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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문인

[김석종의 만인보]법화경 7만자 돌에 새긴 ‘노래하는 서예가’ 조성주/서예 퍼포먼스 6장

 

[김석종의 만인보]법화경 7만자 돌에 새긴 ‘노래하는 서예가’ 조성주

 경향신문/오피니언/테마칼럼/김석종 선임기자/입력 : 2012-06-06 21:12:47

 

 

시쳇말로 입이 떡 벌어졌다. 서예·전각가인 조성주(61)가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연 ‘법화경 불광’전(전시회는 5월25일 시작해 지난 4일 끝났다)에서다. 우선 그 양과 규모 면에서 엄청났다. 불교 경전인 ‘법화경’ 7만자를 한 칼 한 칼 돌에 새겼다. 전각(석인재라고 부르는 무른 돌에 글씨를 새기는 인장)에 들어간 돌이 무려 5t, 돌값만 4억원이 들었단다. 인사동에서 제일 넓다는 400평(1322㎡)짜리 미술관의 바닥과 벽을 전각과 서예로 꽉꽉 채웠다. 길이 5.8m, 높이 1.5m에 이르는 대규모 전각 설치작품도 있다.

서예가라기에 처음 만났을 때는 솔직히 좀 고리타분하게 여겼다(세상이 그러하니 서예가들이 섭섭하게 생각해도 할 수 없다). 그가 공들여 길러서 멋부리고 다니는 곱슬곱슬한 수염을 보고는 마이너리티, 혹은 아웃사이더적 ‘기인’이겠구나 싶었다. 더군다나 2집 음반까지 냈다고 했을 때는 ‘서예가가 무슨…’ 하면서 같잖게 봤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가 글씨와 전각으로 야무지게 일가를 이뤘다는 거다. 그의 글씨는 필선이 유연하면서도 강렬하고, 전각 칼질 또한 요즘 드물게 한 경지에 달했단다. 무엇보다 엄숙하기 짝이 없는 서예 동네서 전혀 기죽지 않고, 발상을 확 바꿔 현대미술 요소를 ‘크로스오버’ 해낸다는 걸 알고서는 새삼스럽게 바라봤다.

5년 전쯤인가, 인사동 덕원갤러리에서 열린 김홍신 소설 <대발해> 출판기념회 때 조성주가 새하얀 모시옷을 입고 등장했다. 진짜로 사람 키만한 ‘대붓’을 양손으로 붙잡고 양동이에 가득한 먹물을 찍어 바닥의 커다란 현수막용 천에 일필휘지하는데, 이게 또 볼만했다. 전통음악에 맞춰 온몸을 비틀며 ‘발해, 대한민국의 기품이여!’라고 써내려가는 품새가 마치 기천무 춤사위 같았다. 말로만 듣던 ‘서예 퍼포먼스’(요즘 따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가 이른바 ‘창시자’다)였다.

 


조성주는 이걸 2006년 디자이너 이상봉의 파리 루브르박물관 패션쇼에서 의상에 쓴 글씨, 문양과 함께 처음 선보였다(지금까지 이런 퍼포먼스를 100번 넘게 했다). 서양인들이 우리 붓글씨에 감동하는 것을 보고는 새로운 영감과 더 큰 자신감을 얻었단다. 같은 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캘리그래피’(손글씨 디자인)전을 열었다. 그가 소월 시 ‘산유화’를 써서 만든 티셔츠는 ‘짝퉁’이 계속 만들어져 지금도 인사동에서 인기리에 팔린다.

앞서 ‘마이너’ 운운했는데 산전수전, 신산고난 다 겪은 인생이다. 그런 내공이 글씨에도 팍팍 묻어난다. 충남 서천 천방산 골짜기에서 자란 삼대독자다. 어려서부터 습자 시간에 배운 것만으로도 붓글씨 솜씨는 알아줬다. 한데도 노래가 그렇게 하고 싶었단다. 적성에도 맞지 않는 공업고등학교 기계과에 들어가면서 홀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대학 진학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종로 뒷골목의 가요·반주 학원 주변을 서성거리며 외롭게 방황했다. 그러다가 할 수 없이 ‘전공대로’ 공장에 들어갔고,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채로’ 20년을 지냈다. 어느날 직장 근처에서 서예학원 간판을 보고 큰 기대없이 발을 들여놓았다. 퇴근 후에만 붓을 잡았는데도 일취월장했다. 1980년 ‘전각 일인자’ 구당 여원구 문하에 정식 입문해 필법과 한문, 전각을 공부했다. 구당은 현대 서예계의 거목으로 꼽히는 여초 김응현의 제자이니 스승을 제대로 만난 셈이다.

조성주의 이름은 1997년 한국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사경(寫經)으로도 어렵다는 불교 ‘금강경’ 5400여 글자를 세계 최초의 전각 작품으로 완성했기 때문이다. 꼬박 10년을 바친 작업이었다(이번 법화경 전각은 금강경 완각의 10배가 넘는다). 생활을 위해 서예학원을 운영하고, 만학(하도 설움을 당해서 ‘학력’에 한이 맺혔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결국 박사 학위까지 따냈다)을 병행하면서 이룬 결실이라니 대단하다.

서예가로 꽤 명성을 얻었는데도 ‘노래’의 꿈은 버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2007년 그가 낸 ‘궤적’ 1, 2집 음반에는 트로트와 국악가요가 섞여있다. 그는 이번에 또 3집 음반을 준비 중이다. 앞으로 글씨(書)·노래(歌)·춤(舞)에 비디오 아트까지 더한 ‘서예 콘서트’를 열겠단다. “다른 미술작업과 달리 서예의 운필에는 강약, 고저, 장단의 음악적 리듬이 들어있다. 그 추임새는 파워풀한 행위예술과 다를 바 없고, 일필휘지의 신명은 음악으로 연결되는 거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딴따라’ 쪽으로 나가는 거 아냐? 하는 마음을 먹으려고 할 때 그가 빼든 ‘칼’이 법화경 전각이다. 이건 고통의 밑바닥에서 인연이 닿았고, 신앙적 절실함에 이끌렸다. 지인에게 수억원의 빚 보증을 서준 게 잘못돼 재산을 다 날리고 거의 폐인처럼 살고 있었다. 2007년 불교 전시기획자이자 명상춤꾼인 전수향이 찾아와 법화경을 내밀며 전각을 권했다.

구십 노모가 재료비로 쓰라고 내놓은 통장의 200만원을 찾아 첫번째 돌을 사면서 그는 엉엉 울었다. 그후 꼬박 6년을, 하루 15시간씩 쭈그려 앉아 법화경을 붓으로 쓰고, 일점 일획도 빠짐없이 돌판에 새겨넣었다. 두주불사였던 술은 딱 끊었다. 재료비가 떨어져 낙심할 때마다 ‘기적처럼’ 변통이 되더란다. 승용차가 없어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며 정릉 집과 인사동 작업실(낡은 6층 건물 꼭대기 비좁은 방이다)을 오갔다. 작업 중인 무거운 돌덩이를 배낭에 넣어 메고다녔다. 작업 막바지에 낙상을 해서 골반과 갈비뼈 2개가 부러졌는데, 다행히 작업하는 오른손은 멀쩡하더란다. 목발을 짚고서도 칼은 놓지 않았다.

조성주는 이번 전시에서 서예, 전각에 디자인, 조각, 설치미술 같은 동서양의 현대미술적 요소를 총동원했다. 퍼즐·모자이크 기법과 첨단 조명까지 사용했다. 그는 이 새로운 작업을 초월을 뜻하는 ‘하이퍼(Hyper)전각’이라고 명명했다. 극한 상황에 이르면 초능력이 나올 거라는 종교적 간절함도 그 이름에 반영된 것 같다.

그는 작업 기간 내내 고려 팔만대장경을 생각했다고 한다. 누군가 ‘21세기 팔만대장경’이라고 했다는데, 그만큼 1600년 유구한 한국 불교미술사에 든든한 업적일 터다. 음주, 도박 같은 남부끄러운 일을 벌인 스님네들은 조성주가 ‘구도의 고행’처럼 돌판에 아로새긴 불심에 어떤 토를 달까. 그가 말했다. “묵직한 돌덩이를 들었다 놓은 것처럼 시원하고도 허전하니 노래방 갑시다. 거기가 내 노래연습장여.”

 자기짱서예·전각가인 조성주(61)... ‘법화경’ 7만자를 한 칼 한 칼 돌에 새겼다. ... ‘법화경 불광’전을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했다...^-^

 

김홍신 소설 <대발해> 출판기념회 때 조성주가 새하얀 모시옷을 입고  ‘발해, 대한민국의 기품이여!’라고  ‘서예 퍼포먼스’를 했다....그는 창시자이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캘리그래피’(손글씨 디자인)전을 열었다. 그가 소월 시 ‘산유화’를 써서 만든 티셔츠는 ‘짝퉁’이 계속 만들어져 지금도 인사동에서 인기리에 팔린다...^-^

 

 1980년 ‘전각 일인자’ 구당 여원구 문하에 정식 입문해 필법과 한문, 전각을 공부했다. 구당은 현대 서예계의 거목으로 꼽히는 여초 김응현의 제자이니 스승을 제대로 만난 셈이다....^-^

 

 조성주의 이름은 1997년 한국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사경(寫經)으로도 어렵다는 불교 ‘금강경’ 5400여 글자를 세계 최초의 전각 작품으로 완성했기 때문이다. 꼬박 10년을 바친 작업이었다(이번 법화경 전각은 금강경 완각의 10배가 넘는다). 생활을 위해 서예학원을 운영하고, 만학(하도 설움을 당해서 ‘학력’에 한이 맺혔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결국 박사 학위까지 따냈다)을 병행하면서 이룬 결실이라니 대단하다...^-^

 

지인에게 수억원의 빚 보증을 서준 게 잘못돼 재산을 다 날리고 거의 폐인처럼 살고 있었다. 2007년 불교 전시기획자이자 명상춤꾼인 전수향이 찾아와 법화경을 내밀며 전각을 권했다...구십 노모가 재료비로 쓰라고 내놓은 통장의 200만원을 찾아 첫번째 돌을 사면서 그는 엉엉 울었다. 그후 꼬박 6년을, 하루 15시간씩 쭈그려 앉아 법화경을 붓으로 쓰고, 일점 일획도 빠짐없이 돌판에 새겨넣었다...^-^

 

누군가 ‘21세기 팔만대장경’이라고 했는데...조성주는 이번 전시에서 서예, 전각에 디자인, 조각, 설치미술 같은 동서양의 현대미술적 요소를 총동원했다. 퍼즐·모자이크 기법과 첨단 조명까지 사용했다. 그는 이 새로운 작업을 초월을 뜻하는 ‘하이퍼(Hyper)전각’이라고 명명했다....^-^

- 2012년11월29일 목요일 오전 6시10분...수산나 -

 

 

서예 퍼포먼스 1

 

서예 퍼포먼스 2

 

서예 퍼포먼스 3

 

서예 퍼포먼스 4

 

서예 퍼포먼스 5

 

서예 퍼포먼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