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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여행(유기열)

층층나무- 목이 잘릴지언정 익어도 고개 드는 고고한 열매 /층층나무 7장

층층나무- 목이 잘릴지언정 익어도 고개 드는 고고한 열매

 

 

층층나무는 도도하다. 참으로 도도하다. 이보다 더 고고할 순 없다.

나무 가지 끝은 아래를 향하지 않는다. 항상 위를 향한다. 새순이 날 때는 녹색 촛불을 수백 수천 개 켜놓은 듯하다.

 

꽃도 아래를 보지 않고 위를 본다. 꽃 이삭은 수직으로 서 있는 햇가지 끝에서 나온다. 꽃 이삭은 원줄기를 따라 올라가면서 3~6단계로 작은 이삭줄기가 갈라져 나오나 꽃이 피는 높이는 수평을 이룬다(이런 꽃차례를 산방화서(繖房花序)라 한다). 그래서 꽃이 피면 흰 접시구름이 겹겹이 층을 이룬 냥 하다.

층층나무 씨
층층나무 열매
열매 역시 도도하기는 마찬가지다. 뭐가 그리 잘 낫는지 이삭줄기는 철 말뚝 박은 듯 목이 빳빳하다. 녹색 열매인 젊은 때는 패기로 그렇다 치지만 열매가 익어도 도도하기는 변함이 없다. 열매가 떨어지면 겸손할까 기대하지만 마찬가지다. 가을이 되어 열매인 지 새끼들을 다 떠나보낼 때도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있다.

 

이 고고함 때문에 2007년 대모산에서 층층나무 익은 열매를 조사하지 못했다. 그 해 층층나무는 꽃도 많이 피고 열매도 주렁주렁 맺었다. 7월까지 어린 열매는 쉽게 조사했다. 그 이후 열매가 변하는 과정을 보려고 2007년 8월 10일 다시 찾아갔다.

떨어진 열매이삭
나무에 달린 열매들
헌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나무아래에 열매가 떨어져 즐비하지 않은가! 푸른 열매가 달린 이삭이 통째로 떨어져 널려 있었다. 일부 이삭은 가지나 줄기에 목이 잘린 채 걸려 있었다. 이삭줄기의 끊어진 자리는 칼로 자른 듯 반듯했다.

 

나무를 보니 열매란 열매는 다 떨어지고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태풍과 폭우가 몰아쳐도 고개를 숙이지 않은 탓이다.

겨울철 열매 한 개 없는 가지 끝과 이삭줄기 역시 꼿꼿하다. 오히려 녹색 옷을 연분홍이나 연한 자주색 옷으로 갈아입고 고개를 들고 있는 고고함이 얄미울 정도다. 이처럼 층층나무는 목이 잘릴지언정 어느 때 어떤 조건에서도 절대로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

층층나무는 이토록 도도하고 고고하기만 한가? 그렇지 않다. 교만하게 보여도 희생정신은 강하다. 2009년에 일어난 일이다. 봄이 되어 층층나무에 새 잎이 나오자 노란다리 독나방 애벌레가 사그리 갉아 먹었다.

다시 돋아난 잎
벌레가 갉아먹은 층층나무
층층나무는 온 몸을 벌레에게 다 준 셈이다. 생태계에서 흔하지 않은 일이다. 숲에서 벌레는 대체로 나무 잎의 1/3정도를 먹는다. 벌레는 알기 때문이다. 잎을 다 먹으면 나무가 죽고, 그러면 먹을 게 없어 자기가 계속하여 살 수 없음을.

 

나무 역시 벌레가 무지하게 잎을 다 먹으려 하면 일정 부분 이상 먹힌 뒤에는 더 먹지 못하도록 독성물질을 내 뿜는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 있음을 나무 역시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벌레와 나무 모두 이런 생태적 질서를 깼다. 배불리 먹은 애벌레는 좋았을 거다. 대신에 나뭇잎이 다 없어진 층층나무는 죽을 맛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층층나무가 죽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층층나무는 여름에 다시 새 잎을 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싱싱하게 자랐다.

노란다리독나방 애벌레는 나방이 되어 어릴 적 잘 못을 아는지 모르는지 잎이 새로 난 층층나무 위를 흰 눈처럼 날아다녔다. 이것은 층층나무의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한 강인한 생명력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층층나무 가지는 줄기에 일정한 간격으로 돌려난다. 그 모양이 층을 이룬 탑처럼 보여 층층나무라 한다.
열매는 둥글지만 지름이 높이보다 약간 크다. 위 끝에 길이 2~4㎜의 암술대가 털이 되어 붙어 있다.

열매자루는 길이 2~5㎜다. 열매 색은 초기에는 녹색이며 익으면서 연한 밝은 노란색, 연분홍, 분홍색을 거쳐 익으면 흑자색이나 검은 색이 된다. 크기는 지름 6~9㎜, 높이 5~7㎜이다. 광택은 없다. 겉은 검은 종이 같다. 그러나 확대하여 보면 아주 미세한 흰 털이 있으며 위 끝 부위에 많다. 익는 시기에 관계없이 물에 다 뜬다.

열매는 익어도 껍질이 벌어지지 않는다. 익지 않은 녹색 열매는 단단하다. 껍질도 잘 안 벗겨지고 씨와 분리도 잘 안 된다. 익은 열매는 말랑하여 손으로 누르면 껍질이 터지며 누른 빛이 도는 하얀 즙이 나온다. 즙은 상한 우유나 고름 같이 생겼으며 역겨운 냄새가 난다. 열매에는 1개 씨가 들어 있다.

씨는 열매보다 둥글지만 지름이 높이보다 약간 크다. 아래에는 열매자루와 붙은 검은 원형 자욱이 뚜렷하다. 7월 이후의 열매는 녹색이어도 씨 색은 갈색이고 검게 익은 열매의 색도 갈색이다. 크기는 지름 5~6㎜, 높이 4~5㎜다. 열매와 씨 모두 크기는 편차가 심하다.

광택은 없다. 겉에는 세로로 가늘고 얕은 골이 여러 개 있다. 이 골들은 씨의 위 끝으로 모인다. 물에 가라앉으나 일부 뜨는 것도 있다.

살다보면 자존심을 접고 머리를 숙일 필요가 있다. 자존심보다 목숨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층층나무는 어느 때, 어떤 상황에서도 줄기, 가지, 잎, 꽃, 열매 모두 고개를 들고 있다가 비바람에 목이 잘려 떨어진다. 층층나무는 이런 사실을 모르는가?

아니다. 안다. 그러나 옳은 뜻을 버리고 목숨을 구차하게 구걸하기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서다. 온 몸을 벌레에 다 주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을 보면 그런 자신도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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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학박사, 대학강사 국립수목원 및 숲연구소 해설가 GLG자문관 한국국제협력단 전문가 시인 겸 데일리전북(http://www.dailyjeonbuk.com)씨알여행 연재작가 손전화 010-3682-2593 블로그 http://blog.daum.net/yukiyull

내꺼층층나무- 목이 잘릴지언정 익어도 고개 드는 고고한 열매 ...층층나무는 어느 때, 어떤 상황에서도 줄기, 가지, 잎, 꽃, 열매 모두 고개를 들고 있다가 비바람에 목이 잘려 떨어진다. 층층나무는 이런 사실을 모르는가?

 

층층나무는 도도하다. 참으로 도도하다. 이보다 더 고고할 순 없다. ...나무 가지 끝은 아래를 향하지 않는다. 항상 위를 향한다. 새순이 날 때는 녹색 촛불을 수백 수천 개 켜놓은 듯하다.

- 2013년 1월9일 수요일 오후 9시10분...다시 읽기...수산나 -

층층나무 1...새로 나는 잎

 

층층나무 2...잎과 꽃

 

층층나무 3...잎과 꽃

 

층층나무 4...잎과 7월의 열매

 

층층나무 5...잎과 8월의 열매

 

층층나무 명판

 

층층나무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