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
아이들이 울고 있다
난 그 아이들을 달랜다 빨갛게 울고 있는 것들을 아니 노랗게 우는 것들을 그러나 내 노력 효험 없어 꽃밭 더 시끄러워지고
자전거 세우고 소녀 한 명이 내린다 여기저기 기웃기웃하더니 튤립 한 송이 꺾는다 아이들 울음이 뚝 그친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 애증은 저 꽃밭에서부터 출발한 것이고 내 사춘긴 그 소녀 자전거에서 내린 것
소녀가 다시 자전거에 오른다 아이들도 다시 울기 시작한다
―김영남(1957~ )
| |
조선일보/가슴으로 읽는 시(2012.4.14) 이다. 장석남 시인이 시평을 썼다.
제 가진 붉음 다해 핀 튤립, 제 가진 노랑 다해 핀 튤립, '울금화(鬱金花)'라고도 하던가. 감정이 기진하면 울음이 되던가. 가슴이 벅차도 울음이 되던가. 존재 전부가 울음인 아름다운 꽃들, 우리는 한때 그러한 꽃이었던 것이다. 꽃밭 같은 마음, 꽃밭 같은 몸뚱어리, 그것을 달래지 않고서야 세상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을 달래는 일이 일생의 과제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 곁으로 한 소녀가 왔다. 그뿐이다. 그러나 존재 전체를 다해 울던 울음도 그칠 만한 순간이다. 딱 하나만 꺾어 들고 소녀는 갔다. 그뿐이다. 수많은 애욕(愛慾)이 다시 울기 시작한다. 우리는 끝내 찬란히 달랠 수밖에는 없다. 도(道)를 닦는다는 말이다.
튤립의 울음이 애욕...소녀가 오니 울음이 뚝 그치고, 소녀가 가니 다시 울기 시작한다...^-^ | |
김영남 시인
출생1957년
출생지 대한민국 전남 장흥군
데뷔199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정동진역' 등단
경력중앙대학교 기획조정실에 근무
< 정동진驛 >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
그 마을에 가면
정동진이라는 억새꽃 같은 간이역이 있다.
계절마다 쓸쓸한 꽃들과 벤치를 내려놓고
가끔 두 칸 열차 가득
조개껍질이 되어버린 몸들을 싣고 떠나는 역.
여기에는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이 있고,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을 다는
아름다운 천정도 볼 수 있다.
강릉에서 20분, 7번국도를 따라가면
바닷바람에 철로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와
푸른 깃발로 열차를 세우는 驛舍,
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