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없었던 양조장 자랑
역사적으로 뜻 깊은 곳을 찿아 주기적으로 답사하는 모임이 있다. 이번 11월 중에도 답사 여행을 떠났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단풍과 함께 소슬하고 고즈넉한 정취를 풍기는 아름다운 고장에서, 역사의 향기도 느끼며 진지하고 찬찬하게 우리나라의 다양한 풍속과 생태환경을 이해하는 유익한 답사 길이었다. 총 35명의 인원이 참가했고, 평균 연령대는 60대쯤 이며 여성회원이 보다 많은 구성을 이루고 있었다. 아침 7시30분 분당에서 출발하여 스케줄에 따라 이곳 저곳을 탐방하고 오후 4시 되돌아오는 하루 코스 일정이었다.
답사 마지막 스케줄은 오후 3시30분에서 4시까지 막걸리 양조장 탐방이었다. 이 양조장은 80년 된 목조건축 발효실과 왕겨가 자랑이라고 했다. 잣나무와 전나무로 지어진 목조건축물이 현재 ‘등록문화재’로 기록되어 있으며 3대째 가업을 승계하고 있다고 한다. 변화가 빠른 요즘 같은 세상에 3대세습을 유지하면서, 80년된 왕겨를 아직도 활용하고 있으며, 80년된 목조건축물에서 옛날 방식으로 술을 빚고 있다는 점은 자랑 할 만하다. 세심한 손길로 관리되어 왔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옛것을 고수하면서 계속 연구하여 우리의 술 ‘막걸리’를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그런 경지에 도달했으면 하는 염원 역시 탐방객 모두가 원하는 바이고 응원 및 격려를 아낌없이 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었다.
하지만 손님맞이 시스템은 체계가 잡히지 않은 주먹구구식 이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하지 않는가. 손님을 배려하는 정신-마인드가 결여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스마트한 소비자, 감성소비, 감동서비스란 말이 떠도는 시대 아닌가? 스케줄로 보면 3시30분에서 4시까지 30분 일정이었는데 4시30분 일정이 끝났다. 예정했던 계획시간의 2배를 넘어 버린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3시15분에 도착했으니 1시간15분이나 걸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손님 대접’을 제대로 받았다면 2배를 넘는 시간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3시15분 양조장 교육관에 도착하여 3대승계자인 남자사장으로 부터 20분 가량 양조장 홍보를 들었다. 과거연혁, 현재상황, 미래의 포부 까지 장황하게 들었다. 그 이후 음식이 세팅되어 나왔다. 우리 식탁에 9명의 인원이 앉았는데, 막걸리 3병과 김치전 3개가 나왔다. 다른 곳도 거의 비슷하다. 맛없고 성의없는 김치전에 간장소스도 내놓지 않는 무례(?)에 자존심의 상처를 받았으나 먹으러 온 것이 아니므로 담소하며 시식을 시작했다.
그런데 사장부인이 또 다시 비슷한 내용의 홍보를 마이크를 들고 숨도 쉬지 않는 사람마냥 계속 말하는 것 이었다. 무려 30분은 한 것 같았다. 이미 예정된 시간은 지났고, 식탁위의 안주도 떨어지고 술도 떨어졌건만 리필의 기미는 보이지 않은채…… 안주는? 술은? 더 드릴까요. 하는 립서비스도 없이…… 자기네 양조장 자랑을 끊임 없이 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부인의 이야기는 5분쯤 후 부터는 앞의 사람이나 들었을까 거의 모든 사람이 듣지 않았다) 결국 손님 중 한분이 “안주 없는데요. 술 없는데요.” 하고 말하는 자구책(?) 후에 술과 강냉이를 약간 구할 수 있었다.
요즘 아줌마들 계모임에서 강아지 자랑이 시작되면 3만원, 손주 자랑이 시작되면 10만원을 헌납하고 자랑하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만큼 남의 자랑 듣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생긴 일화인데 쌍방통화도 아닌 일방통행으로 들어주어야 하는 고역을 치르다 예정시간의 2배의 시간을 소비하니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다. 막걸리값으로 1인당 5000원의 회비도 지불했는데 돈주고 소음공해에 시달린 느낌이다.
물론 나의 잘못도 있다. 일방적인 사장부인의 홍보(연설?)에 스스로 말없이 뒷짐지고 있었으면서 비겁하게 뒷담화나 하니 말이다. 변명을 하자면 쉬지 않고 말하는 연설(?) 중간에 불쑥 나서서 말하는 것이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므로, 혹은 점잖은 나의 이미지 관리 때문에, 대처방법을 찿지 못했다고 나름대로 이유를 대본다.
앞으로 나의 과제는 이와 같은 부당한 일에 점잖은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방통행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유효적절한 전략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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