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붕(松棚)
작은 초가라서 처마가 짧아 무더위에 푹푹 찔까 몹시 걱정돼 서늘한 솔잎으로 햇살을 가려 한낮에도 욕심껏 그늘 얻었네 새벽에는 이슬 맺혀 목걸이로 뵈고 밤에는 바람 불어 음악으로 들리네 도리어 불쌍해라, 정승 판서 집에는 옮겨 앉는 곳마다 실내가 깊네
小屋茅簷短(소옥모첨단) 偏愁溽暑侵(편수욕서침) 聊憑歲寒葉(요빙세한엽) 偸得午時陰(투득오시음) 露曉看瓔珞(노효간영락) 風宵聽瑟琴(풍소청슬금) 却憐卿相宅(각련경상댁) 徙倚盡堂深(사의진당심)
―권필(權韠·1569~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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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슴으로 읽는 한시(2012.8.11)이다. 안대회교수의 평이다.
'조선조 제일의 시인'이라는 칭송을 듣던 권필의 시다. '송붕(松棚)' 또는 '송첨(松簷)'은 소나무 가지를 처마에 덧대어 햇살을 막는 차양(遮陽)이다.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려는 선인들의 운치있는 고안품이다. 가난한 시인이 송붕 아래 걸터앉아, 무더위에 그늘 아래 지내는 호사를 가난뱅이도 누릴 수 있다고 한껏 자랑한다. 송붕은 시원한 그늘만 선물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새벽이면 이슬이 맺히고 밤이면 솔바람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오니, 마치 귀족들이 차고 다니는 값비싼 목걸이처럼 보이고 현악기의 합주처럼 들린다. 어찌 보면 고래등 같은 집의 깊숙한 방안에 처박혀 지내는 귀인(貴人)들보다 더 시원하게 여름을 보낸다는 생각도 든다. 무더위를 이기는 데 꼭 좋은 집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광해군의 비(妃) 류씨(柳氏)의 동생 등 외척들의 방종을 비난하는 〈궁류시 宮柳詩〉를 지어...광해군 앞에 끌려가 죽도록 맞고...귀양가다가 동대문 밖에서 급사한 문인 권필...인조반정의 빌미가 된 문인이다...^-^
선인들의 운치있는 고안품...'송붕(松棚)' 또는 '송첨(松簷)'...소나무 가지를 처마에 덧대어 햇살을 막는 차양(遮陽)......^-^
한낮에는 그늘얻고...새벽에는 목걸이로 보이고...밤에는 음악으로 들리네......ㄹㄹ.....^-^ | |
권필 [權鞸]조선 문인 | 브리태니커
1569(선조 2)~ 1612(광해군 4) , 조선 중기의 문인.
본관은 안동. 자는 여장(汝章), 호는 석주(石洲).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술과 시를 즐기며 자유분방한 일생을 살았다.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추천되었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강화(江華)에 있을 때 명성을 듣고 몰려온 많은 유생들을 가르쳤으며, 명나라의 대문장가 고천준(顧天俊)이 사신으로 왔을 때 영접할 문사로 뽑혀 이름을 떨쳤다.
광해군의 비(妃) 류씨(柳氏)의 동생 등 외척들의 방종을 비난하는 〈궁류시 宮柳詩〉를 지었는데, 1612년 김직재(金直哉)의 무옥에 연루된 조수륜(趙守倫)의 집을 수색하다가 그가 지었음이 발각되어 친국(親鞠)받은 뒤 해남으로 유배되었다. 귀양길에 올라 동대문 밖에 다다랐을 때 행인들이 주는 동정술을 폭음하고 그 다음날 죽었다. 1623년 인조반정 뒤, 사헌부지평에 추증되었다. 〈석주집〉과 한문소설 〈주생전 周生傳〉이 전한다.
왕비 유씨의 오라비 유희분(柳希奮)은 권세가 하늘을 찔렀다. 일가 다섯이 동시에 급제하기도 했다. 시관의 부채에 '오류(五柳)'란 글자가 적혀 있었다. 포의(布衣) 임숙영(任叔英)이 전시(殿試)의 대책(對策)에서 권신의 전횡과 외척의 발호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광해군이 성을 내며 삭과(削科)를 명했다. 시인 권필(權韠)이 격분해서 시를 지었다.
"대궐 버들 푸르고 꾀꼬리는 어지러이 나는데, 성 가득 벼슬아치 봄볕에 아양 떠네. 조정에선 입 모아 태평세월 하례하나, 뉘 시켜 포의 입에서 바른말 하게 했나.(宮柳靑靑鶯亂飛, 滿城官盖媚春暉. 朝家共賀昇平樂, 誰遣危言出布衣)"
궁류(宮柳)는 외척 유씨를, 꾀꼬리는 난무하는 황금, 즉 뇌물을 뜻한다. 권필은 임금 앞에 끌려가 죽도록 맞았다. 겨우 목숨을 건져 귀양가다가 장독(杖毒)이 솟구쳐 동대문 밖에서 급사했다. 훗날 인조반정의 한 빌미가 되었다.[출처]조선일보 정민의 세설신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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