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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여행(유기열)

풀솜대..흰꽃 빚어 빨간 구슬 만드는 이팝나물

풀솜대..흰꽃 빚어 빨간 구슬 만드는 이팝나물

 

 

벼과에 속하는 대나무 중에 솜대<Phyllostachys nigra (var. henonis)>가 있다. 하얀 가루가 어린 줄기와 가지를 덮고 있는데 이 모습이 마치 솜에 쌓인 대처럼 보여 솜대라 한다. 키가 10m정도며 자라면 흰 가루는 떨어지고 황갈색이 된다.

그러나 풀솜대(Smilacina japonica)는 나무가 아니다. 키가 15~50cm인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물론 대도 아니다. 그럼 나무도 대도 아닌 풀을 왜 대나무를 뜻하는 풀솜대라 한 것인가? 그것은 단순하다. 대나무처럼 뿌리줄기(根莖)가 옆으로 뻗으며 자라고 줄기와 꽃대 등에 솜털 같은 흰털이 많은 풀의 특성을 살렸을 뿐이다.

풀솜대를 이팝나물, 지장보살이라고도 한다. 이팝나물은 흰 꽃이 이밥(쌀밥의 옛말)처럼 보여 이밥나물이라고 한 것이 변화되어 이팝나물이 되었다. 불교에서 지장보살(地藏菩薩)은 부처가 죽은 뒤 미륵불이 올 때까지 지옥세계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중생을 구원하는 보살이다.

헌데 풀솜대가 이런 지장보살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옛날에 기근이 들었을 때 풀솜대 뿌리와 뿌리줄기가 식량대용인 구황식물(救荒植物)로 사용되어 백성을 아사상태에서 구해주었다.

이처럼 중생을 구하는 점이 지장보살과 비슷하여 불러진 이름으로 보이며, 지금도 전남 지방에서는 풀솜대를 지장보살이라고 부른다. 그밖에 풀솜대에서 절에서 피는 향과 비슷한 향기가 나고, 더러는 스님의 향취가 난다고 하여 지장보살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풀솜대 가까이 코를 대고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아보아도 그런 향기나 냄새는 맡지 못했다. 내 코가 잘 못 된 것일지 모르지만.

꽃은 꽃봉오리와 꽃봉오리가 벌어지는 때는 연한 녹색이나 피면 그야말로 순백이다. 더구나 숲 속 아침에 햇빛이 꽃 위에 들기라도 하면 흰 꽃은 순백 중의 순백이어 사랑스럽다.

꽃잎과 꽃받침은 구분되지 않는다. 그저 꽃이 활짝 필 때는 꽃잎처럼 보인다. 그런 꽃덮이(花被, The floral envelope)는 6조각이며 선형이나 긴 타원형이며, 각 조각의 가운데와 마주보며 수술이 하나 씩 6개가 있으며, 수술이 빙 둘러선 꽃 한 가운데에 씨방과 암술이 1개 있다.

씨방은 둥근 긴 항아리 같다. 화피, 수술대(꽃밥은 노란빛이 돈다),씨방과 암술대 모두 희다. 꽃잎으로 보이는 것이 꽃잎도 꽃받침도 아닌 것은 꽃가루받이가 끝나고 난 뒤에 이들의 변화를 보면 분명하다.

꽃가루받이가 끝나면 꽃잎처럼 보이는 것이 시들어 완전히 떨어지지 않고 전체의 약 1/4~1/7정도만 사라지고 나머지는 꽃받침으로 남아 열매 아래에 붙어 있다.

열매는 둥글거나 둥근꼴 타원형이며 위 끝에는 1㎜정도인 짧은 침 하나가 있다. 열매 아래에는 6조각의 꽃받침 비슷한 것이 붙어 있고 크기는 전체 지름이 2㎜정도며, 별 모양이다.

열매색은 아주 초기에는 희나 익으면서 녹색, 황록색을 거쳐 익으면 빨강이 된다. 크기는 지름 6.5~10.0㎜다. 광택과 윤기가 난다. 겉은 매끄러운 편이나 씨방과 초기 열매와 익은 열매에는 없는 검은 색 반점이 황록색 열매에는 많다. 물에 가라앉는다. 맛은 약간 달다.

줄기 끝에 5~10cm의 이삭이 달린다. 이삭에는 수십 개의 열매가 달리며 열매자루는 1~5㎜다. 줄기, 이삭 줄기와 열매자루에 흰 솜털이 많다.

열매는 익어도 껍질이 벌어지지 않는다. 덜 익은 열매는 단단하고 손톱으로 쪼개면 쪼개지고 그 조각은 피망 같다. 익은 열매는 말랑말랑하며 누르면 껍질이 터지거나 열매자루가 붙은 부위에서 빨간 즙이 씨와 함께 나온다. 이때 껍질 두께는 0.1㎜정도며, 얇은 비닐 같다. 열매껍질은 물속에 담가놓으면 탈색이 되어 연 노란색으로 변한다. 열매에는 1개 씨가 보통이나 가끔 2개 씨도 들어 있다.

씨는 둥글다. 2개 들어 있는 것은 반원형이다. 열매자루가 붙은 아래는 동그란 반점이 뚜렷하고 위 끝에는 열매에 붙은 침이 돌기처럼 붙어 있다. 색은 초기에는 흰색이며 익으면 연한 누런색이 된다.

열매에서 갓 빠져나온 씨가 연분홍인 것은 열매의 빨간 즙이 착색되었기 때문이다. 빨간 착색이 심한 것은 물에 오래 담가두어도 연분홍색을 띠기도 한다. 크기는 지름 4.5~5.5㎜다. 광택은 없고 겉은 매끄러운 편이다. 물에 가라앉는다.

씨껍질은 아주 얇고 알갱이와 한 살을 이룰 정도로 구분이 어려워 벗기기가 어렵고 긁어진다. 씨는 아주 단단하여 잘 안 깨지며 망치 등으로 두들기면 쪼개지는 데 속은 말린 가래떡 속살 같다.

풀솜대는 도대체 무슨 재주가 있어 순백하고 순백한 꽃을 빚어 그리도 고운 빨간 구슬열매를 만들까? 그것도 아기 열매는 흰색, 어린 열매는 녹색, 청장년 열매는 황갈색이다가 갑자기 때가 차면 빨갛디빨간 보석이 되는가? 전혀 빨강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빨강을 만들어냄이 신통하다.

녹색 풀 속에 숨은 듯 드러낸 빨간 풀솜대 열매, 어찌 보면 아리따운 아가씨가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더러움과 싸우다 흘린 핏방울 같고, 어떻게 보면 가난한 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선물로 주라고 마음씨 좋은 사람을 시켜 몰래 준비해 숨겨놓은 빨간 보석 같기도 하다.

풀솜대야. 몇 년간 너를 보고 만지고 때론 상처도 내보았지만 너의 속맘이 어떤 것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너에 대하여 도통 아무 것도 모른다. 그나마 아는 것이 있다면 단지 그러리라 상상해서 얻은 작디작은 지식뿐이다.

그렇게 너무나 어리석은 인간이지만 혹여 너를 슬프게 하거나 아프게 하지 안 했는지 걱정하고 있단다. 하긴 말을 하는 인간과 평생을 같이 살아도 그 인간의 마음을 거의 모르는 판에 하물며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너야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내 어리석음을 깨우쳐주기 위해서라도 힌트라도 주고 다음에 너를 다시 보면 언제나와 같이 웃어는 다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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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열 박사 프로필]

농학박사, 대학강사 국립수목원 및 숲연구소 해설가 GLG자문관 한국국제협력단 전문가 시인 겸 데일리전북(http://www.dailyjeonbuk.com)씨알여행 연재작가 손전화 010-3682-2593 블로그 http://blog.daum.net/yukiyu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