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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채근담-사자소학

명심보감[자왈 획죄어천 무소도야]-채근담[독서,불견성현,위연참용]-사자소학[부모유명]/창경궁 통명전 7장

明心寶鑑 天命篇 ⑦

子曰 獲罪於天이면 無所禱也이니라.
자왈 획죄어천 무소도야

공자님께서 말씀하셨다.

"악한 일을 하여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

.............

獲 : 얻을 획 / 禱 : 빌 도


獲罪 : 죄를 짓다.
無所禱 : 빌 곳이 없다.

[채근담] 58. 글을 읽으면서도 성현을 보지 못하면

 

讀書, 不見聖賢, 爲鉛참傭.
居官, 不愛子民, 爲衣冠盜.
講學, 不尙躬行, 爲口頭禪.
立業, 不思種德, 爲眼前花.

독서, 불견성현, 위연참용.
거관, 불애자민, 위의관도.
강학, 불상궁행, 위구두선.
입업, 불사종덕, 위안전화.

글을 읽으면서도 성현을 보지 못한다면 글씨를 베끼는 종이 되고,
벼슬자리에 있어도 백성을 사랑하지 않으면 관복을 입은 도둑이다.
학문을 강론하여도 몸소 행하지 않으면 입으로만 하는 禪일 뿐이며,
업을 세워도 덕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은 눈앞에 피는 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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鉛 : 납 연 / 참(車+斤+木) : 서판 참 / 傭 : 머슴 용 / 躬 : 몸 궁 / 禪 : 고요할 선

鉛참傭 : 글씨를 베끼는 종 (=筆寫生).
子民 : 백성.
講學 : 학문을 강의함.
不尙 : 숭상하지 않음.
躬行 : 몸소 실천함.
口頭禪 : 입으로만 하는 禪.
立業 : 기업을 경영함.
眼前花 : 눈 앞에서 피었다 지는 꽃.

四字小學 孝行

[사자소학] 3. 부모님께서 명하는 것이 있으시거든


父母有命 (부모유명) 부모님께서 명하는 것이 있으시거든
俯首敬聽 (부수경청) 머리를 숙이고 공경히 들어라.
坐命坐聽 (좌명좌청) 앉아서 명하시면 앉아서 듣고
立命立聽 (입명입청) 서서 명하시면 서서 들어라.
父母出入 (부모출입) 부모님께서 나가고 들어 오시거든
每必起立 (매필기립) 매번 반드시 일어나 서라.
父母衣服 (부모의복) 부모님의 의복을
勿踰勿踐 (물유물천) 넘어 다니지 말고 밟지도 말라.

창경궁 통명전(보물 제818호) 1

 

창경궁 통명전(보물 제818호) 2

 

창경궁 통명전 연지 1

 

창경궁 통명전 연지 2

 

창경궁 통명전 연지 3...떨어진 동전이 많습니다...ㅎㅎ...^-^

 

창경궁 통명전 연지 내 수석...2개가 있습니다...ㅎㅎ...^-^

 

창경궁 통명전(보물 제818호) 뒤 

 

창경궁 통명전(昌慶宮通明殿)은 창경궁에 있는 왕의 침전 겸 연회용 건물이다. 명정전 서북쪽 궁궐 안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았는데, 동쪽에 있는 왕비의 침전인 환경전과 함께 남향하고 있다.

<역사>

창건 때인 성종 15년에 지어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고, 광해군 8년에 다시 세운 건물은 다시 정조 14년에 불탔다. 지금의 건물은 순조 34년 창경궁의 전각 대부분을 재건할 때 지은 것이다. 다음은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의 특징이다.

<특징>

건물 전면에는 정교하게 장대석으로 쌓은 규모가 큰 월대가 마련되었다. 월대 정면에는 3조의 돌계단이 붙어 있으며, 좌·우측에도 각각 계단이 있고, 월대 상면에는 방형으로 다듬은 화강암 박석을 깔았다. 월대 위에 다시 장대석을 놓아 기단을 형성하여 그 위에 강회다짐을 하고 사각형 초석과 사각기둥을 세웠다.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인데, 정면 5칸, 측면 2칸을 감싸며 툇칸이 설치된 형식이다. 내부는 서북쪽 일부 방을 제외하고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원래는 가운데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대청을 두고 대청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건물의 정면 중앙 3칸의 툇칸 부분은 개방하였고, 툇칸면 중앙 세칸은 사분합 들문을 달았고, 좌·우의 각 두칸에는 머름을 꾸미고 머름 위에 사분합창과 광창(光窓)인 교창을 달았다.

기둥 위는 이익공으로 결구하였고, 기둥 사이에는 장화반(長花盤)만 놓았다. 천장은 우물천정을 주조로 하되 부분적으로 고미반자를 사용했다. 큰 부재들에는 모루단청을 하였고 우물천장의 청판에는 모란문양을 그려 넣었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창덕궁 대조전과 같이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無樑閣)이다. 지붕의 내림마루와 추녀마루는 양성을 하고 용두와 잡상 등을 배치했고, 사래에는 토수(吐首)를 끼웠다. 건물 전면 좌·우 협칸 기단 위에는 아궁이를 설치했던 흔적이 있다.

<지당>

이 건물 서쪽에는 화강석으로 아름답게 조성한 지당(池塘)이 있다. 남북 길이 12.8m, 동서 길이 5.2m의 장방형 연못인데, 연못의 4벽은 장대석으로 쌓았고, 둘레에 돌난간을 정교하게 조각하여 돌렸다. 지당 위에는 길이 5.94m, 폭 2.56m의 간결한 돌다리를 동서로 설치했다. 이 지당의 물은 북쪽 4.6m 떨어진 샘에서 넘쳐나는 물을, 직선으로 설치한 석구(石溝)를 통해 폭포로 떨어지도록 고안했다. 한국의 지당 가운데 가장 기발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평가받는다.

[출처]위키백과

 

통명전

보물 제818호. 통명전은 창경궁에 있는 왕과 왕비의 침전 겸 연회용 건물이다.[7] 명정전 서북쪽 궁궐 안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았는데, 동쪽에 있는 환경전과 함께 남향하고 있다.[7] 창경궁 창건 때인 1484년에 지은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1616년에 재건하였으나, 다시 정조 14년(1790년)에 불에 타 소실되었다.[7] 지금의 건물은 순조 34년(1834년) 창경궁의 전각 대부분을 재건할 때 지은 것으로,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인데,[7] 정면 5칸, 측면 2칸을 감싸며 퇴칸이 설치된 형식을 하고 있다.[8]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창덕궁 대조전과 같이 용마루가 없다.[8]

 

동궐도에는 이 건물이 터만 남은것으로 보아 순조33년 이전에 불탄것으로 보이며 숙종때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모해하기위해 통명전 뜰에다가 저주하는 물건을 심어다놓았다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다.

[출처]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