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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묵상

[매묵]2025년 5월 16일 금요일[(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매묵]2025년 5월 16일 금요일[(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신부님 강론 4개

입당송

묵시 5,9-10 참조
주님, 주님은 당신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저희를 속량하시어, 하느님을 위하여 한 나라를 이루고 사제가 되게 하셨나이다. 알렐루야.

본기도

자유와 구원을 주시는 하느님,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어
성자의 피로 구원받은 저희가
하느님의 힘으로 살며 영원한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약속을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3,26-33
그 무렵 바오로가 피시디아 안티오키아에 가 회당에서 말하였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27 그런데 예루살렘 주민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죄하여,
안식일마다 봉독되는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28 그들은 사형에 처할 아무런 죄목도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그분을 죽이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하였습니다.
29 그리하여 그분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그들이 그렇게 다 이행한 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모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 뒤에 그분께서는 당신과 함께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이들에게
여러 날 동안 나타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분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32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33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이는 시편 제이편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2,6-7.8-9.10-11(◎ 7ㄷ)
◎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또는
◎ 알렐루야.
○ “나의 거룩한 산 시온 위에, 내가 나의 임금을 세웠노라!” 주님의 결정을 나는 선포하리라.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
○ 나에게 청하여라. 내가 민족들을 너의 재산으로, 땅끝까지 너의 소유로 주리라. 너는 그들을 쇠지팡이로 부수고, 옹기그릇 바수듯 바수어 버리리라. ◎
○ 임금들아, 이제는 깨달아라. 세상 통치자들아, 경고를 받아들여라. 경외하며 주님을 섬기고, 떨며 그분 발에 입 맞추어라. ◎

복음 환호송

요한 14,6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알렐루야.

복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가족이 드리는 제물을 자비로이 받으시고
주님의 도우심과 보호로
저희가 받은 것을 잃지 않고 영원한 선물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부활 감사송 2 <그리스도의 새 생명>
주님, 언제나 주님을 찬송함이 마땅하오나,
특히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위하여 파스카 제물이 되신 이때에,
더욱 성대하게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빛의 자녀들이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났고,
믿는 이들에게 하늘 나라의 문이 열렸나이다.
주님의 죽음으로써 저희가 죽음에서 구원받았고,
주님의 부활로써 모든 이가 새 생명으로 부활하였나이다.
그러므로 부활의 기쁨에 넘쳐 온 세상이 환호하며,
하늘의 온갖 천사들도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로마 4,25 참조
우리 주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부활하셨네. 알렐루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자의 십자가로 저희를 구원하셨으니
주님 사랑으로 저희를 지켜 주시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사진설명: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오늘의 묵상

1.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강론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얼마 전, 제가 작년에 구매한 자동차에 대해서 리콜 서비스를 해 준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차량 전자장치에 문제가 있어서 무상으로 고쳐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엔 “3시간이나 센터에서 기다려야 하나?” 싶어서 조금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센터 측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차량을 맡기시면 사무실까지 모셔다드리고, 수리가 끝나면 다시 모시러 가겠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편리하든지요! 덕분에 저는 무료하게 기다리지 않고, 성당에 와서 업무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감동했던 것은 직원들의 태도였습니다. 약속 시간에 조금 늦었지만, 아무 불평 없이 친절하게 맞아주었고, 언어가 조금 서툴러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었습니다. 고객 관점에서 설명하고, 불편함을 줄이려고 애쓰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 정도의 서비스라면 90점은 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차라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리콜 서비스를 받으면서, 오늘 복음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님은 단순히 방향을 알려주시는 분이 아니라, 직접 우리를 그 길로 이끌어주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죄와 혼란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나라로 데려다주시는 동반자요, 인도자이십니다. 그런데 이 복음 말씀은 단지 개인적인 믿음의 여정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의 사목과 행정의 방식에도 깊은 통찰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친절함, 배려, 경청의 태도는 곧 교회가 신자들을 대하는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새 신자들, 아직 교회가 낯선 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들이 첫발을 디딜 때, 우리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서고, 설명해 주고, 언제든지 도움을 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사를 청하고자 할 때, 신자들이 주저하거나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사제는 늘 환대와 열림의 자세로 있어야 합니다. 고해성사든 병자성사든, 언제든지 괜찮습니다. 오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때로 인생의 리콜을 받습니다. 고장도 나고, 방향을 잃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예수님이라는 ’, 교회라는 센터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고, 다시 출발할 수 있도록 힘을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생활의 방식뿐 아니라, 교회의 사목과 행정의 자세도 돌아봅니다. 신자들에게 친절했는지, 그들의 말에 귀 기울였는지, 어려움이 있을 때 손 내밀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진리입니다. 단지 사실(fact)을 넘어서, 삶을 바르게 인도해 주는 진실(truth)의 본질입니다. 제가 만난 서비스 센터 직원처럼, 우리의 말을 들어주시고, 우리의 상황을 이해해 주시며, 마음을 다해 다가오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인생의 작은 지체, 예기치 못한 오류조차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자동차가 리콜로 더 안전해지고 성능이 좋아졌듯,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면 영적으로 더 깊어지고, 더 건강해지고, 더 생명력 있는 존재가 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단순히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참된 의미의 살아 있음, 곧 영원한 생명을 체험하게 됩니다.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봅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묻습니다. “나는 어떤 길을 따라가고 있는가?” 길을 헤매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도가 아니라 동행자입니다. 우리는 지도를 잃을 수 있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절대로 놓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 인생의 리콜 센터이십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오류가 있을 때, 그분께 돌아가면 우리는 다시 고쳐지고, 다시 살아나고, 다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이 선언을 마음속에 새겨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그 길을 따라 다시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그 길 끝에는 반드시, 참된 평화와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길과 진리와 생명의 모습을 본받아, 우리 교회 공동체도 사랑과 친절, 동행의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교회는 단지 신자들이 오는 곳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곳, 다시 출발하는 곳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분명히, 예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2.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복음요한 14,1-6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정도(正道)입니다!

 

요한 복음 14장~17절에는 예수님의 고별사가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 당신과 일체이자 원천이신 아버지 하느님께로 떠나시면서 우리에게 남기신 고별사인만큼,

아버지로서의 애틋함과 극진한 사랑이 절절이 느껴집니다.

앞으로 당신 없이 이 세상에 남아 살아가야할 우리들에 대한 큰 걱정이 느껴지며, 동시에 우리를 격려하시면서,

흔들림없이 꿋꿋이 살아갈 것을 당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거처로 건너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예수님이시고, 그 거처에서 참된 삶,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보증수표가 곧 당신 자신이라는 말씀입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칼로 자르듯 딱 한 마디로 잘라 말하면,

예수님과 하느님 아버지는 일심동체, 혼연일체, 한마음 한몸이라는 것입니다.

공생활 기간 내내 보여주신 예수님의 삶은 아버지 하느님과의 완벽한 일치를 드러낸 바로 그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곧 하느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았다면 하느님 아버지를 뵌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족례 때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의 떠나가심을 오해했던 것처럼, 필립보 사도 역시 예수님께서 ‘가실 길’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명명백백하게 당신 자신의 정체를 밝히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 아버지를 계시하심을 통해, 당신 친히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정도(正道)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이 세상에 파견하신 하느님 아버지는 사랑이시라는 진리를 우리에게 계시하시고,

동시에 그 사랑을 몸소 체현(體現)하신 이유로 진리 자체, 진리의 화신이 되신 것입니다.

 

결국 진리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완전한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체가 곧 진리입니다.

 

우리 모두 아직은 진리를 완전히 깨닫기 힘든 초심자들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분명히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겸손하게, 그리고 열렬히 성령의 도움을 청해야겠습니다.

 

때가 되면 성령께서는 좁디좁은 우리의 안목을 넓혀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흐려진 우리의 시각을 밝혀주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마치 얼굴 마주 뵙듯이 메시아이신 예수님,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의 진의를 이해하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상을 내 가치관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 내 인생의 유일한 스승이자 주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이 불멸의 진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결국 모순투성이요

결핍투성이인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출처 - 살레시오회 내리피정 센터이야기


3. 이영근 신부님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복음요한 14,1-6


<믿음이 참된 앎의 길>


오늘 복음은 앞 장면에서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요한 13,36)라고 묻는 ‘베드로의 질문’과 ‘세 번 부인하게 될 베드로에 대한 예고’ 다음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요한 14,1-2)

이는 당신이 가시는 곳이 ‘아버지의 집’이라는 것을 말해주며, 동시에 그곳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는 것을 통해 당신이 그곳으로부터 왔다는 것도 함께 밝혀줍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본 바를 말하니’, 아버지를 믿고 또한 당신을 믿으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믿는 이가 그 거처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무리 거처할 곳이 많아도 가서 거주하지 않으면 그 집은 나의 거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미 “나는 잠시 동안만 너희와 함께 있다가,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7,33)고 말씀하셨건만, 이를 알아듣지 못한 토마스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요한 14,5)

이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사실 당신께서 '길'이라는 이 말씀은 엄청난 발언이요, 혁명적 발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길'의 표상은 본디 이집트 탈출의 상징이요, 해방의 길을 표상했으며, 점차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영원한 보상을 위해 제시하는 삶의 방향을 가리켜주는 '율법'에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길'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길'의 의미가 ‘율법’에서 ‘예수님의 인격’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또 당신이 '진리'(áληθεια)라 함은 그 뜻이 ‘감추어진 보물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듯이, 예수님께서는 성부를 완전히 드러내 보여주시는 분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만난 사람은 곧 진리를 발견하고, 성부를 만난 사람이 됩니다. 

또한 당신이 '생명'이라 함은 당신은 단순히 구원에 인도하는 분이 아니라, 당신 자체가 구원의 원천인 ‘생명’이심을 말해줍니다.

곧 당신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요한 6,35)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이미 알면서도 ‘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깨우쳐줍니다.

곧 제자들이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알지 못함은 ‘믿지 않는 까닭’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참된 앎의 길’입니다. 


그저 안다고 해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 그것을 믿을 때라야 그 앎을 알게 됩니다. 
‘앎’은 머리로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믿고서 온 인격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으며, ‘참된 앎’은 그것을 실행할 때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요한 14,1)


<오늘의 말 · 샘 기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 14,6)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발길에 밟히며 아래에서 저를 이끄셨듯이,
저도 형제들 아래에서 그들이 밟고 가는 길이 되게 하소서!
제 주장에 밀려 옳으면서도 져주셨듯이,
저도 형제들에게 져줌으로써 진리의 빚을 밝히게 하소서!
씹히고 부서져 제 속에서 살이 되셨듯이,
저도 형제들 안에서 부서지고 씹혀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이제 더 이상은 제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4.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5.5.15.목요일 성 파코미오 아빠스(297-347) 기념일
스승의 날, 세종대왕 탄신일(1397.5.15.-1450.4.8.) 


사도13,13-25 요한13,16-20


배움과 섬김의 여정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자 주 예수님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하리라.
 내 입으로 그 진실하심을 대대에 전하리라.”(시편89,2)


오늘은 스승의 날이자 세종대왕 626돌 탄신일입니다.
올해부터 세종대왕 탄신일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여러 문화행사가 펼쳐집니다.
또 공주수도승의 아버지라 일컫는 이집트의 ‘성 파코미오 아빠스 기념일’이며,
요셉 수도원의 최종근 파코미오 원장 신부의 영명축일이기도 합니다. 


5월 성모성월, 부활시기에 맞이하는 참으로 경사스런 날입니다.
얼마전 스승의 날을 앞두고 수도원을 방문하여 옛 제자들이 불러줬던 스승의 날 노래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입니다.
‘스승’대신 영원한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님’을 넣어 불러도 잘 어울리는 노래 가사입니다.
오늘 옛 현자의 스승에 대한 가르침도 좋은 도움이 됩니다.


“참된 스승은 제자를 통해 다시 배운다. 고전의 가르침을 통해 제자와 스승은 함께 자란다.”<다산>


저는 스승이 없다 탄식하지 않습니다.
인류역사상 보고 배울 스승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오늘 기념하는 성 파코미오 아빠스도, 세종대왕도 배울 스승이요, 제 수도공동체는 물론
주변에서 보고 배울 스승은 참 많습니다.


다산 정약용 역시 참 좋은 스승이 됩니다.
평생 보고 배워야 할 배움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 믿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갈망, 배움에 대한 사랑은 수도자는 물론 영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기본적 필수 조건입니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게 되니(온고지신;溫故知新) 스승은 할만하다.”<논어>


역시 참 스승 공자다운 말씀입니다.
오늘 세종대왕 탄신일을 맞이하여 시간되는 대로 세종대왕 평전을 다시 대략 읽어 보려합니다.
평전 뒷 표지에 소개된 글도 좋았습니다. 


“무엇이 세종의 진실인가? 세종은 비굴한 사대주의자도 아니고, 배타적 민족주의자도 아니다.
국제주의와 민족주의를 배합시킨 그 중간에 그의 정체성이 자리잡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국제사회와 개방적인 자세로 교류하여 공동번영을 꿈꾼
이상주의자이면서 현실주의자, 바로 그 자리에 그는 우뚝하게 서있다.”


민족의 스승이라 해도 손색이 없으며 오늘날 같은 혼돈의 시대, 이런 스승같은 지도자가,
대통령이 출현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듭니다.
세종의 업적중 제일은 아마도 애민사상(愛民思想)의 결정체인 한글창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세종의 사람됨에 대한 조선왕조실록의 세종편에 나오는 내용도 스승됨에 부족함이 없다 생각됩니다.


“영민하고 총명했으며 강인하고 과감했다. 무거우며 굳세었고 점잖고 두터웠다.
크고 너그러웠으며 어질고 사랑이 많았다. 공손하고 검소하며 효도하고 우애함은 태어날 때부터 그러했다.”


예수님의 제자로도 손색이 없어 보이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 세종대왕입니다.
참고로 저는 전주이씨 ‘영해군’파 18대손에 속하는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영해군에 관한 간략한 소개도 좋았고
스승처럼 생각되어 나눕니다.


“세종대왕의 9남이며 어머니는 신빈 청주김씨이다.
어렸을 때부터 너그러웠고, 자라면서는 덕의와 절의가 있어 스승과 공부할 때는 화려함을 기뻐하지 않았다.
후손들에게 관인대도(寬仁大度;마음이 너그럽고 인자하며 도량이 큼)와 검소질박(儉素質朴;수수하고 꾸미지 않음)의
본을 보여 주었다.”


정말 매력적인 인품입니다.
부친인 세종대왕은 물론 주위의 훌륭한 스승들에게 보고 배웠음이 분명한 스승이자 어른인 영해군입니다.
참으로 주변에는 보고 배워야 할 스승이 무궁무진합니다.
평생 ‘배움의 여정’에 항구함이 인간의 본분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매일 강론 역시 공부하는 마음으로, 배우는 마음으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씁니다.
배움을 좋아한 호학(好學)의 공자도 좋은 모범이 됩니다.
그러나 스승중의 스승은 오늘 복음의 예수님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바로 이 앞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다음 예수님의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것처럼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한마디로 스승이자 주님인 예수님을 닮아 섬김의 사랑 실천에 항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제자들의 특징은 배움과 섬김 두 말마디로 요약됨을 봅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은혜롭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은 물론 이웃 누구나 다정하고 친절히 환대하는 이는 자신은 물론 하느님을 환대하는 것이라는
놀라운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환대를 추가하여 “배움-섬김-환대”로 요약되는 주님의 제자다운 삶이겠습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예수님은 물론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의 사도 바오로입니다.
바오로의 눈부신 치열한 선교활동은 그대로 주님 사랑과 섬김의 표현입니다.
회당에서 우선 동포인 유다인 신자들에게 설교한후 스승이자 구원자 예수님을 결론으로 나눕니다.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요한이 다음처럼 고백한 그분 예수님입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참으로 멋진 겸손한 제자, 세례자 요한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제자일 때 주님을 닮아 훌륭한 스승도 될 수 있겠습니다.
좋은 제자이자 스승으로서의 자질에 겸손을 추가하여 “배움-섬김-환대-겸손”의 수행자와
구도자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배움과 섬김, 환대와 겸손'의 제자되어 살게 하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출처 - 요셉수도원


5/16(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되새김 구절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이 선언을 마음속에 새겨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그 길을 따라 다시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그 길 끝에는 반드시, 참된 평화와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길과 진리와 생명의 모습을 본받아, 우리 교회 공동체도 사랑과 친절, 동행의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교회는 단지 신자들이 오는 곳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곳, 다시 출발하는 곳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분명히, 예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조재형 신부)

 

2.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의 진의를 이해하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상을 내 가치관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 내 인생의 유일한 스승이자 주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이 불멸의 진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결국 모순투성이요

결핍투성이인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 것입니다.(양승국 신부)

 

3. ‘믿음이 참된 앎의 길’입니다. 

그저 안다고 해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 그것을 믿을 때라야 그 앎을 알게 됩니다. 
‘앎’은 머리로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믿고서 온 인격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으며, ‘참된 앎’은 그것을 실행할 때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요한 14,1)

<오늘의 말 · 샘 기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 14,6)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발길에 밟히며 아래에서 저를 이끄셨듯이,
저도 형제들 아래에서 그들이 밟고 가는 길이 되게 하소서!
제 주장에 밀려 옳으면서도 져주셨듯이,
저도 형제들에게 져줌으로써 진리의 빚을 밝히게 하소서!
씹히고 부서져 제 속에서 살이 되셨듯이,
저도 형제들 안에서 부서지고 씹혀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이제 더 이상은 제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게 하소서!
아멘.(이영근 신부)

4. 참으로 멋진 겸손한 제자, 세례자 요한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제자일 때 주님을 닮아 훌륭한 스승도 될 수 있겠습니다.
좋은 제자이자 스승으로서의 자질에 겸손을 추가하여 “배움-섬김-환대-겸손”의 수행자와
구도자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배움과 섬김, 환대와 겸손'의 제자되어 살게 하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아멘.(이수철 신부)

 

 

5/16(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오늘의 기도

 

복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오늘의 말 · 샘 기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 14,6)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발길에 밟히며 아래에서 저를 이끄셨듯이,
저도 형제들 아래에서 그들이 밟고 가는 길이 되게 하소서!
제 주장에 밀려 옳으면서도 져주셨듯이,
저도 형제들에게 져줌으로써 진리의 빚을 밝히게 하소서!
씹히고 부서져 제 속에서 살이 되셨듯이,
저도 형제들 안에서 부서지고 씹혀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이제 더 이상은 제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게 하소서!
아멘.

 

- 2025년 5월16일(금) 7시5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