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0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오늘은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시어 하느님과 함께 믿는 이들을 지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또한 우리도 복음의 사도가 될 것을 다짐하며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오시면 그들은 성령의 힘을 받아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신다. 이로써 성령과 교회의 시대가 시작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게 될 은총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그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기도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신다. 믿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표징이 따를 것인데, 이는 주님께서 믿는 이들과 함께 계시다는 표시이다(복음).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1-11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1,17-23 <또는 에페 4,1-13 또는 4,1-7.11-13>
복음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의 끝입니다. 16,15-20
영성체 후 묵상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곁에 계십니다. 동시에 하느님처럼 우리 곁에도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우리에게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용감한 복음의 증인으로 변화시켜 줄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이 성찬으로 세상에서 바로 하느님을 만나게 하셨으니, 저희가 하늘 나라를 그리며 거룩하게 살아 마침내 하느님 곁으로 오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오늘의 묵상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인 러시아의 유리 가가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구는 푸르다. 그리고 너무도 아름답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도 하느님은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미국의 우주인 암스트롱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지구가 우연만으로 이만큼 아름답게 만들어질 수는 없다. 나는 우주에서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얻었다.” 이처럼 같은 사실이라도 보는 시각과 믿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가가린은 우주의 공간적인 외면만 본 것이고, 암스트롱은 우주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손길과 섭리를 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습니다(사도 1,9). 여기서 말하는 하늘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머리 위의 공간적인 하늘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영역, 곧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이 하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오르심으로써 인간 세계와 하느님의 영역에 사다리를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 승천 대축일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일정한 장소와 때에 갇혀 계시지 않게 되셨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분이 되셨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거룩한 곳, 하느님의 영역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입니다. 이 순례의 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동행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험난한 곳을 만나 건너기 힘들 때 예수님께서는 다리가 되어 주십니다. 그리고 오르기 힘든 삶의 고통을 만날 때 사다리가 되어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 암스트롱은 우주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손길과 섭리를 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분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동행하고 계시고, 다리가 되어 주시고, 사다리가 되어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저희가 하늘 나라를 그리며 거룩하게 살아 마침내 하느님 곁으로 오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명동성당 내부 십자가의 길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니다
날마다 놀라운 날
-영혼의 양식-
모든 날은
그날의 놀라움을 안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보거나
듣거나 느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때만
우리에게 다가 온다.
그것이 우리에게 슬픔으로 오든,
기쁨으로 오든 그날그날의 놀라움을
겁내지 말고 받아들이자!
그것이 우리 가슴에 새로운 자리를
열개 해, 거기서 새 친구들을 환영하고
더불어 나누는 인간관계를 즐기게 할 것이다.
"살며 춤추며"(5)
헨리 나웬 신부 지음.
유웅열 신부님 글 올림.
집 떠나기
-여기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
오랫동안 나는,
"내 이름을 위하여
네 아버지, 어머니, 형제, 누이들을 떠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이 말씀이
가족을 떠나 결혼하지 않고,
수도원에 들어가든지,
아니면 선교사가 되어 먼 나라로
가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지금도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그렇게 하는 사람들한테서 격려와 영감을
받는 건 사실이지만,
이제 나이를 먹어가면서
'떠나라'는 말에 더 깊은 뜻이 있음을 깨닫는다.
나는 우리의 정서 생활이
부모, 형제, 누이들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는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때때로 그 영향이 너무 커서
성년이 되어 부모 곁을 떠난 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정서적으로 묶인 사람들을 본다.
최근에 나는 여전히 아버지가 바뀌기를,
그래서 좀 더 친절한 아버지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나를 보았다.
또한 많은 친구가 어린 시절
가족관계에서 생겨난 분노, 앙심, 환멸 같은
감정의 족쇄에 묶여 있는 것을 보았다.
부모와 떨어져 산 지 오래되고,
심지어 부모가 세상을 떠났는데도 집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한테서 학대받은 희생자라고 생각할 수록
더욱 그렇다.
그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 아픔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이런 뜻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와 누이들을
'떠나라'는 예수님의 초대는 참으로 새롭다.
우리는 과연,
'주님의 초대'에
선뜻 응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과거에 얽힌
정서적 족쇄에서 자신을 풀어놓을 수 있는가?
그럴 의지가 있는가?
우리는 정서적*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위해
먼저 이 물음과 씨름을 해야 한다.
"살며 춤추며"(6)- 2012년6월9일
헨리 나웬 신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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