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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강론

2012년 7월 23일 월요일 복음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날 것이다.>/많이 자랑하라 -라파엘 신부

2012년 7월 23일 월요일 [(녹)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복음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날 것이다.>

 

말씀의 초대

미카 예언자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 주신 일들을 상기시킨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제사라고 생각하였지만, 미카는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은 공정과 신의와 믿음이라고 말한다(제1독서).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메시아의 표징을 요구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신다. 믿음이 없는 그들에게는 어떠한 표징도 소용없기 때문이다(복음).

 

제1독서 <사람아,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 미카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6,1-4.6-8

복음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8-42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는 그들에게 어떠한 표징을 보여 주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은 세상이 요구하는 표징인 권력과 명예와 돈의 표징이었을 것입니다.
부모에게 “학교에 갈 테니 제가 바라는 것을 해 주세요. 공부할 테니 좋은 장난감을 사 주세요.” 하고 떼쓰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른들 가운데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내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하느님을 믿겠다.”, “당신이 간곡히 부탁하니까 이 단체에 가입하였다.”, 심지어 “주일 미사에 참석해 준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유아적인 신앙의 형태들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이기심과 욕심을 비우고 그 자리에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채우는 것이라고 봅니다. 신앙은 내가 바라는 것을 하느님께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이기에 ‘그럼에도’ 기꺼이 따르는 것이 신앙입니다. 나의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면 내적인 변화가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표징이나 기적을 쫓아 여기저기 찾아다니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루하루 새롭게 사는 것이 기적입니다.

 

 

분당 요한성당 벽화

 

 


2012-07-22 오후 10:39:33 조회수 48 추천수 0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날 것이다.>
+ 마태오 12,38-42




많이 자랑하라



제가 미국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개신교 신자분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교회자랑을 하셨습니다. 시작한지 1년이 되었는데 젊은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예배참여 가족이 성인40명에 주일학교 참석어린이가 30명이나 되는 것을 보면 그 젊음이 드러납니다. 주일 헌금도 40명 참석에 1,000불이나 됩니다. 1백2십만원 정도입니다. 우리는 1인평균 3천원인데 그들은 3만원입니다. 목사님 설교도 좋고 아주 자상하시고그 교회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교회, 가슴 벅찬 만남이 있는 교회, 항상 웃음과 축제가 있는 교회, 은혜와 진리가 넘치는 교회, 주님의 음성을 듣는 교회를 표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회 자랑을 열심히 하시라고 했습니다. 자기 자랑은 하지 않고 남을 칭찬할 수 있고 교회를 자랑할 수 있다면 그 교회는 정말 부흥하는 교회가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제가 신부라는 것을 알고 천주교에 관심을 가지신 분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우리 신자라면 목사님 앞에서 성당자랑, 신부님 자랑을 그렇게 기쁘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는 물론 타인에게 자랑거리가 되지 못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내 즐길 것 다 즐기고 시간이 남아야 겨우 미사참례하고는 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이 지녀야 할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누가 대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니 만큼 성장 과정 안에서의 진통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쉽게 이루려는 어리석음이 우리의 성장을 오히려 더디게 하고 맙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기적이나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것을 보면 믿음이 성장하고 굳게 다져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적이 믿음을 가져오기보다 믿음이 기적을 낳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표징을 요구하기에 앞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 복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행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을 자기 뜻에 맞추려 하는 한 어떤 표징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설사 징표를 주신다고 해도 또다른 표징을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기적을 멀리에서 찾지 말고 내 삶의 자리를 기적의 자리로 만들기 바랍니다. 내 삶의 터를 믿음의 자리로 만들어 주님을 자랑하기 바랍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6,14)


저는 우리 매괴성모님을 수난 받으신 어머니, 기적의 어머니, 치유의 어머니로 소개합니다. 이 모든 것이 믿음의 바탕위에 체험됩니다. 믿음이 없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는 이에게는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예수님을 가리우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그분의 권능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성모님의 치마폭에 예수님이 가려질 수는 없는 법입니다.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께로, 예수님을 위하여 성모님께로!’입니다. 성모님의 전구를 믿는 만큼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게 됩니다.


사람들이 지혜롭고 명철하다는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 솔로몬보다도 더 큰 이, 곧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주님께서 이미 주신 표징을 받아들이지 못하였고 그들의 선입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자기들 나름대로의 표징을 요구하고 그 틀에 꿰맞추려는 무지 때문에 눈이 먼 까닭입니다. 귀를 막으면 비오는 소리뿐 아니라 천둥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던 마음을 돌려 주님을 자랑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마음을 열어 우리 성당을 자랑하고 신자들의 열정을 칭찬하며 자랑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나를 내세우는 것은 중병이지만 남을 앞세워 칭찬하는 것은 공덕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귀한 연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 곁이 제게는 행복, 이 몸 둘 곳 주 하느님이외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