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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조·성가·기도문

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기도- 정호승-작가 이미지/분당저수지외 2장

 

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기도
정호승

그동안 내가 앉아 있었던 의자들은 모두 나무가 되기를
더 이상 봄이 오지 않아도 의자마다 싱싱한 뿌리가 돋아
땅 속 깊이깊이 실뿌리를 내리기를
실뿌리에 매달린 눈물들은 모두 작은 미소가 되어
복사꽃처럼 환하게 땅속을 밝히기를

그동안 내가 살아오는 동안 앉아 있었던 의자들은 모두
플라타너스 잎새처럼 고요히 바람에 흔들리기를
더 이상 새들이 날아오지 않아도 높게 높게 가지를 뻗어
별들이 쉬어가는 숲이 되기를
쉬어가는 별마다 새가 되기를

나는 왜 당신의 가난한 의자가 되어주지 못하고
당신의 의자에만 앉으려고 허둥지둥 달려왔는지
나는 왜 당신의 의자 한 번 고쳐주지 못하고
부서진 의자를 다시 부수고 말았는지

산다는 것은 결국
낡은 의자 하나 차지하는 일이었을 뿐
작고 낡은 의자에 한 번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었을 뿐.

 

정호승님의 작품경향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도시적 삶을 살아가는 자들의 아픔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정호승님의 시세계의 주된 형질을 이루고 있는 것은 ‘슬픔’이라는 정서와 ‘사랑’이라는 선택적 행위입니다

그의 ‘슬픔’은 격정적인 비장함이나 감정 과잉의 감상주의를 동반하지 않고 한결같이 차분하고 관조적인 성찰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당대적 발언으로보다는 오히려 인간 존재의 보편적 정서에 대한 표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슬픔’은 극복해야 할 어떤 결핍의 상태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조건 혹은 존재 원리로 우리를 감싸안았죠

‘사랑’ 역시 마찬가지여서, 그것은 에로스나 아가페 같은 특정 층위의 사랑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 혹은 주체와 대상 사이에 개재하는 모든 친화적 정서나 행위의 총체적 표상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그것은 ‘증오’의 반대편에 서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규율하는 가장 근원적인 에너지이자 존재 원리로 작용합니다.

 

이처럼 그는 ‘슬픔’과 ‘사랑’의 시인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30여 년 동안 지속해왔습니다


 

율동공원 가는 길 소공원 의자

 

율동공원 가는 길 소공원

 

분당 저수지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