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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여행(유기열)

피나물;개미가 심는 풀, 끊으면 빨간 즙이 나와

피나물;개미가 심는 풀, 끊으면 빨간 즙이 나와

 

글에서는 받침 하나가 정말 중요하다. ‘나’에다 ‘ㅁ’하나 붙이면 ‘나’와 정 반대인 ‘남’이 된다. 마찬가지로 키 10~30cm인 풀인 ‘피나물’에서 ‘ㄹ’하나 빼면 키 20~30m, 지름 0.5~1.0m의 큰 나무인 ‘피나무’가 된다.

따라서 글을 읽거나 쓸 때 정확하지 않으면 뜻하지 않은 큰 실수를 하게 된다. 피나물을 보면 언제나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새로이 하곤 한다.

피나물은 꾀가 많다. 몸에 독성을 품어 벌레나 야생동물의 피해를 막는다. 꽃봉오리 때는 잔털이 많은 두터운 꽃받침이 꽃봉오리를 완전히 싸서 추위를 견디고 벌레가 갉아먹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다 꽃이 피면 숨 쉴 틈도 없이 얼른 꽃받침은 떨어져버린다. 최대한 아름다움을 드러내어 벌과 나비를 유혹하여 꽃가루받이를 하기 위해서다.

꽃 피는 시기에도 생존전략이 숨어 있다. 큰 나무들이 잎을 다 피우기 전 이른 봄에 황금빛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이렇게 해서 다른 많은 꽃들과 경쟁을 적게 하고도 곤충을 넉넉히 불러들여 꽃가루받이를 한다. 햇빛이 적은 숲속에서도 살아 남기 위해 생각해낸 지혜다.

피나물은 열매나 씨에 날개가 없어 바람을 타고 날아가지 못한다. 가시나 갈고리도 없어 동물들에 묻어 멀리가지도 못한다. 그런다고 씨를 튕길만한 힘이나 어떤 장치도 없어 한발 거리도 멀리 튀지 못한다. 그럼에도 피나물은 숲속 사방천지로 번져나가 보란 듯이 살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그것은 개미를 시켜 씨를 심기 때문이다. 피나물은 개미가 아주 좋아하는 엘라이오솜(elaiosome, 고지방 단백질덩어리)을 씨에 붙여놓았다. 개미는 씨를 집으로 물고 가서 엘라이오솜을 어린 개미 등과 함께 먹고 씨는 밖으로 내다 버린다.

맥에 씨의 붙는 모습
꽃받침 속 꽃봉오리
대체로 이런 곳에는 개미들의 배설물이나 음식찌꺼기, 썩은 물질이 많아 양분이 많고 습도도 적당해 씨가 발아하기에 좋다. 이렇게 개미가 군데군데 버려서 심은 피나물 씨는 좋은 환경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게 된다.

이처럼 피나물은 개미에게 음식을 주고, 개미는 피나물 씨를 멀리 옮겨 좋은 터에 심음으로서 서로 윈-윈 하는 셈이다. 이들 둘 관계는 자연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모범적인 공생사례의 하나다.

피나물은 작물이 아니다. 하나의 들풀에 지나지 않는다. 이 피나물이 요즘에는 흔하지는 않지만 원예용 풀꽃으로 사랑을 받아 꽃밭을 장식하기도 하고 화분에 심어 집에서도 기른다.

하지만 아무래도 숲속에서 나무 사이로 흐르는 햇빛을 살짝살짝, 조금조금 받으며 피는 꽃만 하랴! 꽃말은 ‘봄 나비’다.

열매는 가는 긴원기둥이며 위 끝은 껍질이 붙지 않은 바늘모양이다. 꽃받침은 붙어 있지 않다. 색은 초기에는 녹색이며 익으면 연 노란색이나 녹갈색이다.

씨와 씨에 붙은 엘라이오솜
어린 열매
그러나 색으로는 열매가 익었는지 덜 익었는지 구분이 쉽지 않다. 오히려 열매 모습과 겉에 있는 맥의 선명함을 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익으면 열매는 초기의 원기둥을 약간 눌러놓은 모양이 된다. 그리고 좁아진 양 옆구리에 옅은 갈색이나 황갈색 맥이 뚜렷해지며 열매 위아래의 껍질이 아주 미세하게 맥에서 벌어진 모습을 한다.

크기는 길이 5~12cm, 지름 3~5㎜다. 광택은 없고 겉은 매끄럽지 않다. 벌어지지 않은 싱싱한 열매도 물에 뜨나, 익은 열매는 만지거나 따면 껍질이 갈라져 물에 넣어 가라앉는지 여부를 조사하기가 쉽지 않다.

열매는 줄기 끝의 잎겨드랑이에서 1~3개의 열매자루가 나와 달린다. 열매자루는 길이 4~7cm이고 겉에 흰색의 잔털이 있다. 열매는 익으면 껍질이 아래와 위에서 동시에 또는 약간의 차이를 두고 2조각으로 벌어져 용수철처럼 뒤로 도르르 말리며 맥에서 떨어진다.

이때 씨가 떨어져 땅으로 떨어진다. 일부 씨는 맥이나 껍질에 달라붙어 있기도 한다. 껍질은 맥에 붙어 있기보다는 위아래서 누르고 있는 꼴이다. 껍질은 마르면 콩깍지처럼 딱딱한 편이며 두께는 0.5~1.3㎜다.

껍질이 2조각으로 갈라져 떨어져도 맥은 가는 철사처럼 열매자루에 붙어 있다. 맥은 2가닥이며 아래와 위는 붙어 하나로 되어 있고, 특히 위는 붙어 한 가닥으로 된 부분이 길다.

활성화된 암술

열매에는 수십 개의 씨가 들어 있다. 씨는 맥 안 쪽에 난 여러 개의 작은 돋음 점에 붙어 있다. 씨는 양쪽의 맥에 붙어 있으나 2줄이 아니고 한 줄로 보인다.

씨의 좁고 뾰족한 부위가 양쪽 맥의 돋음 점에 수직이 아닌 옆으로 둥근 쪽과 좁은 쪽이 서로 엇갈려 붙어 있기 때문이다. 포개지거나 마주 보고 붙어있지 않다. 열매 크기가 씨 길이와 지름의 2배 아니어도 되는 이유다.

씨의 한 쪽 면에 엘라이오솜이 흰색 날개처럼 붙어 있다. 이것은 씨의 껍질 쪽이 아니고 씨와 씨 사이에 위치하도록 열매 위쪽을 향해 씨의 옆구리에 붙어 있다.

씨는 한쪽에 엘라이오솜이 세로로 흰색 날개모양으로 달린 위가 뾰족한 달걀모양이다. 색은 초기에는 녹색이고 익으면 녹갈색이나 검은 빛이 도는 녹갈색이다.

크기는 길이 2.0~3.0㎜, 지름 1.5~2.0㎜다. 엘라이오솜은 길이 1.8~2.8㎜, 너비 0.2~0.5㎜다. 어린 씨나 익은 싱싱한 씨는 윤기가 많으나 마르면 줄어든다. 물에 넣으면 뜨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 가라앉는다.

씨 알갱이는 희다. 씨껍질은 0.1㎜이하로 얇다.
피나물에는 알칼로이드 성분이 많아 한방에서는 뿌리를 하청화근(荷靑花根)이라는 약재로 사용한다. 지혈, 지통(止痛), 소종(消腫), 거풍습(祛風濕) 등에 효능이 있으며, 타박상에 짓이겨 바르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나물 어린 순은 물에 우려내어 먹을 수는 있지만 독성이 있으니 먹지 않는 게 좋다.
피나물의 줄기나 잎을 자르면 빨간색이나 주홍색의 즙이 나온다. 이 즙이 피 같다 하여 피나물이라 했다.

혹시 산행을 하다가 피나물을 만나면 한 줄기 끊어보라. 영락없는 피 같은 즙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즙을 손 등이나 손톱에 묻히면 아이들이 무척 신기해하며 좋아 한다.

이처럼 식물은 물감을 만든다. 우리가 이용하는 천연염료는 다름 아닌 식물이 만드는 색소이다.

꽃 껍질이 떨어진 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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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열 박사 프로필]

농학박사, 대학강사 국립수목원 및 숲연구소 해설가 GLG자문관 한국국제협력단 전문가 시인 겸 데일리전북(http://www.dailyjeonbuk.com)씨알여행 연재작가 손전화 010-3682-2593 블로그 http://blog.daum.net/yukiyu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