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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오피니언

민족주의라는 괴물과 통화스와프 관련 칼럼 5개/능소화 사진 3장

[강상중칼럼]한·일 집권세력과 언론, 내셔널리즘 유혹 벗어나야
경향신문 강상중 | 도쿄대 대학원 교수 입력 : 2012-08-22 21:25:43

이명박 대통령의 돌연한 독도방문이 국내외에 파문을 키우고 있다.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의 독단적인 ‘정치적 쇼’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여서, 외교통상부와 외교관료, 주일 한국대사관은 결정 과정에서 소외된 것 아닌가 생각된다.

대통령의 독도방문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은 물론 해외 어느 나라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 아닌가. 특히 일본은 소비세 증세법안을 둘러싼 정국혼란 와중에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이 전혀 뜻밖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한국 내에서도 독도방문은 대통령 개인의 결단으로 강행되면서 국민이 허를 찔렸다고 느낀 것은 아닐까.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에 대해 중장기적인 전략적 고려가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취임 때부터 일본에 대해 ‘햇볕정책’을 취해온 이 대통령은 일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편한 대통령이었다. 실제로 동일본대지진의 영향으로 일본의 대한 직접투자가 늘어나고 대일 무역역조도 개선의 조짐이 나타났다. 북한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강경한 태도는 일본에서는 오히려 좋게 평가되어 북한에 대한 대응에 한·일 간 협력이 보다 강고해질 것으로 여겨져왔다.

게다가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일 간 대립격화와 함께 대중국 견제라는 측면에서 한국은 일본에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서 자리잡게 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명박 정부 하에서 한·일 밀월도 상호간 전략적인 의도가 어긋나면서 점차 불화로 변질되었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역사인식과 ‘일본군 위안부’ 등의 문제에 대한 국내의 대일 요구를 억눌러가면서 대일 접근을 꾀했던 만큼 일본의 양보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허사였다. 그런 점이 결정적으로 드러난 것이 교토(京都) 한·일 정상회담이었다. 회담에서 일본의 외무성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정권은 위안부 문제에 인도적인 퍼포먼스조차 실행하려는 의지가 없음을 명백히 했다. 일본에 유화적이었던 대통령으로서는 ‘저자세 외교’라는 평가만이 남게 되었다.

본래 구(舊)체제 중심에 있는 자민당과의 협력없이 소비세 증세를 비롯한 여러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온 노다 정권에게 위안부 문제를 놓고 한국과 타협할 여지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영토와 역사 문제에 강경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는 파벌그룹을 안고 있는 데다 냉전시대 한·일 유착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자민당의 반발을 생각하면 노다 정권은 한·일협약 재검토로 이어질지 모를 타협에 나설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일본의 전략적 결단을 기대해온 이명박 정부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다 정권도 이명박 정부의 대중외교를 잘못 읽었다. 중국의 군사적 대두와 해군력 증강, 영토대립 등에서 일본은 한국이 보다 일본의 입장에 접근해 줄 것을 기대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일 간 군사정보의 포괄적인 보호협정을 체결하는 움직임에도 속도를 냈다. 하지만 협정이 체결 직전 취소되었다.

경제적인 연계와 안전보장 관점에서도 이명박 정부는 일본과의 연계를 심화시켜 중국 견제로 나서려고는 하지 않았다. 대중 견제 차원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에 착안한 일본은 미·일 안보를 기축으로 하면서도 한국을 대중 견제의 유력한 수단으로 위치짓고, 안전보장 전략에 한국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좌절되고만 것이다.

이 같은 한·일 간 전략적인 구상의 엇갈림이 배경으로 작용하면서 이 대통령은 레임덕에 빠진 정권을 지탱해 보려고 독도방문을 강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해 동일본대지진에 따른 충격으로 원전사고 문제를 안고 있는 데다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대립, 북방영토(쿠릴열도)를 둘러싼 러시아와의 갈등, 오키나와 기지 이전 문제와 오스프리 배치 문제에서 미국과의 불협화음으로 고심하는 노다 정권에 독도문제로 한국과 균열이 깊어진다면 일본의 외교, 안전보장은 꽉 막힌 상태가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9월 중 대표 및 총재선거를 앞두고 있는 민주당과 자민당의 당내 사정과 연내 총선거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한국에 강경 수단을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이 독도방문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든 이상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독도방문이라는 ‘후미에’(踏繪·사상검열 수단)가 부과될 것이고, 그럴 때마다 한·일관계가 험악해지는 악순환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사태를 보다 복잡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은 일본 국내에서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에 ‘총리가 방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다. 그럴 경우 중·일관계는 험악해지지 않을 수 없고, 한·중·일 3개국의 협력이 흐트러질 뿐 아니라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의 기운이 높아지면서 예측불허의 사태도 일어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러한 사태까지 감안하면서 독도방문 카드를 꺼낸 것인가. 한국은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고, 이 이상 풍파를 몰고 오는 것은 오히려 한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바람직한 것은 한·일 양국이 영토문제를 수단으로 삼아 국내 정국을 유리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정치역학을 되도록 약하게 만들어, 동아시아라는 광역권의 형성을 향한 한·일 협력의 구체적인 여정을 세우고 착실히 실행해 가는 것이다. 양국의 집권세력과 언론들은 영토 내셔널리즘의 유혹에 지면 안된다.

 



 

까리한데 일본은 지난해 동일본대지진에 따른 충격으로 원전사고 문제를 안고 있고...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대립, 북방영토(쿠릴열도)를 둘러싼 러시아와의 갈등, 오키나와 기지 이전 문제와 오스프리 배치 문제에서 미국과의 불협화음으로 고심하는 노다 정권에 독도문제로 한국과 균열이 깊어진다면 일본의 외교, 안전보장은 꽉 막힌 상태가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음이 틀림없다....ㅇㅇ....^-^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일 간 대립격화와 함께 대중국 견제라는 측면에서 한국은 일본에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서 자리잡게 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명박 정부 하에서 한·일 밀월도 상호간 전략적인 의도가 어긋나면서 점차 불화로 변질되었다...ㅇㅇ...^-^

이명박 정부로서는 역사인식과 ‘일본군 위안부’ 등의 문제에 대한 국내의 대일 요구를 억눌러가면서 대일 접근을 꾀했던 만큼 일본의 양보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허사였다. 그런 점이 결정적으로 드러난 것이 교토(京都) 한·일 정상회담이었다. 회담에서 일본의 외무성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정권은 위안부 문제에 인도적인 퍼포먼스조차 실행하려는 의지가 없음을 명백히 했다. 일본에 유화적이었던 대통령으로서는 ‘저자세 외교’라는 평가만이 남게 되었다. 일본의 전략적 결단을 기대해온 이명박 정부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ㅇㅇ...^-^

노다 정권도 이명박 정부의 대중외교를 잘못 읽었다. 중국의 군사적 대두와 해군력 증강, 영토대립 등에서 일본은 한국이 보다 일본의 입장에 접근해 줄 것을 기대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일 간 군사정보의 포괄적인 보호협정을 체결하는 움직임에도 속도를 냈다. 하지만 협정이 체결 직전 취소되었다...이 같은 한·일 간 전략적인 구상의 엇갈림이 배경으로 작용하면서 이 대통령은 레임덕에 빠진 정권을 지탱해 보려고 독도방문을 강행한 것으로 생각된다...ㅇㅇ...^-^

 

사태를 보다 복잡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은 일본 국내에서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에 ‘총리가 방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다. 그럴 경우 중·일관계는 험악해지지 않을 수 없고, 한·중·일 3개국의 협력이 흐트러질 뿐 아니라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의 기운이 높아지면서 예측불허의 사태도 일어날 수 있다...^-^

 

 센카쿠 열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일본은 중국과 갈등,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한국은 일본과 갈등...입장을 뒤집어 보면 비슷하네여 ...ㅠㅠ...^-^

 

일본은 대치상황이 4방으로 많네여... 중국과 센카쿠열도, 러시아와 쿠릴열도, 미국과 오키나와기지 이전과 오스프리배치 문제, 우리 한국과 독도 문제로 4개나 되네여...ㅠㅠ...^-^  


 

- 2012년 8월24일 금요일 오전 11시50분...수산나 -

[정동칼럼]민족주의 넘어서야 길이 있다

경향신문 손열 | 연세대 국제대학원장 입력 : 2012-08-23 21:07:32

미국발 금융위기, 유럽발 재정위기로 세계 경제가 침체 일로인 가운데 서로 힘을 모아도 시원치 않을 동아시아 국가들이 연일 민족주의를 분출하며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있다. 최근 한국의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데 이어 독도 표지석이 설치되었고, 홍콩 출신 중국계 14인이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에 상륙한 후 일본 해상보안청에 의해 체포, 강제 추방당했다. 그들이 들고 있던 깃발은 재미있게도 대만의 청천백일기였다.

이에 대항하여 일본 지방의원 등 10명이 정부 허가 없이 센카쿠에 상륙하여 일장기를 거는 사태가 발생했다. 중국 일부 지역에서 일장기가 소각되는 사태로 이어지고, 중국 정부는 시민들의 반일(反日) 감정이 폭주하는 것을 우려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동아시아 공동체란 말을 꺼내기도 민망한 지경이다.

이 모든 사태는 영토문제를 둘러싼 민족주의적 충돌 때문이다. 그런데 영토국가가 성립된 근대 국가체제하에서 영토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된 적은 거의 없다. 전쟁이 아니면 풀 수 없는 사안을 놓고 전쟁을 원하지 않으면서 민족주의적 열정에 사로잡혀 상대를 비난하며 대결 구도로 가는 것은 비이성적인 행동이고 그 대가는 크다. 당장 격한 공방 속에서 그간 동아시아에서 일종의 국제 규범이었던 정경분리 원칙이 훼손되고 있다. 경제 성장을 국가 목표 최우선으로 삼아온 동아시아 국가들의 활로를 보장해온 규범이다.

2010년 가을 센카쿠에서의 충돌로 중국이 희토류(稀土類)의 일본 수출을 봉쇄하면서 보복한 이래, 이번에는 일본이 한국과의 통화스와프 규모 축소를 고려하고 있고, 한국은 한·일어업협정의 파기와 재협상을 거론하고 있다. 풀리지 않는 영토 문제가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동아시아의 경제적 호혜관계마저 훼손할 상황이다.

보다 중대한 점은 일본과 러시아가 다투고 있는 북방 4개 도서로부터 시작하여 독도와 센카쿠를 거쳐 남중국해에 이르는 영토 문제들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전략적 단층선(fault line)상에 정확히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별 사안들이 전략적으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영토 분쟁을 국지적 문제로 생각하여 민족주의적 감성으로 다루다보면 자칫 보다 큰 강대국간 경쟁을 부추기게 되고, 결과적으로 덩치 작은 국가들이 원치 않는 줄세우기 구도로 말려들어갈 수도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센카쿠)에서 핵심 이익을 내세우며 주장적 태도를 굽히지 않고 미국은 적극적으로 견제에 나서며 일본편을 들고 있다. 더 큰 싸움으로 번져 간다면 한국은 독도로 미운 일본과 같은 줄을 서도록 강요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21세기 동아시아가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19세기식 권력정치로 회귀한다면, 무력의 열세에 있는 국가는 더욱 고달프다. 물론 19세기 소국 일본이 청국과 러시아를 꺾고 화려하게 열강의 반열에 오른 성공 스토리도 있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이 19세기 일본의 길을 가기에 세상은 너무나 많이 바뀌었다. 하드 파워 못지않게 소프트 파워가 중요해지고, 주어진 자원의 크기만큼이나 네트워크 능력이 국운을 좌우하는 추세이다. 국경을 넘는 통합체가 현실화되며, 공생의 가치가 존중되는, 그래서 무력이 부족한 중견국에도 희망을 주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민족주의적 경향이 짙어지는 동아시아에서 앞서 나가려면 민족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독도는 우리 땅이지만 영토민족주의에 함몰되어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둡다. 신자유주의와 성장 제일주의를 넘어 공생과 균형, 복지를 지향하는 시대정신과도 부합되지 않는다. 일본의 민족주의적 대응을 우경화라 꾸짖고 중국의 반일 데모를 고소해하며 바라보고 있지만 사실 한국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민족주의 강국이다. 양국을 야단치려면 부국강병의 기준으로는 불가능하다. 민족 우선의 이념을 완화하고 공생과 균형, 복지를 꾀하는 21세기 문명표준을 선도할 때 비로소 한국은 동아시아네트워크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장난하냐최근 한국의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데 이어 독도 표지석이 설치되었고, 홍콩 출신 중국계 14인이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에 상륙한 후 일본 해상보안청에 의해 체포, 강제 추방당했다. 그들이 들고 있던 깃발은 재미있게도 대만의 청천백일기였다....ㅎㅎ...ㅋㅋ...^-^

이에 대항하여 일본 지방의원 등 10명이 정부 허가 없이 센카쿠에 상륙하여 일장기를 거는 사태가 발생했다. 중국 일부 지역에서 일장기가 소각되는 사태로 이어지고, 중국 정부는 시민들의 반일(反日) 감정이 폭주하는 것을 우려하는 상황에 이르렀다....ㅎㅎ...ㅋㅋ...^-^

2010년 가을 센카쿠에서의 충돌로 중국이 희토류(稀土類)의 일본 수출을 봉쇄하면서 보복한 이래, 이번에는 일본이 한국과의 통화스와프 규모 축소를 고려하고 있고, 한국은 한·일어업협정의 파기와 재협상을 거론하고 있다. 풀리지 않는 영토 문제가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동아시아의 경제적 호혜관계마저 훼손할 상황이다...ㅠㅠ...^-^

중국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센카쿠)에서 핵심 이익을 내세우며 주장적 태도를 굽히지 않고 미국은 적극적으로 견제에 나서며 일본편을 들고 있다. 더 큰 싸움으로 번져 간다면 한국은 독도로 미운 일본과 같은 줄을 서도록 강요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ㅠㅠ...^-^

21세기 동아시아가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19세기식 권력정치로 회귀한다면, 무력의 열세에 있는 국가는 더욱 고달프다....ㅠㅠ...^-^

 21세기는 소프트 파워가 중요해지고, 네트워크 능력이 국운을 좌우하는 추세이다. 국경을 넘는 통합체가 현실화되며, 공생의 가치가 존중되는, 그래서 무력이 부족한 중견국에도 희망을 주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고 한다...ㅇㅇ...^-^
- 2012년 8월24일 금요일 오후 12시10분...수산나 -

[중앙시평] 민족주의란 이름의 괴물

중앙일보 오병상 수석논술위원 입력 2012.08.22 00:05

 

 

 민족주의는 괴물이다. 평소엔 숨어 있어 잘 모른다. 모습을 나타내면 상상 밖의 힘을 발휘한다. 잘 다스리면 폭발적 동력이 되지만, 고삐를 놓쳤을 경우 엄청난 희생을 초래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독일 민족주의를 보면 괴물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1807년 독일 철학자 피히테의 대중 강연 ‘독일 국민에게 고함’은 민족주의를 공동체 발전동력으로 승화시킨 성공사례다. 프랑스 나폴레옹이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을 점령하자 독일인들은 절망한다. 피히테의 표현에 따르면 “죽은 몸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병 걸린 둥지(몸)로 돌아갈 수 없을까 하고 헛되이 애쓰는 망령”과 같았다.

 그런 독일인에게 피히테는 민족주의를 외쳤다. “여러분이 결연히 분기한다면, 독일인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기념을 약속하는 한 시대가 꽃피어 오르는 것을 볼 것이며, 독일의 이름이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영광스러운 민족으로 드높여지는 것을 볼 것”이라고 외쳤다. 결연히 분기하는 방법으로 교육혁명을 강조했다. 국민교육을 통해 (패전의 원인인) 이기심을 타파하자는 것이다.

 당시 유럽은 근대적 의미의 민족주의와 국민국가가 막 형성되던 시기였다. 프랑스에 짓밟힌 독일은 게르만 민족주의라는 동력에 불을 지펴 통일과 국민국가 형성의 길로 나섰다. 그 결과 64년 만에 프랑스와의 전쟁에 승리해 베르사유 궁전에서 ‘제2 제국’을 선포함으로써 통일의 꿈을 이루었다.

 

 반면 히틀러의 나치즘은 최악의 민족주의로 꼽힌다. 나치즘은 독일 민족주의에 인종주의까지 가미된 파시즘이다. 우수한 독일 민족의 혈통을 지키기 위해 ‘독일인의 혈통과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법’을 만들었다. 유대인과 독일인의 결혼을 금지하고, 모든 신랑·신부는 혈통에 관한 증빙서류를 제출하게 했다. 불순한 혈통에 대한 대청소가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다. 열등민족에 대한 지배는 곧 2차 대전이었다. 주목할 대목은 히틀러 역시 민주적 절차로 집권했다는 점이다. 독일 국민은 정치적 선동에 휩쓸려 민족주의란 괴물의 고삐를 놓쳐버렸음을 당시엔 알지 못했다.

 이런 아픈 역사가 있기에 서구에선 ‘민족주의’라고 하면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를 뜻하는 쇼비니즘(chauvinism) 혹은 징고이즘(jingoism)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배타적 민족주의와 전쟁에 대한 공포심이 널리 퍼져 있기에 유럽통합이란 국경 허물기가 가능했다. 21세기 유럽에선 적어도 국가 차원의 민족주의는 사라졌다.

 반면 최근 민족주의의 화약고로 떠오르고 있는 지역이 동북아시아다.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 세 나라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를 지니고 있다.

 첫째, 세 나라는 유구한 민족적 정체성을 자랑한다. 세 나라는 각각의 영토에서 수천 년의 민족공동체를 꾸려왔다. 스스로 세계의 중심이라 자부하는 중국의 중화민족주의는 긴 말이 필요 없다. 일본은 더 독특하다. 만세일손(萬世一孫)의 천황(일왕)이 다스리는 신국(神國·신의 나라)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주의의 토양은 깊고 풍성하다.

 둘째, 결정적으로 세 나라는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직접 가해·피해 당사자로서 아직 생생한 기억을 지닌 채 국경을 맞대고 있다. 작은 일에도 아픈 기억에 민족주의가 되살아난다. 특히 국경 문제는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이라 더더욱 민족감정을 자극한다. 중국과 한국에선 민족주의가 독립운동의 이념이었기에 지금도 신성하다.

 셋째, 동북아 지역은 패권이동의 변혁기다. 일본이 가라앉고 중국이 아편전쟁 이후 100년 만에 굴기(<5D1B>起)하면서 힘의 이동이 급속히 이뤄지고 있기에 마찰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본이 상실감과 중국의 자존심은 화력 좋은 불쏘시개다.

 넷째, 2012년 현시점에서 세 나라는 모두 권력 이양기다. 이명박(MB)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잇따른 발언은 레임덕 대통령의 자구책으로 풀이된다. 일본 노다 총리 역시 민주당 정권의 명운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외교적으로 유약하다”는 비난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10년 주기의 지도부 교체를 눈앞에 둔 중국의 경우 더 민감하다. 과거와 달리 대중적 지지를 의식하지 않고는 권좌에 오르기도, 유지하기도 어렵게 됐다. 중국 네티즌의 민족주의 열기는 폭발 직전이다. 중국은 이런 열기를 적절히 외부로 발산함으로써 내부 단속을 꾀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최악은 ‘정치인에 의한 민족주의 자극’이다. 그런 점에서 MB의 갑작스러운 대일 강경책은 ‘맞는 얘기’지만 ‘바람직하진 않은 행동’이었다. 민족주의라는 괴물의 고삐를 놓치지 않으려면 냉정해야 한다.

오병상 수석논설위원


마2012년 현시점에서 세 나라는 모두 권력 이양기다. 이명박(MB)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잇따른 발언은 레임덕 대통령의 자구책으로 풀이된다. 일본 노다 총리 역시 민주당 정권의 명운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외교적으로 유약하다”는 비난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10년 주기의 지도부 교체를 눈앞에 둔 중국의 경우 더 민감하다....중국은 이런 열기를 적절히 외부로 발산함으로써 내부 단속을 꾀해 왔다....ㅇㅇ...^-^

 

 이런 상황에서 최악은 ‘정치인에 의한 민족주의 자극’이다....민족주의라는 괴물의 고삐를 놓치지 않으려면 냉정해야 한다....ㅇㅇ...^-^

 

- 2012년 8월24일 금요일 오후 1시...수산나 - 

[노트북을 열며] ‘쓰지마 국장’이 쓰고 싶은 것

중앙일보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 입력 2012.08.24 00:35

 

 

은성수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정책국장에게 요즘 별명이 하나 생겼다. ‘쓰지마 국장’이다. 이란 이슈나 한·일 통화스와프 얘기만 나오면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면서 이 말부터 꺼낸다. “에이~, 쓰지 마~.”

 그러고 나면 잘 준비된 레퍼토리가 이어진다.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로 이란 이슈는 이해 대상국인 미국·유럽연합(EU)과의 관계를 감안해야 하고, 자칫하면 이란·미국과의 우리 정부 협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둘째로 통화스와프에 관한 어떤 언급도 한·일 갈등을 더 부추길 수 있다. 국익을 감안해 달라는 그의 호소에 기자들도 고민이 없을 수 없다. 그래도 일단 장이 서고 판이 벌어지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라도 써야 한다.

 일본이 통화스와프 축소 가능성을 흘리는 건 옹졸하고 치사한 짓이다. 그렇다고 감정이 앞서면 안 된다. 국제금융 업무를 오래 했던 정부의 고위 관료는 “‘통화스와프가 중단돼도 한국엔 별 효과가 없다’는 식의 보도는 좀 곤란하다”며 “그렇다면 정부가 그동안 뭐하러 애써 통화스와프를 맺었겠느냐”고 말했다. 물론 한국은 촘촘하게 외환 방어막을 쌓아 왔다. 외환보유액이 세계 7위 수준이고 급격한 자본 유출입을 막기 위해 선물환 규제 등 ‘3종 세트’도 마련했다. 그렇다고 해도 외환 비상금이 하나 더 있으면 분명 좋은 거다. 지금 외환시장은 태평성대지만 언제든지 바람의 방향과 세기는 바뀔 수 있다.

 2010년 10월. 지금 총리인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당시 재무상이 폭탄 발언을 했다. 한국과 중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특히 노다는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거론하며 “통화절하 경쟁이 큰 문제가 될 것이며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그 역할을 엄하게 추궁당할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까지 했다. 대통령 프로젝트였던 G20까지 일본이 들먹이자 청와대와 재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그해 11월 서울 G20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었다. ‘환율전쟁’으로 비화하기 직전에 재정부 담당 국장이 일본 재무성 국장에게 항의전화를 걸어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답변을 듣는 선에서 갈등은 봉합됐다. 이 와중에도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G20이 끝날 때까지 노다 재무상과 애써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과거엔 독도 문제 등으로 아무리 시끄러워도 정경분리(政經分離) 원칙에 따라 양국 재무장관 회담은 열었다”고 말했다.

 

 일부 논자에겐 한·일 통화스와프나 양국 간 교류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따지는 게 “손익계산에 몰두하는 치졸함”으로 비치는 모양이다. 동의할 수 없다. 경제는 2차적이고 상대적인 게 아니다. 우리가 외교무대에서 폼 좀 잡을 수 있고 올림픽 체육강국으로 부상한 것도 결국 경제력이 바탕이 됐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는 끈질기게 추궁하되 경제는 제 갈 길을 가게 하자.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쓰지마 국장’은 아마 이런 게 쓰고 싶지 않았을까.

 

 


됐거든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일본이 한국과의 통화스와프 규모 축소를 고려하고 있고, 한국은 한·일어업협정의 파기와 재협상을 거론하고 있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는 끈질기게 추궁하되 경제는 제 갈 길을 가게 하자.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쓰지마 국장’은 아마 이런 게 쓰고 싶지 않았을까...^-^

 

- 2012년 8월24일 금요일 오후 1시30분...수산나 -

[서소문 포럼] 한·일 통화 스와프 잔혹사

중앙일보 이정재 경제부장 입력 2012.08.20 00:06  

 

일본이 돈 가지고 생색을 낸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며칠 전 일본 관방장관이 “여러 검토를 할 수 있다”며 문제 삼은 한·일 통화 스와프 협정도 뿌리가 깊다. 통화 스와프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 어려울 때 서로 돈을 빌려주는 장치다. 시작은 1997년 9월로 거슬러 간다. 일본은 당시 아시아 통화 맹주(盟主)의 야심에 부풀었다. 홍콩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서 내심을 드러냈다 “일본이 앞장서 아시아 외환위기국을 구제하겠다”며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을 기습 제안했다. 태국 바트화, 말레이시아 링깃화가 줄줄이 무너지고 한국 원화마저 위태로울 때다. 당시 일본은 6000억 달러에 달하는 미 재무부 채권을 가진,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이었다. 달러에 맞짱 뜨는 강한 엔화를 꿈꿨다. 일본 대장성 관리들은 공공연히 “일본이 미국 채권을 대거 팔아치우면 달러화가 흔들릴 것” “중국과 손잡고 미국을 혼내줄 것”이란 소리를 흘렸다.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은 “결코 그런 일은 없다”며 힘으로 누르고 중국을 부추겨 일본을 고립시켜 무력화했다. AMF 창설은 미뤄졌고, 일본은 아시아 통화 맹주의 꿈을 접어야 했다.

 한국은 그런 AMF를 가장 먼저 지지선언했다. 그해 11월 한국은 다급했다. 달러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외국인 투자자는 ‘서울에서 탈출’했다. 재정경제원 관리들은 백방으로 달러를 꾸러 다녔다. 엄낙용 차관이 그즈음 극비 잠행해 일본에 간 것도 그래서다. 같은 시각 재경원은 ‘AMF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냈다. 돈 빌리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일본은 매정했다. “위기 땐 서로 돕자”더니 나 몰라라 했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대장성 재무관은 매정하게 끊었다. “정부 차원의 지원은 없다”고 잘랐다. 미국이 용납 안 한다는 핑계를 댔다. 엄 차관은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10여 일 뒤엔 임창렬 경제부총리가 직접 날아갔다. 결과는 마찬가지. 미쓰즈카 히로시 대장상은 ‘한국을 돕지 말라는 게 미국의 뜻’이라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불과 석 달 전 자기 입으로 “한국이 어려울 땐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했던 다짐은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한국은 마지막 기대를 그렇게 접고, 며칠 뒤 IMF행을 택해야 했다. 당시 재경원 고위 관리는 “그해 일본이 한 일이라곤 150억 달러의 자금을 한국에서 가장 먼저 회수해간 것뿐”이라며 “돈 안 빌려준 건 물론 한술 더 떠 비 올 때 우산을 뺏어간 셈”이라고 돌아봤다.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한·일 두 나라가 통화 스와프 협정을 맺기로 한 것은 2000년 5월. 한·중·일과 동남아 국가가 맺은 통화교환협정(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을 통해서다. 이듬해 7월 한국은 일본과 20억 달러의 계약을 한다. 한국으로선 외국과 맺은 첫 통화 스와프 계약이요, 이후 한·미, 한·중으로 이어지는 ‘외환방패’의 시작이었다. 일본으로선 다 꺼져가던 아시아 통화 맹주의 불씨를 살린 셈이다. 2010년 한·일 통화 스와프 규모는 700억 달러로 확대됐다.

 

 이런 곡절을 잘 알면서 일본이 또 통화 스와프 운운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외환 문제는 한국의 약점이 아니다. 2010년 이후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환원, 선물환 포지션 규제, 외환건전성 부담금 도입 등 ‘외환 방패 3종 세트’를 마련했다. 외환보유액은 세계 7위, 3000억 달러가 넘는다. 웬만한 파도는 견딜 든든한 둑을 쌓은 셈이다. 일본의 ‘비 올 때 우산 뺏기’는 더 이상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한 번 틀어졌다고 바로 남의 약점, 그것도 자신들이 소금을 뿌린 상처를 다시 들춰내는 나라가 일본이다. 물론 ‘대국답지 못하다’고 무시하고 말면 그만이다. 그러나 뒤가 켕긴다. 정치의 계절,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정권 말이면 국내 정치가 국익이나 국제 관계보다 더 중요해지기 십상이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그렇다. 임기 말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일왕 사과 발언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약점 없는 경제, 강한 경제가 필수다. 그래야 뒷감당이 가능하다. 또 한 번 일본에 돈 꾸러 갔다 문전박대 받고 돌아올 수는 없잖은가.


배고파통화 스와프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 어려울 때 서로 돈을 빌려주는 장치다....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일본이 한국과의 통화스와프 규모 축소를 고려하고 있고, 한국은 한·일어업협정의 파기와 재협상을 거론하고 있다고 한다...ㅋㅋ...ㅎㅎ...^-^

 

 한·일 통화 스와프 협정 뿌리가 깊다. 순서대로 나열하면~~

 

1. 1997년 9월, 홍콩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서 “일본이 앞장서 아시아 외환위기국을 구제하겠다”며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을 기습 제안했다. 그러나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은 “결코 그런 일은 없다”며 힘으로 누르고 중국을 부추겨 일본을 고립시켜 무력화했다. AMF 창설은 미뤄졌고, 일본은 아시아 통화 맹주의 꿈을 접어야 했다.

 

2. 1997년 10월 한국은 다급했다...재경원은 ‘AMF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고, 엄낙용차관이 돈 빌리러 일본에 갔다...그러나 허사...10여 일 뒤엔 임창렬 경제부총리가 직접 날아갔다...결과는 역시 허사...뿐만아니라 일본은 "150억 달러의 자금을 한국에서 가장 먼저 회수해간 것뿐”이라며 “돈 안 빌려준 건 물론 한술 더 떠 비 올 때 우산을 뺏어간 셈”이라고 돌아봤다....ㅠㅠ...한국은 마지막 기대를 그렇게 접고, 며칠 뒤 IMF행을 택해야 했다...ㅠㅠ...^-^

 

3. 2000년 5월. 한·중·일과 동남아 국가가 맺은 통화교환협정(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을 통해서  한·일 두 나라가 통화 스와프 협정을 맺었다...이듬해 2001년 7월, 20억 달러로 시작하여...2010년 규모는 700억달러로 확대되었다...^-^

 

4. 2010년 이후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환원, 선물환 포지션 규제, 외환건전성 부담금 도입 등 ‘외환 방패 3종 세트’를 마련했다. 외환보유액은 세계 7위, 3000억 달러가 넘는다. 웬만한 파도는 견딜 든든한 둑을 쌓은 셈이다. 일본의 ‘비 올 때 우산 뺏기’는 더 이상 성공하기 어렵다...ㅋㅋ...ㅎㅎ...^-^

 

 이럴 때일수록 약점 없는 경제, 강한 경제가 필수다. 그래야 뒷감당이 가능하다. 또 한 번 일본에 돈 꾸러 갔다 문전박대 받고 돌아올 수는 없잖은가...ㅎㅎㅎ...^-^

 

- 2012년 8월24일 금요일 오후 2시20분...수산나 -

 

능소화 꽃...꽃이 지면서도..시들어 보이지 않은 채...단지 땅에 떨어져 있을 뿐인 그런 꽃 입니다...^-^

 

능소화 꽃과 잎.......꽃이 질 때...아름다운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채...단지 땅에 떨어져 있을 뿐인 그런 꽃 입니다...^-^

 

능소화 꽃과 잎....시들지 않은 채...아름다운 모습 그대로...고귀함과 품위를 잃지않은 채...땅에 떨어져 양반꽃이라고 불리는 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