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1월 19일 주일[(녹) 연중 제2주일]/신부님 강론 4개
오늘 전례
입당송
하느님, 온 세상이 당신 앞에 엎드려 당신을 노래하게 하소서. 지극히 높으신 분, 당신 이름을 노래하게 하소서.
<대영광송>
본기도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니
저희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어
이 시대에 하느님의 평화를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62,1-5
1 시온 때문에 나는 잠잠히 있을 수가 없고
예루살렘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의로움이 빛처럼 드러나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
2 그러면 민족들이 너의 의로움을, 임금들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
너는 주님께서 친히 지어 주실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리라.
3 너는 주님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면류관이 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되리라.
4 다시는 네가 ‘소박맞은 여인’이라,
다시는 네 땅이 ‘버림받은 여인’이라 일컬어지지 않으리라.
오히려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너의 땅은 ‘혼인한 여인’이라 불리리니
주님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네 땅을 아내로 맞아들이실 것이기 때문이다.
5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모든 민족들에게 주님의 기적을 전하여라.
○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주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 찬미하여라. ◎
○ 나날이 선포하여라, 그분의 구원을. 전하여라, 겨레들에게 그분의 영광을,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을. ◎
○ 주님께 드려라, 뭇 민족의 가문들아. 주님께 드려라, 영광과 권능을. 주님께 드려라, 그 이름의 영광을. ◎
○ 거룩한 차림으로 주님께 경배하여라. 온 세상아, 그분 앞에서 무서워 떨어라. 겨레들에게 말하여라. “주님은 임금이시다. 그분은 민족들을 올바르게 심판하신다.” ◎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2,4-11
형제 여러분, 4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8 그리하여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9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 안에서 믿음이,
어떤 이에게는 그 한 성령 안에서 병을 고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10 어떤 이에게는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예언을 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가,
어떤 이에게는 신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가 주어집니다.
11 이 모든 것을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느님이 복음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차지하게 하셨네.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1
그때에 1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2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3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4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5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6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7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9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10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11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신경>
보편 지향 기도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빛이신 주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어, 교회가 주님께 받은 은총으로 형제적 사랑을 실천하며, 온 세상에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게 하소서.
2.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일치의 주님,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맞아 기도드리오니, 여러 교파와 전통으로 나뉜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에 힘입어, 서로 대화하며 일치의 길로 나아가게 하소서.?
3. 고통받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은총의 주님, 여러 이유로 고통받는 이들을 살펴 주시어, 몸소 위로하시고, 그들이 하느님 말씀과 함께 평온을 되찾고 치유의 기회를 얻도록 도와주소서.
4. 지역 사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애로우신 주님, 저희 지역 사회의 모든 이에게 주님의 사랑을 일깨워 주시어, 매서운 추위를 견디며 어려움을 이겨 내고 있는 이웃에게 온정을 베풀게 하소서.
예물기도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여 이 제사를 드릴 때마다
저희에게 구원이 이루어지오니
이 거룩한 신비를 정성껏 거행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저희는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
선택된 겨레, 임금의 사제단, 거룩한 민족,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고
저희를 어둠에서 놀라운 빛으로 부르신 주님의 권능을
온 세상에 전하게 되었나이다.
이는 파스카의 신비로 이루어진 주님의 위대한 업적이옵니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주님이 제게 상을 차려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또는>
1요한 4,16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고 또 믿게 되었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저희가 천상 양식을 함께 나누고 비오니
사랑의 성령을 부어 주시어
그 사랑으로 한마음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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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연중 제2주일
지난 사목회 송년 모임 때입니다. 한국에서 보내준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영상의 내용은 봉사자의 자세와 믿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4분가량의 영상 중에 제게 큰 울림을 준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 직분을 맡기시는 분이 아니라는 내용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선택한 사람에게 그에 합당한 능력을 주신다는 내용입니다. 평소에 많은 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하는 봉사자는 교만하지 말고 겸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평소에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봉사자는 능력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위로와 용기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이 보화를 담아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 엄청난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한테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저는 언론과 방송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중학생 때 신문 배달을 해 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럼에도 교구장님은 제게 가톨릭평화신문 미주지사의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코로나의 힘든 시기를 견디며 신문사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서 제게 능력을 주셨고, 좋은 직원을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노래방에 가면 18번이 있습니다. 늘 즐겨 부르는 노래입니다. 가수들도 18번 노래가 있습니다. 조용필의 노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돌아와요 부산항에’입니다. 이선희의 노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아 옛날이여!’입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조용필이 무명의 시대를 벗어나 인기가수로 발돋움한 노래입니다. ‘아 옛날이여!’는 제가 군대에서 듣던 노래입니다. 군대에서 기상 음악으로 선임들이 ‘아 옛날이여’를 틀어 주었습니다. 지금은 내가 군인이라는 정체성을 알 수 있게 해 준 노래입니다.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 잘될 거야!”입니다. 어떤 분들은 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책임하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많고, 넘어야 할 산도 아직 많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분이 좋았다고 합니다. 비록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앞으로는 좋은 일들이 생길 거라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 잘될 거야!”라는 말을 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여러분의 18번은 무엇인가요? 저는 최성수의 ‘해후’를 좋아합니다.
2000년 전입니다. 가나에는 혼인 잔치가 있었습니다. 하객들은 많이 왔는데 잔치에 준비한 포도주가 그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포도주를 많이 준비하지 못한 것을 비난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면서 혼인 잔치의 주인을 탓하였습니다. 그런 비난과 평가는 혼인 잔치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혼인 잔치에 필요한 포도주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들 예수님에게 이야기합니다. ‘혼인 잔치에 필요한 포도주가 부족합니다.’ 마리아는 지난 과거에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지 않았습니다. 아들 예수님에게서 미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들 예수님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예수님은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물은 포도주로 만들었습니다. 혼인 잔치는 성대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혼인 잔치에 대해서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물이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는구나!” 정말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저의 큰형은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글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습니다. 음악도 잘해서 곡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형의 예술적인 재능이 부럽기도 했고,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작은형은 운동 신경이 좋았습니다. 체격도 좋았고 양복을 입으면 잘 어울렸습니다. 싸움도 잘해서 형과 다니면 걱정이 없었습니다. 여동생은 무엇보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었습니다. 어머니와 30분을 통화하는 가족은 동생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동생에게 이야기하시고 좋아하셨습니다. 큰형처럼 예술적인 재능이 없었기에, 작은형처럼 좋은 체격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동생처럼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저를 ‘미운우리새끼’처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제게도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글 읽는 것을 좋아하고,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들었던 것처럼 성령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능력과 재능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꽃밭을 꾸미는 아름다운 꽃이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도록 용기를 주시고, 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함을 주시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2주일: 다해
복음: 요한 2,1-11
우리의 신앙도 성모님의 신앙처럼 끊임없이 성장해야 합니다!
카나 혼인 잔치에서 벌어진 예수님과 성모님 사이의 대화는 너무나 많은 복선과 의미가 깔린 내용이기에
잘 새겨서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께 드린 청부터 좀 이상합니다.
성모님은 평소 아들 예수님의 성숙한 동반자로서 부담을 주거나 분위기를 난감하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특별합니다. 꽤 부담스러운 청을 예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포도주가 없구나.”(요한 2,3)
성모님의 은근한 압박에 맞선 예수님의 대응도 만만치 않습니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
예수님께서는 아직 아버지로부터 공생활을 시작하라는 신호를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직은 세상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직 공개석상에서 기적을 행할 때가 아니었기에 어머니의 부탁을 넌지시 거절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성모님도 물러서지 않으십니다.
결국은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십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완전한 동의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계속 진척시킵니다.
지혜로운 어머니셨기에, 예수님께 또 뭐라 한마디 하면 서로 난감해질 것이 뻔하니,
이번에는 일꾼들을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어찌 보면 오늘 우리 각자를 향한 성모님의 권고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오늘 우리는 부단히 질문을 던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내게 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오늘 내게 바라시는 바는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향해 사용하신 호칭, “여인이시여”라는 표현이 꽤 마음에 걸립니다.
“여인이시여”라는 호칭은 그동안 예수님께서 성모님에게 사용해 오셨던 호칭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갑작스러운 호칭 변화에 성모님께서도 꽤 당혹감을 느끼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인이시여” 라는 말씀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이런 것이 아닐까요.
이제 예수님과 성모님 사이는 서서히 새로운 관계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육의 관계를 넘어 영의 관계로 옮아가는 것입니다.
종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모자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머지않아 예수님의 본격적인 공생활이 시작될 것입니다.
성모님의 영적 여정 역시 가야 할 길이 꽤 남아있습니다.
성모님의 믿음 역시 더 쇄신되고 더 깊어져야 할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으셨던 성모님이셨습니다.
아직도 세밀한 하느님의 계획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하셨던 성모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주를 많게 하시는 기적을 통해 일단 성모님의 인간적 체면을 살려주시지만,
진정한 의도는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씀을 통해 기적이나 체면을 살리기보다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는 것이
더 우선적이고 더 중요한 일이라는 강조하십니다.
성모님의 완곡한 청을 거절하지 않으면서도 “여인이시여”라는 호칭을 통해 살짝 거리를 두는 예수님의 모습은
성모님에게는 새로운 하나의 초대입니다.
‘어머니, 그간 저를 돌봐주시느라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쉽고 안타깝지만 떠나갈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잘 준비하셨으면 합니다.
이제 어머니의 신앙이 한 차원 승화될 순간입니다.
이제 인간적인 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 육적인 관계보다는 영적인 관계, 세상적인 뜻보다는
아버지의 뜻을 먼저 생각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함축한 표현이 “여인이시여”가 아닐까, 하는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의 신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모님의 신앙처럼 끊임없이 성장해야 합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모님과 예수님 사이처럼 역동적이어야 하고, 진취적이어야 합니다.
서로를 속박하고 자신 안에 가두어두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자유롭게 해주고,
서로를 키워주는 그런 관계여야 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3. 이영근 신부님
연중 제2주일: 다해 <오늘이 바로 우리의 혼배날> 지난 주일에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을 세상에 드러내주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때’를 미리 알려줍니다. 그 ‘때’를 이렇게 말합니다.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 (이사 62,5) 제2독서는 그 때에 성령께서 주시는 풍성한 선물, 곧 은사들에 대해 말해줍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참으로 풍부한 의미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의미 중의 하나는 ‘때’, 곧 '그리스도의 때'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영국의 3대 낭만파 시인 중의 한 명인 바이런이 옥스퍼드 대학 종교학 과목 시험을 칠 때 있었던 일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 논하라"는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열심히 답지를 쓰는데, 바이런만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감독관이 주의를 주었지만 시험 종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계속 멍 때리기를 계속하자 화가 난 감독 교수가 백지로 제출하면 영점 처리되고 학사경고의 대상이 되니 뭐든 쓰라고 하니, 그때서야 그는 단 한 줄만 써놓고 유유히 빠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달랑 한 줄 답안지는 이 대학 신학과 창립 이후 모든 교수들을 감동시킨 전설의 만점 답안지가 되었습니다. 그 한 줄은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을 붉히더라." 이 이야기는 바로 ‘신랑이 신부를 만날 때’ 벌어진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곧 ‘혼인잔치가 벌어진 때’의 일입니다. 바로 ‘복음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네 개의 ‘때’가 암시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등장하는 ‘때’는 혼인잔치가 벌어진 날입니다. 곧 '사흘째 되는 날'(요한 2,1)입니다. '사흘째 되는 날', 이 날은 시나이 계약과 연결됩니다. 곧 주님께서 모세에게 “셋째 날에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이 시나이 산에 내릴 것이다.”(탈출 19,11)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하느님의 영광이 시나이 산에서 드러났듯이, 카나의 혼인잔치에서도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때’임을 알려줍니다. 동시에, 이 날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사흘'만에 일어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신 일’을 가리킵니다. 또한 이날은 세례자 요한이 증언한 날로부터는 ‘일곱째 되는 날’로서, ‘새 창조의 날’입니다. <요한복음>은 이 '첫 번째 표징'을 통해 예수님의 공생활의 시작을 바로 ‘새로운 인류의 출현’으로 알려줍니다. 그 날은 다름 아닌 ‘혼인잔치가 벌어지는 때’입니다. 구약에서는 오늘 제1독서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당신의 신부라 칭합니다. 그러니 혼인잔치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이 하나로 결합되는 ‘때’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마지막 결정적 때가 벌어지는 십자가 아래에서도 아들과 함께 하셨듯이, 지금 공생활의 첫 시작에 함께 계십니다. 단지 함께 계실뿐만 아니라 바로 ‘아들의 때’를 열어 가십니다. 성모님께서 먼저 이 ‘때’를 알아채시고 예수님께 말씀하십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요한 2,3) 두 번째 등장하는 '때'에 대한 암시는 마리아께서 알아채신 '포도주가 다 떨어진 때'(요한 2,3)입니다. 곧 ‘옛 계약이 의미를 상실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곧 새 포도주, 곧 새 사랑이 필요해졌고, ‘새 계약의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마리아께서는 포도주가 다 떨어진 바로 이 사실에서 ‘그리스도의 때’가 왔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는 동시에, 혼인잔치 집에 놓여 있었던 '유다인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요한 2,6)가 암시해주는 ‘때’이기도 합니다. ‘여섯 개의 돌 항아리’는 가혹하고 엄격한 율법주의의 경직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곧 하느님과의 맺는 관계에 사랑이 결핍되어 있음을 나타냅니다. ‘돌 항아리’는 결핍을 나타내는 숫자인 ‘여섯 개’ 이며, 모두 비어 있어서 더 이상 줄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결국, 결정적으로 십자가에 매달려있는 ‘일곱 번째의 항아리’에서 새 포도주가 흘러나와 온 세상을 적셔줄 ‘때’를 향하고 있습니다. 새 계약의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성모님께서는 포도주가 없다는 사실을 잔치 주관자나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예수님께 알리신 것은 예수님께서 그 포도주를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곧 성모님께서는 포도주가 다 떨어진 바로 이 사실에서 '그리스도의 때'가 왔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 세 번째 등장하는 ‘때’는 바로 예수님께서 직접 밝히시는 ‘당신의 때’ 입니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요한 2,4) 예수님께서는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 자신의 때’가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이는 당신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에 일을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욕구에 의해서 활동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뜻대로 활동하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결국 어머니께서는 '때'를 구실 삼아 아들에게 거절당하십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조금도 무안해 하시거나 섭섭해 하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요한 2,5) 성모님께서는 요청하는 자세에서 순종하는 자세로 태도를 바꾸십니다. 비록 거절당했지만,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자신의 뜻이 아닌 아들의 원의에 모든 것을 맡기십니다. 이토록 성모님께서는 명령이 있기도 전에 이미 순명하십니다. 믿음 안에서 예수님을 이미 잉태하고 계셨듯이, 믿음 안에서 이미 예수님께 순명하십니다. 본문에서 제자들은 기적을 보고서 믿었지만, 마리아는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예수님의 권능을 믿으신 까닭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순명인가요? 이 아름다운 일은 이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순명’을 불러오는 참으로 아름다운 일로 번져갑니다. 그 순명이 바로 그 ‘그리스도의 때’를 불러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순명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순명의 3중주곡’입니다. ‘마리아의 예수님께 대한 순명’과 그 순명이 불러온 ‘마리아에 대한 예수님의 순명’, 그리고 ‘마리아와 예수님께 대한 시중꾼의 순명’입니다. 그리하여 과방장은 “좋은 포도주를 이제까지 보관하고 계셨군요.” 라고 선포하게 됩니다. 이것이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네 번째의 ‘때’입니다. 그러나 묘한 것은 이 혼인잔치에서는 단지 과방장이 새 포도주를 맛보았을 뿐, 아직 그 누구도 아직은 마시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요한 2,11). 그러니 이제 바로 지금이 그 ‘때’ 입니다. 과연 지금이 새 포도주를 마셔야 할 ‘때’ 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함께 혼인잔치를 거행할 ‘때’ 입니다. 그래서 카나의 이 혼인잔치에는 ‘신부’가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가 그 ‘빈자리’로 초대받은 까닭입니다. 곧 우리가 ‘신부’로 초대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바로 오늘이 ‘신부로서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셔야 할 때’입니다. 결국 카나에서 드러내신 이 표징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모든 이에게 드러나게 될 ‘예수님의 영광’을 미리 밝혀줍니다. 과연 이제 우리가 새 포도주를 마셔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함께 혼인잔치를 거행할 때가 도래한 것입니다. 우리는 곧 성찬례에서 이 은혜로운 ‘사랑의 포도주, 새 계약의 포도주’를 마시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린양의 ‘신부’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신랑이 되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피와 몸을 영함으로서 예수님과 결합할 것입니다. 당신께서 건네주신 생명으로 혼인을 맺고 합혼주를 마실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거룩한 일인지요! 참으로 감격스런 날입니다. 오늘이 바로 우리의 혼배날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거룩한 혼인축일을!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포도주가 없구나.” (요한 2,3) 주님! 새 포도주가 필요합니다. 제 안에 당신 사랑이 필요합니다. 당신 사랑에 취하게 하소서. 취하여 임과 함께 춤추게 하소서. 당신이 나의 신랑인 까닭입니다.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1.18. 연중1주간 토요일 히브4,12-16 마르2,13-17
따름의 여정
“ 자녀답게, 제자답게”
스승이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따라 나선 제자들입니다.
예나 이제나 똑같습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의 제자답게, 또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이 책임적 존재로서
합당한 처신입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제자직의 삶에 좋은 도움이 됩니다.
“공부란 매일 보던 풍경을 낯설게 보며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다산>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가난하면서도 즐겁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논어>
참으로 제대로된 제자라면 이처럼 늘 새롭고 자유로울 것입니다.
주님을 찾고 따르는 진리 추구의 여정이 우리를 새롭고 자유롭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레위를 부르시고 레위는 주님을 따라나섭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선행하니 말그대로 부르심의 은총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에 선행하는 부름받은 자의 주님을 찾는 갈망입니다.
주님을 찾는 갈망이, 열망이, 그리움이 성소의 동기가 됩니다.
길을 지나시던 길이신 주님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페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세관에 홀로 외롭게 앉아있는 레위의 갈망을 한눈에 알아채셨음이 분명합니다.
“나를 따라라.”
레위를 구원한 말씀입니다.
레위는 즉시 일어나 주님을 따라나서니 그의 갈망을 반영합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삶의 방향을 찾은 레위입니다.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해 삶의 의미를, 삶의 중심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레위를 부르신 주님은 오늘 우리를 부르십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한 현재로 현존하시며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이십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명쾌하게 주님의 정체를 밝힙니다.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우리가 따르는 전능하신 주님은 하느님 어좌에 좌정하시면서 동시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초월(超越)과 내재(內在)의 주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레위를 부르시어 제자공동체에 합류시킵니다.
과거는 불문에 붙이시고 오늘부터 늘 현재를 살게 하십니다.
‘홀로’의 고립단절의 방향없는 삶에서 이젠 ‘더불어’ 주님을 따르는 제자공동체에 속한 레위입니다.
흡사 교회공동체에서 더불어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처지와 흡사합니다.
그러니 주님을 따르는 여정은 혼자가 아닌 더불어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주님 역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더불어의 주님이십니다.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식탁공동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에 대한
주님의 답변이 오늘 복음의 절정입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자비로운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가 부름받아 치유받아야 할 병자들이요, 용서받아야 할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부른 것이 아니라 병자요 죄인이라 부르신 것입니다.
세상에 병자아닌 사람, 죄인아닌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주님께서 불러주신 은총에 대한 자각에서 저절로 샘솟는 겸손과 감사의 마음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우리의 따름은 하루이틀에 끝나지 않는 평생과정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살아있는 그날까지 주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는 겸손과 감사의 한결같은 자세로
주님을 따릅니다. 죽어야 끝나는 부르심과 따름의 여정입니다.
삶은 은총이자 과제입니다.
부르심의 은총에 응답하여 끝까지 한결같이 따르는 과제를 이행해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기도와 더불어 말씀 공부가 필수입니다.
말씀은 생명이자 빛이자 주님의 현존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발에 등불, 나의 길을 비추는 빛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말씀의 본질을 명확히 밝힙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같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말씀입니다.
저절로 자녀다운 삶, 제자다운 삶이 아닙니다.
살아 있다고 다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평생 말씀 공부로 하느님의 말씀과 영혼이 일치되야
비로소 진실하고 투명한 살아 있는 삶니다.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 주님의 제자다운 삶입니다.
날마다의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녀답게, 주님의 제자답게 살게 하십니다. 아멘.
1/19(일)[(녹) 연중 제2주일], 되새김 구절
1. 예수님은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물은 포도주로 만들었습니다. 혼인 잔치는 성대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혼인 잔치에 대해서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물이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는구나!” 정말 아름다운 표현입니다.(조재형 신부)
2. “여인이시여” 라는 말씀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이런 것이 아닐까요.
이제 예수님과 성모님 사이는 서서히 새로운 관계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육의 관계를 넘어 영의 관계로 옮아가는 것입니다.
종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모자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오늘의 말 · 샘 기도>
“포도주가 없구나.”
(요한 2,3)
주님!
새 포도주가 필요합니다.
제 안에 당신 사랑이 필요합니다.
당신 사랑에 취하게 하소서.
취하여 임과 함께 춤추게 하소서.
당신이 나의 신랑인 까닭입니다.
아멘.(이영근 신부)
4. 말씀이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말씀입니다.
저절로 자녀다운 삶, 제자다운 삶이 아닙니다.
살아 있다고 다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평생 말씀 공부로 하느님의 말씀과 영혼이 일치되야
비로소 진실하고 투명한 살아 있는 삶니다.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 주님의 제자다운 삶입니다.
날마다의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녀답게, 주님의 제자답게 살게 하십니다. 아멘.
(이수철 신부)
1/19(일)[(녹) 연중 제2주일], 19일차 기도
복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셨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포도주가 없구나.”(요한 2,3)
주님!
새 포도주가 필요합니다.
제 안에 당신 사랑이 필요합니다.
당신 사랑에 취하게 하소서.
취하여 임과 함께 춤추게 하소서.
당신이 나의 신랑인 까닭입니다.
아멘.
- 2025년 1월19일9일) 5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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