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4년 9월 25일 수요일[(녹) 연중 제25주간 수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백성의 구원이다. 어떠한 환난 속에서도 부르짖으면 내가 들어 주고, 영원토록 그들의 주님이 되어 주리라.
본기도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셨으니
저희가 그 사랑의 정신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잠언의 말씀입니다.30,5-9
5 하느님의 말씀은 모두 순수하고
그분께서는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에게 방패가 되신다.
6 그분의 말씀에 아무것도 보태지 마라.
그랬다가는 그분께서 너를 꾸짖으시고 너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7 저는 당신께 두 가지를 간청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8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9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말씀은 제 발에 등불이옵니다.
○ 저를 거짓의 길에서 멀리하시고, 자비로이 당신 가르침을 베푸소서. ◎
○ 당신 입에서 나온 가르침, 수천 냥 금은보다 제게는 값지옵니다. ◎
○ 주님, 당신 말씀은 영원하시고, 하늘에 든든히 세워졌나이다. ◎
○ 당신 말씀을 따르려, 온갖 악한 길에서 발길을 돌렸나이다. ◎
○ 당신 규정으로 저는 지혜를 얻어, 거짓된 모든 길을 미워하나이다. ◎
○ 저는 거짓을 미워하고 역겨워하오나, 당신 가르침은 사랑하나이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알렐루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2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시며,
3 그들에게 이르셨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4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5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6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예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저희가 경건한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을 천상 성사로 깨닫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주님은 규정을 내리시어 어김없이 지키라 하셨나이다. 당신 법령을 지키도록 저의 길을 굳건하게 하소서.
<또는>
요한 10,14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주님의 성체로 저희에게 힘을 주시니
끊임없이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삶에서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본당 주일학교에서 ‘필드트립(Field Trip)’을 준비하였습니다. 학생들은 4시에 모여서 필드트립에 대한 주의사항을 들었습니다. 학생들을 위해서 차량봉사를 해 줄 형제님들도 함께 했습니다. 저도 학생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필드트립에 참가했습니다. 이번 필드트립의 장소는 텍사스 레인저스 구장이었습니다. 뉴욕에 있을 때는 메츠와 양키즈 구장에 가곤 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야구장으로 향했습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몇 년 전에 ‘돔’구장을 신축했습니다. 야구장은 덥지 않고 쾌적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응원했고, 텍사스 레인저스는 9회 말에 점수를 내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1점차로 이겼습니다. 이런 필드트립이 좀 더 발전하면 필드필그림이(Field Pilgrim) 될 수 도 있습니다. 야구장, 농구장에 가서 학생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것도 좋습니다. 주교좌성당이나, 성지에 가서 학생들이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3년간 ‘필드트립’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필드트립 장소는 ‘갈릴래아’ 호숫가 주변이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2000년 전에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호숫가 언덕에서 ‘행복선언’을 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은 세상이 주는 행복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과 물고기’를 축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오천 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픈 사람을 치유해 주셨고, 마귀 들린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필드트립을 통해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많은 ‘필드트립’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제가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저를 보내 주셨습니다. 5년 전에는 ‘가톨릭평화신문 미주지사’로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에파타와 탈리타쿰’을 이야기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이 영적으로 메마른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기 바랬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을 통해서 절망 중에 있는 사람은 희망으로,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은 빛으로, 근심 중에 있는 사람은 담대함으로 일어나길 바랐습니다. 팬데믹이라는 큰 장애물이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제 발의 등불이 되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함께 필드트립을 할 수 있는 동료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지난 2월 13일, 저를 이곳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필드트립의 장소는 다르지만 제가 해야 할 소명은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제자들에게 주셨던 소명과 같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아픈 사람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행복이 아닌,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행복을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는 제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허위와 거짓말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너무 부유하게도, 너무 가난하게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무 부유하면 교만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가난하면 세상의 것에 마음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다면, 주님께서는 이곳에서도 제 발의 등불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인생은 어쩌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필드트립’이 아닐까요?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과 함께 멋진 필드트립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셨으니 저희가 그 사랑의 정신으로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복음: 루카 9,1-6
예수님의 여장 훈시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
여름 내내 신앙학교 운영하느라 땀 흘리며 쌩고생한 형제들과 소풍을 왔습니다.
어떻게든 형제들 입에 뭐 하나라도 더 넣어주려고, 산 너머 갯바위 포인트를 다녀왔습니다.
요즘 물고기들도 약아 빠져 사람들 발길 닿는 곳에는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손맛을 보려면 발품을 팔아야 합니다.
이것 저것 챙기다 보니 짐이 산더미입니다.
그걸 이고 지고, 깎아지르는 비탈길을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포인트에 겨우 도착했더니, 이번에는 장대비가 인정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마땅히 피할 곳도 없고, 이고 지고 온 것을 다시 챙겨 산길을 오르며, 마음속으로 크게 후회를 했습니다.
어디 다닐 때는 어떻게든 짐을 최소화해야 되는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사목 실습을 떠나는 제자들을 향해 훈화 말씀을 건네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도 여행용 짐을 꾸리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이기에,
이를 ‘여장 규범’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너무 지나친 요구를 하신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었습니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루카 9,3)
예수님의 훈시 말씀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솟구쳤습니다.
‘그럼 대체 어쩌라는 말씀인가요? 빵도 돈도 안 챙기면 굶어 죽으라는 말인가요?
여벌옷도 한 벌 안 챙기면, 만나는 사람들 다 도망갑니다.’
당시 여행 중에 강도나 산짐승들을 만날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방어용 지팡이 하나는 기본이었습니다.
그런데 최후의 생존 수단인 지팡이도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긴 여행길에 많은 돈은 아니어도 만일을 대비한 비상금은 필수입니다.
그런데 비상금 한푼 조차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 여행길에 오르는 사도들에게 럭셔리한 부자의 모습이 아니라
가장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떠날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전도 여행길에 오르는 사도들이 자신의 힘이나 세상의 힘을 믿기 보다는
주님 섭리의 손길에 맡기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여장 훈시와 유사한 말씀이 ‘열두 사도의 가르침’ 11장 6절에 제시되고 있습니다.
“사도가 떠날 때에는 다른 곳에 유숙할 때까지 필요한 빵 외에 다른 것은 받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사도가 돈을 요구한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목자들이 교우들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 자신은 스스로 천막 짜는 노동을 해서 생활비와 전도 여행 경비를 마련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오늘날 우리 교회와 수도회를 돌아봅니다.
예수님의 여장 훈시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의 부유한 모습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청빈의 삶, 무방비의 삶, 머리 둘곳 조차 없는 떠돌이로서의 삶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철저히 정착하고 안주했으며, 충분한 기득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복음 선포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과 자세>
오늘 복음은 열 두 제자의 파견 장면입니다.
이는 세 가지 장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기 이전의 장면, 파견하시는 장면, 그리고 파견 받은 이들이 그 사명을 이루는 장면입니다.
첫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기에 앞서 먼저 사랑으로 그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냥 보낸 것이 아니라, 당신의 권능과 권한을 부여하시어 파견하십니다.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루카 9,1)
둘째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복음 선포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과 자세를 가르쳐주십니다.
“길을 떠날 때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옷도 지니지 마라.”
(루카 9,3)
그렇습니다.
길을 떠나면서 그 어떤 다른 것을 가지고 가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옷도, 지닐 필요가 없습니다.
몸 걱정도, 치장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져야할 것을 이미 가졌기 때문입니다.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칠 힘도 권한도, 말씀도, 예수님도 이미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도 이미 이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왜 그 권능이 우리에게서는 드러나지 않을까?
그것은 우리가 무능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 바오로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서 완전히 드러난다.”
(2코린 12,9)
이는 우리의 초라함, 우리의 무력함, 우리의 허약함이 당신의 권능을 더욱 더 드러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능력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앞세우기에, 결국 그분의 권능이 드러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능력에 집착하지 말고, 오로지 주님께만 의탁하여 사명을 수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셋째 장면에서, 파견 받은 자들이 하느님 나라가 왔음을 알리고, 그 증거로 병든 자들을 고쳐주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은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주었다.'
(루카 9,6)
오늘 우리도 분명 예수님께 파견 받은 이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서 그분의 권능이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내 형제들에게서는 치유가 일어나고 질병이 고쳐져야 할 것입니다.
만약 나를 만나는 이들에게서 치유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 내가 무능하지 않으려 하고 오히려 능력을 부리려다 하느님의 권능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까닭은 아닐지 살펴보아야 할 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
(루카 9,3)
주님!
길을 떠나면서 그 어느 것도 가지고 가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져야 할 것을 이미 가졌기 때문입니다.
말씀이신 당신과 당신의 권한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저의 능력으로 당신의 권한을 가로막지 않게 하소서.
저의 말이 당신의 말씀을 덮지 않게 하소서.
저의 약함 안에서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9.24.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잠언21,1-6.10-13 루카8,19-21 “누가 예수님의 참가족인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새롭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다면 걸었던 길을 아까워하지 말고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다산> 회개에 신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오므로 뉘우침에 이르지 않으니 길하다.”<주역> 늘 깨어 살 때 큰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소제목 “예수님의 참가족”이 맘에 들어 강론 제목으로 택했습니다. 혈연 가족을 뛰어넘는 예수님의 참가족의 이상이 참 원대합니다. 예수님의 품은 그대로 온 인류를 품에 안는 하느님의 품임을 봅니다. 인류의 미래를 보여줍니다. 참으로 마음을 넓고 깊게 멀리 개방해야 함을 봅니다. 교회가 날로 예수님의 큰 품을 닮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 없자 누군가 예수님께 전달합니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예수님의 다음 즉각적인 답변이 오늘 복음의 절정이자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만고불변의 진리이자 화두입니다. “내 어머니와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얼마나 멋지고 통쾌한 말씀인지요! 그가 누구든, 어디에 살든 시공간에 관계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참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종파를 초월하여 진리를 실천하며 참으로 반듯하고 의롭게 사는 이들도 넓은 의미로 예수님의 참가족이 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혈연을 뛰어넘어 예수님의 품, 하느님의 품에 이르기 까지 끊임없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교회요 우리 마음이면 참 좋겠습니다. 바로 이런 예수님의 참가족의 생생한 증거가 교회공동체요 이 미사를 통해 그대로 실감하는 사실입니다. 미사한번만 함께 하면 국적, 인종과 상관없이 한가족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어디에서나 미사에 참여함으로 예수님의 참가족, 한가족임을 체험하지 않는지요! 도대체 미사전례가 아닌 그 무엇이 예수님의 참가족, 하느님의 한가족을 실감나게 보여줄 수 있을런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사가 아니더라도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를 듣고 실행하여 사는 이들은 그가 어디에 있던 예수님의 참가족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를 사랑하여 듣고 공부하며 실행에 옮기는 삶은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지요! 참 사람이 되는 구원의 길, 생명의 길은 단 하나 예수님의 참가족, 하느님의 한가족에 속하는 것뿐이요, 부단히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길뿐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의 전형적 모범이 마리아 성모님입니다. 평생 예수님 곁에 머물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한 성모님의 삶이었습니다. 성모님의 전 삶을 요약하는 다음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시종여일(始終如一), 한결같이 평생 하느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실행한 “예스맨(yes-man)”이 바로 마리아 성모님이셨습니다. 오늘 잠언의 현자가 말하는바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손(in God’s hands)’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잠언의 지혜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려는 자들에게 용기와 힘을, 좋은 깨우침을 줍니다. “임금의 마음은 주님의 손안에 있는 물줄기, 주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이끄신다. 사람의 길이 제 눈에는 모두 바르게 보여도,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정의와 공정을 실천함이, 주님께는 제물보다 낫다. 부지런한 이의 계획은 반드시 이익을 남기지만, 조급한 자는 모두 궁핍만 겪게 된다. 속임수 혀로 보화를 장만함은, 죽음을 찾는 자들의 덧없는 환상일 뿐이다.” 그러니 말씀에 맛들여 잘 듣고 실행하는 일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세상맛이, 돈맛이 아닌 하느님맛에 살게 하는 말씀맛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깨달으란, 하느님 말씀에 맛들이라는 시편 말씀이 얼마나 고마운지요. 제가 피정지도시 자주 드는 예에 웃습니다만 대부분 공감합니다. “물보다 진한게 피이고 피보다 진한게 돈이고 돈보다 진한게 하느님 믿음이다.” 하느님 믿음을 북돋우는 ‘말씀맛’만이 ‘돈맛’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 119장은 “주님의 법”이라는 제하에 무려 176절에 이르는 제일 방대한 시편입니다. 흡사 ‘말씀 찬가’같은 시편입니다. 다음 화답송 시편이 더욱 말씀 사랑과 실행을 고무합니다.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저를 깨우치소서. 당신 가르침을 따르고, 마음을 다하여 지키오리다.” “당신 계명의 길을 걷게 하소서. 저는 이 길을 좋아하나이다.” “저는 언제나 당신의 가르침을, 길이길이 지키오리다.” 말씀이 사람이 된 분이 예수님입니다. 새삼 인간의 본질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할 때 예수님의 참가족이 되고 온전하고 충만한 참나의 실현입니다. 말씀은 생명이요 빛이자 영이요 주님의 현존입니다. 다음 히브리서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4,12) 우리의 주님 향한 갈망은 시종일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함으로 예수님의 참가족이 되고 주님을 닮아 참내가 될 때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삶에 항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아멘. |
2024년 9월25일 수요일 [(녹)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되새김 구절
1. 오늘 독서는 제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허위와 거짓말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너무 부유하게도, 너무 가난하게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무 부유하면 교만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가난하면 세상의 것에 마음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다면, 주님께서는 이곳에서도 제 발의 등불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조재형 신부)
2. 부끄러운 마음으로 오늘날 우리 교회와 수도회를 돌아봅니다.
예수님의 여장 훈시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의 부유한 모습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청빈의 삶, 무방비의 삶, 머리 둘곳 조차 없는 떠돌이로서의 삶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철저히 정착하고 안주했으며, 충분한 기득권을 누리고 있습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샘 기도>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
(루카 9,3)
주님!
길을 떠나면서 그 어느 것도 가지고 가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져야 할 것을 이미 가졌기 때문입니다.
말씀이신 당신과 당신의 권한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저의 능력으로 당신의 권한을 가로막지 않게 하소서.
저의 말이 당신의 말씀을 덮지 않게 하소서.
저의 약함 안에서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4,12)
우리의 주님 향한 갈망은 시종일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함으로 예수님의 참가족이 되고 주님을 닮아
참내가 될 때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이수철 신부)
2024년 9월25일 수요일 [(녹)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96일차 기도
복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제자들을 보내셨다.>
<오늘의 말·샘 기도>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
(루카 9,3)
주님!
길을 떠나면서 그 어느 것도 가지고 가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져야 할 것을 이미 가졌기 때문입니다.
말씀이신 당신과 당신의 권한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저의 능력으로 당신의 권한을 가로막지 않게 하소서.
저의 말이 당신의 말씀을 덮지 않게 하소서.
저의 약함 안에서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소서.
아멘.
- 2024년 9월25일(수) 9시50분 -
'매일미사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묵]2024년 9월 27일 금요일[(백)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4) | 2024.09.27 |
---|---|
[매묵]2024년 9월 26일 목요일[(녹) 연중 제25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7) | 2024.09.26 |
[매묵]2024년 9월 24일 화요일[(녹) 연중 제25주간 화요일]/신부님 강론 4개 (3) | 2024.09.24 |
[매묵]2024년 9월 23일 월요일[(백)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신부님 강론 4개 (4) | 2024.09.23 |
[매묵]2024년 9월 22일 주일[(녹) 연중 제25주일]/신부님 강론 4개 (1) | 2024.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