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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정릉 경국사-닉슨대통령이 방문했다고 함

 

삼각산 경국사 일주문

 

삼각산 경국사 일주문 기둥

 

삼각산 경국사 극락교 가설 기념비

 

삼각산 경국사 석등

 

삼각산 경국사 자운대율사 사리탑비

 

삼각산 경국사 부도비

 

삼각산 경국사 불교대사림 편찬발원문 기념비

 

삼각산 경국사 사적비문

 

삼각산 경국사 수각위 삼존불

 

삼각산 경국사 입구

 

삼각산 경국사 만월당

 

삼각산 경국사 관음성전 1

 

삼각산 경국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안내문

 

삼각산 경국사 목 관음보살상 좌상 안내문

 

삼각산 경국사 : 성북구의 아름다운 나무-보리수나무'

 

삼각산 경국사 : 성북구의 아름다운 나무- 보리수나무 안내문

 

삼각산 경국사 관음성전 2

 

삼각산 경국사 만월당 1

 

삼각산 경국사 만월당 2

 

삼각산 경국사 관음성전 3

 

삼각산 경국사 관음성전 4 편액과 주련

 

삼각산 경국사 요사채 삼성전

 

삼각산 경국사 명부전

 

삼각산 경국사 극락보전과 삼성전

 

삼각산 경국사 극락보전 정면

 

삼각산 경국사 삼성보전과 범종각

 

삼각산 경국사 범종각 범종

 

삼각산 경국사 범종각 목어

 

삼각산 경국사 범종각 법고

 

삼각산 경국사 동종

 

삼각산 경국사 내 전경

 

삼각산 경국사 영산전 1

 

삼각산 경국사 영산전 2

 

삼각산 경국사 산신각

 

삼각산 경국사 천태성전

 

삼각산 경국사와 주변 아파트단지

 

삼각산 경국사 : 성북구의 아름다운 나무-소나무

 

삼각산 경국사 일주문 후면

  

2011-12-05 정릉 경국사 답사   

1. 교통편

    분당 효자촌 9403번 승차 - 숭인동 하차 - 그 자리에서 1014번 승차 정릉4동 대림아파트 하차, 정릉3차 힐스테이트아파트 후문

    횡단보도 건너 도로 따라 걷고 좌측에 서경대학교보며 힐스테이트Apt 화강암 돌담 따라 걷다 좌회전 하여 도로로 나와 시골집의 

    메밀콩국수 간판보고 들어갔는데, 겨울이라 없다고 하여 순대국(7000) 먹음.

    식사 후 힐스테이트Apt 정문 앞으로 오니 경국사 보임

 

 

2. 경국사

    1) 극락교~ 다리 아래 개천인데 붉은빛 띠고 검은 점 박힌 화강암 바위가 많음

    2) 삼각산경국사(三角山慶國寺)

        일주문, 용틀임 조각의 돌기둥이 두껍고 힘차 보이고 지붕단청 화려함

3. 돌 깔린 길이 꽤 길은데, 좌측에 극락교가설기념비있고, 조명석이 양쪽으로 길따라 일정 간격으로 있는데, 기증자 이름을 새겨 넣었

    음

4. 경국사사적비, 자운대율사탑비, 보종대사사리탑, 보종대사탑비~자운대사 사리탑은 종모양, 보종대사 사리탑은 2층팔각지붕에 구형

    임~책을 펼친 조각품 ‘불교대사임편모발원문이라고 쓰였다

5. 남무지장선불, 남무아미타불, 남무관세음보살~ 돌에 이름새기고 그 앞에 작은 불상 놓았음. 지장선불은 긴 지팡이, 아미타불은 꽃봉

    오리, 관세음보살은 두 손합장임

6. 보리수 나무 : 성북구의 아름다운 나무, 푸른 이끼 많고, 버드나무 수피 비슷

    소나무 : 성북구의 아름다운 나무, 수령300, 키가 큼

7. 앞쪽으로 관음성전, 칠성전, 환희당 있음

8. 중앙으로 명부전과 운산전, 극락보전, 삼성보전, 범종각~ 극락보전 돌계단 4개의 난간 용조각

9. 경국사목각아미타여래상~보물 제748호 조선시대, 경국사목각관음보살상~유형문화재 제248호 숙종29

 

답사소감은 절이 오래된 느낌은 별로 안 들었음. 절의 규모가 큰 편은 아니라는 느낌.

   극락교 아래 개천 따라 담이 길고 그 위에 지붕  이 기억에 남음. 수령 300년 소나무는 젊게 느껴졌음. 보리수나무가 관목이 아니라

   교목이므로 관찰 요망됨.

 

경국사(慶國寺) 연혁 1

유형              : 유적

시대              : 고려

성격              :

건립시기/연도 : 1325(충숙왕 12)

정의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3동 삼각산에 있는 절.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본사 조계사(曹溪寺)의 말사(末寺)이다. 1325(충숙왕 12) 율사 정자(淨慈)가 창건하여 청암사(靑巖寺)라 하였고, 1330년경 무기(無寄)가 머물면서 천태종(天台宗)의 교풍을 크게 떨쳤으며, 1331년 거사 채홍철(蔡洪哲)이 선방을 증축하여 선승들의 수도를 적극 후원하였다.

1352(공민왕 1) 금강산 법기도량(法起道場)을 참배하고 남하한 인도 승려 지공(指空)이 주석(住錫)한 뒤부터 고승대덕의 수도처이자 호국안민을 위한 기도도량으로서 전승되었다. 1507(중종 2) 억불정책으로 법당을 비롯한 모든 건물이 퇴락된 채 빈 절로 남아 있다가, 1545년 왕실의 도움으로 중건되었다.

1546(명종 1) 명종의 즉위로 문정왕후가 섭정하게 되자, 왕실의 시주로 건물을 전면 중수하고 낙성식과 함께 국태민안을 위한 호국대법회를 열었다. 그 때 부처님의 가호로 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항상 있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경국사라 개칭하였다.

그 뒤 1693(숙종 19) 승성(昇誠)이 건물을 중수하고 천태성전(天台聖殿)을 신축하였으며, 1737년 의눌(義訥)이 주지에 취임하였고, 1793년 태흘(泰屹)이 크게 중수하였다.

1842(헌종 8) 한국불교 계맥(戒脈)의 중흥조인 낭오(朗旿)가 관음전을 신축하였다. 1864(고종 1) 왕의 등위축재(登位祝齋:왕의 등극을 축하하는 기도)를 열었고, 1868년 호국대법회 개설과 함께 삼성보전과 산신각을 신축하였으며, 왕실에서는 종을 희사하기도 하였다.

1878년 치능(致能)이 예조의 도움으로 각 요사를 중수하고 김대비(金大妃)의 사십구재를 지냈으며, 1915년에는 석찰(錫察)이 극락보전을 중수하였다.

1932년 이원우(李元雨)의 시주로 반야교(般若橋)를 중수하였고, 1921년에는 단청과 탱화의 대가인 보경(寶鏡)이 주지에 취임한 뒤, 1979년까지 퇴락된 건물을 중수하여 한국불교의 모범 사찰로 변모시켰다. 창건 이래 한국 계율의 맥을 이어 온 도량이며, 정토사상에 바탕을 둔 기도도량으로서도 대표적인 사찰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보전·영산전·명부전·관음전·삼성보전·천태성전·산신각·봉향각·시방선원(十方禪院부림정사·동별당·요사 등 17동의 건물이 있다.

그 가운데 극락보전에는 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하여 보물 제748호로 지정된 목각탱화 및 신중탱화·팔상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으며, 시방선원에서는 매주 일요일에 일요선방이 개설되고 있다.

주변 산세가 묘하고 약수가 있어 참배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서울 주위의 대표적인 사찰로 이승만(李承晩)이 대통령 시절 자주 찾던 곳이며, 부통령시절에 방한 했던 미국의 닉슨(Nixon,R.M.)은 그의회고록에서, 이 절에 참배했던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것과 함께 사진을 수록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韓國寺刹全書-(權相老, 東國大學校 出版部, 1979)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경국사(慶國寺) 연혁 2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삼각산 동쪽 기슭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고려 충숙왕 12(1325) 자정율사가 창건하여 청암사라 하였는데, 절이 청봉 아래에 위치해 있어 청암사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충혜왕 1(1991) 채홍철이 요사채를 증축, 스스로를 종봉거사라 칭하고 건방을 열어 많은 선승과 함께 수도하였다. 그러던 것을 조선 인종 1(1545) 조선왕실의 도움으로 증건이 이루어 지고, 다음해인 명종 1(1546)에 가서는 문정왕후가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대대적인 중창 불사가 이루어졌다. 명종 5(1549)에는 문정왕후가 국가에 경사가 끊이지 않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경국사(慶國寺)라고 사명을 바꾸었다. 당시에는 서울에서 가장 인접한 호국기원도량이었는데 문정왕후가 승하하자 이 곳에서 국재(國齋)를 지냈으며, 선조 25(152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이 곳에 구국승병을 이끌고 와서 머물며 총지휘를 하기도 했다.

숙종 19(1693) 연화선사, 승성스님이 중수하고 천태각을 지었으며, 영조 13(1737) 주지인 의눌스님이 중수, 현종 8(1842) 낭오스님이 중수 증축해 국재(國齋)를 치르는 대찰이 되었다.

고종 1(18464) 고종의 등위재(登位齋)를 갖고, 1868년에는 기울어지는 국운을 염려하여 칠성각, 산신각을 짓고 대법회를 열었다. 1915년에는 극락보전 중수가 이루어졌는데, 1921년에는 탱화 ∙ 단청에 조예가 깊은 보경스님이 주지가 되어 자비로 중수하고, 영산전 ∙ 산신각 등을 단장하여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보경 보현스님으로 인해 경국사는 현대사에 있어 크게 부각이 되었는데, 스님은 1921년 주지가 된 후 60년 간을 절에서 떠나지 않았고, 단청과 불화 조성에 일가를 이루었던 분이다. 현재 경국사의 영산전과 명부전, 삼성보전 등의 전각에는 보경스님이 직접 그리고 조성한 불화와 불상이 많이 남아 있다. 또한 전등사와 낙산사, 삼막사, 연주암, 보신각, 경회루 등에도 보경스님의 손길이 거쳐 갔다.

또 스님은 교학과 선지를 두루 익히고 계율에도 철저하여 승가의 귀감이 되기도 하였다. 일제 통치하에 민복자주독립운동에 앞장 섰던 33인 중 불교계 대표였던 용성 용운 두 스님이 이 곳에서 주석하며 정진했다.

1950년대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경국사에 들렀다가 보경스님의 인격에 감화되어 몇 차례나 찾아왔고, 참다운 승가의 모범이 이곳에 있다고 칭송했다. 그래서인지 1953년에는 닉슨 미국 부통령이 방한 하였을 때도 한국 문화의 참모습이 이곳에 있다고 하여 참배하기도 했다. 후일 닉슨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경국사를 참배했던 것을 한국방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근래에는 한국불교계의 대표적 학승이면서, 대한불교조계종 제32대 총무원장 지관스님(2012년 1월 2일 입적)이 1979년부터 주석하시면서 활발한 포교 활동과 절의 내실을 다지기도 랬다. 현재 경국사의 모습은 지관시님의 노력에 힘입어 이룩된 것으로 예전에 비해 한층 더 빛을 내고 있다.

이렇듯 경국사는 자정국존의 창건 아래 엄격한 계율을 지켜온 고승 대덕의 수행지였다. 근래 심운, 보경, 지관, 청수, 능관, 세민, 효광, 대운, 종본, 종근스님이 주지로 주석하였으며 현 주지 정산스님과 사부 대중의 원력으로 도량을 정비하여 서울시민의 쉼터로 자리 잡도록 하였으며, 승가의 참모습을 간직한 곳으로 만인에게 두고두고 기억되는 사찰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극락보전 안에는 보물 제748호로 지정되어 있는 목각탱과 신중탱화 팔성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명부전에는 11세기경 중국 요나라 때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철조관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외에 석조물로는 자운율사사리탑, 화원이면서 경국사 주지를 지냈던 보경스님의 사리탑과 행적비, 경국사사적비 등이 있다.

특히 주변 경관이 수려하고 약수가 있어 참배객이 끊이지 않으며, 창건 이래 한국불교 계율의 맥을 이어온 표본적 도량이다. 당우는 현재 17동이 있는데, 풍남이 쓴 약 600자의 『천태성전 상량문』도 색다르다.

[출처 :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 / 도선사 주지 선묵 혜자 지음]

 

사진 : 니콜라이

글    : 수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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