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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글·자녀교육·시사

[241229 글/시]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86) 반야심경/부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

2024년 12월29일(일) 오늘의 글/시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86) 반야심경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 자란 맹복이
어머니마저 잃고 외송암 들어가는데…

맹복이는 아주 어릴 적부터 돌암스님을 잘 알았다. 아버지에게 안긴 것보다 돌암스님에게 안긴 적이 훨씬 많았다.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에다 천하의 오입쟁이였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그 많은 문전옥답 한자락 두자락 팔아서 분을 바른 여자들 치마폭에 다 처박아 넣고, 뭘 잘했다고 툭하면 엄마를 두드려 팼다. 어떤 날 밤은 웬 여자를 데려와 안방 아랫목을 차지해 엄마는 맹복이를 안고 아궁이 앞에서 밤을 새운 적도 있었다.
엄마는 화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뒷산 외송암에 올라가 부처님 앞에 꿇어앉았다. 엄마가 천배를 올릴 때면 어린 맹복이는 돌암스님 품에 안겨 잠이 들기 일쑤였다. 맹복이 대여섯살 때 엄마는 산비탈에서 콩밭을 매는데 아버지는 술집 기생을 데려와 안방에 들어갔다. 문틈으로 들여다 본 모습에 맹복이는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다가 이승을 하직하고 어린 맹복이는 외송암의 사미승이 되었다. 외송암 스님 일곱분 모두가 맹복이를 끔찍이 아꼈다. 때때로 맹복이는 외송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머니 무덤에 가서 눈물을 잔뜩 쏟곤 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딱 한번 외송암에 찾아와 토시와 신발을 맹복이한테 안겨주고, 집을 판 후 입술이 새빨간 여자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날 이후로 두번 다시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맹복이는 밤이면 베개를 촉촉하게 적실 때도 있었지만 점점 엄마 생각도 뜸해지고 불자생활은 익숙해져 갔다. 무엇보다 주지스님인 돌암스님이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반듯해서 술과 여색에 빠진 아버지와 너무나 달라 맹복이는 믿음직스러웠다.
행자생활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주지스님과 다른 스님들도 맹복이가 바빠야 엄마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틈만 나면 심부름을 시키고 불경을 가르쳤다. 불경의 깊은 뜻을 어린 맹복이가 어찌 알까마는 반야심경이다 금강경을 자꾸 외우며 불심 속으로 빠져들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법당에서 눈을 부비며 예불을 드리고 아침 공양을 하고 밭에서 일하는 스님들에게 새참을 갖다드리고 절간 마당 낙엽도 쓸었다. 입동이 지나자 서리가 내리며 아침저녁 날씨가 쌀쌀해졌다. 찌뿌둥하던 하늘에서 기어코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저녁 예불을 마치고 눈이 감기는데도 맹복이는 자지 않았다. 사각사각 눈을 밟으며 장독대를 돌고 탑을 돌았다. 언제였던가? 어머니가 눈사람을 만들고 맹복이는 아장아장 걸어 숯 덩어리로 눈사람에다 눈을 붙이고…. 그때, 바로 그때, 장옷을 깊게 눌러쓴 어머니가 절간으로 들어왔다. “엄마∼” 자칫 소리치고 뛰어나갈 뻔했다. 탑 뒤로 몸을 숨겼다. 어머니도 기웃거리더니 주지스님 방 앞으로 가서 문을 똑똑 두드렸다. 불이 켜지고 방문이 열렸다. 장옷으로 온몸을 가린 어머니가 누가 볼세라 얼른 주지스님 방으로 들어갔다. 맹복이가 주지스님 방 앞으로 가서 귀를 세웠다. 도란도란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불이 꺼졌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한방을 쓰는 동오스님의 코 고는 소리에 문풍지가 떨려도 맹복이는 잠이 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아닐 거야. 귀신일까? 귀신이라도 어머니면 좋겠네.’ 새벽 예불을 드리며 맹복이는 주지스님을 빤히 쳐다봐도 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 옛적 골목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니 주지스님 품에 안겼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주지스님으로부터 떨어지던 기억이 떠올랐다. 맹복이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주지스님 밥상에 밥그릇이 두개요, 수저도 두개, 겸상 차림이다. 여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는 목간통을 주지스님 방에 들여놓더니 더운 물로 채웠다. 맹복이 한방을 쓰는 동오스님에게 얘기를 털어놓아도 믿지를 않더니 열흘쯤 지났을 때 동오스님이 주지스님만 빼고 온 스님을 불러놓고 중론을 모았다. 그즈음 주지스님은 새벽 예불에도 나오지 않았다. 보름이 지난 어느 날, 온 스님들이 주지스님 방 앞에 꿇어앉아 읍소를 했다. “큰스님, 소문이 재가불자들 사이에서도 파다하게 퍼졌습니다요. 어떻게 수습할지 가르침을 주십시오.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모두들 들어오너라.” 주지스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렁찼다. 문을 열던 동오스님이 코를 찌르는 독한 냄새에 “웁” 코를 막았다. 악취에 맹복이는 “우웩∼” 하고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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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옷을 벗은 젊은 여인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코는 문드러져 구멍만 보이고 온 얼굴에는 피고름이 줄줄 흘러내리며 손마디는 다 떨어져 나갔다. 보름 전 추운 겨울날 밤, 갈 데가 없어 장옷을 깊이 눌러쓰고 주지스님을 찾은 젊은 여자 문둥이를 스님이 거둬준 것이었다.
“큰스님∼” 모든 스님이 엎드려 울었다. 주지스님은 목탁을 두드렸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반야심경 독경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몇번을 읽어도 감동받고 
눈물납니다.


♡ 부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

불교에서는 부부(夫婦)는 전생(前生)에 원수(怨讐)
였다고 한다. 그 만큼 부부생활은 어렵다는 뜻이다. 

결혼한 사람이면 알겠지만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남자는 여자가 되어보기 전에는 아내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여자는 남자가 되어보기 전에는 남편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래 글은 한 부부의 이야기로 부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슬프면서도 감동적인 내용이다.
이 글을 읽고 배우자에게 잘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결혼 30년차인 이 부부는 합의이혼을 했다. 
결혼하고 살면서 항상 의견이 맞지 않아 부부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성격이 전혀 달랐던 두 사람은 아이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갈라섰을 것이다. 

자녀가 성인이 되고 결혼도 해서, 더는 부모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의미 없는 싸움에 종지부를 찍고,
서로의 노년(老年)을 자유롭게 보내기 위해 이혼(離婚)을 결정했다. 

두 사람은 이혼절차를 밟고 구청에서 나왔다. 
그때 남자가 같이 저녁을 먹자는 말을 꺼냈다. 
여자는 이혼해도 서로 철천지원수가 아니고,
어제까지 먹었던 밥을 오늘이라고 같이 못먹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같이 먹기로 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기 시작하자 종업원이 생선구이 한 접시를 가지고 왔다. 
남자는 바로 생선 한 점을 집어 여자에게 주었다. 먹어,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거 잖아?” 

뜻밖에 여자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당신은 항상 이래! 항상 자기가 옳고 너무 가부장적이야.
항상 자기 혼자 결정하고 다른 사람 기분은 생각도 안 하지?
결혼한지 30년이나 됐는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생선이란 걸 아직도 몰라?” 

이어서 남자가 목이 메어 말했다. 
“당신은 항상 당신을 생각하는 내 마음을 몰라.
나는 언제나 어떻게 하면 당신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단 말이야. 
항상 당신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고 싶었어.
알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생선구이가 아니고 생선탕수야.” 
이처럼 서로를 깊게 사랑했던 두 사람은,
서로의 문제를 이해 하기에 헤어졌다.

사랑이 문제일까, 아니면 결혼이 문제일까? 
두 사람은 밥을 먹고 난 뒤, 여자는 동쪽으로 남자는 서쪽으로 각자의 길을 갔다. 

그들은 서로 후회하게 될까봐 한달 동안 서로 전화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남자가 두 정거장을 지났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여자의 전화였다. 그는 망설이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남자는 집에 돌아와 밤새워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폐부 깊숙이 통증이 밀려와 그를 괴롭혔다.

남자는 계속 고민하다 결국 고통을 삼키며 갓 이혼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이 속으로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시 몇 번이나 계속 전화하니 결국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들려오는 것은 어떤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남자는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헤어진지 얼마나 되었다고 남자를 만나고 있다니...

울컥해서 전화를 끊으려 할 때, 그 낯선 남자가 말했다. 
“실례합니다만, 이 여자분 남편 되시나요? 핸드폰에 남편이라 돼 있네요!” 
“네, 제가 남편입니다만 누구세요?” 

남자의 말에는 적의(敵意)가 묻어났다. 
“아, 저는 XX병원 의사인데요, 여기로 빨리 오셔야겠어요.
부인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지금 응급 처치 중입니다!” 

남자는 날벼락을 맞은 듯 놀라 쏜살같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여자는 남자와 헤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 멍하니 건널목을 건너다 차에 치인 것이었다.
그녀는 의식을 잃기 전 남자에게 전화 했지만 남자는 받지 않았던 것이다. 

“의사 선생님, 저희 아내 어떻게 된건가요? 
제발 좀 살려주세요! 무릎이라도 꿇으라면 꿇겠습니다!” 
남자는 이렇게 말하며 의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의사는 황급히 남자를 일으키며 말했다. 
"최선을 다하는 중입니다. 지금 수술 중인데,
머리에 심한 충격을 받아 깨어난다 해도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남자는 텅 빈 병원 복도에서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며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만약 아내가 죽으면 나는 어쩌지? 
어떻게 나 라는 인간을 용서할 수 있을까?’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응급실의 불이 꺼지고 의사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수술실에서 나와 남자에게 다가왔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내분은 내일 아침을 넘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들어와서 보세요.” 

남자는 자신의 잘난 자존심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를 안고 죽게 됐다는 생각에,
비통해 하며 병실로 들어섰다.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는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눈과 입만 나온 채 얼굴이 온통 붕대로 감겨있었다.
마음이 찢어지는듯 했다. 남자는 침대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여보, 내가 늦었지!”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눈물이 쏟아졌다.

여자의 손을 잡으려 할 때, 남자는 놀랍게도 여자의 눈이 젖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 줄기 눈물이 붕대를 적셨다.
여자의 입술은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것처럼 떨렸다. 

남자는 급히 귀를 대고 희미한 소리를 들었다. 
“나… 나는 당신이 만든… 면(麵)이 좋았어.
그리고... 나는… 당신을…”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여자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여자는 이제 이 세상 공기로 숨을 쉴 수 없게 되었다. 
남자는 더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 

눈물이 마를 정도로… 
‘면! 아내가 아직도 그 면요리를 기억하다니?’ 

그는 긴 결혼 생활 동안 딱 한 번 아내가 아팠을 때, 면 요리를 만들어 준 적이 있다!
하지만 정말 맛이 없었던 면이다. 
그것을 아내는 제일 맛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남편이 해 준 요리였기 때문이다. 

한달 후, 
남자는 집정리를 하던 중 서랍에서 보험증서를 발견했는데,
가입일은 두 사람이 결혼한 날짜였고 수혜자는 남자였다. 
“사랑하는 남편, 당신이 이 보험 증서를 발견했을 때, 

나는 이 세상에 없을 거야. 우리가 어떻게 되든,
이혼하든,
아니면… 

하여튼 이것 하나만 알아둬!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항상 변함 없었음을...
나는 떠나지만 이 보험금이 나 대신 당신을 잘 돌봐 줄거야.
내가 당신 옆에 있는 것처럼 말이야.
천국에서도 계속 당신을 사랑할게!” 
여기까지 읽고 남자는 눈물범벅이 되었다.

아내는 죽는 그 순간에 그에게 ‘사랑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생명은 나약하고 인생은 짧습니다.
우리가 ‘사랑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더 할수 있을까요?

체면이나 자존심은 진정한 사랑과 생명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질 뿐입니다. 

조금만 너그럽게 굴 걸,
조금만 감싸줄 걸, 
조금만 이해할 걸... 

우리들의 인생에 절대 이런 후회를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남긴다면 우리들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하는 ‘사랑해’라는 말을 놓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아무리 후회해도 사랑이 듬뿍 담긴 그 말을 다시는 들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인생은 길지 않으니까, 
곁에 있는 사람에게 잘 대해 주어야 합니다. 
다음 생애에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까요... 

‘백년의 인연이 있어야 같은 배를 탈 수 있고,
천년의 인연이 있어야 같은 잠자리에 들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만큼 부부의 인연은 깊은 것입니다. 

늘 변함없이 가까이 곁을 지켜주는 가족인데도, 바쁘게 살다 보면 소중함을 잊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말”은 사랑 표현이며,
한가족 부부를 이어주는 힘이 되어주는 원동력입니다. 

오늘은 배우자에게 수고 많았네!
"사랑해!"라고 한 번 해보시길 바랍니다.........!

   건강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