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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글·자녀교육·시사

[241228 글/시]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84) 칼/숲속 오두막의 크리스마스 휴전

2024년 12월28일(토) 오늘의 글/시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84) 칼

어머니와 국숫집 하는 함박이
한 사내에게 칼 한자루 사는데…

만추의 밤비는 을씨년스럽다. 흐트러진 낙엽을 때리는 굵은 빗줄기는 ‘투두두둑’ 콩 타작하는 소리를 냈다. 국숫집 함박이는 호박죽을 끓이다 말고 시시때때로 들창을 열고 빗줄기를 가늠했다. 초상집에 가신 엄니가 언제 오시려나 걱정하고 있는데 대청마루에 걸어둔 초롱불이 꺼지고 소리 없이 부엌문이 열렸다. “엄니” 함박이가 고개를 돌렸다. 문을 꽉 채운 시커먼 물체, 그리고 가느다란 불빛을 모두 빨아들이며 번쩍이는 칼. “누구세요? 칼 장수예요?” 대답이 없다. “비를 맞았군요. 여기 아궁이 앞에 앉으세요.”

함박이가 조용히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 남자의 손에서 칼을 받아 쥐고 도마 위 파를 썰었다. “너무 좋네요. 손잡이가 내 손에 꼭 맞고 칼날도 마음에 쏙 드네요. 안 그래도 내일 장날에 저잣거리 장터에 가서 칼을 사려고 했는데.” 함박이가 국자로 호박죽 한그릇을 퍼서 총각 강도에게 건네며 말했다. “추운데 뜨거운 호박죽 한그릇 들어보세요.” 아궁이 앞에 앉은 강도가 입천장이 델 듯 ‘후루룩’ 호박죽을 단숨에 마셔버리고 나서 입을 열었다. “그 칼이 정말 맘에 드세요?” 함박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네, 얼마 드리면 될까요?” 하고 되물었다.

“맘에 들면 그냥 쓰세요. 휴∼” 총각 강도의 한숨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아니에요. 칼은 절대로 그냥 받는 법이 없어요!” 함박이는 속치마 주머니에서 엽전을 한줌 꺼내 총각 강도의 손을 펼쳐 살포시 쥐어줬다. 총각 강도는 부엌문을 열고 밤비 속으로 사라졌다.

칼국숫집 외동딸 함박이가 강도를 보내놓고 아궁이 앞에 털썩 주저앉아 냉수 한사발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쿵쿵’ 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튿날, 강도에게서 산 칼로 국수를 썰던 함박이 어미가 “칼이 참 좋구나. 못 보던 칼인데?” 하자 함박이는 얼버무리며 지난밤 일을 털어놓지 않았다. 국숫집 모녀는 쓸수록 칼이 좋다는 걸 알았다. 칼이 초지장도 쓱쓱 감쪽같이 잘라내고 아무리 질긴 재료도 도마 위에만 올라가면 쓱쓱 거짓말처럼 잘렸다.

두어달 지난 어느 장날 점심나절 정신없이 손님들을 치른 후 함박 어미는 장 보러 나가고 함박이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허우대가 멀쩡한 총각이 문밖에서 두리번거리다가 국숫집으로 들어왔다. 함박이의 가슴이 철렁했다. 바로 밤비 오던 날, 그 총각 강도였다.

“그 칼 써보니 어떻습디까?” 그는 수줍게 물었다 “너무 좋아요.” 함박이가 환하게 웃자 그는 “알아주시는군요. 정말 좋은 칼입니다. 사철로 만든 접쇠칼로 녹이 슬지 않고 칼자루는 버드나무 뿌리여서 썩지 않습니다” 하고 말했다. 강도 총각은 노끈 망태에서 숫돌을 꺼내더니 “그 칼 주세요. 칼날을 갈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칼을 받아 든 그 총각이 손바닥으로 칼날을 긁어보더니 낮게 말했다.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군요.” 그는 확신에 찬 얼굴로 숫돌을 망태에 넣고 가죽 띠를 꺼내 팽팽하게 펼친 뒤 칼날을 몇번 쓰다듬었다. 함박이가 얼른 국수 한그릇을 말았지만 그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총각 강도 주철이는 어릴 때부터 쇠붙이를 끔찍하게 좋아했다. 대장간에서 시뻘건 화덕 위의 뻘겋게 단 쇳덩어리를 망치질해 호미와 쟁기를 만드는 걸 물끄러미 쳐다보느라 끼니를 거른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서당에는 가지 않고 집 짓는 곳이나 공사판에 기웃거리며 버려진 못 동가리나 쇠붙이를 주워 와 집에서 쇠죽 아궁이에 달궈 칼을 만들었다. 주철이는 팔 힘이 오를 때 새경을 받고 대장간에서 일하다가 열여덟살 때 산 넘어 외딴 강가에 움막집을 지어 대장간을 차렸다.

엿장수한테 사들이고 고철상에서 사들인 쇠가 맘에 들지 않아 용광로를 만들어 모래를 제련해 철을 뽑았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뽑아낸 사철(沙鐵)! 주철이는 사철괴를 품에 안고 대성통곡했다. 그는 사철을 두드려 형태를 잡는 단조공법을 쓰지 않고 얇게 판을 만들어 접고 또 접는 접쇠법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칼을 만들었다. 펄 속에 잠긴 버드나무 뿌리로 칼자루를 만든 뒤 그는 두팔을 벌려 만세를 불렀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집이 담보 잡히고 논밭도 남의 손에 넘어가 어미가 잔칫집 품팔이로 나가자 가을비 내리던 그날 밤,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강도짓을 한 후 이튿날 산 넘어 강가의 대장간을 불 질러 없애려 했는데 국숫집 처녀의 함박웃음이 그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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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칼의 입소문은 국숫집에서 퍼져나갔다. 삼년이 지났다. 함박표 칼은 한양에서도 명성을 떨쳐 주문이 반년치가 밀렸다. 주철이와 함박이 사이엔 아들딸이 생겼고 주철이 대장간엔 대장장이들이 스물넷, 망치질 소리가 끊길 줄 몰랐다.

 


숲속 오두막의 크리스마스 휴전
(1944 년 12 월 24 일에 있었던 이야기) 

 
프리츠 빈켄 (Fritz Vinken) 이라는 독일인이
어려서 겪었던 잊지못할 감동적인 실화로써
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인 Resder's Digest 에
소개되었던 에세이 입니다.
 
1944 년 크리스마스 때 숲속의 작은 오두막집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숲 속 오두막집에서 있었던
크리스마스 1일간의  휴전
 
1944년 12월,
이른바 벌지 전투(Battle of the Bulge)로 알려진 서부전선에서
독일과 연합군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던 당시,
벨기에 국경 부근인 독일 휘르트겐 숲속 작은 오두막집에서
실제로 있었던 실화입니다.

 
아헨에서 살다가 연합군의 계속된 공습으로 인하여
이곳으로 피난 온 열두 살 된 프리츠 빈켄(Fritz Vinken) 은
어머니와 함께 이곳 한적한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야포의 포격, 폭격기 편대의 비행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던
194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저녁때였습니다.
 
비록 쉴 새 없이 포 소리가 이어지는 전쟁터이기는 하였지만
민방위 대원으로 근무 중인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수 있다는 기대에
소년 빈켄은 들떠 있었습니다.


소년시절의 프리츠 빈켄(Fritz Vinken)


그때 느닷없이 오두막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촛불을 끄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눈 쌓인 겨울나무들을 배경으로 철모를 쓴 병사 둘이
유령처럼 서 있었고
조금 뒤 눈 위에는 부상을 당한 병사가 누워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빈켄은 거의 동시에 그들이
적군인 미군들임을 알아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빈켄의 어깨 위에 한 손을 올려놓고
잠시 동안 가만히 서 계셨습니다.
 
무장한 그들은 구태여 우리의 허락이 없더라도
강제적으로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으나,
그냥 문 앞에 서서
잠시 쉬어가게 해 달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중 한 사람과 프랑스어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부대에서 낙오한 그들은
독일군을 피해 사흘이나 숲 속을 헤맸고
동료는 부상까지 입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철모와 점퍼를 벗고 나니
그들은 겨우 소년티를 벗은 앳된 모습이었습니다.
 
비록 적군이었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단지 도움이 필요한 아들 같은 소년들로만 보였습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 어머니가 
"들어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부상자를 들어다 빈켄의 침대 위에 눕혔습니다.  
부상자를 살펴보러 가면서 어머니가 빈켄에게 말했습니다. 
 
"저 두 사람의 발가락이 언 것 같구나.
재킷과 구두를 벗겨 줘라.
그리고 밖에 나가 눈을 한 양동이만 퍼다 다오." 
 
빈켄은 어머니 말씀대로 눈을 퍼와
그들의 퍼렇게 언 발을 눈으로 비벼 주었습니다.
 
그 사이 어머니는
크리스마스이브 때 쓰려고 아껴 두었던 수탉 한 마리와
감자를 가져와서 요리를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가 흐른 뒤,
고소한 통닭 냄새가 방안에 가득 차자
또다시 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또 미군들이겠지!' 하는 생각에 빈켄이 문을 여니
밖에는 네 명의 독일군이 서 있었습니다. 
순간, 빈켄의 몸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적군을 숨겨 주는 것은 최고의 반역죄로
즉결총살 감이었음을
비록 어리지만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프뢸리 헤 바이낙텐 (축 성탄)!"
어머니가 인사를 하자
병사들은 날이 밝을 때까지
쉬어 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물론이지요...
따뜻한 음식도 있으니 어서 들어오셔요." 
 
막 구워지고 있는 통닭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던 병사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에 이미 다른 손님들이 와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당신들의 친구는 아닐지 모릅니다. " 
 
그 찰나 독일군들은 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고
숨어서 문 밖을 살피던 미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방에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순간...
어머니가 다시 침착한 태도로 말을 이었습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우리 집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습니다...
 
당신들은 내 아들과 같습니다...
그리고 저 안에 부상당해 낙오한 미군들도 마찬가지예요...
 
모두가 배고프고 지친 몸입니다...
오늘 밤만은 죽이는 일을 서로 잊어버립시다."
 
무거운 침묵이 계속되었고
아마도 그 자리의 어느 누구에게나
그것은 참으로 긴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것을 깨뜨린 것은 총소리가 아니라
어머니의 명랑한 목소리였습니다. 


"뭣들 해요?...
우리 빨리 맛있는 저녁을 듭시다.
총은 모두 이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아요." 
 
그러자 젊은 독일군과 미군들은
동시에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고분고분 총을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갑자기 손님이 늘어난 관계로
저녁을 더 준비하기 위해 어머니는
빈켄에게 감자를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창고에서 식량을 찾는
동안 빈켄은 미군 부상병의 신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감자를 가득 안고 돌아와 보니
독일군 하나가 안경을 쓰고
부상당한 미군의 상처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위생병이군요?" 
 
그러자 안경을 쓴 독일 병사가 대답하였습니다. 
 
"아닙니다. 하지만 몇 달 전까지
하이텔베르그에서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꽤 유창하게 들리는 영어로,
추위 덕분에 환자의 상처가 곪지는 않았다고
미군들을 안심시켰습니다.
 
"과도한 출혈 때문입니다.
쉬면서 영양을 섭취하면 괜찮을 것입니다." 


서로 간의 적개심이 서서히 가시면서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식탁에 앉았을 때 다시 보니
나의 눈에까지도 군인들은 아주 어리기 보였습니다.
 
쾰른에서 온  하인츠와  빌리는 열여섯 살이었고,
스물세 살 난 하사가 가장 나이가 많았습니다.
 
하사가 배낭에서 포도주 한 병을 꺼내자,
하인츠는 호밀 빵 한 덩어리를 꺼내 놓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빵을 잘게 썰어 식탁 위에 놓고
포도주 반 병은 부상당한 미군 소년을 위해
따로 남겨 두었습니다.



식사준비가 되자 어머니는
모든 병사들을 식탁에 모아놓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귀에 익은, "주님이시여, 오셔서 저희들의 손님이 되어 주십시오."라는
구절을 읊조릴 때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 전쟁터까지 오게 된 병사들은
그 순간 어린 소년들의 모습으로 돌아가
눈물을 훔치기 바빴습니다.

 
자정 직전 어머니는 문 밖으로 나가
함께 베들레헴의 별을 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두들 어머니의 곁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을 찾는 동안
그들에게서 전쟁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독일군과 미군들은 오두막집 앞에서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독일군 병사가
미군들에게 부대로 돌아가는 길을 상세히 가르쳐 준 뒤,
그들은 서로 헤어져 반대편으로 걸어갔습니다.


 
-프리츠 빈켄(Fritz Vinken) , 출처 [august 의 軍史世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