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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오피니언

경향[낮은 목소리로]‘반전 있는’ 정치 스타일/콜레우스 2장

[낮은 목소리로]‘반전 있는’ 정치 스타일

 경향신문 오피니언 한상봉 카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입력 : 2012-10-05 21:26:19

 

“내 가난함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배부릅니다/ 내 야윔으로/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살이 찝니다/ 내 서러운 눈물로/ 적시는 세상의 어느 길가에서/ 새벽밥같이 하얀/ 풀꽃들이 피어납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지은 ‘세상의 길가’라는 시.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 깜박깜박 살아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이라고 적은 ‘그 여자네 집’만큼이나 망명정부 같은 이승을 살아가면서 힘든 고비를 넘길 때마다 가슴으로 읽던 글귀다. 이건 아마도 그리움일 것이다. 이승에서 다 채우지 못할 영원한 고향 같은 다정함에 대한 갈증일 것이다. 기울어가는 세상의 무게중심을 잡으려는 안간힘일 것이다.

1999년 가을 이맘때쯤 나는 서울을 탈출해 무주 산골로 내달렸다. 귀농, 그리고 10년 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와 도종환 시인의 말대로라면 ‘화엄’을 일구고 있다. 서울 탈출의 직접적인 이유는 영양실조와 스트레스로 인한 결핵성 늑막염. 간접적인 이유는 두 눈으로 직접 ‘별을 헤아리는 밤’을 소유하기 위함이었다. 학창시절 새 교과서를 받으면 제일 먼저 국어책에서 시를 골라 읽던 나는 윤동주가 보았다는 그 별을 나도 헤아리고 싶었다. 이어령이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하나의 우주가 흔들린다”고 노래했던 바람을 느끼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른바 ‘운동판’에서 받은 상처와 질병을 직면하고 치유받고 싶었다.

지난 총선 이후 끝없이 마음을 어지럽혔던 통합진보당 사태는 ‘물신화’된 자본 중심의 세상에서 진보세력 역시 자유롭지 못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어 이정희 전 대표가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 그 정도가 극에 달하고 있다. 한자릿수의 지지율로 캐스팅보트를 쥐고 대선 이후에 지분을 나누어가지려는 유사 진보세력의 권력 욕망을 지켜보면서, 한때 그들과 더불어 세상을 바꾸어보겠다고 나섰던 내 심경은 참담하다. 진보정당이 정치적 입지를 얻는 것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이 너무 속물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괴물과 대적하면서 스스로 괴물이 되어, ‘사심없이 투신했던’ 사람들을 함부로 상처내고 있다.

그들은 언제부턴가 ‘가난하고 야위고 서러운 눈물을 적시는 법’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그래야 세상의 어딘가에서 누군가 배부르고 살이 찌고 어느 길가에선 ‘새벽밥같이 하얀 풀꽃들’이 피어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희망버스를 기획했던 송경동 시인과 같은 이들의 가치는 고귀하다. 투신의 열매를 탐하지 않고, 그가 몸을 던져 얻은 것은 절룩이는 발을 거들어줄 지팡이뿐이었다.

송경동은 “어느 대학 출신인가요”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나요”라는 질문을 ‘사소한 물음’이라고 했다. 통쾌하고 명쾌한 해석이다. “어느 날 한 자칭 마르크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송경동은 ‘운동권 엘리트’ 그네들만의 혁명에 함께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답했다.

손학규 전 의원은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면서 ‘저녁이 있는 삶’을 내세웠다. 재벌은 재벌대로, 군부는 군부대로, 농민은 농민대로 저마다 꿈이 다를 텐데 무차별하게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내세운 현실성 없는 박근혜 후보의 슬로건보다 더 현실적이면서 시적이다. 광부가 기름 묻은 하이데거와 러셀의 책을 읽는 나라. 자전거에 막걸리병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으로 놀러가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을 그린 신동엽의 ‘산문시’를 떠올리게 하는 멋진 정치구호다. 그러나 구호는 구호일 뿐. 정작 문재인 후보는 선거운동 전문가에 앞서 도종환 시인과 안도현 시인을 캠프에 초대했으며, 안철수 후보는 꼼수없이 세속적인 기득권을 포기할 의사를 밝혔다. 정치권력의 아수라에서 시인과 성직자를 연상시키는 문재인과 안철수가 오히려 급진적이다.

미국 빌보드 차트 2위를 기록하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8만명의 시민이 모인 가운데 싸이가 불렀던 ‘강남스타일’ 노래에선 말한다.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커피 한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그런 반전 있는 여자….” 그런 ‘반전 있는’ 정치를 보여주는 이들이 진보적이다. 자칭 진보든 보수든 반전 없는 정치 스타일은 ‘수구세력’에 다름 아니다. 가장 아픈 곳에 시선이 머무는 정치를 기대한다.

 

못써이정희 전 대표가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 그 정도가 극에 달하고 있다. 한자릿수의 지지율로 캐스팅보트를 쥐고 대선 이후에 지분을 나누어가지려는 유사 진보세력의 권력 욕망을 지켜보면서, 한때 그들과 더불어 세상을 바꾸어보겠다고 나섰던 내 심경은 참담하다. 진보정당이 정치적 입지를 얻는 것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이 너무 속물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괴물과 대적하면서 스스로 괴물이 되어, ‘사심없이 투신했던’ 사람들을 함부로 상처내고 있다.


 

싸이가 불렀던 ‘강남스타일’ 노래에선 말한다.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커피 한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그런 반전 있는 여자….” 그런 ‘반전 있는’ 정치를 보여주는 이들이 진보적이다. 자칭 진보든 보수든 반전 없는 정치 스타일은 ‘수구세력’에 다름 아니다. 가장 아픈 곳에 시선이 머무는 정치를 기대한다.

 

 가장 아픈 곳에 시선이 멈추는 정치, 찾아가는 정치, 부패없는 정치...어디 없는가?? 

 

 

- 2012년 10월6일 토요일 오후 8시20분 수산나 -

콜레우스 1

 

콜레우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