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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조·성가·기도문

담장―박용래(1925~1980)/오동나무 3장

 

담장

梧桐꽃 우러르면 함부로 怒한 일 뉘우쳐진다.
잊었던 무덤 생각난다.
검정 치마, 흰 저고리, 옆가르마, 젊어 죽은 鴻來 누이 생각도 난다.
梧桐꽃 우러르면 담장에 떠는 아슴한 대낮.
발등에 지는 더디고 느린 遠雷.

―박용래(1925~1980)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2012.6.3)이다. 장석남시인의 평이다.

 

초여름, 마당가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있기 좋은 시절이다. 보랏빛 오동꽃은 담장 위에 그늘을 드리운 커다란 잎들 사이사이 피어 있다. 담장은 오동나무 그늘 속에서 영화관의 화면처럼 먼 지난 일들을 '아슴아슴' 상영한다. 지난 일들의 반추, 그 속에 어찌 후회가 없으랴. 노한 일, 하여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준 일. 돌이켜 사과하고 용서받고 싶으나 돌이킬 수 없다. 이미 그 사람, 이승에 없다. 무슨 큰 죄(罪)가 되었을까만 못내 마음이 아픈, 함부로 노한 일!

기러기 왔다가듯 너무 일찍 세상을 하직한 누이는 어쩌면 오동꽃으로 다시 왔을지 모른다. 이 오동나무, 혹 딸을 낳으면 심었다는 오래된, 아름다운 풍습대로의 그 나무는 아니었을까? 어느덧 꽃도 하나씩 발등에 떨어지고 심정에 쿵쿵 울리는 낙화(落花)는 안으로만 소리치는 우레다. 오동꽃이 지는 자리에서 천둥 같은 뉘우침을 얻는 자, 천국에 갔으리.

박용래 시인

생몰 1925년 8월 14일(충남 부여군) ~ 1980년 11월 21일 (향년 55세) | 소띠, 사자자리

데뷔 1956년 현대문학에 시 '가을의 노래' 로 등단

학력 강경상업고등학교

 

생애

1925년 충청남도 논산 강경읍에서 태어났다. 1943년 강경상업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조선은행에 취직했다. 해방후 1946년에 호서중학교 교사로 부임하면서 1973년 고혈압 때문에 사임하기까지 교사로 일했다. 1980년 7월에 교통사고로 3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가, 그해 11월 21일 오후 1시,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별세했다. 충남문인협회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졌고, 1984년 대전 보문산공원에 시비가 세워졌다. 눈물을 하도 많이 흘려서 평소 시인과 가까이 지내던 소설가 이문구는 시전집《먼 바다》에 실린 〈박용래 약전〉에서 시인을 '눈물의 시인', '정한의 시인'이라고 명했다
[출처] 위키백과

 

오동나무 꽃

 

오동나무 꽃

 

오동나무 10월의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