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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글·자녀교육·시사

[241203 글/시] 저무는 이 한 해에도(이해인)/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

2024년 12월3일(화) 오늘의 글/시

 

 

저무는 이 한 해에도

 

                      / 이해인 수녀님 

 

 

노을빛으로 저물어 가는 이 한 해에도

제가 아직 살아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음을 

사랑하고, 기도하고, 감사할 수 있음을

들녘의 볏단처럼 엎디어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새로이 태양이 떠오르듯

오늘은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제 마음의 하늘에 환희 떠오르시는 주님

 

12월만 남아 있는 한 장의 달력에서

나뭇잎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시간의 소리들은

쓸쓸하면서도 그립고 애틋한 여운을 남깁니다

 

아쉬움과 후회의 눈물 속에

초조하고 불안하게 서성이기 보다는

소중한 옛친구를 대하듯 담담하고 평화로운 미소로

떠나는 한 해와 악수하고 싶습니다

 

색동설빔처럼 곱고 화려했던 새해 첫날의

다짐과 결심들이 많은 부분 퇴색해 버렸음을

인정하며 부끄러운 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청정한 삶을 지향하는 구도자이면서도

제 마음을 갈고 닦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허영과 교만과 욕심의 때가 낀 제 마음의 창문은

게을리 닦으면서

다른 이의 창문이 더럽다고 비난하며

가까이 가길 꺼려한 위선자였습니다

 

처음에 지녔던 진리에 대한 갈망과 사랑에 대한 열망은

기도의 밑거름이 부족해

타오르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침묵의 어둠 속에서

빛의 언어를 끌어내시는 생명의 주님

지난 한 해 동안 당신이 선물로 주신

가족, 친지, 이웃들에게

밝고 부드러운 생명의 말보다는

칙칙하고 거친 죽음의 말을 더 많이 건네고도

제때에 용서를 청하기보다 변명하는 일에 더욱 바빴습니다.

 

제가 말을 할 때 마다, 주님

제 안에 고요히 머무시어

해야 할 말과 안 해야 할 말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시고

남에 관한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하소서

 

참된 사랑만이 세상과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음을

당신의 삶 자체로 보여 주신 주님

 

제 일상의 강 기슭에

눈만 뜨면 조약돌처럼 널려 있는

사랑과 봉사의 기회들을 지나쳐 간

저의 나태함과 무관심을 용서하십시오

 

절절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암울한 시대" 탓을 남에게만 돌리고

자신은 의인인 양 착각하는 저의 오만함을 용서 하십시오

 

전적으로 투신하는 행동적인 사랑보다

앞뒤로 재어보는 관념적인 사랑에 빠져

상처받는 모험을 두려워했습니다.

 

사랑하는 방법도 극히 선택적이며

편협한 옹졸함을 버리지 못한 채로

보편적인 인류애를 잘도 부르짖었습니다.

 

여기에 다 나열하지 못한 저의 숨은 죄와 잘못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당신과 이웃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제 작은 머리로는 다 헤아릴 수 없고

제 작은 그릇엔 다 담을 수 없는 무한대이며 무한량의 주님

 

한 해 동안 걸어온 순례의 길 위에서

동행자가 되어 준 제 이웃들을 기억하며

사람의 고마움과 삶의 아름다움을 처음인 듯 새롭히는

소나무 빛 송년이 되게 하소서

 

저무는 이 한 해에도

솔잎처럼 푸르고 향기로운 희망의 노래가

제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와

희망의 새해로 이어지게 하소서

 

- 사계절의 기도 중에서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듯이 

내 마음도 날마다 깨끗하게 씻어 

진실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면 좋겠습니다. 

 

집을 나설 때 머리를 빗고 옷매무새를 살피듯이 

사람앞에 설 때마다 생각을 다듬고 마음을 추스려 

단정한 마음가짐이 되면 좋겠습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치료를 하듯이 

내 마음도 아프면 누군가에게 그대로 내 보이고 

빨리 나아지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으면 그 내용을 이해하고 마음에 새기듯이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

그의 삶을 이해하고 마음에 깊이 간직하는 

내가 되면 좋겠습니다. 

 

위험한 곳에 가면 몸을 낮추고 더욱 조심하듯이 

어려움이 닥치면 더욱 겸손해지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내가 되면 좋겠습니다. 

 

어린 아이의 순진한 모습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듯이 

내 마음도 순결과 순수를 만나면 

절로 기쁨이 솟아나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불을 켜듯이 

내 마음의 방에 어둠이 찾아 들면 얼른 불을 밝히고 

가까운 곳의 희망부터 하나하나 찾아내면 좋겠습니다. 

 

천천히 걸어도 빨리 달려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한 세상인 것을

 

더러는 조금 살다가 

더러는 오래 살다가 

우리는 가야할 곳으로 떠나가는 것을

 

소중한 시간에 우리 사랑하며 우리 이해하며 

우리 그렇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둘도 없는 삶 

지난 날 돌이키며 후회하기 보다는 

남은 날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희망을 걸어 보면서

행복을 찾아 내어 보면서

 

마침내 바람에게도 돌멩이에게도

보이지 않는 마음에게도 고마움을 느끼며

 

정다운 사람들과 오붓하게 

웃음을 나누는 일에 참 행복을 느끼는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되듯이

우리 그렇게 인생을 살아 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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