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묵]2025년 5월 15일 목요일[(백) 부활 제4주간 목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하느님, 당신 백성에 앞장서 나아가실 제, 그들 가운데 사시며 길을 열어 주실 제, 땅은 흔들리고 하늘은 물이 되어 쏟아졌나이다. 알렐루야.
본기도
사람을 구원하시고 처음보다 더 영광스럽게 하시니
자비로이 이루신 놀라운 일을 기억하시고
세례로 새로 난 저희에게 영원한 은총과 복을 내려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3,13-25
13 바오로 일행은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가고,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14 그들은 페르게에서 더 나아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
15 율법과 예언서 봉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이여, 백성을 격려할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바오로가 일어나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선택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살이할 때에 그들을 큰 백성으로 키워 주셨으며,
권능의 팔로 그들을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18 그리고 약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의 소행을 참아 주시고,
19 가나안 땅에서 일곱 민족을 멸하시어
그 땅을 그들의 상속 재산으로 주셨는데,
20 그때까지 약 사백오십 년이 걸렸습니다.
그 뒤에 사무엘 예언자 때까지 판관들을 세워 주시고,
21 그다음에 그들이 임금을 요구하자,
하느님께서는 벤야민 지파 사람으로서 키스의 아들인 사울을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임금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22 그러고 나서 그를 물리치시고
그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또는
◎ 알렐루야.
○ 주님의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 제가 아뢰나이다. “주님은 자애를 영원히 세우시고, 진실을 하늘에 굳히셨나이다.” ◎
○ 나는 나의 종 다윗을 찾아내어,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노라. 내 손이 그를 붙잡아 주고, 내 팔도 그를 굳세게 하리라. ◎
○ 내 진실 내 자애가 그와 함께 있으니, 내 이름으로 그의 뿔이 높이 들리리라. 그는 나를 부르리라. “당신은 저의 아버지, 저의 하느님, 제 구원의 바위.”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 죄를 씻어 주셨네.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16-20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8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19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이 제물과 함께 바치는 저희 기도를 받아들이시고
저희 마음을 새롭게 하시어
저희를 구원하신 이 큰 사랑의 성사에
언제나 맞갖은 삶으로 응답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빛의 자녀들이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났고,
믿는 이들에게 하늘 나라의 문이 열렸나이다.
주님의 죽음으로써 저희가 죽음에서 구원받았고,
주님의 부활로써 모든 이가 새 생명으로 부활하였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영성체 후 기도
그리스도의 부활로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찾아 주시니
구원을 이루는 이 양식의 힘으로
파스카 신비의 은혜를 저희 안에 가득 채워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지난 4월 21일,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에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 날, 교황님께서는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천상 낙원으로 인도하셨음을 믿습니다. 2013년에 교황으로 선출되어 12년 동안, 교황님은 세상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교황님과 작은 인연이 있습니다. 2014년, 교황님은 124위 순교자 시복식과 아시아 청년대회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교구 성소 국장이었고, 방한 준비위원회의 영성 신심 분과 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가까이서 뵈었던 교황님의 모습은 지금도 제 마음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교황님은 낡은 가방을 들고 다니셨습니다. 족히 30년은 된 듯한 가방이었습니다. 교황님의 검소한 성품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서울대교구의 신축 청사를 축복하셨을 때도, 방명록에는 작고 소박한 글씨로 한쪽 구석에 사인을 남기셨습니다. 교황님의 겸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의전차량으로는 고급 차가 아닌, 한국의 경차인 쏘울을 선택하셨습니다. 교황님의 소탈한 삶의 태도를 드러내는 결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있는 곳에 그 사람의 마음도 있다.” 저는 교황님이 있었던 곳이 생각납니다. 교황님이 맨 처음 정한 사목 방문지는 ‘람페두사’였습니다. 람페두사는 아프리카 난민들이 머무는 섬입니다. 교황님은 그곳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카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네 동생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마찬가지로 저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이웃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교황님이 람페두사를 방문하면서 유럽은 아프리카에서 오는 난민을 받아들였습니다. 교황님의 마음은 그렇게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가까이 있었습니다. 교황님이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입니다. 교황님은 당시 세월호 참사의 유족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교황님의 마음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유족들과 가까이 있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정점에 있을 때였습니다. 교황님은 홀로 바티칸 광장에 서서 기도하였습니다. 비가 내리는 어두운 바티칸 광장에서 교황님은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교황님의 마음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가까이 있었습니다. 교황님은 아프리카 수단의 정부군과 반군 지도자를 교황청에 초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수단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기를 호소하였습니다. 교황님의 마음은 전쟁의 폐허 속에 신음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날에 교황님은 팔레스타인의 평화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그분이 아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교황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의 동생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책상 위에 머무는 지식이 아니라, 고통 앞에서 중립하지 않고, 눈물 속에 기도하며, 침묵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지혜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높은 자리가 좋은 자리’라고 착각합니까? 그러나 교황님은 보여주었습니다. 낮은 자리가 더 깊은 자리요, 진리의 자리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교황님의 삶을 기억하며, 그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면 좋겠습니다. 그 발자국은 가난한 이들을 향해 있었고,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있었으며, 세상의 변두리에 머물렀습니다. 교황님께서 이제는 천상의 평화 속에서 영원한 안식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부활 제4주간 목요일
복음: 요한 13,16-20
살아있는 순교자들!
나이를 조금 먹다 보니 예수님 육화강생의 진리를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될까 말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굿간 탄생부터 골고타 언덕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지상 생애 내내 아래로 내려가는 선택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향성의 삶이 비록 힘겨운 여정이지만 얼마나 가치있고 은혜로운 선택인지를
온몸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이 절대로 약자 앞에 무릎 꿇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면서도 한갓 피조물이요 인간, 특히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세상살이에 더럽혀지고 냄새나는 그들의 발을 지극정성으로 씻겨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스승이 제자 앞에 허리를 숙입니까?
부모가 자녀 앞에 무릎을 꿇습니까?
회장이 말단 사원 앞에 정중히 인사를 하고 있습니까?
참으로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것이 바로 예수님 스타일이었습니다.
올해 저희 살레시오회 새로운 총장으로 선출되신 분이 몰타 출신 파비오 신부님이십니다.
선출 직후 보여주신 작은 에피소드가 전 세계 살레시안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총장 선출 직후 총회 분위기는 즉시 축제 분위기라 돌변합니다.
총회 대의원들은 전원 돈보스코의 후계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기 위해 길게 줄을 섭니다.
한명 한명 형제들과 포옹하며 감격스러운 인사를 나눕니다.
인사를 쭉 해나가던 총장 신부님께서 어떤 나라 대의원 3명 앞에 서셨을 때였습니다.
유난히 강하게 그들을 포옹하신 총장님께서는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강복을 청했습니다.
오랜 전쟁으로 고통 겪고 있는 나라 우크라이나 대의원들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형제들은 총장님의 각별한 모습에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축제의 현장은 잠시 숙연한 분위기 속에 경건한 침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총장 신부님께서는 저녁 말씀 시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크라이나, 미얀마, 콩고, 수단 등 전쟁과 분쟁 지역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난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여러분이
바로 살아있는 순교자들이며, 여러분이야말로 진정한 돈보스코의 아들들입니다.
이것이 살레시오 수도회입니다.”
때로 억울하고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복음의 길은 낮아지는 길이며, 작아지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승리하는 길이며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출처 - 살레시오회 내리피정 센터이야기
3. 이영근 신부님
부활 제4주간 목요일
복음: 요한 13,16-20
<선을 알되 행하지 않으면 선이 실현되지 않듯, 실행되지 않은 섬김은 섬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다음 말씀하셨습니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요한 13,16-17)
분명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체가 높은 주인이 지체가 낮은 종을 섬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아는 이가 복된 것이 아니라, ‘이것을 알고 실천하는 이’가 복되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섬김의 도’는 ‘실행하는 이’만이 배울 수 있는 ‘도’(깨달음의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가르치시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배우는 방법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은 섬기면서 섬김을 배우고, 사랑하면서 사랑을 배우고, 용서하면서 용서를 배우는 ‘실천을 통해’ 배우는 방법입니다.
마치 수영을 하지 않고서는 결코 수영을 배울 수 없고, 자전거를 타지 않고서는 결코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실천의 원천은 무엇인가?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종’이라는 사실, 다름 아닌 주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 알고, 그것에 대한 전폭적인 승복에 달려 있는 일입니다.
곧 ‘주인의 뜻’을 깊이 깨달아 알고 ‘실행’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요한 13,17)
그렇습니다.
선을 알되 행하지 않으면 선이 실현되지 않듯, 실행되지 않은 섬김은 섬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태 20,28; 마르 10,45) 하시며, 당신의 백성을 섬기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실행하라’고 하십니다.
서로에게 “종이 되어라” 하십니다.
이런 맥락에서, 자신을 '종들의 종'이라고 칭하신 그레고리오 교종은 참으로 본연의 자리를 갈파하신 분이십니다.
이 말은 ‘종들 중의 으뜸’, ‘종들의 대빵’이라는 말이 아니라, ‘종들을 섬기는 종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진정 섬김을 받은 자만이 진정 섬기게 됩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먼저 섬기는 이가 섬김을 받고, 먼저 존경하는 이가 존경을 받게 됩니다.
분명 그럴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요한 13,20)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요한 13,17)
<오늘의 말 · 샘 기도>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요한 13,17)
주님!
저희가 서로 발을 씻어주게 하소서.
서로에게 종이 되게 하소서.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선을 알되 행하지 않으면 선이 아니듯, 아는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실천하여 진정 알게 됨이 저의 행복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크 신부님
2025.5.14.수요일 성 마티아 사도 축일
사도1,15-17.20-26 요한15,9-17
서로 사랑하여라
“공부, 발견, 선택, 훈련”
"주님, 당신의 은총이 생명보다 낫기에,
내 입술이 당신을 찬양하리이다."(시편63,4)
오늘은 성 마티아 사도 축일입니다.
마티아라는 이름은 당시 그리스 문화권에서 불렀던 ‘마티티아(Mattithiah)의 약칭으로,
’하느님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마티아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의 선물’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은 마티아가 사도로 뽑히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열두사도중 배반자 유다를 대신하여 뽑힌 마티아요, 베드로 사도의 설명에서 보다시피 사도의 우선적 특징이자 사명은
‘예수님 부활의 증인’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평생 동행한 제자들이야말로 사도가 되기 위한 기본 필수 전제 조건임을 봅니다.
그러니 평생 스승이자 주님으로부터, 또 동행한 예수님의 제자들이자 동료형제들로부터 ‘사랑’도 보고 배웠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습니다. 사랑도 보고 배웁니다.
비단 사랑만이 아니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두를 보고 배웁니다.
그래서 보고 배울 사랑의 어른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선생은 많아도 스승은 없고 노인은 많아도 어른은 없는 세태를 개탄합니다.
오늘 옛 현자의 지혜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어른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다. 그것은 당당함이 되어야지 방종함이 되어서는 안된다.”<다산>
이런 방종함이 없는 당당함은 자존감 높은 사랑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표현되니 사랑의 당당함이겠습니다.
사랑 많이 하고 많이 받을수록 정체성 또렷한 겸손한 삶에 자존감 높은 온전하고 당당한 삶이겠습니다.
“어른은 스스로를 바르게 함으로써 만물을 새롭게 하는 사람이다.”<맹자>
바로 예수님을 위시한 사도들과 성인들을 두고 하는 말씀같습니다.
참으로 사랑의 어른들은 존재자체로 주위를 밝힙니다.
‘네 정도 만큼 세상도 바로 그러하다(As you are, so is the world)’는 짧은 영어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에 앞서 네 자신이 먼저 변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내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사랑입니다.
새삼 ‘노화의 여정’이 아니라 사랑으로 익어가는 ‘성화의 여정’으로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이어 마티아를 뽑기전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앞에 세우고 기도하는 베드로로부터
또 분별의 지혜와 사랑을 배웁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이 둘 가운데에서 주님께서 뽑으신 한 사람을 가리키시어,
유다가 제 갈 곳으로 가려고 내버린 이 직무, 곧 사도직의 자리를 넘겨받게 해 주십시오.”
둘 다 사도로서 기본 조건을 지녔기에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고 제비뽑기를 선택했으니
이보다 공정한 사랑의 행위는 없겠고 바로 여기 제비뽑기에사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된 마티아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마티아는 유다 지방과 콜키스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형 또는 참수형을 받고
유해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독일 트리어로 운반됐다 합니다.
이어 노르만 침공으로 분실됐다가 다시 발견되어 안장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트리어교구는 마티아 사도를 수호성인으로 모십니다.
사랑의 절정인 순교는 성체와의 결합을 뜻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평생 사랑을 보고 배웠을 사도들이야말로
사랑의 대가이자 달인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사랑공부에는 초보자로 평생 보고 배워야 하는 졸업이 없는
평생 영원한 현역의 사랑의 학인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는 오늘 복음을 통해 주님께 사랑을 배웁니다.
1.“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여기 말하는 사랑은 순수하고 비이기적인 아가페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 보고 배운 사랑이요 우리가 예수님께 평생 보고 배워야 할 아가페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바로 내 사랑의 분별의 잣대가 됩니다.
집착하지 않는 초연한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 기쁨으로 충만케 하는 사랑, 무지와 무의미한,
허무한 삶에 대한 유일한 처방이 이런 사랑뿐입니다.
사랑의 빛이 허무와 무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 함은 사랑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이요 사랑은 인간의 본질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해서 비로서 참 사람의 실현입니다.
사람이 되는 것은 사랑뿐이 답이, 길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정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2.“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당대의 제자들은 물론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님께서 친히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신원은 주님의 제자이면서 주님의 친구가 되니 얼마나 영예로운 신원인지요!
참으로 예수님과 우정이 날로 깊어지는 ‘우정의 여정’에 예수님과 절친의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뽑으셨습니다.
이래서 성소는 주님의 귀한 은총의 선물이자 우리의 신원이자 존재이유입니다.
그러니 주님께 뽑힌자로서의 삶에 부족함이 없이 부단히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여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건강과 돈 걱정이 우선이 아니라 이런 사랑공부가 우선임을 깨닫습니다.
사랑도 끊임없는, 한결같은 공부요 노력입니다.
최고의 건강 기법(技法)은 사랑 공부뿐임을 깨닫습니다.
저절로 사랑은 없습니다.
평생 배워야 하는, 평생 발견하고 깨달아 배우고 노력해야 하는 사랑이요, 부단히 선택하여 훈련하고
습관해야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 수도원의 일과표도 사랑이 시스템화된 일과표입니다.
찬미와 감사의 시편공동전례기도와 미사전례는 물론 모든 일과가 사랑이 시스템화된 사랑의 선택 -훈련-습관화를
의도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사랑의 형제적 공동체, 사랑의 학교인 수도원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살아 있는 그날까지 계속될 사랑의 공부, 사랑의 훈련입니다.
새삼 사랑하기에 턱없이 짧은 인생이요, 사랑하라고 연장되는 우리의 날들임을 깨닫습니다.
제가 요즘 실천하는 사랑 실천은 주로 다섯입니다.
1.평생 매일 강론 써 나누기
2.문자 메시지에 “사랑하는...”이라는 말마디 많이 사용하기
3.할 수 있는 한 강복 많이 주기
4.집무실 옆 샛노란 사랑 가득한 ‘애기똥풀꽃길’에서 사진 찍어 주기
5.미소짓기
엊그제도 밤늦게 그 먼길 탐스러운 수국을 가득 가져다 성당 꽃꽂이 한 자매가 너무 사랑스럽고 고마워
꽃사진과 더불어 이런 메시지도 보냈습니다.
“자매님이 선물한 수국이네요. 감사합니다.
수국보다 더 예쁘고 아름다운 자매님께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화로우시고 행복하세요.”
언젠가 꽃한송이를 선물한 가난한 자매에게 선물한 사랑의 답시도 생각납니다.
“꽃이 꽃을 가져오다니요. 그냥 오세요. 당신은 꽃보다 더 예뻐요!”
살아있을 때 기도와 회개, 공부와 사랑이지 죽으면 모두가 끝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샘솟는 ‘사랑의 여정’을 살게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5,17).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요셉수도원
5/15(목) [(백) 부활 제4주간 목요일], 되새김 구절
1. “하느님께서는 카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네 동생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마찬가지로 저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이웃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조재형 신부)
2. “우크라이나, 미얀마, 콩고, 수단 등 전쟁과 분쟁 지역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난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여러분이
바로 살아있는 순교자들이며, 여러분이야말로 진정한 돈보스코의 아들들입니다.
이것이 살레시오 수도회입니다.”
때로 억울하고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복음의 길은 낮아지는 길이며, 작아지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승리하는 길이며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는 길입니다.(양승국 신부)
3. 예수님께서는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태 20,28; 마르 10,45) 하시며,
당신의 백성을 섬기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실행하라’고 하십니다.
서로에게 “종이 되어라” 하십니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요한 13,17)
주님!
저희가 서로 발을 씻어주게 하소서.
서로에게 종이 되게 하소서.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선을 알되 행하지 않으면 선이 아니듯, 아는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실천하여 진정 알게 됨이 저의 행복이 되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저절로 사랑은 없습니다.
평생 배워야 하는, 평생 발견하고 깨달아 배우고 노력해야 하는 사랑이요, 부단히 선택하여 훈련하고
습관해야하는 사랑입니다.(이수철 신부)
5/15(목) [(백) 부활 제4주간 목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요한 13,17)
주님!
저희가 서로 발을 씻어주게 하소서.
서로에게 종이 되게 하소서.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선을 알되 행하지 않으면 선이 아니듯, 아는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실천하여 진정 알게 됨이 저의 행복이 되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5월15일(목)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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