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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오피니언

<중.일 영토갈등과 한국> 관련 오피니언 12개/ 그림 <한민족의 얼(농악)> 2장

[시론] 더 많은 분쟁 감춘 中·日의 '우호적 담판'

 조선일보 사외칼럼 정재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입력 : 2012.09.26 23:31

 

동아시아의 영토 분쟁 파고(波高)가 높다. 최근 격화되고 있는 중국·일본 간의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뿐 아니라 중국과 필리핀·베트남 사이에도 도서의 영유권 및 해상 경계 획정을 두고 긴장이 감돌고 있다. 냉전만 끝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했지만 이념의 종말은 오히려 그동안 닫혀 있던 전통적 갈등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젖힌 셈이 되었다. 특히 유럽과 달리 역사의 앙금이 가시지 않은 동아시아에서 민족주의, 고토(故土) 회복주의, 사이버 국수주의가 함께 맞물리면서 민감한 국면을 빈번히 만들어내고 있다.

중·일 간 분쟁은 분쟁 지역의 범위에 대해서조차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남중국해와 달리 그 역사적 뿌리가 깊다. 소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동북아에서 일본의 역할이 절실했던 미국이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을 통해 동아시아 영토 분쟁의 실마리를 제공한 면도 있다. 이에 더해 세계 2위의 막강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중국을 내려다보던 일본이 2010년 처음으로 GDP 규모에서 중국에 밀린 후 전략적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과도 연관이 깊다. 더 나아가 최근 센카쿠 '국유화'라는 일본의 현상 변경 조치가 중국의 강경한 대응을 이끌어냈다. 역사적으로 함께 강성했던 적이 별로 없는 일본과 중국이 '기(氣) 싸움'을 제대로 한판 벌이는 형국이다.

해상 영토 분쟁과 관련해 흔히 제기하는 주권, 대륙붕, 에너지, 광물자원의 문제도 있지만 중국의 부상(浮上)이 파생시킨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이 있다. 중국의 부강(富强)은 13억 중국인의 식단을 크게 변화시켰다. 1970년 5㎏에 불과했던 1인당 연간 수산물 섭취량이 지난해에는 25㎏까지 증가했다. 급증하는 수요에 맞추기 위해 중국 어업은 연안 포획을 벗어나 넓은 바다로 나아가야 했고 이는 곧 여러 국가와의 영유권 및 경계 획정과 연관된 갈등을 드러내는 추가적 요인으로 작동했다.

전투함들 사이의 대결이 아니라 해상감시선끼리 대치하는 정도로 중·일 간 분규가 끝날 모양새를 갖추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양국 정부가 특사 파견을 포함해 다양한 대화의 채널을 가동시키고 '우호적 담판'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중·일 영토 분쟁의 종료를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향후 더 많은 분쟁이 생길 수 있음을 알리는 전령일 가능성이 크다. 떨치고 싶은 과거에 대해서조차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운 동아시아에서 미래에 대한 결심이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센카쿠를 미·일 방위조약의 적용 대상으로 규정한 미국의 최근 입장이 역내(域內) 다른 영토 분쟁과 비교할 때 일관성은 있는지, 또 장기적으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은 될 수 있는지 아직은 확실치 않다.

이번 사태가 한국에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크게 세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첫째,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센카쿠에 대한 일본 정부의 조치들을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독도 수호와 관련해 면밀히 분석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둘째, 아직은 '먼저 도발해 상대를 제압하기(先發制人)'보다는 '상대방의 도발에 압도적으로 대응하는(後發制人)' 모습을 띠는 중국의 전략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언제까지 중국이 이러한 규범에 계속 얽매일지는 알 길이 없다. 셋째, 언젠가 실제로 닥칠 수도 있는 영토주권 침해에 우리는 과연 우리 힘으로 대응할 충분한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 자문할 때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설] 독도·이어도 사태 보며 더 걱정스러운 대선 후보 安保 역량

조선일보 사내칼럼 입력 : 2012.09.26 23:3 

 우리 주변 바다에서 중국과 일본이 일으키는 풍랑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중국은 23일 이어도 해역(海域)을 무인항공기 감시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발표하더니 25일엔 첫 항공모함 랴오닝호를 실전 배치했다.

중국이 랴오닝호를 서둘러 실전 배치한 것은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를 둘러싼 일본과의 분쟁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항모 랴오닝호는 칭다오를 모항(母港)으로 삼고 있어 이어도 해역을 포함한 우리 서해 전체도 그 작전 반경 안에 들어간다. 중국이 일본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댜오위다오에 대한 실력 행사의 수위를 높여 가는 것은 우리에게도 상서(祥瑞)롭지 않은 사태다. 일본이 독도를 겨냥해 비슷한 시도를 해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25일 정부가 여야 정치권이 합의했던 전면 무상 보육 방침에 못 미치는 내년 예산안을 발표하자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무책임한 국정 운영의 극치"라고 했고,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이래서 정치가 불신받고 국민이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국회에서 정부 방침을 뒤집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렇게 말 많은 대선 후보들이 우리 영토와 해역을 위협하는 중국과 일본 움직임에 대해서는 입 한번 뻥긋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국민은 독도·이어도 등 우리 영토에 대한 일본과 중국의 도전을 겪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의 무장(武裝) 대치를 보면서 우리 대선 후보들이 장래 이런 사태를 감당할 능력이 있을지 걱정스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 시진핑 부주석은 최근 패네타 미 국방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일본의 댜오위다오의 국유화 조치를 정면으로 비판한 뒤 미국에 대해서도 이 문제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시 부주석은 며칠 후엔 "이웃 나라와의 영토·영해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내정돼 지난 5년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을 상대로 현장에서 국제 정치를 보는 안목(眼目)을 기르고 정상을 상대하는 외교 역량을 쌓아온 시 부주석이 대결과 대화 정책을 넘나들며 댜오위다오 문제를 직접 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일본 총선에서 재집권이 유력시되는 자민당은 16일 아베 전 총리를 새 총재로 선출했다. 아베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일본 헌법을 개정하고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와 일본의 주변 국가 침략을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까지 수정할 것을 주장해왔다.

한국의 차기 대통령의 최대·최초의 과업은 영토·영해 문제를 공격적으로 풀어가려는 중·일의 차기 지도부를 상대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일수록 국가 이익을 보호하고 국민의 자존(自尊)을 지켜낼 국가 최고 지도자의 안보·외교 역량이 더욱 중요하다. 전국의 시장과 골목을 누비며 표(票)가 될 인기 정책 상품을 파는 데만 골몰하고 있는 우리의 대선 후보들에게 이 어려운 과업을 믿고 맡겨도 될 것인지 국민의 걱정은 깊어 간다.

[만물상] 다롄의 랴오닝號

조선일보 사내칼럼 김태익 논설위원 입력 : 2012.09.26 23:31  

 

1891년 7월 청나라 북양함대 소속 '정원(定遠)함'을 비롯한 군함 여섯 척이 축포 속에 위풍당당하게 일본 요코하마항을 친선 방문했다. 중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서양식 최신 장비를 갖춘 함대였다. 함장과 기관사는 예일대·매사추세츠대 등에 유학한 엘리트들이었다. 국제관례에 따라 배 위에서는 영어로 명령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이상한 구석이 많았다. 장교는 비단옷을 입었고 병사는 중국 평민복에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대포 위에 젖은 옷을 말리는 병사도 있었다.

▶일본 해군부대 참모장 도고 헤이하치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거대한 함대의 기율이 저 정도라니. 왜들 그렇게 중국을 두려워할까." 당시 해군력은 청나라가 세계 8위, 일본은 16위였다. 일본은 온 나라가 해군력 증강에 나섰다. 정부는 해군 공채(公債)를 발행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순양함을 영국에서 사들였다. 왕실과 귀족·부호들이 앞다퉈 돈을 내놓았다. 심지어 어린이들 사이에도 '정원함 잡기 놀이'라는 게 유행했다.

▶3년 뒤 조선에서 일어난 동학혁명을 빌미로 청나라와 일본이 한반도와 서해에서 맞붙었다. 결과는 청나라의 완패였다. 그때까지 청나라는 배를 한 척도 늘린 게 없었다. 군함들은 중국 남부 지방에서 서태후에게 바치는 과일을 실어나르는 일에나 투입됐다. 청일전쟁은 중국이 종이호랑이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알렸다. 중국은 동북 랴오닝(遼寧)의 광대한 땅, 대만과 거기 딸린 섬들을 일본에 빼앗겼다. 일본 1년 예산의 네 배에 해당하는 백은(白銀) 2억냥도 배상해야 했다.

▶그제 중국 랴오닝성 다롄(大連)에서 동북아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호(號)가 취역식을 가졌다. 정식으로 중국 해군에 배치됐음을 알리는 행사다. 병사 2000여명, 항공기 50여대에 중국이 개발한 최신예 젠15 전투기를 실을 수 있는 전력이다. 다롄은 청일전쟁 초기 서해에서 일본에 패한 중국 군함이 도망쳐 갔던 곳이다.

▶랴오닝호는 엊그제까지도 원래 이름이 바랴크호였다. 1904년 러일전쟁 때 인천 앞바다에서 일본 공격을 받고 침몰한 러시아 군함과 같은 이름이었다. 중국이 옛 소련의 항공모함을 사다 개조해 내놓으면서 붙인 이름이 하필이면 치욕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랴오닝'이라는 게 예사롭지 않다. 지금 중국은 청일전쟁 때 일본이 '날치기해갔다'고 주장하는 댜오위다오를 놓고 일본과 충돌 직전까지 가 있다. 100여년 전 동아시아에 드리웠던 먹구름의 그림자가 다시 어른거린다. 문제는 지금 중국이 그때 같은 종이호랑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론]중·일 영토갈등과 한국

경향신문 오피니언 신주백 앤세대 HK 연구교수 입력 : 2012-09-26 21:26:37

 

동북아에서 영토를 둘러싼 갈등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대만명 댜오위타이) 해상에서 일본이 정한 영해 안으로 대만 순시선이 들어가면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서로 물대포를 쏘며 충돌했다. 일본에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해 온 대만까지 나서서 일본의 국유화 조치에 적극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신화통신 홈페이지를 통해 ‘댜오위다오는 중국의 고유 영토’라는 제목의 백서를 25일 발표했다. 중국은 명 왕조 시기인 1403년에 완성된 책에서 댜오위다오라는 이름이 처음 기재된 이래 이곳이 자신의 고유영토였는데,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해 대만과 그 부속도서인 댜오위다오도 일본에 할양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한때 이 섬을 관할했지만, 1950년대 들어 미국이 자신의 위임관리 범위에 섬을 포함시켰고, 1972년 미국이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할 때 ‘남몰래’ 넘겼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중국은 일본의 언행이 “세계 반파시즘전쟁에서 승리한 성과에 대한 부정과 도전”이라며, 영토 주권을 지킬 결의와 의지를 확고하게 갖고 있다고 밝히며 백서를 끝맺고 있다.

25일에 있었던 중·일 외교장관 회담 때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도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일본 측에 국유화 조치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일본 외상조차 회담이 ‘험악했다’고 말할 정도로 양측 간의 입장 차이는 선명했다고 한다. 역사문제의 측면을 적극 부각시키려는 중국의 행보는 일·중 외교장관 회담보다 하루 전에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의 때도 확인됐다. 양측은 올바른 역사인식이 담보돼야 동북아 지역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합의한 것이다.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이미 결정한 국유화 조치를 철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역사문제라는 측면을 무시하고 현상 변경을 시도한 일본의 조치를 중국 정부가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중국 정부로서는 그동안 학교교육을 통해 댜오위다오가 중국 땅이라고 강조해 왔던 역사인식을 스스로 부정함으로써 중국 국민의 저항을 자초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 스스로 설정한 국가의 3대 핵심 이익 가운데 하나인 국제안보 영역이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중·일 양국이 갈등을 관리하자는 데 합의만 해도 다행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외교적 해법만을 추구하면 그것은 문제를 ‘봉합’하는 것에 불과하다. 1982년 일본 역사교과서 검정문제로 한·일 간의 외교 갈등이 첨예했을 때, 그리고 21세 들어 중국의 동북공정을 둘러싼 한·중 간의 역사갈등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봉합으로 갈등을 관리해 왔다. 그 결과 두 문제로 인한 갈등이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있으며, 인식의 격차 또한 커짐으로써 국민 상호간의 불신의 벽이 높아져 왔다.

봉합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 기본은 역사문제를 해결한다는 차원의 접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는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과 북방영토를 둘러싼 러·일 간의 마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부와 민간 차원을 불문하고 역사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축적하는 과정은,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하는데 유리하면서도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국가 주권의 경계를 넘는 지역차원의 미래를 건설하려는 전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전망이 현실화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외교는 여기까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지만, 한·중 외교장관 회담 때 한국 측은 그렇지를 못했다.

한·중·일 간의 영토갈등이 이렇게 오랫동안 격렬하게 진행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지금이, 중·일의 틈바구니에서 한국 외교의 국제적 입지를 넓히면서도 지역 미래를 제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알아야 한다.

[특파원칼럼]힘의 외교와 중국 위협론

경향신문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입력 : 2012-09-26 21:16:23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을 둘러싼 중국의 강경 대응을 보면 화평굴기(和平굴起)는 어디로 갔는지 의문이 든다. 중국은 평화로운 부상이란 의미의 화평굴기를 중요한 대외정책의 근간으로 삼아 왔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지난 10년 4세대 지도부는 집권 중 평화로운 부상이란 개념에 집착했지만 이젠 반대로 바뀌고 말았다”는 혹평이 나온다. 굴기 앞에 화평을 내세웠다면 이젠 평화 없이 굴기하려는 의지만 엿보인다는 것이다.

주변국 가운데 오로지 대만과 밀월 관계를 구가하고 있을 뿐 중국은 다른 나라들을 힘으로 누르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센카쿠 분쟁 해법을 둘러싸고 일본이 중국과 대화를 요청하는 모양새여서 중국은 내심 강경대응의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센카쿠 국유화를 단행한 일본에 적지 않은 갈등의 책임이 있긴 하나 중국이 잃은 것은 결코 적지 않아 보인다.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무수하게 밝혀 왔다. 하지만 센카쿠 분쟁을 통해 중국은 영토문제에서 소통보다 힘의 외교를 우선시할 것이란 전망을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굳어져 가고 있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소프트파워를 증진시키고 중국의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자국을 위협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인식을 바꾸는데 적지 않은 성공도 거뒀다. 하지만 센카쿠 분쟁으로 중국 위협론은 더욱 횡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일본에 전쟁 불사를 외치는 것은 급속한 경제발전 과정에서 각종 모순이 누적되면서 쌓인 사회적 불만을 반일 시위로 분출시키려는 정치적 계산도 작용했다. 민족주의는 정치 지도자들이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 중 하나다. 그러나 민족주의에 과도하게 기대는 것은 체제불안 요소가 적지 않은 중국으로서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격이 될 수 있다. 민족주의를 상업화하는 언론의 부작용도 여전하다. 10년 만의 권력 교체를 앞두고 대일 강경외교에서 득을 보려는 세력의 입김도 분명 일본을 압박하는데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예컨대 군사력이 만만치 않은 일본과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1%만 있다고 해도 군 지도부를 대거 교체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닐 것이란 주장이 먹힐 수 있다.

국내적으로 경제문제에 신경쓰느라 대외적으로 다른 나라와 시비붙을 틈도 없다던 중국으로서는 스스로 자신의 말을 뒤집고 있다. 일본은 중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려 할 것이고 동아시아 영토분쟁은 이 지역에 대한 외국인 투자에 불안 요소가 될 게 뻔하다. 정치는 차갑고 경제는 뜨겁다는 것이 지난 몇 년간 중·일 관계의 특징이었지만 앞으로는 달라질지 모른다.

반일 감정이 고조되면서 충칭시에서는 반일항쟁 기념 건조물에 ‘고양이와 일본인은 출입금지’란 경고문이 등장했다. 과거 일본의 중국 대륙 침탈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했지만 이번 영토분쟁을 통해 중국의 반일 정서는 여전히 섬뜩하다는 점이 재차 확인됐다.

상대가 중국과 특수관계인 일본이란 점에서 중국 외교가 힘의 외교로 완전히 돌아섰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미국이 일본·호주·인도·한국 등 아·태지역 국가들과 가치동맹에 열을 올리면서 중국을 자극한 측면도 있다. 중국계 미국인 에이미 추아 미국 예일대 교수는 ‘제국의 미래’에서 “관용과 포용력이 있는 나라가 강대국이 된다”고 말했다.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는 국제 사회의 리더가 되려면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말이다.

중국 첫 항공모함 취역… 한반도 전역이 작전권

 

ㆍ영토분쟁 관련 일본 민감 반응…동아시아 군비경쟁 우려

경향신문 국제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입력 : 2012-09-25 21:48:02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중·일 간에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중국이 25일 항공모함 시대의 막을 올렸다.

신화통신은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항에서 이날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 궈보슝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중국의 첫 항공모함 랴오닝호 취역식이 열렸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1998년 우크라이나로부터 쿠즈네초프급(6만7500t) 항공모함인 바랴그호를 미완성 상태로 2000만달러(약 224억원)에 사들여 다롄항에서 개조작업을 벌여왔다. 중국은 지난해 8월 최초 시험 항해를 포함해 10차례의 시험 항해를 거쳐 마침내 항모 보유국이 됐다. 항모 이름이 랴오닝호로 결정된 것은 대형 군함은 성(省) 명칭으로 정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25일 랴오닝성 다롄항에서 거행된 중국의 첫 항공모함 랴오닝호 취역식에 참석해 갑판에서 병사들을 사열하고 있다. 다롄 | 신화연합뉴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일관계가 악화된 가운데 랴오닝호를 정식 배치한 것은 일본의 센카쿠 국유화에 대한 항의를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항모 보유가 동아시아에서 군비 경쟁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중국 국방부는 “중국의 주권과 안보를 보호하는 데 효과적이며 세계 평화와 공동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우려를 일축했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중 마지막으로 항공모함을 보유하게 된 국가다. 한·중·일 가운데 정규 항공모함을 보유한 나라는 중국이 처음이란 지적에 대해서는 일본의 헬기용 항모가 F-35 등 항공기를 탑재할 수 있어 사실상 항모나 마찬가지라고 반박하고 있다.

랴오닝호가 조만간 센카쿠열도에 실전 투입될지는 미지수다. 중국에서 35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미사일도 아닌 로켓포만으로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베트남·필리핀 등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에 투입될 수도 있다. 중국 일부 언론은 랴오닝호가 칭다오에 사령부를 둔 북해함대에 배속될 것이란 설을 전하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나라 서해를 비롯해 사실상 한반도 전역이 중국의 작전권역에 들어가게 된다.

랴오닝호는 갑판 길이가 302m, 최대 속력이 29노트(시속 54㎞)에 달하며 함재기 50~60여대를 탑재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함재기 이착륙 훈련이 이뤄졌다는 징후가 포착되지 않아 실전 전투능력을 갖추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설] 우려되는 중국 항공모함 시대 개막

[중앙일보]입력 2012.09.27 00:25 / 수정 2012.09.27 09:51

중국이 항공모함 시대의 막을 열었다. 중국 해군은 그제 랴오닝성 다롄항에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최초의 항공모함인 랴오닝함 취역식을 거행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랴오닝함의 취역은 중국의 국방력과 종합 국력을 끌어올리는 중대하고도 깊은 의미를 갖는다”고 선언했다. 연안 방어에 주력해 온 중국 해군이 전투력 투사(投射) 능력을 갖춘 대양해군으로 발돋움했음을 전 세계에 과시한 것이다.

 랴오닝함 취역으로 동아시아 안보 지형의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아시아·태평양 회귀를 선언하고 대중(對中) 견제에 나선 미국과의 갈등이 심화될 게 불 보듯 뻔하다. 미국은 11척의 항모 중 6척 등 전체 해군력의 60%를 태평양에 배치할 계획이다. 중국은 장차 랴오닝함을 필두로 항모 전단을 구성해 태평양 및 인도양으로의 진출을 서두를 것이다.

 영토 분쟁으로 긴장 관계에 있는 주변국들을 자극함으로써 동아시아 전체가 군비경쟁의 늪에 빠질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일본은 물리적 충돌 일보 직전까지 갔다. 일본과 대만은 물대포 공방전까지 벌였다. 자민당의 재집권 가능성과 함께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대국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해 본격적인 재무장에 나서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랴오닝함이 항모로서 제 구실을 하려면 몇 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함재기조차 아직 확보되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서둘러 취역식을 하고 랴오닝함을 실전배치한 것은 대외과시용 성격이 짙어 보인다. 미국은 물론이고 동아시아 주변국들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

 서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마주 보고 있는 우리로서도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문제다. 랴오닝함의 작전반경 800㎞ 안에는 남한 전역이 들어간다. 더구나 중국은 이어도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과 대등하게 맞설 수는 없더라도 만만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의 해군력은 우리도 갖춰야 한다. 예산 사정으로 보류한 전략기동함대 창설을 다시 검토하고,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도 서둘러야 한다.

 

[이홍구 칼럼] 미·중 냉전과 동아시아 혼전

[중앙일보]입력 2012.09.10 00:30 / 수정 2012.09.10 09:03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 국제정세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말로부터 독일 통일까지 40여 년간 세계를 동서 두 진영으로 갈라놓았던 미·소(美·蘇)냉전의 막이 내려간 지 20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중국, 이른바 G2의 관계가 2차 냉전으로 진전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영토분쟁과 역사인식을 둘러싼 갈등은 이 지역의 평화와 발전은 물론 국제질서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혼전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이러한 냉전과 혼전이 겹쳐진 이중적 위협의 성격을 어떻게 진단하고 대처할 것인가.

 우리가 당면한 이중적 위협의 성격은 제국주의 시대의 전통과 유산이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어떤 형식과 동력으로 작동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이해해야 한다. 본래 강대한 대륙국가는 그 지정학적 위치와 규모는 물론 경제력 때문에라도 제국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동서냉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유일 초강대국으로 21세기를 맞았던 미국과, 19세기 말부터 식민주의 세력의 진출과 압력으로 적지 않은 수모를 겪다가 20세기 후반 들어 정치통합을 이루고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며 제국의 면모를 되찾게 된 중국이 대륙국가의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이렇듯 제국의 전통과 여건을 갖춘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의해 세계사의 향방이 좌우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러기에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사는 미·중 관계가 갈등과 협조 두 갈래 길목에서 어느 쪽으로 가닥을 잡느냐에 주목되고 있다. 며칠 전 호주의 맬컴 프레이저 전 총리는 미·중 관계의 앞날에 대해 매우 비관적인 견해를 표명하였다. 미국이 2500명 규모의 해병대를 호주 다윈에 주둔시키기로 이미 합의하였고 핵전력을 구비한 항공모함 등을 호주 서부 군항에 기항하도록 기획하는 것은 결국 중국을 제어하고 압박하는 전략적 포석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새로운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것이다. 군사 및 경제대국으로 급속히 부상하는 중국의 팽창을 이 시점에서 견제해야 되겠다는 미국의 전략은 성공 가능성이 희박할 뿐 아니라 새로운 냉전으로 이어질 전망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프레이저 전 총리의 입장은 9·11의 충격,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고전, 그리고 월가에서 비롯된 금융파동 및 경제불황 등 미국의 자존심이 입은 상처로 말미암아 미·중 관계를 충돌로 몰고 가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견해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미·중 관계의 미래는 미국뿐 아니라, 아니 미국보다도 오히려 중국의 입장과 전략이 어떤 내용과 방향으로 전개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 중국이 개방된 시장경제체제를 통한 발전전략을 견지하고 대중의 욕구를 반영하는 정치개혁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면서 아시아공동체의 전진에 앞장선다면 미·중 관계는 냉전을 넘어 공동번영의 세계사적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희망적 미래 전망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날로 격화되는 한·중·일, 그리고 아세안 국가들의 뒤얽힌 영토분쟁과 역사인식의 갈등 때문이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혼전상태는 정리되지 못한 제국주의 시대의 유산이 새롭게 돋은 민족주의의 탄력을 받고 양성화된 결과다. 중국은 제국주의 시대에 겪었던 외세 침략의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 아시아의 리더로서 의연한 자세를 잡는 데 주저하고 있다. 모든 동아시아 국가가 예외 없이 중국의 이 지역 유일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수용하며 동아시아의 평화로 향한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는데 왜 핵무기 확산 시도를 방치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한편 후진 지역을 식민지화하여 마구 수탈하였던 서구 제국주의를 통째로 모방하며 군국적인 전체주의 국가를 만들어 바로 이웃인 한국과 중국을 무도하게 침략한 일본은 그러한 과거사를 청산하기보다는 보전하려는 듯 엉거주춤한 내셔널리즘에 불을 지피고 있다. 제국주의시대 유산인 국토와 민족의 분단을 67년이나 감내하고 있는 한국의 민족주의도 이렇게 뒤얽힌 국제관계 속에서 온전한 제 모습을 지켜가기는 결코 쉽지 않은 형편이다.

 지정학적 여건의 산물이든, 시대적 이념으로 포장된 곡절이든 간에 역사를 재인식하고 방향을 재조정하는 것은 나라마다 각자 상황에 맞춰 대응해가야 하는 고유 과제다. 남들의 충고나 비판은 아무리 옳다 하여도 어려운 상황은 더욱 꼬여갈 뿐이다. 모름지기 인간의, 특히 이웃 나라 국민의 이성을 믿고 인내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세계의 눈/오코노기 마사오]센카쿠를 보며 독도를 생각하다

동아일보 오피니언 기사입력 2012-09-25 03:00:00

 

 

중국 내 반일 데모가 겨우 진정되는 것 같다. 한국인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둘러싼 일중 대립을 어떻게 보았을까.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표기·이하 독도)를 둘러싼 대립과 비교하지 않았을까. 폭도처럼 변하는 중국의 반일 데모를 보고 일본과 한국의 시위는 완전히 위축됐다. 민주화 이전의 광경을 봤기 때문이다.

두 개의 영토 ‘분쟁’을 보면 미숙한 외교를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센카쿠 열도의 경우 일본 정부가 이 시기(류탸오후 사건 기념일과 중국공산당대회 직전)에 이 같은 조치(국유화)를 취하면 이 같은 결과(격렬한 반일 데모)가 나올 것은 자명했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세계에 일중 영토 ‘분쟁’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

일본은 자본주의 국가다. 국유화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 소유자의 존재가 일본 영토임을 증명한다. 소유자의 사정이 있다 해도 신중하고 유연하게 ‘국유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 ‘국유화’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 정부가 이번 사태를 일중의 ‘동결 합의’ 위반으로 본다는 점이다. 근거는 1972년 국교정상화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 발언(“당분간 동결하자”)과 1978년 평화우호조약 체결 시 덩샤오핑(鄧小平)의 발언(“20, 30년 동결해도 좋다. 우리는 손대지 않는다”)이었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영토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일중 간에 ‘동결 합의’라 할 만큼 명확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일본은 중국의 보류 주장에 반론하지 않았다. 중국 수뇌의 의사를 존중해 온 것이다.

이번 사태로 일본이 “영토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계속 말하기 어렵게 됐다. 영토 문제의 존재를 인정한 다음 그 문제를 동결하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이해하기 쉽다. 실로 동결, 즉 현상 동결이 장래에도 유지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물론 영유권 논쟁 관점에서 현상 동결은 일본 측의 한발 후퇴를 의미한다.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일중 ‘분쟁’은 폭력적 데모와 해양감시선 도발을 제외하면 독도를 둘러싼 일한 ‘분쟁’과 유사하다. 독도를 실제 지배하는 측이 문제를 확대해 영토 ‘분쟁’의 존재를 알렸다. 영토 ‘분쟁’을 확대했지만 동결 외의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8월 10일 이후 일본에서 여러 논의가 전개됐다. 무책임한 논의가 적지 않지만 은퇴한 외교관 두 명의 의견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한 사람은 조약국장, 외무차관, 주미대사를 지낸 리버럴한 구리야마 다카카즈(栗山尙一) 씨다. 다른 한 사람은 사우디아라비아, 태국 대사를 지낸 한국통 보수파 논객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 씨다.

구리야마 씨는 ‘분쟁’의 평화적인 해결 수단으로 외교적인 타협이나 사법적인 해결도 불가능하면 동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결을 ‘미루기’와 바꿔 사용하며 “향후 국제환경과 국내 사정이 바뀌어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오카자키 씨의 주장은 더 솔직하고 구체적이다.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이고, 일본의 우호국이어서 독도 지배를 방해할 방법이 없다. 일본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성립된 사실이 확립되지 않도록 ‘시효(時效) 중지’를 지속하는 것뿐이라고 단언했다.

두 사람의 의견은 상호 보완적이다. 이번 사태에서 증명된 것처럼 일본인은 폭력적인 반한 데모를 하거나 독도에 어선과 순시선을 보내지는 않는다. 일본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고, 한국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동결은 완성된다.

오코노기 마사오 규슈대 특임교수 겸 동서대 석좌교수

[광화문에서/하종대]‘몸집 커진 중국’을 어찌할꼬

 

동아일보 기사입력 2012-09-27 03:00:00

 

 

“일본인인가?”

“한국인인데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하는 일본인 지인은 최근 중국인들이 물어볼 때마다 이렇게 대답한다. 일본인이라고 대답했다간 택시나 식당에서 쫓겨나기 일쑤다. 몰매를 맞을 수도 있다.



일본 정부가 이달 10일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국유화하기로 선포하면서 시작된 중-일 간의 분쟁이 뜨겁다. 8개 섬으로 이뤄진 센카쿠 열도는 5.56km²(중국 측 6.34km² 주장)의 작은 군도다. 일본은 청일전쟁 당시인 1895년 1월 이곳이 주인이 없는 무주지(無主地)라며 내각 결의를 거쳐 영토로 편입시켰다.

중국은 무주지라는 말에 펄쩍 뛴다. 과거부터 대만의 부속섬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청일전쟁의 패배로 1895년 4월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일본에 할양한 땅”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질서를 규정한 카이로 회담 및 포츠담 선언에 따라 당연히 중국에 귀속되어야 할 땅이 미군에 의해 관리되다가 1972년 일본으로 넘겨졌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섬이 갑작스레 열전(熱戰)의 장소로 떠오른 것은 섬 주변 해역의 자원 때문이다. 최근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 이곳엔 일본이 100년간 쓸 수 있는 석유(77억 t) 및 천연가스와 320년간 사용 가능한 망간, 1300년이나 쓸 수 있는 코발트가 매장된 것으로 밝혀졌다. 배타적경제수역(EEZ) 획정이나 군사전략상 가치도 크다.

그러나 중-일 간 영토 분쟁이 벌어진 근본적 원인은 ‘중국의 굴기(굴起)’ 즉 중국 국력의 급부상이다. 1994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5592억 달러로 일본(4조7604억 달러)의 11.7%에 불과했다. 당시 일본의 GDP는 세계 1위 미국(7조175억 달러)의 3분의 2에 해당했다.

하지만 2010년 중국의 GDP는 일본을 따라잡은 데 이어 지난해엔 6조9885억 달러로 일본(5조8554억 달러)의 1.2배로 늘었다. 17년 새 일본의 GDP는 23% 증가한 데 그쳤지만 중국은 1150%나 늘었다. 1994년 중국의 경제력은 한국의 1.32배였으나 작년에는 6배로 차이가 커졌다.

그동안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하던 중국은 부쩍 탄탄해진 근육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자긍심을 한껏 키운 13억5000만 명의 중국인들 역시 ‘감히 누구한테 덤벼’라는 자세가 팽배해지고 있다.

중국은 이렇게 커진 몸집을 발판 삼아 점차 주변국과 영토 분쟁을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인도와의 영토 갈등이 유일했지만 지금은 베트남 필리핀 일본 등 주변국만 7개나 된다. 최근엔 한국의 이어도까지 분쟁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중-일 영토 분쟁에 임하는 중국의 논리다. 포츠담선언의 제8조 보충규정에 따르면 일본은 대만은 물론 류큐(琉球) 제도(현 일본의 오키나와)도 중국에 반환하도록 돼 있다. 지금은 대만의 부속 섬이라며 센카쿠 열도만 달라고 하지만 오키나와까지 되돌려달라고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중국의 학자들은 “오키나와를 관리하던 미국이 중국에 반환해야 하는데 일본에 넘겨줬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앞으로 3, 4년이면 ‘구매력을 감안한 국내총생산’에서 미국을 추월하고 10년이면 GDP도 능가할 가능성이 높다. 부쩍 커진 중국의 몸집을 감안하지 않고 동북아의 새 질서를 짜기는 어렵다. 중국을 어떻게 상대할지는 한국 일본 등 중국의 주변국엔 이제 발등의 불이다.

하종대 국제부장 orionha@donga.com

[사설/9월 26일] 이어도 분쟁화 획책하는 중국의 탐욕

한국일보 2012.09.25 21:03:29

 

중국이 또다시 이어도가 자국 관할권 해역이라고 주장하며 무인기 감시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천부당 만부당하다. 중국 국가해양국은 23일 무인항공기 원격 해양감시 시스템 시연행사에서"무인항공기를 이용해 쑤엔자오(이어도의 중국명)를 포함한 관할 해역의 종합관리와 통제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는 보도다. 중국측은 무인기 해양 감시ㆍ감측 체제를 2015년까지 구축키로했다고 한다.

중국의 이어도 해역 관할 주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올 들어 빈도와 수위가 부쩍 높아졌다. 3월에는 류츠구이 해양국장이 이어도를 포함한 자국 관할 해역을 해양감시선과 항공기로 정기순찰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관례에 비춰 불리한 EEZ(배타적 경제수역)획정 협상은 미루면서 이어도 해역을 단계적으로 분쟁화해 나가려는 속셈일 것이다.

수중암초인 이어도는 한ㆍ중 어느 쪽의 영토도 아니고 영해에도 속하지 않지만 EEZ 관할권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에서 149㎞, 중국 유인도 서산다오에서 287㎞ 떨어져 있어 양국의 EEZ(연안으로부터 200해리ㆍ370 ㎞)가 서로 겹치나 이 경우 겹치는 해역의 중간선을 택하는 국제관례에 따르면 당연히 우리 관할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EEZ 획정에 해안선 길이와 배후인구를 고려해야 한다는 중국 주장은 대국의 억지요 횡포다.

이어도는 먼 옛날부터 제주 주민들의 가슴 속에 간직된 전설의 섬이기도 한다. 국제법적으로나 역사적으로는 물론이고 국민 정서상으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해역이다. 중국이 이를 외면하고 분쟁화를 꾀하는 것은 해양과 영토에 대한 끊임 없는 탐욕을 드러내는 것이다. 국제사회에 이런 인상을 주는 것은 센카쿠(댜오위다오), 난사군도 분쟁 등 다수의 인접 국가들과 벌이는 해양영토 분쟁에도 유리할 게 없다는 점을 중국은 깨달아야 한다. 우리 정부도 중국의 부당한 기도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특파원 칼럼] 중국의 좌향좌, 일본의 우향우 / 박민희

한겨례신문 국제 등록  2012.09.27 19:37

 

 

온 사방에서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에 항의하는 중국내 반일시위가 정점을 이룬 지난 18일 베이징 일본대사관 앞은 거대한 연극 무대였다. 마오의 초상화나 ‘일본을 향해 발포하자’ ‘일본 ×들을 죽이자’ 같은 살벌한 펼침막을 든 시위대는 수백명씩 조를 나눠 행진했는데, 선두에서 공안들이 시위대를 ‘지휘’하는 이색적인 상황이었다.

 

마오의 초상화를 든 이들은 마오를 ‘강력한 지도자’, ‘항일 영웅’으로 칭송했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수천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마오가 중국인들의 마음속에서 ‘부활’하는 모습은 당혹스럽다.

 

‘마오교’는 현재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종교인지도 모른다. 부정부패와 빈부격차, 부정의가 만연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 활력을 잃어가는 경제에 대한 불안이 더해지면서 중국인들은 마오에게서 의지할 곳을 찾는다. 중국 소설가 위화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에서 “중국이 발전한 이후 너무 많은 사회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마오쩌둥이 끊임없이 ‘부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썼다. 현실 불만을 자양분 삼아, 마오 시절의 향수를 대안처럼 내세우는 중국 좌파와 애국주의가 위험하게 결합하고 있는 것이다.

 

나날이 거세지는 중화주의를 닮은 또다른 그림자가 일본에 있다. 이번 중-일 충돌의 도화선은 정치적 이익을 노리고 영토 문제를 이용한 일본 우파의 불장난이었다. 원전 위기,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제, 고령화와 기회를 빼앗긴 젊은층의 불만 등으로 길을 잃은 일본 우파들은 역사에 대한 반성과 ‘평화헌법’을 비웃으며 군국주의 시절의 영광에 대한 향수를 부추긴다.

 

일본 극우파의 대표주자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도지사가 지난 4월 센카쿠 국유화를 선언했을 때 중국과의 충돌은 이미 예고됐다. 역사를 보면, 1895년 일본의 오키나와와 센카쿠 획득은 팽창주의 침략의 산물이었다. 아울러 2차대전 이후 독도와 센카쿠열도 영유권 분쟁의 소지를 남긴 것은 미국이 구축한 동아시아 냉전질서였다. 이번 사태 뒤에도 일본 내에서 센카쿠 영유권 주장이 침략 역사와 관련돼 있으며, 중-일 수교 당시의 묵계를 깨면서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반성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유력한 차기 총리로 떠올랐다.

 

현실 문제를 정면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향수에 의존하는 중국의 좌향좌와 일본의 우향우가 동아시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센카쿠 갈등은 표면의 증상일 뿐, 중·일 양국 내부의 수많은 모순과 정치적 혼란이 깊은 뿌리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미래를 건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더해지면서 사태는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 최근 아시아 곳곳에서 ‘섬 분쟁’이 격렬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취약한 해군력 탓에 수십년 동안 주변 제해권을 미국에 내줘야 했던 중국은 이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미국과의 ‘공동 통치’, 대등한 관계를 요구한다. 미국은 이 지역의 복잡한 영유권 분쟁을 적절히 이용해 중국 포위망을 짜려 한다. 현재는 중-일이 충돌하고 있지만, 한국을 비롯한 이 지역 국가들은 언제든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한반도 주변에서 두 과거와 두 미래가 위태롭게 충돌하고 있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성남 아트쎈타 오페라하우스 그림 <한민족의 얼(농악)>

 

성남 아트쎈타 오페라하우스 그림 <한민족의 얼(농악)> 안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