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제26대 임금인 고종황제
1895(고종 32)년 11월 17일을 1896년(건양 원년) 1월 1일로 정하며 양력으로 바꾸다
1895년의 고종실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11월 16일까지의 기록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개씩의 기사가 실리는 실록인데, 어떻게 약 45일치의 기록이 통째 빠져 있는 걸까?
그 해답은 바로 전날인 11월 15일자의 고종실록에 나온다. 그날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단발령을 시행하며, 개국 후 줄곧 사용했던 중국의 연호를 버리고 주체적으로 건양이란 연호를 사용한다고 되어 있다.
또 “정월 초하루를 이미 고쳐 태양력을 쓴다”는 내용도 나온다. 이는 그때부터 음력을 버리고 양력을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음력 1895년 11월 16일의 바로 다음날이 양력 1896년 1월 1일이 된 것이다. ‘건양(建陽)’이란 연호는 양력을 새로 세운다는 뜻이다.
첫 양력 설을 맞은 1896년 1월 1일자의 고종실록을 보면 “음력 을미년(1895년) 11월 17일”이라는 표시와 함께 “각부 대신들과 각국의 공사들이 고종에게 새해 문후를 하였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런 칙령이 내려진 것은 친일파인 김홍집 내각의 을미개혁으로 인해서였다. 당시 일본은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김홍집 내각을 앞세워 조선의 사회체제를 일본과 동일하게 만들려고 이런 개혁을 추진했다.
자두나무~ '오얏나무'라고도 하며 조선왕실의 꽃이라고 하여 독립문 등에 그 문양이 그려져 있다
자두나무~ '오얏나무'라고도 하며 조선왕실의 꽃이라고 하여 독립문 등에 그 문양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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