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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강론

2012년 5월 21일 [(백) 부활 제7주간 월요일(교육 주간)]/ 살며 춤추며(3)(4)

2012년 5월 21일 [(백) 부활 제7주간 월요일(교육 주간)]

 

톨스토이의 고백

 

말씀의 초대

에페소에는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바오로가 그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셨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이별을 앞두고 “내가 세상을 이겼다.” 하고 말씀하신다. 제자들이 앞으로 세상에서 고난을 겪게 될 것이지만 세상을 이기신 분을 기억하며 고난을 견디어 내라는 격려의 말씀이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이 믿게 되었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9,1-8

복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9-33

오늘의 묵상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귀족 출신으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는 많은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존경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그를 만족시킬 수 없었고, 결국 그는 행복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톨스토이는 ‘나의 회심’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전 생애가 변했다. 이전에 욕망하던 것을 욕망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이전에 구하지 않던 것들을 갈구하게 되었다. 나는 이른바 행운의 무지개를 좇아 살았는데 이제야 그 허무함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면서 인생의 참된 행복을 깨닫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고별사를 하시면서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으로, 결국 죽음의 절망으로 빠지게 하는 세상입니다. 이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분은 예수님 이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사람은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믿음이 승리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믿음입니다. 제자들이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 덕분이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 안에서 살며 세상을 성화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행하는 모든 활동은 성화의 길이자 방법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세상에 대하여서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삶입니다.

명동성당 내부 십자가의 길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니다

 

 


모르는 곳으로 옮겨 가기
(영적 발돋음)

 

안전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옮겨 가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비록 그 '안전한 곳'이
우리에게 안전을 제공하지 못하고,

'모르는 곳'이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 누리는
진정한 안전을 약속한다 해도 그렇다.

 

우리는 몸에 익숙한 것을 포기하고
우리가 잡고 있는 것 너머에 계시는 분께
손을 내밀수록 자신의 나약함을 알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비록 환영(幻影)에 대한 우리의 집착이
불완전한 삶으로 이끈다 해도,

사랑에 굴복하는 것은
우리를 십자가로 이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자신을 통제한다는 착각을 버리고
하느님께 손을 내미는 것은 그만큼 영적으로
성숙하다는 표시다.

 

하지만 하느님께 손을 내밀면
모든 아픔과 괴로움에서 해방되리라고
믿는 것 또한 착각이다.

 

오히려 우리가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갈 때도 많다.

 

예수님은,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6,25)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사랑은 고통 속에서
순수해짐을 잊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기에 기도는 달콤하고 쉬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의 깊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편인 기도는,
우리한테서 아픔을 없애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괴롭게 한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곧 괴로워하시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요,

하느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인간의 모든 고통을 하늘 자비가 감싸는 곳으로
들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기도가 우리 중심에서 나올수록
더 많은 사랑과 아픔, 더 많은 빛과 어둠,
더 많은 은혜와 죄, 하느님과 인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중심으로 내려가
하느님께 손을 내밀수록 홀로가 홀로에게,
깊이가 깊이에게,가슴이 가슴에게 말할 수 있다.

 

사랑과 아픔을 발견하는 자리가 바로 그 곳이다.

 

"살며 춤추며" (3)
헨리 나웬 신부 지음.

 


성소(聖所)

-여기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매일의 복음 묵상과 의식을 집중해서 하는

기도문 암송은 우리 내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 내면은

잘 가꾸고 정돈하여야할 성소와 같다.

 

 

기도는 어떤 형식이든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을

만나는 방을 우리 안에 만들어 놓는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뽑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1코린 13,4)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천천히 암송하며 몇 주간을 보내면,

 

그것은 환영(幻影)이 아니라

분명한 형상(image)이었다.

 

 

내면의 방 벽에 붙어 있는 성경말씀으로

나는 기도와 사명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면의 방으로 안내하면서,

 

벽에 붙어있는 말씀이

우리 만남을 인도할 것을 나는 믿고 바란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내면의 방 벽에 붙어 있는 그림을 보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기도와 묵상이 없으면

우리 내면의 방 벽은 텅 비고,

거기서 영감을 받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살며 춤추며"(4)

헨리 나웬 신부 지음.

유웅열 신부님 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