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15일(일) 오늘의 글/시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75) 수수께끼 휘호 이백이 시를 읊고 장욱이 받아쓴 수수께끼 휘호. 중국 시안(西安) 비림(碑林)에서 뜬 탁본이다. 시선 이백이 읊고 명필 장욱이 쓴 휘호 해독해 낼 사람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중국 역사상 가장 융성했던 왕조는 당나라, 그중에서도 현종 시대 때 당나라는 명실공히 세계 최강이었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시인 이백(李白)도 이때에 만개했다. 이백은 젊은 시절부터 한곳에 지긋이 못을 박고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생업에 목을 매는 기질이 못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했다. 한때는 신선이 되겠다고 인적 없는 심산유곡에 들어가 몇년간 흔적이 없다가 불현듯 속세에 나타나기도 했다. 이백의 환상적인 걸작은 대부분이 자연 속에 홀로 파묻혀 지내던 이때의 시상이 바탕이 되었다. 이백의 걸작 ‘월하독배(月下獨配)’도 술과 달을 너무나 사랑한 낭만적 시다. 꽃 사이에 한동이 술을 놓고(花間一壺酒 화간일호주) 벗할 이 없어 홀로 술을 마시네(獨酌無相親 독작무상친) 잔 들어 밝은 달을 맞으니(擧杯邀明月 거배요명월) 그림자도 마주하여 세 사람이 되었구나(對影成三人 대영성삼인) 주유천하하던 이백이 현종의 부름을 받고 궁정시인이 되어 궁으로 들어갔지만 노는 물은 장안의 뒷골목 술집이었다. 중국 최고의 시인이 이백이라면 중국 최고의 명필은 누구인가? 한문의 글자를 그림의 경지로 끌어올린 서체는 초서(草書)다. 중국 역사상 초서의 최고 명필은 후한의 장지(張芝)와 당의 장욱(張旭)을 꼽는다. 두 명필은 대비된다. 장지가 노력형이라면 장욱은 천재형이다. 장지는 ‘연못을 검게 만들 정도로 연습한다’는 임지학서 지수진묵(臨池學書 池水盡墨)이란 고사성어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장욱은 천재형 명필이다. 그는 당대의 검무가인 교방의 기생, 공손대랑의 칼춤에서 칼끝의 신묘한 동선에 영감을 얻어 초서를 휘갈겼다. 장욱은 술에 취하면 머리를 풀어 먹을 찍고 초서로 휘갈겨 미치광이 장전(張顚)이라 불렸다. 시선(詩仙) 이백과 광초(狂草) 장욱은 동시대 장안에 살면서 둘 다 술을 그렇게 좋아하고, 서로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어울리지는 않았다. 자존심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장안의 호사가들이 근지러움을 참지 못했다. “시선이 시를 짓고 광초가 휘호를 휘갈기면 불후의 명작이 태어날 게 아니여!” 호사가들이란 궁금한 걸 못 참는다. 그들이 일을 꾸몄다. 두 사람의 자존심을 타파할 그 무엇이 없을까? 호사가 중에 장욱과 술자리를 자주 하는 선비가 장욱을 찾아갔다. “지인이 귀주성에서 천하명주를 한병 가져왔네. 자네 생각이 나서 병을 못 따고 있네.” 장욱의 귀가 번쩍 뜨였다. 또 한 선비는 이백을 찾아가 말했다. “운남성을 다녀온 종질이 감로주를 한병 가져왔는데 다가오는 보름날 밤에 달이 뜨거든 술병을 따세!” 처서가 지나 밤공기는 상큼하고 중난산 위로 만월이 떠오르니 위하강에도 둥근 달이 앉았다. 강변의 정자는 인산인해다. 정자 마루에도, 정자 아래도 선비 호사가들이 입추의 여지 없이 모여 역사적인 명필과 시선의 조우를 지켜보고 있었다. 정자 마루 한가운데는 시선 이백과 명필 장욱이 술상을 사이에 두고 어색하게 마주 앉아 있었다. 술이 몇순배 돌고 만월이 중천에 떠오르자 어색함은 자취를 감추고 이백과 장욱은 서로 부어라 마셔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사동이 장강의 백어 안주에 송이버섯, 꿩 산적을 올리고 방방곡곡에서 온 진기한 술병이 줄을 이었다. 삼경이 지나자 중천을 한참 넘은 만월이 정자 마루에 달빛을 쏟아부었다. 풀벌레가 요란하게 울어대고 기러기 떼가 끼룩거렸다. 숨죽여 지켜보던 호사가들이 모두 자리를 피해 정자를 떠날 때 만취한 두 술꾼 옆에 지필묵을 살짝 가져다놓았다. 이백과 장욱의 대작은 끝날 줄 몰랐다. 이튿날 호사가들이 정자로 와보니 해가 중천을 지났는데도 드르렁드르렁 두 천재가 코를 골고 있었다. 정자 마루에 올라가보니 붓은 아직도 먹물을 머금고 있고 종이는 바람에 날아다녔다. 선비 하나가 그걸 펴 들었다. 풀잎이 바람에 날려 뒤엉킨 듯, 섬광을 받아 허공에서 춤추는 칼끝처럼 휘호는 유려했지만 아무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때에야 두 사람은 부스스 눈을 떴다. 호사가들이 물었다. “지난밤에 시를 지었소?” 이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분명 읊었다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욱에게 물었다. 분명히 이백이 시를 읊어 자신이 휘호를 갈겼는데 더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술에 취하고 달빛에 취한 이백의 시, 그걸 즉흥적으로 받아쓴 천하명필 장욱의 휘호! 그러나 그걸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이백과 장욱도 몽중환(夢中幻)이 되었다. 측천무후의 손자인 현종이 말년에 며느리였던 양귀비의 치마폭에 휘둘려 온갖 수모를 당할 때 이백도 함께 휩쓸려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역대 명필의 휘호를 돌에 음각한 시안(西安)의 비림(碑林)에는 아무도 해독할 수 없는 이 수수께끼 휘호가 * * * * * 오늘도 수많은 비석 사이에 웅크리고 있다. |
"늘 배우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나이들어 가는 것은 어찌 보면 열정을 잃어 가는 삶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궁금해지는 일도 많아 지고 섭섭한 일도 많아 지고 때론 노파심으로 말이 많아 질수도 있습니다. 경험한 수많은 사건들로 진중해 지고 노련해 지기도 하지만 그 경험들이 스스로를 얽어매여 굳어진 마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너그럽고 지켜볼 수 있는 아량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이는 먹어도 스스로의 모자람을 인정할 수 있는 여유도 갖고 싶습니다. 위엄은 있으나 친절하고 어두워지는 눈으로도 늘 배우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좋은글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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