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문인

[김석종의 만인보]지친 세상에 기를 ‘팍팍’ 퓨전음악가 신기용/퓨전국악 '황진이' 5장

 

[김석종의 만인보]지친 세상에 기를 ‘팍팍’ 퓨전음악가 신기용

경향신문/오피니언/테마칼럼/김석종 선임기자 

입력 : 2012-11-14 21:11:13

 

 

참 특별한 ‘퓨전음악가’ 평산(平山) 신기용(55)의 공연을 본 게 지난 봄이다. 서울 북촌 창우극장에서 연 ‘평산음악축전, 소울 터치(Soul Touch)’에서다. 무성한 흰색 턱수염에 짙은 송충이 눈썹으로 도인급 아우라를 풍기는, 평산의 무대는 여간 예사롭지 않았다. 우선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마구 넘나드는 거다. 조선 북과 피아노, 아프리카 타악기와 기타, 티베트 싱잉볼(주발)에 몽골 전통 현악기, 심지어 다듬잇돌까지 따로 또 같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소리와 음악이 일단 별났다. 양손을 각각 다른 리듬으로 두드려대는 북소리는 기운이 펄펄 넘쳐서 신명났다(이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라이브 중간중간 원맨쇼 퍼포먼스와 ‘구라’도 끼워넣는 거였다.

“호신술이랍시고 멱살을 잡히면 손목을 비틀어버리라는데, 그러다간 맞아 죽어…. 그냥 눈에다 침을 타악~ 뱉어버려. 아니면 손가락 끝에 힘을 모아 겨드랑이를 콱, 찔러버리면 간단해!” “거기, 이쁜 여성분. 손 이리줘봐요(그러고는 맥을 집는다). 아, 태기가 있네! 핫하하. 놀라시긴. 태기, 기운이 아주 좋다고.”

이러다가 코미디 되는 공연이 왕왕 있지만 걱정 붙들어매도 된다. 뒤이어 갑자기 전체 조명이 꺼진다. 그 어둠과 침묵 속으로 느리게 혹은 빠르게, 약하게 혹은 강하게 북치고 건반을 두드리면 모종의 신비감이 쫘악 감도는 거다. 평산이 말하길, 서양의 박자·음계와는 상관없이 들숨 날숨, ‘기(氣)’의 흐름을 따르는 음악이란다. 그걸로 듣는 이의 몸과 마음을 ‘힐링’한다니, ‘치유명상음악가’ ‘기공음악가’로 불린다. 그를 좋아하는 이들은 펄펄 용솟음치는 강렬한 신명, 미끈한 규격품이 아니라 장인(匠人)의 수제품 같은 호방하고 자유로운 리듬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고 한다. 평산 자신은 “조선의 신명, 아프리카의 원초적 생명력, 인도의 구도정신을 융합시키는 울림을 추구한다”고 거창하게 말한다.

대전에 사는 평산은 사실 주류 음악계, 혹은 중앙 무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음반 한 장 낸 바 없다. 무엇보다도 그가 정규 음악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독학으로만 음악의 일가를 이뤘다는 게 또 희귀하다. 게다가 무술, 기공, 명상, 참선, 주역, 관상학, 대체의학까지 두루 섭렵한 이력이다. 이런 못말리는 기인(奇人) 기질은 그가 자란 충남 홍성군 광천의 집안 내력인 거 같다. 숨은 ‘고수’들이 많았다는 이 고장에서 신기용의 할머니와 아버지가 선도(仙道) 수련자였다. 둘 다 자신이 떠날 날을 꼭 집어 말하고 좌탈입망(坐脫立亡·수행자들이 앉은 채로 숨을 거두는 걸 말한다)했다고 한다(도대체 믿기질 않아서 ‘뻥’ 아니냐고 다그쳤지만 굽히지 않았다). 기타 명연주자였던 형은 기타 하나 둘러메고 전국을 방랑하다가 일찍 세상을 떴단다. 그러니 싹수부터 좀 남달랐던 거다. 어릴 적 다듬이질(지금도 다듬잇돌을 연주용 악기로 쓴다)과 장구, 북, 꽹과리 치는 솜씨가 아주 빼어났다. 라디오 심야 음악방송을 빼놓지 않고 들으며 날밤을 새웠다. 고교 때는 1년 휴학을 하고 산에 들어가 홀로 책을 읽으며 미친 듯이 실로폰과 북을 두드렸다.

아버지는 그가 장남의 전철을 밟을까봐 친구에게 빌린 기타를 사정없이 부숴버렸다. 그래도 나무를 깎아 드럼과 기타 모양을 만들고, 혹은 피아노 건반 그림을 책상에 붙여놓고 ‘소리없는 연주’를 해댔다. 신중현 음악 한 곡만도 2만번 넘게 연습했단다. 또 하나, 그가 대단한 건 영어 실력이다. 순전히 클래식과 팝송 가사를 공부하기 위해 ‘콘사이스’를 몽땅 외워버렸다니 말이다. 가난해서 고교 졸업 후 4년간 공사판에서 혹독한 ‘노가다’를 했고, 뒤늦게 대학 영문과를 마쳤다. 서울의 유명 입시학원에서 영어강사를 한 뒤 고향에 돌아와 10년 동안 영어학원을 운영했다. 그러면서도 기타, 피아노, 타악기(북, 드럼)는 더 맹렬히 ‘수련’했다. 거기다가 산길을 맨발로 뛰어다니며 무술 고수와 도인들을 만나러다닌 걸 빼놓을 수 없다. 참선과 호흡법, 기공까지 접했으니, 그런 정신 세계에서 음악의 길을 찾은 거 같다.

1990년대 후반부터 여러 행사의 무대에 섰다. 부여에서 열린 신동엽 시인 서거 40주년기념 문학제에서 ‘기의 흐름을 따라서’라는 타악곡을 연주했을 때, 소설가 이문구는 “사람이 치는 북소리가 아니다”라는 말로 극찬했다고 한다. 아프리카, 인도, 몽골, 중국, 호주 음악여행에서도 많은 영감을 얻었다. ‘평산회상’ ‘오! 아프리카’ ‘나는 심장을 바치러 온다’ ‘기타 시나위’ ‘타통(打通)’은 그간 평산이 내놓은 주요 레퍼토리다. 홀로 이룬 성취가 놀랍다고 했더니, “등산과 섹스를 학교서 배우나? 음악도 다 전생부터 갈고닦는 거”라고 알쏭달쏭한 말을 한다.

술자리에서 만날 때마다 특유의 음악 내공과 퍼포먼스를 아낌없이 발휘하는 평산이다. “술시에 술 먹고, 해시에 해롱대다가, 자시에 자빠져 자는겨….” 그에게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게 악기다. 두드리면 음악이 되고, 움직이면 춤이 된다. 눈 깜짝할 새 수저를 구불구불 휘었다가 말끔히 펴놓기도 한다. 하긴, 한때는 물속에서 얼마든지 숨을 참을 수 있는 ‘지식(止息)’ 경지의 내공이었다니까. 요즘 강사로 초청하는 곳도 부쩍 늘었다는데 신묘한(?) 음악에, 재미난 이야기에, 한 사람 한 사람 사주관상과 건강 상태까지 콕콕 집어서 챙겨주니 인기만발이다. 아직 결혼도 안 했다. 방외지사(方外之士)의 자유를 원해 처성자옥(妻城子獄)을 거부한 건지도 모르겠다.

요즘 평산은 관노(官奴) 출신의 퉁소와 대금(젓대) 연주자로 장악원(지금의 국립국악원) 총책임자인 전악(典樂)까지 오른 조선 중기 천재 음악인 허억봉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준비 중이다. 시나리오와 음악을 거의 완성해놓고 있단다(그가 실감나는 연기를 섞어가며 길게 들려준 스토리가 꽤나 감동적이었다는 것만 소개해둔다).

어쩌면 현대판 허억봉을 꿈꾸는 듯한 평산이 오는 26일 또 한차례 창우극장 무대에 선다고 한다. 공연 제목은 ‘평산의 음악여행-허억봉을 그리며’다. 요즘 이래저래 지치고 기운빠진 사람들에게 활기와 신명을 팍팍 채워주겠다니, 그야말로 걸기대다.

놀아줘 ‘퓨전음악가’ 평산(平山) 신기용(55)...기인(奇人) 기질은 그가 자란 충남 홍성군 광천의 집안 내력인 거 같다. 숨은 ‘고수’들이 많았다는 이 고장에서 신기용의 할머니와 아버지가 선도(仙道) 수련자였다...기타 명연주자였던 형은 기타 하나 둘러메고 전국을 방랑하다가 일찍 세상을 떴단다. ...가난해서 고교 졸업 후 4년간 공사판에서 혹독한 ‘노가다’를 했고, 뒤늦게 대학 영문과를 마쳤다. 서울의 유명 입시학원에서 영어강사를 한 뒤 고향에 돌아와 10년 동안 영어학원을 운영했다. 그러면서도 기타, 피아노, 타악기(북, 드럼)는 더 맹렬히 ‘수련’했다. 거기다가 산길을 맨발로 뛰어다니며 무술 고수와 도인들을 만나러다닌 걸 빼놓을 수 없다. 참선과 호흡법, 기공까지 접했으니, 그런 정신 세계에서 음악의 길을 찾은 거 같다.

 

“술시에 술 먹고, 해시에 해롱대다가, 자시에 자빠져 자는겨….” ...아직 결혼도 안 했다. 방외지사(方外之士)의 자유를 원해 처성자옥(妻城子獄)을 거부한 건지도 모르겠다.

 

 평산이 오는 26일 또 한차례 창우극장 무대에 선다고 한다. 공연 제목은 ‘평산의 음악여행-허억봉을 그리며’다.

 

- 2012년 12월3일 월요일 오전 8시20분...수산나 -

 

 

퓨전국악 '황진이' 1

 

퓨전국악 '황진이' 2

 

퓨전국악 '황진이' 3

 

퓨전국악 '황진이' 4

 

퓨전국악 '황진이' 5