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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강론

2012년7월28일토요일 복음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식탁의 기적-김 우정 신부

2012년 7월 28일 토요일[(녹)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복음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는 성전 대문에 서서 예배하러 온 유다 주민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 유다인들은 온갖 불의와 우상 숭배를 일삼으면서도 성전에 들어와서는 자신들은 구원받았다고 믿었다. 그들이야말로 거룩한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드는 자들이다(제1독서). 밀밭에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데 처음에는 이 둘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수확 때가 가까우면 가라지는 드러나게 된다. 이 같은 이치로 세상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지만 마지막 날에는 드러날 것이며, 결국 선이 승리할 것이다(복음).

 

제1독서 <내 이름으로 불리는 집이 강도들의 소굴로 보이느냐?>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7,1-11

복음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24-30

 

오늘의 묵상

논농사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논에 자라나는 벼와 피를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벼와 피는 얼핏 보기에 그 생김새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험이 많은 농부는 다릅니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 온 농부에게 벼와 피를 가려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주인은 밀밭에 생긴 가라지를 제거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들은 당장 가라지를 뽑아 버리자고 제안합니다. 지혜로운 주인은 수확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밀과 가라지는 자랄 때에는 모양이 비슷해서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농사 경험이 많은 농부에게는 밀과 가라지를 구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라지를 뽑지 말고 수확 때까지 내버려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사람에게 밀과 가라지를 구별할 능력을 갖추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심판은 하느님께서 하실 일이지 사람의 권한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는 선인과 악인이 늘 공존하기 마련입니다.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고 사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건성으로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럴 때 선인과 악인의 구별에 집착하여 판단과 단죄를 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공동체는 갈라지거나 무너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단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우리의 몫은 판단과 단죄가 아니라 부족한 이를 도와주고 넘어진 이를 일으켜 주는 것입니다.


분당 요한성당 벽화

 


2012-07-28 오전 3:44:29 조회수 8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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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병 이어 = 원 근식 엮음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요한 6,1-­/연중 제17주일

☆-= "식탁의 기적" =-☆


오늘 복음 환호송이 복음의 핵심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람은 빵 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

보이는 육신의 빵은 물론 그 너머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육적이자 영적 차원의 우리들입니다. 육적 현실뿐 아니라 내적, 영적 현실을 볼 수 있는 심안(心眼)이나 영안(靈眼)을 지녀야 합니다.

외적 현실에 쉽게 좌절하거나 삶의 무의미나 허무감에 시달리는 것 역시 내적, 영적 삶의 빈약함에서 기인합니다. 오늘 복음의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야기가 상징하는바 바로 이 성체성사입니다. 비단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야기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식탁도 기적이요, 성체성사를 상징합니다. 일상의 식탁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생명의 빵, 성체를 모시듯 묵상함이 좋습니다.

하여 어느 시인은 밥은 하늘이요, 밥을 먹는 것은 바로 하늘을 모시는 것이라는 아주 성체 성사 적 해석을 합니다. 함께 바라보는 하늘이듯, 함께 나눠 먹어야 하는 밥이라는 성체입니다. 오천 명의 빵의 기적이 상징하는바 성체성사의 풍요로운 은총입니다. 무한한 내적 갈망을 일거에 해결해 주는 리스도의 말씀과 성체의 생명의 빵입니다.

이런 깊은 차원에, 보이는 것 넘어 풍요로운 영적 현실에 완전히 눈먼 군중들, 오직 눈에 보이는 빵의 기적에 집착하다 보니 급기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세상의 임금으로 삼으려 합니다. 주님은 지체 없이 이들을 피해 혼자서 산으로 물러가셨다 합니다.

때로 세속의 유혹들이 밀려올 때 하느님께 피신하여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정말 필요합니다. 보이는 것들 넘어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을 체험함이, 영원한 생명을 체험함이 참으로 긴요합니다.

영원한 생명의 체험 있어 백절불굴의 삶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하며,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사도행전의 사도들의 모습이 그 좋은 모범입니다.

온갖 고난과 모욕을 겪으면서도 주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겪는 것이기에 오히려 기뻐했다 합니다. 그리하여 추호도 좌절함이 없이 이 집 저 집에서 끊임없이 가르치면서 예수님은 메시아라고 선포하는 도들입니다.

오늘도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오시는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사하시어 풍요로운 내적, 영적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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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마음속 계산기 = ☆ =


기도를 드리다 보면 이따금 좋은 체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기도 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거나 은총의 놀라움에 눈을 뜰 때도 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확신과 보람을 느낍니다. 반대로 하느님 사랑에 자신을 일치시키고 그분을 드러내는 기도의 목적에서 벗어나, 이런 체험을 하는 것에만 매달려 무언가 자극이 될 만한 것을 끊임없이 쫓아다니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드러내 고자 하신 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총의 깊이였지만, 사람들은 수많은 사람에게 빵을 먹이신 주님의 모습만 바라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려 합니다.

우리도 이런 유혹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은총을 보기보다 우리가 신앙을 가짐으로 인해 생기는 이익에 더 관심을 두거나 무언가 감성적인 것에만 더 집중해서 본질을 소홀히 하곤 합니다. 이런 신앙은 본질이 아니라 선택 사항이 됩니다. 신앙이 선택 사항이 될 때, 우리는 주님을 못 박았던 사람들처럼 미련 없이 주님께 등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이신 하느님께 당신을 일치시켰던 주님께서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에게 변함없는 마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계산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계산은 아직 미숙하고 서투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계산기를 주님께 맡겨드리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을 찾아주시도록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의 신앙은 때에 따라 선택하는 사항이나 옵션이 아니라 진실한 가치를 지닌 본질로 탈바꿈해 나갈 것입니다.



김 우정 신부 수원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