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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여행(유기열)

백리향, 왕관 닮은 열매, 향기는 백리

백리향, 왕관 닮은 열매, 향기는 백리

 

세상에는 향기 나는 식물이 많다. 백리향(百里香)도 그 중 하나다. 손으로 만지거나 잎이나 가지를 손으로 문지르면 향기가 난다. 향기 때문인지 그 것을 만진 손은 연신 코로 간다.

향이 백리까지 가서 백리향이라고 한다지만 이는 지나친 과장이거나 잘 못이다. 이보다는 백리향을 스치거나 밟았을 때 발에 묻은 향이나 옷에 밴 향기가 백리를 갈 때까지도 없어지지 않고 오래까지 난다는 것이 옳다. 향기는 연필을 깎을 때 나는 향과 비슷하다.

백리향은 풀처럼 보이지만 나무에 속한다. 키가 40cm 아래로 작지만 옆으로는 길게 뻗어 가지와 가지가 서로 뒤엉켜 있는 모습을 한다. 그래서 백리향이 무성한 덤불에서는 다른 풀이 자라기가 어렵다. 어린 가지가 네모다. 흙이 빗물 등에 씻겨 내려가기 쉬운 지역에서는 지피식물(地被植物)로 어울린다.

지초(地椒)라 하여 한약재로 사용하기도 하는 데 설사를 멈추게 하고, 위를 튼튼히 하며 가래를 삭혀주는데 약효가 있다고 한다.

꽃, 암술머리가 2갈래다
백리향 꽃은 녹색의 꽃받침과 그 위로 올라온 분홍, 연분홍의 꽃잎이 대조를 이루어 아름답다. 꽃잎과 꽃받침 겉과 꽃자루에 잔 흰털이 있다. 수술은 4개이며 2개는 짧고 2개는 길다.

꽃밥은 자주색이며 하트모양이나 Y자모양이고 꽃밥 껍질이 터져 꽃가루를 낸다. 꽃의 초기에는 암술이 잘 안 보이는 데 이것은 암술이 짧은 탓이고 암술머리는 갈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꽃이 활짝 피고 시간이 지나면 암술이 길어지고 암술머리는 2갈래로 갈라져 수술과 같거나 길어져 잘 보인다.

백리향을 몇 년을 보아 꽃은 잘 알아도 열매나 씨를 본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은 열매가 작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익으면 색이나 모습이 화려하지 않고 빛바랜 쭉정이 같은 탓도 있다. 그러니 그 안에 든 씨를 본 사람은 더구나 적다. 하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뜯어보면 열매는 멋스럽다.

익은 열매
11월 새잎
열매는 꽃받침 통 안에 들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볼 수 있는 외관 즉 꽃받침 통을 여기서는 열매로 보았다. 그 모습은 뿔을 거꾸로 세워 놓고 그 위에 왕관을 씌워놓은 듯하다.

아래는 좁고 위 끝은 앞쪽은 2개의 긴 깃이 붙어 있고, 뒤 쪽은 3갈래로 갈라져 뒤로 약간 젖혀져 있다. 깃과 갈라진 조각의 가장자리에 빗살처럼 잔털이 나 있다.

색은 초기에는 녹색(어떤 것은 초기에 연분홍이나 연한 자주색을 띄기도 한다.)이며 익으면 암회색이나 회갈색이 되나 위 가운데는 희다. 크기는 길이(깃 포함) 5~6㎜, 갈라지기 직전부위의 지름은 1.5~2.0㎜이다.

이중 깃은 길이 3.0~3.5㎜, 깃 아래 부위의 너비 0.2㎜정도이며 위로 갈수록 좁아져 선 모양을 한다. 광택이나 윤기는 없으며 겉에는 잔털이 많고 10여개의 돋음 선이 세로로 나 있으며, 작은 돋은 선점(腺點)이 많다. 물에 뜬다.

열매는 익어도 꽃받침 통이 벌어지지 않는다. 위는 흰 털이 뚜껑처럼 막고 있다. 그 모습은 솜털을 펴서 여러 겹으로 막아놓은 듯하다. 열매는 누르면 쉽게 껍질이 부서지고 위의 흰털도 구멍이 잘 난다. 껍질 두께는 0.1㎜정도이다. 열매에는 1~4개의 씨가 들어 있다. 열매자루는 길이 4~10㎜, 지름 0.2㎜정도이다.

어린 열매
씨는 둥글다. 이 씨를 학문상으로는 열매로 보고 견과(堅果)나 분과(分果)로 분류하기도 한다. 색은 검거나 회갈색이다. 크기는 지름이 0.7~1.0㎜이다. 광택이나 윤기는 없고 겉은 매끄러운 편이나 흰 가루가 묻어 있거나 초승달 모양의 흰무늬가 있기도 하다. 씨는 연하여 손톱으로 누르면 쉽게 갈라지고, 씨 알갱이는 희다. 씨껍질은 0.05㎜로 아주 얇다. 물에 뜬다.

백리향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술이 생각난다. 왜냐면 향을 느끼고 있노라면 화장을 한 여인이 옆에 있는 듯 하고, 꽃을 보고 있노라면 앙큼하고 예쁘장함에 취하고 싶고, 열매를 보면 남아답게 왕관 같은 잔에 술을 한잔 따라 마시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아무렴은 어떠랴. 꽃피고 열매 맺는 때가 되면 백리향 핑계대고 친구 불러내어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사는 이야기와 더불어 꽃과 씨앗 이야기를 하련다. 뭐 보람 있게 사는 게 별것인가? 이런 작은 열매하나 씨알 하나에도 지금까지 남이 하지 않은 뜻을 찾아내어 부여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삶 또한 뜻있는 삶이리라.

암술 수술이 있는 양성화

익은 씨

익은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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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열 박사 프로필]

농학박사, 대학강사 국립수목원 및 숲연구소 해설가 GLG자문관 한국국제협력단 전문가 시인 겸 데일리전북(http://www.dailyjeonbuk.com)씨알여행 연재작가 손전화 010-3682-2593 블로그 http://blog.daum.net/yukiyu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