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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강론

2012년 5월 25일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이제민 말씀(영성체)

2012년 5월 25일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복음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거듭 물으신 것입니다.

 

말씀의 초대

예루살렘의 수석 사제들과 유다인들의 원로들은 바오로를 페스투스 총독에게 고발한다. 바오로는 재판이 불리하게 진행되자 로마 시민권을 내세워 총독에게 자신은 로마에 가서 재판을 받고 싶다고 상소한다(제1독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이나 물으신다. 이는 베드로에게 사랑의 마음을 깊이 새겨 주시려는 것이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주님의 양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다(복음).

 

제1독서 <이미 죽은 예수를 바오로는 살아 있다고 주장합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5,13ㄴ-21

복음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5-19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고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물으십니다. 그때마다 베드로는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자기 한 목숨을 살리려고 스승을 배반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베드로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베드로는 스승을 배반한 자기 자신이 한없이 밉고 혐오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다시 신뢰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당신에 대한 신뢰를 불러 일깨워 주십니다. 그래서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거듭 물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평소 예수님께 신앙 고백을 자주 해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붙잡히시어 사형 선고를 받으신 뒤에는 ‘나는 그분을 모른다.’며 부인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구체적인 질문을 거듭해서 들은 베드로는 점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다가갑니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예수님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베드로에게 답변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내 양들을 돌보아라.” 하고 당부하십니다. 자기만 살려고 하는 사람,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은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자기를 내어놓는 것이 사랑이며 십자가 죽음 위에 피어난 생명이 부활임을 뒤늦게 깨달은 것입니다.

 

 

 명동성당 내부 십자가의 길 제7처-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니다

 


만남 속으로

 
이제민 지음 

 
하느님을 만나게 해준 사람들

영성체
49일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위해 위령미사를 봉헌하고 자 한 가족이 떡을 해가지고 성당에 왔다. 망인의 자녀를 비롯해 서 손자들까지 왔는데 신자가 아닌 분이 많았다. 영성체 시간이 되자 망자의 아들과 손자가 성체를 영하러 제단 앞으로 나왔다. '신자 아닌 게 아니구나' 생각하며 성체를 나누어 주었다. 그러 자 신자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잠시 후 한 자매가 제단으로 향하는 내게 달려와 "저 사람들은 신자가 아닙니다." 하고 고한다. 순간 저 사람들이 우리 신자들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무안하고 불안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자매에게 조용히 그냥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말하고선 아무 일 없었던 것 처럼 미사를 계속했다. 미사를 끝내고 나오는데 그 자매가 다시 내게 와서 다소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신부님, 저 사람들이 신자가 아니라서 제가 성체를 뺏어서 모셨습니다." 순간 신자들 사이에 끼여 성체를 모 시려다가 빼앗기고 당황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 자매에게 "그냥 놔두지 왜 그랬습니까?" 하면서 속으로 물었다. '당신이 무슨 권리로 그 사람에게서 예수 님을 빼앗습니까? 예수님을 빼앗아 당신 몸에 모실 권리가 당신 에게 있습니까? 세례가 그렇게 위대합니까? 불쌍한 예수님, 이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영성체 전에 종종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만이 성체를 모실 수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은 자리에 앉아 계 시고 신자만 나오십시오." 라는 안내를 듣게 되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불안하고 착잡해진다. 이런 말을 듣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교회는 누구를 생각하면서 그런 안내를 하는 것일까? 성체에 관한 교의가 예수님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누구인가.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