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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강론

2012년 5월 23일 [(백) 부활 제7주간 수요일]/동행 [허윤석신부님]

2012년 5월 23일 [(백) 부활 제7주간 수요일]

 

복음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묵상 ‘삶은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e)'

 

오늘의 말씀

바오로는 에페소의 원로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어떠한 어려움과 박해를 당하더라도 깨어 있으라고 당부한다. 원로들은 모두 흐느껴 울면서 복음 때문에 떠나는 바오로를 배웅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도록 기도하신다. 또한 제자들을 세상의 악에서 지켜 주시고, 그들이 진리로 거룩해지도록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하느님께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굳건히 세우시고 상속 재산을 차지하도록 그것을 나누어 주실 수 있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0,28-38
복음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ㄷ-19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도록 하느님께 청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진리를 위해 몸 바쳐 일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신 이유는 제자들이 세상의 미움을 받으면서도 당신을 따랐기 때문에 참된 기쁨을 누리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미국의 코넬 대학교에서 개구리를 가지고 실험했습니다. 그릇 속에 있던 개구리는 뜨거운 물을 넣으면 본능적으로 뛰쳐나옵니다. 그러나 차가운 물에 개구리를 넣고 서서히 가열하면 개구리는 알아채지 못합니다. 개구리는 물이 끓을 때까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다가 결국 끓는 물에 익어 버리고 맙니다. 이처럼 느리게 일어나는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것을 ‘삶은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e)이라고 말합니다.
현대의 과학 기술은 인간이 점점 편리하고 안락하게 살도록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편리함과 안락함에 젖어 살다 보면 불편하고 힘든 것을 애써서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현실에 안주하게 되고 판에 박힌 일상을 되풀이하며 타성에 젖게 됩니다. 마치 개구리가 서서히 끓는 물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인은 세상 속에 살되 진리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진리대로 살다 보면 어렵고 힘든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에게 받는 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동성당 내부 십자가의 길 제6처- 베로니카가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니다

♬큰개불알꽃(=봄까치꽃)의 학명 '베로니카'가 생각납니다...꽃잎의 무늬가 베로니카를 연상한다는 속설 있다고 합니다...^-^

☞ 카테고리 [꽃말/설화/이야기: 큰개불알풀] 참조...^-^

 


 

동행 [허윤석신부님]

 

 

피정중에 산에 올랐다.

전에 보다 오르기 수월했으나 점심식후 숨이 찼다.

혼자 올랐다. 외로웠다.

그러나 외롭다는 느낌 속에 외롭지 않는 느낌이 올라왔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등산(登山)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나는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인 듯!

 

예수님의

삶의 코드 중에

동행이라는 코드는

예수님의 인성을 잘 나타내는 주제인 듯 생각된다.

 

태어나실 때도

자기 집이 아닌 민박집 소유의 외양간

그 외양간은 민박하는 이들의 가축을 잠시 쉬게 하는 곳이었고

십자가의 죽음에서도 혼자가 아닌 좌우에 강도라는 동료를 두셨다.

 

늘 죄인들의 식탁에 앉아서

그는 술보요 먹보라고 놀림 받았고

간음한 여자 곁에서 앉아 서 무엇인가를 쓰셨다.

결국죄인들 중에 하나로 찍혀서 죽었고 부활하여서도 동행은 계속되었다.

엠마오스로 가는 두제자와 함께 동행했다.

 

현대에 있어서

사제들의 가장 본질적 역할은

바로 이러한 동행이다.

 

머리 좋은 사람보다

마음좋은 사람이 좋고

마음좋은 사람보다 손이 좋은 사람이 좋고

손이 좋은 사람보다 발이 좋은 사람이 좋다는 말이 있다.

 

머리 좋은 사람보다

무엇이든 날 위해 만들어 주는 사람이 좋고 날위해 무엇을 만드는 사람보다

늘 내입장에서 함께 해주는 동행자가 좋다.

늙은 부부가 손잡고 걸어갈 때 참 아름답다.

동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의 삶이 동행이어야 함을 강조하신다.

나혼자 나의 길을 잘 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재수없는 사람이

바로 착한 사마리아가 발견한 강도당한 사람이다.

나 역시 솔직히 재수없는 사람들이 여럿있었다.

 

그런데 내가

사마리아인 역할을 한 것은

깊은 사랑이 아닌 사제로서 차마!”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난 멀었다.

그 착한 사마리아 사람도 혹시 차마 그렇게 한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