 형제들에게 전하며
하느님의 참된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마카베오기 상권의 말씀입니다.4,36-37.52-59
그 무렵 36 유다와 그 형제들은 “이제 우리 적을 무찔렀으니
올라가서 성소를 정화하고 봉헌합시다.” 하고 말하였다.
37 그래서 온 군대가 모여 시온산으로 올라갔다.
52 그들은 백사십팔년 아홉째 달,
곧 키슬레우 달 스무닷샛날 아침 일찍 일어나,
53 새로 만든 번제 제단 위에서 율법에 따라 희생 제물을 바쳤다.
54 이민족들이 제단을 더럽혔던 바로 그때 그날,
그들은 노래를 하고 수금과 비파와 자바라를 연주하며
그 제단을 다시 봉헌한 것이다.
55 온 백성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자기들을 성공의 길로 이끌어 주신 하늘을 찬양하였다.
56 그들은 여드레 동안 제단 봉헌을 경축하였는데,
기쁜 마음으로 번제물을 바치고 친교 제물과 감사 제물을 드렸다.
57 또 성전 앞면을 금관과 방패로 장식하고 대문을 새로 만들었으며,
방에도 모두 문을 달았다. 58 백성은 크게 기뻐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민족들이 남긴 치욕의 흔적이 사라졌다.
59 유다와 그의 형제들과 이스라엘 온 회중은 해마다 그때가 돌아오면,
키슬레우 달 스무닷샛날부터 여드레 동안
제단 봉헌 축일로 기쁘고 즐겁게 지내기로 결정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당신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 주님, 저희 조상 이스라엘의 하느님, 영원에서 영원까지 찬미받으소서. ◎
○ 주님, 위대함과 권능과 영화가, 영예와 위엄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
○ 주님, 나라도 당신의 것이옵니다. 당신은 온 세상의 으뜸, 그 위에 드높이 계시나이다. 부귀와 영광이 당신에게서 나오나이다. ◎
○ 당신은 만물을 다스리시나이다. 권능과 권세가 당신께 있으니, 당신 손을 통하여, 모든 이가 힘과 영예를 얻나이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45-48
그때에 45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46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47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48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거룩한 순교자들의 수난을 공경하며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저희가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언제나 주님께 충실하며
저희 자신을 주님께서 기꺼워하시는 제물로 바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거룩한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하나의 빵을 함께 나누고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한마음이 되고
끝까지 인내하여 영원한 상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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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산보 중에 ‘이단(異端)과 사이비(似而非) 종교’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이단은 다르지만 끝이 다른 것이라고 합니다. ‘신당동 떡볶이, 장충동 족발, 종로 닭 한 마리’에는 ‘원조’라는 이름의 가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원조와 비슷한 이름의 가게들이 함께 있습니다. 이단은 맛이 조금 다르지만 그렇다고 먹어서 건강에 해로운 것은 아닙니다. 보통은 원조 집에 손님이 많지만 자리가 없으면 다른 집에서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취향에 따라서 원조가 아닌 집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교회는 ‘가톨릭, 동방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개신교’로 나뉘어 졌습니다. 시작은 같지만 교리와 제도의 해석에 따라서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예전에는 교리적인 이유와 더불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목적에 따라 이단을 단죄하였고, 전쟁까지 벌였습니다. 현대에는 공동선을 위해서 서로 협력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방인, 과부, 고아를 잘 돌보아야 한다. 한 때는 너희도 이방인, 과부, 고아로 떠돌아다니지 않았느냐?”
사이비는 비슷한 것 같지만 완전히 다른 것을 이야기합니다. 어릴 때 먹던 ‘불량식품’과 같습니다. 욕심 때문에 몸에 해로운 음식을 파는 경우가 있습니다. 겉보기에 비슷해서 사먹지만 먹으면 설사를 하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불량식품의 유형을 이렇게 나누기도 합니다. “불량식품은 ① 위해식품, ② 병든 동물고기 등을 사용한 식품, ③ 기준·규격이 고시되지 않은 화학첨가물 등이 첨가된 식품, ④ 유독기구 등을 사용한 식품, ⑤ 기준과 규격이 정해지지 않은 포장을 사용한 식품, ⑥ 허위표시, 과대포장 등을 한 식품 등 6가지로 유형화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이비는 종교를 가장하여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범죄자들입니다. 사이비 종교도 종교를 '가장'하고 기존 종교의 교리를 따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종교의 계통학적 구분으로써 답을 찾으려 하다보면 사이비 종교를 구별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사이비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확실한 방법은, 그 나라의 사법체계 안에서 '사이비다'라고 판정이 나거나, 그에 상응하는 유죄판결을 받은 단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짧게 요약하자면 사이비종교는 이단에 포함되지만 모든 이단 종파가 사이비 종교는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정화’를 하십니다. 사이비들이 기도하는 하느님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변질시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이비들의 위선과 허위에 대해서도 ‘정화’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저들의 가르침은 따라라. 그러나 저들의 행동은 따르지 마라. 저들은 자기들도 하느님께 가지 않으면서 남들도 하느님께 가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있지만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의로움을 따르지 않는다면 자신의 욕망에 따라서 산다면 그 역시 사이비입니다. 공동체를 갈등과 분열로 이끈다면 그 또한 사이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라고 칭찬하셨던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뜻만 생각한다.” 바오로 사도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교우라고 하는 사람이 불륜을 저지르는 자거나 탐욕을 부리는 자거나 우상 숭배자거나 중상꾼이거나 주정꾼이거나 강도면 상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와는 식사도 함께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 악인을 제거해 버리십시오.”
나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이 사이비는 아닌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백성은 크게 기뻐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민족들이 남긴 치욕의 흔적이 사라졌다.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2. 오늘의 묵상 (사제 김상우 바오로)
2023년 11월 24일 금요일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루카 복음서에 따르면, 이 일화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바로 그날에 이루어집니다.
그만큼 성전 정화 사건은 예수님의 메시아 왕권을 재확인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합니다.
그런데 메시아 예수님의 왕권은 세속적 의미에서 가리키는 지배와 통치를 위한 ‘권력 쟁취’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분의 왕권은 오직 하느님 아버지를 올바르고 합당하게 섬기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물건을 파는 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이 구절에서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은 이사야서 56장 7절의 인용입니다.
곧 성전의 본래 기능이 기도하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강도들의 소굴’은 예레미야서 7장 11절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 시대나 예수님 시대나 사람들이 성전의 본래 기능을 왜곡하여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마침내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라고 복음은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상인들을 꾸짖으신 일과 성전에서 가르치신 일이
유다교 지도자들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내용은 구약과 신약 시대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도 ‘기도의 집’인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거나,
왜곡된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에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루카 19,41)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마치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범죄를 두고 울었던 것처럼(1열왕 8,11), 예레미아가 유다의 유배를 두고 세 번이나 울었던 것처럼(예레 9,1;13,17;14,17) 우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두고 전에도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루카 13,34)하시고 탄식하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또한 라자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리아 앞에서도 우신 적이 있습니다(요한 11,35).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우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큰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식을 올리셨습니다.”
(히브 5,7)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여라, 우는 사람들!”
(마태 5,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보시고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루카 19,42) 하고 탄식하시며, 당신께서 우시는 이유를 이렇게 밝히십니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루카 19,44)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지 못함에 대해 우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간다는 예루살렘 사람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에 가슴이 미어지셨습니다.
그토록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지만, 그들은 ‘평화를 가져다주는 당신’과 ‘당신이 찾아오신 때’를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파괴에 대해서 세 번씩이나 예고(루카 19,43-44; 21,20-24; 23,28-31)하시고, 그것을 종말을 예시하는 역사적 심판으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예수님의 울음과 말씀은 단순한 탄식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적 경고임과 동시에, 회개의 결단 촉구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당신의 ‘눈물’로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도 세상을 보고 울 줄을 알고, 아파할 줄을 알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과 하느님의 뜻을 알아들으라는 말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2013년 ‘람페두사 난민 방문 미사’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함께 슬퍼하는 울음과 연민의 경험을 상실한 사회에서 살아갑니다.
무관심의 세계화는 우리에게서 우는 능력을 빼앗아갔습니다.
... 누가 울고 있습니까?
누가 오늘 이 세상에서 울고 있습니까?”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당신의 뜻을 외면하여, 또 다시 당신을 울리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드리고, 당신의 눈에 웃음을 꽃피워 드리게 하소서!
<오늘의 말·샘 기도>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루카 19,44)
주님!
오늘 당신의 뜻을 알아듣고 당신을 울리지 않게 하소서!
세상을 보고 울 줄을 알고 아파할 줄을 알게 하소서!
타인의 고통에 함께 슬퍼하고 함께 울 줄을 알게 하소서!
당신이 찾아오신 때를 알게 하시고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평화를 이루게 하시고 평화를 가져다주는 당신을 알게 하소서!
당신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드리고 당신의 눈에 웃음을 꽃피워 드리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평화사랑, 평화훈련, 평화습관-
진리의 기쁨입니다.
진리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이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깨끗하게 합니다.
자유롭게 합니다.
평화롭게 합니다.
부요하게 합니다.
행복하게 합니다.
영원하게 합니다.
세세대대로 온누리가 평화롭기를 비는 마음에 날마다 기상하자마자 집무실 십자가의 예수님과 태극기 앞에서 바치는 만세육창기도입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대한민국-한반도 만세!"
"가톨릭 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요셉수도원 만세!"
이어지는 고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합니다.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파 주님의 평화의 전사이다."
여전히 반복되는 역사입니다.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나기가 이리도 힘든가 봅니다. 인류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무지의 어리석음에 기인한 참혹한 전쟁입니다. 누구나 전쟁없는, 평화를 꿈꾸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쟁입니다. “삶은 평화다”가 아닌 “삶은 전쟁이다” 함이 맞을 것입니다. 살아간다는 생존자체가 전쟁입니다. 어제 발표된 교황님의 비디오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전쟁의 고통을 겪고 있다. 2차대전이 끝난이후 오늘까지 전쟁들은 세계 많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전쟁들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크게 느끼지 못하지만, 오늘 여전히 바로 가까이에서 우리 모두 응답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바로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틴과 이스라엘의 성지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이 너무 고통스럽다. 너무 고통스럽다. 모두 한 하느님을 믿는 형제들 백성이 아닌가. 이들 형제 백성들은 평화롭게 살 권리를 갖고 있다.”
요지의 말씀입니다. 그대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과 같은 심정의 교황님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며 우십니다. 라자로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셨던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시며 우십니다. 복음에 예수님이 웃으셨다는 말마디는 한번도 안나오는데 이렇게 우셨다는 적나라한 표현은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예수님은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오시면 세상 곳곳에서 전개되는 비극적 전쟁과 불행에 여전히 우실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복음만 아니라 오늘 제1독서 마카베오기 상권도 전쟁이야기입니다. 배교를 강요하는 안티오코스 임금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선 마타티아스의 결연한 의지입니다.
“나와 내 아이들들과 형제들은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따를 것이오. 우리가 율법과 규정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소. 우리는 임금의 말을 따르지도 않고 우리의 종교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소,”
마침내 마타티아스는 제물을 바치라고 강요하는 임금의 신하를 죽이고 제단도 허문다음 그 아들들과 지지하는 이들을 이끌고 산으로 달아나 자리잡고, 정의와 공정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 광야에 자리잡으니 이제 본격적인 독립전쟁이 전개되는 양상입니다. 마치 일제치하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폭력도 불사했던 선조들을 생각하면 섣불리 평화의 잣대로 판단하기가 참 어렵고 복잡한 상황입니다. 바로 이런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오늘 복음의 예루살렘상황입니다. 반복되는 예루살렘의 불행이요 오늘도 여전히 계속되는 현실입니다.
언제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나 철이나 평화 공존을 누릴지 참 전망하기 힘든 인간 존재들입니다. 후대에 루카 복음사가는 70년대 로마제국에 의해 초토화된 예루살렘을 묵상하며 이 복음서를 썼을 것입니다. 다음 예수님의 말씀은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를 향합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없이 오늘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평화의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평화의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것입니다. 수도원이야말로 환대의 집이자 평화의 집입니다. 무지의 눈이 열릴 때 바로 거기 평화의 주님이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의 평화입니다. 바로 이 주님의 평화가 목말라 부단히 수도원을 찾아 성전에서의 공동전례기도와 미사에 참석하는 이들입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주님의 갈망도 우리의 소원도 전인류의 평화입니다. 값싼 평화는 없습니다. 평화는 감정이나 기분이나 감상이 아닙니다. 참으로 깨어 지속적인 평화의 선택이요, 평화의 사랑이요, 평화의 공부요. 평화의 노력이요, 평화의 훈련이요, 평화의 습관입니다. 평생공부가 평화요 우리 믿는 이들은 주님의 평화의 전사로 평생 평화의 여정을 살아갑니다. 참으로 온 인류의 으뜸가치가 공존공생의 평화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찬미와 감사의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기도 역시 참 좋은 평화의 훈련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하느님 역시 평화의 하느님이십니다. 시편 화답송 첫절이 평화로 빛나는 참 아름다운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느님, 주 하느님이 말씀하시네.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 온 땅을 부르시네. 더없이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느님은 찬란히 빛나시네.”(시편50,1-2)
이런 하느님을 잊었기에 무지로 인해 하느님을 믿는 형제들이 부끄럽게도 끊임없이 전쟁을 합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 우리 삶의 자리가 평화의 땅, 영적 시온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의 평화로 무장시키시어 당신 평화의 전사, 평화의 사도로 세상 영적전쟁터에 파견하십니다. 어제 성녀 체칠리아 축일에 써놓은 “겨울 배나무 예찬”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어쩜
저리도
담담할 수 있나
초연할 수 있나
만추(晩秋)의 땅에서는
하늘 냄새가 난다
그 크고 탐스러운 배열매들
모두
사랑의 선물로 내놓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봐주지 않아도
묵묵히
침묵중에
말없이 책임을 다한후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무념(無念), 무심(無心), 무욕(無慾)의
겨울 텅빈 사랑의 배나무들
참 평화롭다
놀랍다
감동스럽다
부끄럽다
너야말로
내 겸손의 스승, 평화의 스승이구나
조용한 중에 들려오는 배나무들의 고백,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17,10)".-아멘.
11/24(금)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되새김 구절
1. 예수님께서는 사이비들의 위선과 허위에 대해서도 ‘정화’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저들의 가르침은 따라라. 그러나 저들의 행동은 따르지 마라. 저들은 자기들도 하느님께 가지 않으면서 남들도 하느님께 가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있지만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의로움을 따르지 않는다면 자신의 욕망에 따라서 산다면 그 역시 사이비입니다. 공동체를 갈등과 분열로 이끈다면 그 또한 사이비입니다.
(조재형 신부)
2. 성전 정화 사건은 예수님의 메시아 왕권을 재확인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합니다.
그런데 메시아 예수님의 왕권은 세속적 의미에서 가리키는 지배와 통치를 위한 ‘권력 쟁취’와는 거리가 멉니다.
(김상우 신부)
3.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루카 19,44)
주님!
오늘 당신의 뜻을 알아듣고 당신을 울리지 않게 하소서!
세상을 보고 울 줄을 알고 아파할 줄을 알게 하소서!
타인의 고통에 함께 슬퍼하고 함께 울 줄을 알게 하소서!
당신이 찾아오신 때를 알게 하시고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평화를 이루게 하시고 평화를 가져다주는 당신을 알게 하소서!
당신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드리고 당신의 눈에 웃음을 꽃피워 드리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후대에 루카 복음사가는 70년대 로마제국에 의해 초토화된 예루살렘을 묵상하며 이 복음서를 썼을 것입니다. 다음 예수님의 말씀은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를 향합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이수철 신부)
11/24(금)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제335일 기도
복음 <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너희는 저들의 가르침은 따라라. 그러나 저들의 행동은 따르지 마라. 저들은 자기들도 하느님께 가지 않으면서 남들도 하느님께 가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있지만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의로움을 따르지 않는다면
자신의 욕망에 따라서 산다면 그 역시 사이비입니다.
공동체를 갈등과 분열로 이끈다면 그 또한 사이비입니다.
- 2023년 11월24일(금) 9시50분...수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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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묵]2023년 11월 22일 수요일[(홍)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2) | 2023.11.22 |
[매묵]2023년 11월 21일 화요일[(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2) | 2023.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