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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3년 11월 26일 주일[(백)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3년 11월 26일 주일[(백)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임금)이심을 기리는 날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시며 백성을 섬기시는 메시아의 모습을 실현하셨고, 스스로 낮추심으로써 높아지셨다.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이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정하였다.
한국 천주교회는 1985년부터 해마다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정하여, 신자들이 일상생활 가운데 성경을 더욱 가까이하고 자주 읽으며 묵상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등불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성자를 하나뿐인 임금이며 목자로 삼으시어, 비탄의 역사 속에서도 사랑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성자께서 아버지께 구원의 업적을 바치시는 날, 아버지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심을 고백할 수 있도록 우리 안에 확고한 믿음을 심어 주시기를 청합시다.

입당송

묵시 5,12; 1,6 참조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권능과 신성과 지혜와 힘과 영예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옵니다. 영광과 권능을 영원무궁토록 받으소서.
<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사랑하시는 성자를 온 누리의 임금으로 세우시어 만물을 새롭게 하셨으니
모든 피조물이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섬기며
끝없이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너희 나의 양 떼야. 나 이제 양과 양 사이의 시비를 가리겠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4,11-12.15-17
1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12 자기 가축이 흩어진 양 떼 가운데에 있을 때,
목자가 그 가축을 보살피듯, 나도 내 양 떼를 보살피겠다.
캄캄한 구름의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해 내겠다.
15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6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 떼를 먹이겠다.
17 너희 나의 양 떼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양과 양 사이, 숫양과 숫염소 사이의 시비를 가리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3(22),1-2ㄱ.2ㄴ-3.5.6(◎ 1)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네. ◎
○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고,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
○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5,20-26.28
형제 여러분,
20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21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23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
24 그러고는 종말입니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25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26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28 그러나 아드님께서도 모든 것이 당신께 굴복할 때에는,
당신께 모든 것을 굴복시켜 주신 분께 굴복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마르 11,9.10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는 복되어라!
◎ 알렐루야.

복음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아 모든 민족들을 가를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5,31-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만물의 주님, 연중 시기 마지막 주간을 맞이한 교회를 이끌어 주시어, 주님을 찬미하고, 모든 민족들에게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게 하소서.

2. 공직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보호자이신 주님,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일하는 공직자들에게 지혜와 절제의 은총을 주시어, 그들이 진정한 봉사의 정신으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3. 질병으로 고통받는 노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치유의 주님, 질병의 고통과 외로움으로 힘들게 지내는 노인들을 살피시어, 그들을 몸소 위로하시고, 가족과 이웃의 보살핌으로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게 하소서.

4. 본당 단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주님 이름으로 모인 본당의 단체들을 굽어살피시어, 자신들의 활동으로 주님의 말씀과 사랑이 전파됨을 깨닫고, 서로 화목하며 기쁨 가득히 살아가게 하소서.

예물기도

주님, 인류 화해의 제물을 바치며 간절히 비오니
모든 민족들이 성자를 통하여
일치와 평화의 은혜를 받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감사송

<주님의 축일과 신비 감사송 8 : 온 누리의 임금이신 그리스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 외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기쁨의 기름을 바르시어
영원한 사제와 온 누리의 임금으로 세우셨으며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십자가 제대 위에서
티 없는 평화의 제물로 당신을 봉헌하시어 인류 구원을 이룩하시고
만물을 당신 친히 다스리시어
그 영원하고 보편된 나라를
지극히 높으신 아버지께 바치셨나이다.
그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이며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이옵니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29(28),10-11
주님이 영원한 임금으로 앉으셨네. 주님이 당신 백성에게 강복하여 평화를 주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주님을 섬기듯 ‘내 형제’인 가장 작은 이들을 섬기는 것이, 영원한 벌과 영원한 생명을 가르는 기준임을 명심합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불멸의 양식인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저희가 온 누리의 임금이신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나라에서 끝없이 살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사진설명: 예수 그리스도왕.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 주간)

 

교회의 전례는 오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연중 마지막 주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대림시기가 시작되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2023년을 돌아보며 이런 질문을 해 보고 싶습니다. “2023년 한 해가가 저물어갑니다. 여러분 살림살이는 좀 좋아지셨습니까? 원하는 일들은 잘 이루어지셨습니까? 신앙의 열매는 많이 맺었습니까?” 제게 2023년은 성지순례로 시작한 1년이었습니다. 1월에는 이스라엘과 과달루페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2월에는 LA 라파엘 성당 신문홍보를 다녀왔습니다. 3월에는 토론토 예수성심 성당 신문홍보를 다녀왔습니다. 4월에는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5월에는 그리스 터키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6월에는 이탈리아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7월에는 쿠르즈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8월에는 LA 아그네스 성당 신문홍보를 다녀왔습니다. 9월에는 뉴욕에 머물렀습니다. 10월에는 한국 성지순례와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11월에는 LA 프란치스코 성당 신문홍보를 다녀왔습니다. 시편 23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시편 23장에서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주님께서 저를 이끌어 주시어 먼 길 무탈하게 잘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신학생 때입니다. 기숙사에서 공동생활하고, 함께 기도하고, 미사 봉헌하는 것은 즐거움입니다. 한 학기에 두 번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것이 있습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입니다. 강론 없는 미사는 언제든지 좋아하는 것처럼 시험 없는 신학교생활은 천국과 같습니다. 하지만 강론 없는 미사는 없는 것처럼 시험 없는 신학교생활도 없습니다. 중간고사를 마치면 학사대표가 노란봉투를 나누어 주곤 합니다. 노란봉투는 월급봉투가 아니고, 성적이 70점 미만인 학생들에게 주는 경고편지입니다. 기말고사에서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 과목낙제가 되고 2과목 이상이 되면 유급을 하게 됩니다. 감사하게도 노란봉투를 받아본 적은 없지만 늘 경계선상에 있었습니다. 신학생들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했던 신부님이 있습니다. 교회사를 가르치셨던 신부님입니다. 신부님께서는 함께 농구를 하셨고, 언제나 따뜻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신학생들이 신부님을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시험문제를 미리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신학생들이 꼭 알아야 할 문제를 5개 정도 알려 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3개가 시험문제로 출제되었습니다. 복불복(福不福)으로 찍어서 공부만 하지 않으면 신부님께서는 좋은 점수를 주셨습니다. 저도 신부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본당에서 대림, 사순 문제 풀이를 할 때면 미리 100문제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25문제를 출제하였습니다. 교우들이 100문제를 열심히 풀면 모두가 100점을 맞을 수 있도록 답도 친절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시험의 목적이 성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험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교우들이 교리를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시험문제를 미리 알려 주십니다. 신학생들이 좋아하고 존경했던 신부님처럼 예수님께서도 친절하게 알려주십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만이 풀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금수저로 태어난 사람만이 풀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체력이 엄청 좋은 사람만이 풀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빈부귀천 구별 없이 누구나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런 걸 두고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은 죽 먹기, 누워서 떡먹기라고 합니다. 시험문제는 있는데 제한 시간도 없습니다. 몇 번해야 한다는 기준도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시험문제입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예수님께서는 친절하게도 문제의 답도 알려 주셨습니다. 이것이 문제의 답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우리가 어려운 이웃에게 손을 내밀 수만 있다면, 우리가 절망 중에 있는 이웃에게 따뜻한 위로를 줄 수만 있다면, 우리가 슬퍼하는 이웃의 슬픔을 함께 공감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잘못한 이웃을 용서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모두 예수님께 이런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2. 2023년 11월 26일 일요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오늘의 묵상 (사제 김상우 바오로)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봉독되는 성경 말씀에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자칫 갑을 관계로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나 이제 양과 양 사이숫양과 숫염소 사이의 시비를 가리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한편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대축일을 기점으로 전례력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교회는 최후 심판에 관한 말씀을 경청 하는데여기서 핵심은 양과 염소를 가르는 기준입니다.

각자의 인생 여정을 어떻게 걸어왔고,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 을 어떻게 대하였는지에 따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최후 심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굳이 갑을 관계로 따지자면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이 되셨습니다.

2독서에서 바오로가 아드님께서도 모든 것이 당신께 굴복할 때에는당신께 모든 것을 굴복시켜 주신 분께 굴복하실 것입니다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이유입니다.

죄 없으신 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죽음은 예수님 사랑의 절정입니다영광스러운 부활은 그분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온 세상에 밝혀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 희망을 두며 그분을 본받아 살아가도록 초대받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3. 이영근 신부 복음 묵상

 

231125.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다.”(루카 20,38)

 
오늘 우리는 ‘사두가이들의 부활에 관한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서, 우리의 부활신앙을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사두가이들의 영적무지와 예수님의 신적지혜가 대조를 이룹니다. 곧 영적무지로 인한 속박을, 신적지혜로 인한 자유와 해방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속박과 자유가 ‘믿음’에 달려 있음을 말해줍니다.
 
오늘 <복음>의 병행구절인 <마태오복음>에서,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두가이들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마태 22,39-40).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부활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사두가이들의 영적 무지를 두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곧 ‘성경에 대한 무지’와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무지’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면서 물질만을 유일한 실체로 여긴 까닭에, 내세나 부활과 영적존재에 대해서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합리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 아래 하느님의 권위와 능력을 제한했습니다. 곧 부활케 하시는 하느님의 초월적인 권능을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25장 5-10절에 나오는 ‘수혼법’을 예로 들면서,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하여, 하느님의 부활의 능력을 마치 죽은 사람을 원래대로 죽기 전의 생활로 되돌려놓는 정도로 여깁니다. 그래서 부활한 상태의 초월적인 실재인 부활체를 마치 육체를 지닌 존재로 보고서 지상에서의 삶과 동일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부활한 영적존재는 “마치 천사와 같아 시집가는 일도 장가가는 일도 없고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고 하시면서, 그들이 믿고 있는 <모세오경>의 <탈출기>(3,6)를 인용하여 그들의 영적무지를 깨우치십니다.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주었다.”(루카 20,37)

이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이 비록 죽어 과거의 인물이 되었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살아 있는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다.”(루카 20,38)

그러니, 하느님께서는 ‘산 이들의 하느님’으로서, 인간을 ‘새롭게 변화된’ 부활체로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이러한 새롭게 변화된 부활체에 대해서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인들에게 이렇게 설명해줍니다.
 
“우리 모두 다 죽지 않고 변화할 것입니다.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1코린 15,51-52)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는 이들입니다. 진정 믿으면, 신적지혜가 열릴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와 해방이 올 것입니다. 불신은 우리를 끝없이 속박할 뿐이지만, 믿음은 우리를 진리에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곧 믿음이 해방을 가져올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다.”(루카 20,38)
 
주님!
저희를 깨우쳐주소서.
죽음이 단절과 파괴가 아니라 충만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임을!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탄생임을!
생명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이 피어나게 함을!
단지 되살아 난 것만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 안에서 다시는 죽지 않을 새로운 존재로 변화됨을! 아멘.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231125.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죽음은 새로운 삶의 시작-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시편23,1)

 

김수환 추기경님의 묘비명으로 평생 좌우명으로 삼고 싶은 시편 성구입니다. 단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우리의 착한 목자이자 벗인 살아 계신 주님과의 날로 깊어지는 우정의 관계일 것입니다. 11월 위령성월도 얼마 안남았습니다. 저는 위령성월을 희망성월, 성인성월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성부 하느님을 향해 성자 예수님과 함께 성령의 사랑안에서 희망의 여정, 성화의 여정, 귀가의 여정을 살아가는 우리 믿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향하는 성부 하느님은 우리의 미래이자 희망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희망의 여정, 성화의 여정, 귀가의 여정중 날로 하느님을 닮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제 좋아하는 위령미사 경문중 한 대목과 위령감사송에 나오는 한 대목을 나누고 싶습니다. 모두가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 부활의 삶으로 직결되는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깨닫게 합니다. 

 

“성자께서 죽은 이들의 육신을 다시 일으키실 때에

 저희의 비천한 몸도 성자의 빛나는 몸을 담게 하소서.

 또한 세상을 떠난 교우들과 주님의 뜻대로 살다가 떠난 이들을

 모두 주님의 나라에 너그러이 받아들이시며

 저희도 거기서 주님의 영광을 영원히 함께 누리게 하소서.

 저희 눈에서 눈물을 다 씻어 주실 그때에

 하느님을 바로 뵈오며

 주님을 닮고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리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어머니이신 가톨릭 교회의 죽음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부활의 시작임을 알립니다. 참 요즘 주변에서 가을 단풍잎 지듯이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음도 아주 가까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기억하라”, 또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고 끊임없이 충고하는 현자들입니다. 이어지는 위령 감사송의 다음 대목도 위로와 힘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복된 희망을 주셨기에, 저희는 죽어야 할 운명을 슬퍼하며서도, 다가오는 영생의 약속으로 위로를 받나이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 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

 

이 또한 거룩한 교회의 죽음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참으로 이런 하느님이 궁극의 희망이자 미래가 된 이들이라면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인생 함부로, 생각없이, 욕망대로 막 살지는 못할 것입니다. 늘 강조하지만 내 삶의 여정,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로, 일년사계(一年四季)로 압축하면 어느 시점(時點)에 와 있겠는지요? 바로 이런 구체적 점검이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을 거품이나 환상, 허영이 사라진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게 합니다.

 

바로 이점에서 제1독서 마카베오기 상권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임금은 완전히 실패인생을 살았음을 봅니다. 죽음에 임박해서야 뉘우치며 후회하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그는 자기 벗들을 불러놓고 고백합니다.

 

“내 눈에서는 잠이 멀어지고 마음은 근심으로 무너져 내렸다네...권력을 떨칠 때에는 나도 쓸모 있고 사랑 받는 사람이었는데....내가 예루살렘에 끼친 불행이 이제 생각나네. 그곳에 있는 금은 기물들을 다 빼앗았을뿐더러, 까닭없이 유다 주민들을 없애 버리려고 군대를 보냈던 거야. 그 때문에 나에게 불행이 닥쳤음을 깨달았네. 이제 나는 큰 실망을 안고 이국땅에서 죽어 가네.”

 

참 허망한 죽음입니다. 죽음은 삶의 요약입니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죽음을 통해 환히 드러납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물음으로 직결됩니다. 문득 조선시대 서른 여덟 짧은 삶이었지만 ‘따뜻한 이상’과 ‘뜨거운 실천’의 힘으로 조선의 정신을 실천하다 억울하게 사사된 중종임금때 충신 조광조의 마지막 감동적인 유언시가 생각납니다.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

 나라 근심하기를 내집처럼 하였노라.

 밝은해 이땅을 굽어보고 있으니,

 훤하게 이 충심 비추어 주리라.”

 

선조실록이 전하는 당대의 대학자 이황의 조광조에 대한 평이 참 적절하고 아름답습니다.

 

“조광조는 훌륭하고 어진 선비입니다.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게 아름다웠으며, 그 독실한 학문과 힘써 실천함은 비교할 사람이 없습니다. 도를 실천하고 인심을 맑게하여 세상을 요순의 시대로, 임금을 요순처럼 만들고자 하였는데 불행하게도 소인들의 참소와 이간질로 인해 참혹한 죄를 받고 말았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삶과 죽음에 대한 일화라 인용했습니다. 또 하나 어른이 사라진 이 시대에 참으로 그리운 분, “김수환 추기경 영전에” ‘방문객’의 시인 정현종이 바친 추모시도 나누고 싶습니다.

 

-너무 늦게 말씀드리지요만,

 우리가 모자라 어려움이 그칠 날이 없었던 그동안,

 중대한 사안에 대하여 시의적절 말씀하시는 걸

 우리가 얼마나 반겼으며 

 그 말씀 속에 들어 있는 나라 위한 진정에 눈물겹고

 그 생각의 균형과 그 내용의 적절함에 우리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당신은 혹시 알고 계셨는지요.

 실은 당신의 얼굴이 참 마음에 든다고 저는 늘 말해왔습니다.

 그 얼굴, 그 표정은 

 천품(天稟)의 선의와 천품의 진정과 천품의 겸손의 육화였습니다.

 말씀의 힘이 나오는 그 청정심(淸淨心),

 그 마음, 그 말씀, 그 얼굴의 움직이는 표정이 없으니 나라가 텅 비었습니다.

 궁핍감이 커집니다.

 사람의 궁핍, 천진의 궁핍, 평화의 궁핍....

 김수환 추기경님

 당신의 빛, 그 진귀한 아름다움을 추모하는 저희의 아쉬움과 슬픔 속에,

 그리하여 그리움 속에 내내 꽃피소서.-

 

맑고 향기로운 삶이었기에 길이 맑고 향기로운 여운을 남기는 추기경님입니다. 희망없이, 생각없이 살다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얼마나 당황스럽겠는지요! 그러니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두고, 희망의 여정, 성화의 여정, 귀가의 여정을 살아야 합니다. 희망의 여정과 함께 가는 기쁨이요, 귀가의 여정과 함께 가는 행복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참기쁨, 주님을 뵈올 참행복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부활의 삶이 시작됨을 보여 줍니다. 일곱형제가 한 여자를 아내로 두었을 때 사후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가라는 참 난해한, 말이 안되는 질문으로 주님을 시험했을 때 주님의 통쾌하고 명쾌한 답변이 죽음에 대한 궁극의 답이 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이미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이미 삶과 죽음을 넘어 오늘 지금 여기서 영원한 생명의 부활의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미 오늘 지금 여기 지상에서부터 시작된 하늘 나라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모세오경을 근거로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가이들에게 부활의 진리를 설파합니다.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주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하느님 안에서 천상영혼들, 연옥영혼들, 지상영혼들인 우리 모두가 살아서 이 거룩한 미사를 봉헌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끊임없이 봉헌되는 연미사와 생미사입니다. 새삼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 아버지만이 우리의 영원한 미래이자 희망임을 깨닫습니다.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모세뿐 아니라 우리 하나하나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벗’이 되어 하느님과의 우정을 날로 깊이하는 것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바로 이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의 목자이자 벗인 주님과의 우정을 날로 깊이해 주십니다. 

 

‘주님께 아뢰옵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시편16,2). 아멘.


 

[11/26(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제 337일 기도]

 

복음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아 모든 민족들을 가를 것이다.>

 

오늘은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 을 어떻게 대하였는지에 따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최후 심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소서.

 

- 2023년 11월27일(월) 8시20분...수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