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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

고종의 양력 채택

 

조선의 제26대 임금인 고종황제

 

1895(고종 32)1117일을 1896(건양 원년) 11일로 정하며 양력으로 바꾸다

 

1895년의 고종실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1116일까지의 기록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개씩의 기사가 실리는 실록인데, 어떻게45일치의 기록이 통째 빠져 있는 걸까?

 

그 해답은 바로 전날인 1115일자의 고종실록에 나온다. 그날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단발령을 시행하며, 개국 후 줄곧 사용했던 중국의 연호를 버리고 주체적으로 건양이란 연호를 사용한다고 되어 있다.

 

정월 초하루를 이미 고쳐 태양력을 쓴다는 내용도 나온다. 이는 그때부터 음력을 버리고 양력을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음력 18951116일의 바로 다음날이 양력 189611일이 된 것이다. ‘건양(建陽)’이란 연호는 양력을 새로 세운다는 뜻이다.

 

첫 양력 설을 맞은 189611일자의 고종실록을 보면 음력 을미년(1895) 1117이라는 표시와 함께 각부 대신들과 각국의 공사들이 고종에게 새해 문후를 하였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런 칙령이 내려진 것은 친일파인 김홍집 내각의 을미개혁으로 인해서였다. 당시 일본은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김홍집 내각을 앞세워 조선의 사회체제를 일본과 동일하게 만들려고 이런 개혁을 추진했다.

 

 

자두나무~ '오얏나무'라고도 하며 조선왕실의 꽃이라고 하여 독립문 등에 그 문양이 그려져 있다

 

자두나무~ '오얏나무'라고도 하며 조선왕실의 꽃이라고 하여 독립문 등에 그 문양이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